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⑦피에로씨의 허망한 연애사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1.08 08:54:36
  • 호수 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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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아마 피에로씨처럼 연애를 많이 해본 남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이기보다 몽상적이고, 육체적이기보다 정신적인 홀로 사랑이었기에 허망하겠지만…. 

그는 옛 동자동 하숙집에서 맘속으로 사랑했던 연인들을 싹 잊어버리고 새로운 애인을 물색했다. 이번에 찝적거린 건 한 여인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이었다. 

낙엽 인간 

예전처럼 오직 한 사람만 별바라기 했다간 서글픈 실연으로 생명마저 꺼진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성공학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뇌까렸다.

영원한 번영을 지향하는 성공철학…


아무튼 그는 세 명, 아니 네 명의 여성을 애인으로 몽상 속에 품었다.

무지개 하숙집의 여주인, 그녀의 외동딸 그리고 청춘을 그리워하는 노녀였다.

나머지 한 여인은 아직 신원불명이므로 나중에 확실히 밝혀지면 소개하련다. 참 꿈도 크다고나 할까, 한국판 카사노바의 일그러진 거울에 비친 허깨비라고나 할까. 

뻔뻔스럽기 짝이 없지만 어찌 보면 좀 가엾은 모습이었다.

누군 멋진 얼굴과 신체 조건에 정력과 연애술까지 겸비해 현실에서 수십 수백 수천명의 여성을 실제로 ‘따먹는’ 판국인데…

물론 금전만 풍부하다면 늙은 개 꼬라지라도 수만명 여인을 농락할 수 있겠지만…

가난뱅이 절뚝발이 중년으로선 몽상밖에 더 할게 있으랴 싶었다.


그래도 그런 짓거리보단 눈높이를 낮춰 알맞은 여자를 찾아내 성심성의껏 사랑하는 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마 그런 여인이 나타났다면 그랬으리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한때 서울역 근처를 돌며 노숙녀나 창녀를 접촉해 보기도 했으나 왠지 상대방 쪽에서 웃으며 사절했다고 한다.

만약 돈만 많았다면 절름발이 왕자로서 추앙받았으련만…

아무튼 피에로씨는 남이 싫다 하든 좋다 하든 뭐라든 자신이 세상에서 체득한 방식의 길을 걸어갔다. 꺼벙한 돈키호테처럼….

당연히 공상 속에선 왕자였는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누추한 만년 노총각에 불과했다.

그나마 여자를 향해 더듬이를 잠시 내세워 보았다가 반응이 없으면 즉시 움츠리곤 몽상애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에 큰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로 낙인 찍혔을 뿐…. 

여주인은 그를 아예 남성 자체로 보지 않았었다. 허풍선 아저씨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며 그녀는 그를 불쌍스러운 어떤 존재로 보아 넘겼다.

제 길을 잡아 걸어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낙엽 같은 인간이랄까. 하숙비를 제때 못 내도 음식으로 사람 차별을 하진 않았다. 

딸은 중년 사내의 야릇한 눈빛을 과연 어떻게 느꼈을까?

그녀는 그를 신사 아저씨라고 불렀다. 진짜로 신사 같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인 듯싶었다.

살짝 이상스러운 피에로씨도 어쨌든 그녀 앞에선 신사인 양 언행했으므로, 선도하는 척 갖고 놀며 짐짓 희롱했는지도 모른다.


반아마추어 화가인 그녀는 혹 자신의 마음속 캔버스에 동시대의 한국판 피에로를 슬쩍 그려 보고 있지 않았을까. 

좀 괴팍스러운 ‘청춘 노녀’는 자신을 누님이라 부르며 따라붙는 피에로 사내를 향해 깔깔 웃어주곤 했다.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도 못하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하는 웃음이었다. 살살 가지고 논다고나 할까.

피에로씨도 눈꼽만 한 자존심은 남았는지라 콧방귀를 뀌곤 곧 몽상 속의 여인들에게로 절뚝절뚝 달려가 좋은 한숨이든 슬픈 한숨이든 푹푹 내쉬곤 했다. 

‘각각 다 개성미가 있을 텐데… 어떤 놈은 근전 덕에 아방궁 여인들을 다 섭렵하련만, 자신은 온 마음 다해 애모하는데 단 한 여인과도 정을 나누지 못하다니… 짚신마저 짝이 있다는데 하느님도 참 너무하시지. 아, 어쩌면 지저분한 현실보다 몽상 속의 여인들이 더 리얼한지도 몰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세속에 찌든 여자들보다 훨씬 더 아리땁고 품속은 천당인 양 포근해. 아 쫌 허무하긴 하지만…’.

