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성범죄 당한 남성들의 눈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31 13:00:25
  • 호수 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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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했다고 하니 어느새 가해자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괜찮아. 남자는 원래 이런 거 좋아하는 거야.” 이 말은 여성에게 성희롱을 당한 남성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남성 성희롱 피해자는 꾸준히 존재하지만,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겪은 피해를 말하지 못한다. 

한국은 과거에 남성 성폭력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3년에 형법을 개정하면서 남성이 성범죄 피해자에 포함된 것이다. 현재 형법 297조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있지만, 그전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기재돼있었다.

부끄러워
신고 못해

남성이 성범죄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은 피해자 통계 수치로 증명된다. 강력범죄는 남성 피해자보다 여성 피해자의 수가 훨씬 많다. 2019년 기준 피의자 비율은 남성이 95.45%, 2만7626명으로 대부분 피의자 성별은 남성이다.

피해자의 비율은 여성이 85.81%, 2만2718명으로 대부분의 피해자 성별은 여성이다. 이 수치는 매년 비슷하다.

강력범죄 중 성범죄 피해자 성별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해 강제추행을 당한 여성은 1만3962명인데 비해, 남성은 1248명으로, 남성 피해자가 10%도 안 된다. 기타 강간 및 강제추행 등을 당한 여성 피해자는 238명이지만 남성 피해자는 8명이다.


이런 상황이니 성범죄 예방 등은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에서 남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뿐이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된 남성 피해자를 위한 전문 보호시설 역시 전무해 내년에 서울에 세워질 예정이다.

피해자가 적다고 피해 사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여성가족부는 남성이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 사실을 남에게 알리는 경우가 여성에 비해 매우 드물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남성이 신고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부끄러워서’ 등이다. 

성폭력 피해를 알리는 것 자체는 누구나 힘든 일이지만, 남성의 경우는 ‘성폭력은 여성이 당할 수 있는 것’이라는 통념 때문에 더욱 음지로 몰리고 있는 실상이다. 통계에 나온 수치보다 많은 남성이 성범죄 피해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남성이 경찰에 성폭력 및 성희롱을 당했다고 신고해도, 경찰의 대처가 여성이 신고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목당한 여성이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 확인할 길이 없다. 물론 증언해줄 사람이 있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끄러워서 말할 수가 없었다”
보통 위계 의한 성추행으로 시작

정확히 A(30)씨의 경우가 이런 상황이다. A씨는 경기도 ○○노동조합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지난해 7월26일 A씨는 같은 지부의 지부장인 B씨가 “서울지방본부 본부장 면담이 있는데 같이 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함께 서울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 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노동조합 여성 국장을 포함한 A씨와 B씨 등 총 4명이 참석했다. A씨와 여성 국장은 일면식도 없이 처음 보는 사이였다. 4명 중 A씨가 직급이 가장 낮았고 나이도 가장 어렸다. 그래서 회의는 참석만 했을 뿐 발언권을 가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후 4명의 일행은 식사하러 갔다. 여름이라 날이 더워, A씨는 근처에 있는 냉면집을 찾기 위해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다. 

이때 A씨의 엉덩이 부분에 무언가 닿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여성 국장의 가방이 엉덩이에 닿는 거라고 여겨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소름이 끼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여성 국장이 A씨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즉시 몸을 피한 후 여성 국장을 바라봤다.

여성 국장은 A씨의 상급자기도 했지만 나이도 20살이나 많았다. 이런 이유로 바로 화를 내지 못하고 여성 국장을 째려봤다. 그러자 여성 국장은 당황하면서 우물쭈물하더니 “엉덩이가 만지고 싶게 생겨서…”라고 작게 말했다.

이런 일을 당했어도 A씨가 그 자리에서 당장 따질 수는 없었다. 여성 국장의 체면도 있고, 지역본부가 서울 본부에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를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이 A씨의 심정이었다. B씨가 냉랭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농담을 했고, 이후 4명은 식사를 마친 뒤 헤어졌다.

