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짠내투어 ⑤남원 월평마을-매동마을

‘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산촌의 새벽은 민박 할머니가 달그락대며 밥 짓는 소리로 시작된다. 장작 쌓인 마당에 서면 능선 위로 여명이 깃들고, 군불 때는 연기와 안개가 뒤섞인 아득한 시간이 찾아든다. 남원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지리산둘레길은 가을 산골 풍경과 촌부의 삶을 만나는 곳이다.

숲길을 걷다가 감이 주렁주렁 달린 마을 담장을 지나고, 따끈한 민박에 머무는 일이 일상처럼 전개된다. 민박에 머무는 데 4만~6만원 선(2인 기준), 산나물이 푸짐한 식사가 7000~8000원이다. ‘백만불짜리’ 풍경과 할머니가 내주는 막걸리, 대추와 사탕 한 줌, 함박웃음이 곁들여진다. 소박한 산골 여행에 마음은 부자가 된다.

마을과 마을 잇는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길은 대부분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3코스)에 속한다. 길은 남천(람천) 따라 흐르다 논둑과 마을을 만나고, 숲과 고개 넘어 다시 마을과 이어진다. 전북 남원 인월에서 함양 금계까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이 구간은 지리산둘레길이 시범 개통한 사연 깊은 길이다.

인월면 소재지에서는 제법 큰 오일장이 섰고, 마을 주민은 신작로가 생기기 전만 해도 옛길(현 지리산둘레길)을 걸어 인월장에 오갔다.

월평마을-매동마을 코스는 월평마을에서 출발한다. 서울에서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까지 시외버스가 다니고, 구인월교를 건너면 바로 월평마을이다. 월평마을 가는 길에 지리산둘레길 남원인월센터가 있고, 독립서점이자 북카페 ‘도보책방’이 문을 열었다.


남원 주천·운봉에서 둘레길 여행을 시작하거나 매동마을에서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면 월평마을에 묵을 수 있다. 골목마다 벽화가 볼 만한 월평마을은 ‘달이 뜨면 보이는 언덕’이라는 뜻이고, ‘달오름마을’로도 불린다.

월평마을에서 매동마을까지 느리게 걸어 4시간 남짓 걸린다. 지리산을 병풍 삼은 산골 마을과 숲길, 냇물, 고개가 둘레길에 담긴다. 월평마을 앞 남천과 논둑 따라 시작된 길은 중군마을로 이어진다. 중군마을은 임진왜란 때 전군과 중군, 후군 가운데 중군 부대가 주둔한 곳이다.

담장 너머로 감이 익고, 마늘과 고추를 말리고, 깨를 터는 일상이 펼쳐진다.

중군마을을 지나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갈림길에서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택하면 좁고 고즈넉한 숲길이 그늘을 만든다. 길은 외딴 암자 선화사(옛 황매암)를 거쳐 수성대로 연결된다. 수성대 맑은 물은 중군마을과 장항마을 주민의 식수원으로 쓰인다. 수성대 초입에는 늦가을 풍경을 그림 삼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곳곳에 쉼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3~4곳이 명맥을 유지한다. 찾는 사람이 많은 주말이나 공휴일 위주로 문을 열며, 길손에게 부침개와 오미자차, 막걸리 등을 내놓는다. 

배너미재를 넘으면 지리산 자락의 탁 트인 정경과 함께 숨찬 숲길이 마무리된다. 숲길 끝자락에 장항마을 당산 소나무가 듬직하게 서 있다. 마을에서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당산제를 지낸다.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당산나무 아래 장항마을은 옛 흙담 길이 고즈넉하다. 마을 너머로 바래봉 능선 자락이 내려앉는다.

둘레길과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흐르던 남천은 만수천을 만나 낙동강까지 흘러든다. 장항마을 장항교를 건너면 나오는 매동마을은 인월-금계 구간 중간 지점의 의미가 짙다. 함양 금계마을까지 오가는 여행자가 매동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마을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이 10여곳 있다. 둘레길 손님이 찾아들기 전, 매동마을 주요 수입원은 고사리를 재배하고 꿀을 따는 것이었다.

