풍류가 깃든 계곡 ②괴산 화양구곡

굽이마다 아홉 절경 펼쳐지는 곳

더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계절이 왔다. 폭염에 포위된 처지라고 할까? 열기를 식혀줄 곳으로 잽싸게 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럴 때 청량한 물소리 들리는 계곡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진녹색 수풀까지 시야에 담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에어컨이 내뿜는 인공의 바람이 아닌, 나무와 강물이 선물하는 자연의 바람이 그곳에는 가득할 테니 말이다.

괴산군은 충북 땅에서도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고장이다. 우뚝 솟은 산과 깊은 계곡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데, 그중 압권은 화양구곡이다. 이곳을 찾은 이의 마음을 무시로 빼앗을 절경이 자그마치 아홉 곳이다. 굽이굽이 드러나는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기운을 잃고 저만큼 물러날 테다. 

괴산 화양구곡(명승)은 청천면 화양천 주변 약 3㎞에 흩어져 있는 아홉 장소를 일컫는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전 구간을 볼 수 있다. 모두를 환영하듯 길이 험하지 않다. 여름에는 허가된 장소서 물놀이도 가능해, 가족 단위 피서객에게 특히 인기다(올해 물놀이 기간은 6월1일~8월31일).

피서객에게 인기

출발은 화양동입구사거리 쪽으로 정했다. 주차장이 넓고, 화양구곡을 안내하는 팸플릿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1곡 경천벽(擎天壁)을 만났다. ‘하늘을 떠받드는 벽’이란 뜻이다. 저 높고 넓은 하늘을 절벽 하나가 어찌 떠받을 수 있을까 싶지만, 칼로 자른 듯 수직으로 솟은 산세에 마음이 시원했다.

1곡부터 걸작으로 소문난 영화의 흥미진진한 예고편을 본 느낌이다. 남은 여덟 장소가 자못 궁금해졌다. 2곡으로 향하는 길에 나무 덱이 깔려 가볍게 걷기 좋다. 계곡 입구까지 쫓아오던 자동차 소음마저 사라지고, 계곡물과 바람이 내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귓가에 가득했다.


화양구곡의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깊게 호흡했다. 할 수 있다면 집에 가져가고 싶은 상쾌한 공기가 온몸으로 들어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으면 초록빛이 눈앞으로 떠다녔다.

화양이교를 지나니 2곡 운영담이다. 강 건너 절벽에 운영담(雲影潭)이라 쓴 한자가 선명히 보였다. 모래밭으로 내려가 바위에 잠시 앉았다. 운영담은 맑은 계곡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는데, 맑은 날에는 구름의 그림자가 수면에 비친다는 뜻이다. 마침 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 몇 점이 계곡물에 비쳤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화양구곡에 내려와 지냈다. 그가 세상을 뜨고 나서 제자 권상하가 스승이 머물던 이곳의 아홉 경치에 이름을 붙였다. 이 때문에 화양구곡에는 괴산 송시열 유적(사적)이 있다. 만동묘와 암서재, 화양서원 묘정비(충북기념물) 등으로 구성된다. 효종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우암이 매일 새벽 크게 울었다는 3곡 읍궁암(泣弓巖)도 송시열 유적에 포함된다.

화양구곡의 아름다움은 4곡서 절정에 이른다. 이곳은 ‘물속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고 해서 금사담(金沙潭)이다. 금빛 모래가 수면 아래를 빛나게 한다면, 바위 위에 있는 아담한 건물이 금사담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듯하다. 송시열이 책 읽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암서재다.

어찌 저리도 절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지, 훌쩍 물을 건너 암서재 문을 열고 들어가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싶었다.

아홉 곳의 아름다운 절경
더위를 잊게해주는 산책길

다시 길을 재촉했다. ‘별을 관측하는 자리’라고 해서 이름 붙인 5곡 첨성대(瞻星臺)는 화양삼교를 건너니 자세히 보였다. 6곡 능운대(凌雲臺)는 커다란 바위가 구름을 찌를 것처럼 생겼다. 7곡 와룡암(臥龍巖)은 계곡물에 바짝 엎드려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 같았다.