그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곤 하던 피에로씨는 일단 국내파 여성은 포기한 뒤 국외파 쪽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 조선족 또는 탈북 여성이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건너온 여자도 슬쩍슬쩍 집적거려 보았다. 하지만 하숙비마저 제대로 못 내는 일종의 푼수에게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여성은 거의 전혀 없었다. 

피에로씨가 가장 싫어하는 건 경찰이었다. 아니, 경찰 전체가 아니라 하숙생 중 한 명인 유 순경이었다. 아니, 유 아무개 순경 자체라기보다 그 인간 내부에 들어 있는 어떤 요소였다. 

가난뱅이 중년의 몽상 속 사랑
죽은 사람이 하숙 떠나도 악담


유는 엽색가였다. 범인은 놔두고 여색에 미쳐 뛰어다녔다. 모창 가수나 피에로처럼 공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여자들을 꾀어 따먹는 모양이었다.

처녀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았고, 소녀나 노파들에게도 슬쩍 촉수를 뻗어 보았다.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말고…

성공률이 별로 높은 편은 아니었다. 어쨌든 경찰의 힘을 은근히 사용하면서도 무척 조심했으니까.

그럴 바에야 딴 직업을 택하지 왜 굳이 경찰에 입문했는지 의문스러웠다.

여재수생을 구스르거나 협박해 욕망을 채우기도 하고, 도리어 창녀에게 걸려 성병의 고통에 신음하기도 했다. 양동 혹은 갈월동 쪽 춘희(椿姬)들도 이따금 지나는 길에 올라와 따스한 식당 밥을 먹었던 것이다. 

“흥, 쌤통이로군 그래. 쥐꼬리만한 권력을 과장해서 인간을 핍박하곤 했지. 흠, 선인선과 악인악과…. 갈수록 낯짝이 노르스름해지는 게 곧 복상사할 꼴이군.” 

피에로는 콧방귀를 뀌며 뇌까렸다.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반성했는지는 의심스럽다. 

헌데 언젠가부터 유 순경의 엽색행각이 잠잠해졌다. 아니,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던 물줄기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고나 할까.

그 대상은 바로 ‘청춘 노녀’였다.

젊은 사내는 소리 없이 조용조용 계단을 걸어올라 3층 맨구석에 박힌 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미꽃 한 송이를 든 채…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치 은밀스러운 식충화(食蟲花) 속에 들어가 꿀 빨아먹느라 혼몽해진 곤충처럼, 꿀물 속에 푹 빠져 버린 개미나 벌처럼…

간간이 흐느끼는 듯한 신음만 바람소리에 섞여 들렸다고 옆방 사람은 속닥속닥 얘기했다. 적어도 30세 이상 차이나는 두 남녀가 어둑한 방 안에서 과연 뭘 했을까?

합궁(섹스)은 기정사실화되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노녀와 청년 경찰이 어울려 들었는지 의문이었다.

급기야 어느 무협지 애독자가 슬쩍 흘린 말이 진실인 양 하숙에 떠돌았다. 고독한 노녀가 남몰래 ‘음마흡양쾌락술법’을 연성해 홀리지 않았겠냐는 추측이었다.

사실인지 어쩐지 모르되, 얼마 후 겉으로 강건해 뵈던 유 순경은 안색이 푸르죽죽하고 비쩍 바른 몰골로 나타나 휘청휘청 계단을 내려오다가 곤두박질쳐 죽고 말았다. 허무한 삶 또는 색골의 초상화였달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지 모르는데 여주인은 별 말이 없었다. 오히려 피에로씨가 나서서, 잘 떠났노라고 조사인지 축사인지 모를 소릴 지껄였다.

유 순경은 말단 경관에 불과했지만 은근히 경찰청을 내세워 무지몽매한 하숙생들을 협박하며 자의반 타의반 검열 기능을 수행케 했기에 그의 종말을 섭섭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개과천선만 잘 했다면 독특한 존재(카사노바 경찰)로서 부러움마저 좀 샀으련만…. 

강제 용서

죽은 사람이 하숙을 떠난 뒤에도 피에로씨는 간혹 악담을 퍼붓곤 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살아 생전 악인이었을지언정 일단 죽고 나면 선인으로 돌변시켜 버린다.

나빴던 점은 축소시켜 싹 잊어버리고 좋았던 면만 과장해 장송곡에 띄워 보낸다.

제 아무리 원한 맺힌 사람(피해자)이라도 죽은 사람의 악행을 만일 영정 앞에서 까발린다면, 설령 그 피해 당사자가 아무리 선인일지라도 곧 무정스러운 악인으로 비판받고 만다.

즉, 한국에선 용서가 자발적이지 않고 반강제적인 셈이다. 그런 반쪼가리 용서는 나중에 대대손손 화를 더 키워 줄 텐데도….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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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