4시간여 걷다보면 이어지는 마을들
할머니의 세월이 묻어나는 민박집도

민박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상에는 뽕나무 새순, 머위, 장녹나물 등 산나물이 푸짐하다. 인근 산자락에서 봄에 딴 나물을 말렸다가 그때그때 들기름에 무쳐 낸다. 직접 재배해 만든 꽈리고추찜, 고들빼기김치도 향긋하다. 막걸리 한 병을 선뜻 건네는 민박도 있다. 

경남 함양 마천에서 50년 전에 시집온 이야기, 시어머니 대신 장터에 가서 들뜬 이야기… 빛바랜 사진 속에 할머니의 세월이 묻어나고, 얽힌 사연과 미소가 마당을 따사롭게 맴돈다. 하룻밤 묵고 민박을 나설 때, 할머니가 대문 밖까지 배웅하며 사탕 한 줌 쥐여주신다. 알뜰한 걷기 여행을 하는데, 마음은 지리산처럼 든든하고 넉넉해진다.

둘레길 이정표에서 슬쩍 벗어난 곳에 볼거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매동마을 인근에 퇴수정(전북문화재 자료)이 있다. 조선 후기 선비 박치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세운 정자로, 누각 가운데 방 한 칸을 들인 구조가 독특하다. 정자 앞으로 바위와 냇물이 아늑하게 어우러진다.

산내면 소재지를 지나 남천 따라 걸으면 남원 실상사(사적)가 평지에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 때 창건한 천년 고찰로 초입의 석장승이 인상적이며, 증각대사탑(보물)과 수철화상탑(보물) 등이 있다. 실상사 경내와 주변 숲에 흩어진 승탑을 둘러보는 승탑순례길도 조성됐다.

등구재까지 계속되는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에서는 다시 풍광과 조우한다. 산내면 중황마을과 상황마을 해발 500m에 다랑논이 펼쳐진다. 수확을 마친 다랑논 너머 지리산 능선과 스쳐온 마을이 한 눈에 잡힌다. 마지막 쉼터 지나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등구재(650m)다. 등구재는 전라도(남원)와 경상도(함양)의 분기점이 되는 고개다. 예전 이곳 주민들은 지리산을 곁에 두고 등구재를 넘나들며 경계와 허물없이 지냈다.

교통의 요지 인월장

끝자리 3·8일이면 인월장에 간다. 산골 마을에서,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와 장터에서 재회한다. 인월장은 남원 운봉뿐만 아니라 함양 마천·금계 주민도 찾는 곳이다. 인월은 예부터 역참과 역마가 있던 교통의 요지다. 장터에는 지리산에서 나온 산나물, 약초 등이 거래된다. 민박에서 귀하게 내는 생선 반찬도 인월장에서 구한 것이다. 장터에서 먹는 순대국밥과 꺼먹돼지구이가 별미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월평마을→중군마을→매동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월평마을→중군마을→매동마을
-둘째 날: 퇴수정→실상사→상황마을→인월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지리산둘레길 http://jirisantrail.kr
-남원시 문화관광 www.nam won.go.kr/tour/index.do


문의 전화
-지리산둘레길 남원인월센터 063)635-0850
-남원종합관광안내센터 063)632-1330

대중교통
[버스] 서울-인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9회(07:00~23: 59)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에서 월평마을까지 도보 약 500m.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함양지리산고속 055)963-3745

자가운전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 IC→인월 방향→월평마을

숙박 정보 
-지리산한옥마을: 산내면 대정방청길, 063)636-1003
-태양초민박: 산내면 매동길, 010-3575-3097
-감나무집공할머니민박: 산내면 매동길, 010-8960-8685
-엄나무집민박: 산내면 매동길, 010-7340-3013
-정종순민박: 인월면 달오름길, 010-4164-9842
-늘푸른집: 인월면 달오름길, 010-3675-2231
-감꽃홍시: 산내면 대정방청길, 010-8250-6230

식당 정보
-시장식당(순대국밥): 인월면 인월로, 063)636-2353
-두꺼비집(어탕): 인월면 인월장터로, 063)636-2979
-산골농장식당(흑돼지구이): 인월면 인월로, 063)636-2701
-등구재황토방쉼터(산채정식): 산내면 황치길, 063)636-3145

주변 볼거리
국악의성지, 옥계호, 뱀사골계곡, 서림공원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