오래된 다리 건너편으로 학이 둥지를 틀고 앉아 알을 낳았다는 전설이 서린 8곡 학소대(鶴巢臺)가 나타났다. 이곳을 지나면서 계곡이 더욱 깊어졌다. 9곡 파곶(巴串)은 너른 바위 위로 흐르는 물결이 용의 비늘을 꿴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더위를 씻어주는 계곡 산책을 마무리하고 괴산읍으로 향했다. 괴산 읍내에는 남북을 경계로 동진천이 흐른다. 하천 북쪽에 괴산보훈공원을 중심으로 걸으며 둘러볼 유적지가 세 곳 있다. 처음 찾은 곳이 괴산 홍범식 고가(충북민속문화재)다. 자그마한 동네 뒷산과 동진천 사이에 앉은 집의 위치가 안정적으로 보였다. 대문으로 들어가니 건물과 뒷산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1730년경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 집에 태인군수와 금산군수를 지낸 일완 홍범식이 살았다. 홍범식은 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일제에 저항하는 의병을 보호하는 한편,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펴 군민이 믿고 따랐다. 그의 아들은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다.

홍범식은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에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했다. 홍명희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이 집에서 1919년 3월 괴산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홍범식 고가 뒤편에 개심사가 있다. 사찰 마당에서 괴산 읍내가 한 눈에 보인다. 개심사는 1935년 도덕암이 사라지면서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충북유형문화재)을 이곳으로 옮기며 지은 절이다. 두 불상은 현재 극락보전에 모셨다. 가운데 불상이 목조여래좌상이고, 오른쪽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이다.

조선 후기에 제작한 불상으로 전해지는데 머리와 옷 주름, 표정과 손 모양까지 훼손된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왼쪽에 있는 대세지보살좌상은 현대에 제작한 것이다.

괴산향교

개심사서 내려와 괴산군청 방향으로 마을 길을 따라가면 괴산향교(충북유형문화재)가 보인다. 홍살문 안쪽에 향교를 든든하게 지키듯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섰다. 괴산향교를 처음 설립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53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500년 가까이 한곳을 지키며 지역 인재 교육을 담당했다. 여러 차례 새로 짓고 보수를 거듭했으나, 비교적 관리가 잘되어 조선 시대 지방 교육기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 등이 남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괴산 화양구곡→공림사→괴산 홍범식 고가→개심사→괴산향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괴산 화양구곡→공림사→괴산향교
-둘째 날: 개심사→괴산 홍범식 고가→괴산 충민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괴산군 문화관광 www.goesan.go.kr/tour/index.do

문의 전화
-괴산군청 문화체육관광과 043)830-3457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분소 043) 832-4347
-개심사 043)832-2633


대중교통
[버스] 서울-괴산,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10~11회(06: 45~20:30) 운행, 약 2시간 소요. 괴산시외버스터미널서 괴산 화양구곡까지 택시 이용, 약 20㎞.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 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괴산시외버스터미널 043)833-3355

자가운전
평택제천고속도로 음성 IC서 음성·금왕 방면 오른쪽 고속도로 출구, 359m→음성톨게이트, 105m→음성IC교차로서 음성 방면 왼쪽, 24㎞→괴산교차로서 청주·증평 방면 오른쪽, 2.9㎞→대명리 방면 우회전, 740m→문법1리(원줄기) 방면 좌회전, 2.1㎞→괴산 방면 좌회전, 1.5㎞→문광삼거리서 상주·화양구곡 방면 우회전, 8.3㎞→덕평삼거리서 덕평·운교 방면 우회전, 138m→덕평 방면 우회전, 703m→덕평삼거리서 청천·도원 방면 좌회전, 4.6㎞→도경로후영5길 방면 좌회전, 2㎞→화양로 방면 우회전, 1.2㎞→우회전→화양동계곡 주차장

숙박 정보
-호텔웨스트오브가나안: 연풍면 수옥정길, 043)833-8814, www.westofcanaan.com
-숲속작은책방: 칠성면 명태재로미루길, 043)834-7626, https://cafe.daum.net/supsokiz
-호텔더킹: 괴산읍 읍내로15길, 043)834-3355, https://blog.naver.com/theking3355

식당 정보
-맛고을(도토리칼국수·열무냉면): 괴산읍 읍내로, 043)834-7481
-즐거운날(새뱅이전골·황태찜): 괴산읍 읍내로2길, 043)833-1193
-짚은목맛집(버섯전골·매운탕): 칠성면 산막이옛길, 043) 834-0832

주변 볼거리
산악이옛길, 선유구곡, 각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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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