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피에로씨는 예전에 동자동 하숙집에서 열광적으로 시전하던 성공학에다 여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접목시켜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설정했는가 보았다.
즉, 자기 개인의 성공을 넘어 우리 한민족 전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투신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옥탑방에 꽤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이와 관련해 제법 기특한 소릴 흥얼대기도 했다.
성공통일교
“목표가 뚜렷하면 어떤 고난도 견뎌내고 실천하게 된다!”
별 대단스럽달 건 없지만, 그나마 공상이나 실없이 뇌까리던 예전에 비해 많이 변화된 모습이었다. 다만, 무엇을 위한 실천행인지가 문제였다.
나쁜 실행은 때론 관념적 우유부단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던가. 나로서는 동자동에서보다 외려 더 걱정스러웠다.
옥탑의 사이비 교주에 대해 그는 별 비판을 하지 않았다. 전엔 실행력은 떨어져도 입바른 소린 나름 잘 내뱉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교주의 사이비성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닌 성싶었다.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이 세상에서 성공키 위해 나름 자신이 믿는 것을 정공법으로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정사를 초월해 나아가는 모습이었달까.
더구나 자기가 내심 사모하는 여통령님의 이른바 통일대박론에 심취해 그 민족적 대사업에 일조키 위해서 나름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지고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사이비 종교든 수구 꼴통 언론이든 뭐든 다 활용해야 한다는 일종의 막가파식이었다. 그는 삐라와 지라시를 만들어 뿌리느라 절룩거리며 부지런히 나다녔다.
활동비는 사이비 교주의 주머니에서 좀 나오는 모양이었다.
“큰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미쳐야 합니다! 물론 아름답게 미친다면 더 좋겠지요. 지금 우리 여통령님 각하께서는 민족의 숙원인 통일 대사업에 노심초사하시느라 무궁화처럼 어여쁘게 살짝 미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의 위대한 마력을 활용한 경천동지할 대사업 앞에서 그 어떤 무지한 자가 웃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아, 뱁새가 봉황의 큰 뜻을 어이 알리오! 모두 엎드려 감복할지어다!”
정치와 종교는 광신적인 양상을 띨 때 가장 가까워진다. 오랜 체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선조들이 세워 놓은 정교 분리 원칙을 비웃으며 밀애를 즐기려 한다. 사련이지만 그들에게는 로맨스다.
어디까지 나가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런 사련에 빠져 가장 저질스러운 불륜을 저지르는 관계는 극우 꼴통 정당(정치 모리배들)과 수구파 기독교단이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꼴만 봐도 명약관화하다.
그들은 최소한의 이성과 양심과 부끄러움마저 내던져 버린 채 벌거벗고 광장을 누빈다. 목표는 사리사욕일 뿐이다. 그들이 가장 믿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신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그들에게 있어 미국은 우주의 중심이며, 그러므로 성조기는 태극기보다 한층 더 고상한 귀물인 셈이다. 다른 어느 나라, 어느 식민지에 이런 경우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통일대박론 일조에 고군분투
이성·양심 내던진 수구 기독
기독교인들은 자기네는 아주 고결한 척하며 한국의 토착 종교, 특히 그중에서도 무당을 저속한 미신이라 침 뱉으면서 깔보고 비웃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연구하는 종교학·민속학·문화인류학계의 학자들은 한국의 기독교 신앙 속에 무속적인 요소가 많이 섞여 들어 있음을 인정한다.
미국식 교회 건축 양식의 이성미와 양복(혹은 양장) 차림이라는 겉치장을 벗겨내고 본질만 본다면 일부 기독교인만큼 기복신앙을 추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여기저기 난립하는 기독교파의 기도원은 무당보다 더욱 더 엽기적이고 광신적인 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 땅에 애시당초 무속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이처럼 번창할 리 만무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오직 기독교인만이 그 사실을 모르거나 모르는 척할 뿐이다. 광신에 협잡까지 더해지면 법마저도 그들을 제어하기가 어렵다.
일부 교회나 기도원에서 목사들이 희소 난치병과 불치병을 예수님의 영력으로 고친다고 선전하는데, 대부분은 미리 짜고 술수를 부린다는 소문이다.
물론 진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사역하는 분도 있으리라. 다만 99%가 징그러운 사기꾼이라는 게 문제인 셈이다.
옥탑방 괴교주와 피에로씨는 마침내 합작하여 하나의 신흥 종교를 창시했다. 그 이름은 ‘신세계성공통일대박교’, 약칭 성공통일교였다. 피에로씨는 약간 자부심이 깃든 어조로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처음에 교주 영감탱이는 그냥 통일대박교로 나가려 들더군. 그건 좀 유치하다고 내가 말렸지. 그리구 성공학의 교묘한 원리를 매치시켜 하나의 정신운동을 지향케 한 셈이야. 영감쟁이는 굳이 고집스럽게 성공보다 승공이 더 좋겠노라 우겼지만, 그런 고리타분한 말은 요즘 세대에게 안 통한다고 내가 겨우 설득하여 성공통일교로 정했지. 하긴 영감이 젊은 시절엔 승공이란 말이 더 유행했다더군. 영감쟁이는 나더러 부교주를 하라더라만 난 그냥 교육선전부장으로 만족키로 했어.”
그러면서 금박 글씨가 거창스러워 보이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국내용으로 전단지를 뿌리고 지라시 신문을 나눠 주는 노릇이었지만 북한에 삐라를 날려 보내는 작전에도 가담하는 성싶었다.
유튜브에 교주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다며 설치기도 했으나 기대한 만큼 많은 조회수를 올리진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더욱 광분하여 하숙생들을 상대로 포교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 배후엔 자유북한운동연합인가 뭔가 하는 탈북민 단체가 있었다.
피에로씨는 그 단체에도 직접 들락거리는 모양이었는데, 그 무렵부터 북한 여성을 무척 칭송하곤 했다.
고운 진선미
“속담이나 격언엔 진리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난 요즘 깨달았어. 남남북녀라고 하잖아. 정말 그녀들은 아리따워. 외피 겉치장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미라고 할까.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과 순결성, 꾸밈 없는 순박함과 진실성, 자연미와 함께 숨쉬는 생명력, 전통미 속에 깃든 선량한 순종의 미덕….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잃어버린 고운 진선미를 지니고 있잖아.”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