이후 사건은 잠잠했다. 그러나 A씨와 B씨가 속한 노조가 지난해 10월 내부 사정으로 해체가 결정됐다. 지부 해체 결정이 난 이후 A씨와 B씨를 포함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A씨는 B씨에게 “저 이제 ○○ 노동조합 임원을 그만두니까 여성 국장을 고소해도 돼요?”라고 물어봤다.

여국장이…
강제추행

정말 그렇게 한다는 것도 아니었고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B씨가 대답을 바로 하지 않고 난처해하자 같은 자리에 있는 다른 직원이 상황을 물었다. 그래서 A씨는 지난해 있었던 사건을 주위 직원에게 설명했다.

여성 국장이 A씨를 추행한 사실은 그때부터 소문났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술자리에서도 이 이야기가 화두가 됐다. 경기도 ○○ 노동조합이 없어지는 과정에서 상위 지부의 업무처리 방식이 불만이었던 직원은 “여성 국장이 A에게 그런 짓도 하지 않았냐”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여성 국장이 A씨를 성추행했는데 왜 아직도 여성 국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는 취지의 말이었다. 그러자 추행 사건을 몰랐던 다른 직원들은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그 자리에서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C씨가 바로 여성 국장에게 전화했다.

C씨는 추행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여성 국장은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곧 여성 국장은 C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 사건을 스스로 전국단위 노조 여성 국장에게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노조 전국단위 여성 국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됐고, 추행 사건과 관련해 “나는 원하는 것 없다. 사과만 들으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A씨가 여성 국장의 사과만 요구한 것은 3가지였다. 변호사를 통해 알아본 결과 ▲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는 점 ▲고소하고 송사하는 과정 자체의 힘듦 ▲같은 조직 내에서 원한을 사고 싶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전국단위 여성 국장은 A씨에게 “여성 국장이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서 조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A씨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여성 국장을 형사 고소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건 자체를 노조에도 알리지 않았다.

증언만 
남았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여성 국장이 “A씨와 C씨가 상황을 만들어서 나를 괴롭힌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제추행 행위 자체를 부인한 것에 더해 A씨를 가해자로 몰아갔다. A씨는 여성 국장을 고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성 국장은 A씨를 포함한 세 명을 추가로 고소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직원들은 격분해서 기업 리뷰를 적는 블라인드에 글을 남겼다. 이 글에는 고소 이후에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나와 있다. 우선 A씨는 회사에서 퇴사당했고, 나머지 둘은 정직 처리를 당했다.

○○ 노동조합 감사실에 녹취록까지 제출했지만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글 작성자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여성 국장이 위원장 도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글 작성자는 “피해자가 신고했는데 가해자가 됐다. A씨가 여자였어도 이랬을까? 경찰이나 여성가족부는 ‘피해자의 증언이 곧 증거입니다. 피해자가 기분이 나쁘다고 느끼면 그게 성추행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남자가 성폭력 피해자가 되니까 상황이 바뀌었다. 어이가 없다”고 분노했다.

해당 사건의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변호사는 “피해자가 남자인 경우와 여자인 경우는 상황이 완전 다르다. 이번 경우는 남자가 피해자고 사건 당시의 증거가 없다. 증언이 있지만 불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특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황을 목격한 증인이 있어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30대 초반 미혼 남성인 D씨는 회사에 다니다가 여사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여사장이 “퇴근 후 식사나 같이 하자”는데 따라 나갔다가 성추행을 당한 것이다. 

피해자가 신고하니 피의자 지목
“실제 피해 남자는 훨씬 많을 것”

여사장은 식사가 끝나자 D씨에게 “술 한잔하자”고 제안했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D씨는 여사장을 따라나섰다.여사장은 술자리에서 D씨에게 연거푸 술을 권했지만, 여사장의 술잔을 거절할 수 없어서 모두 받아 마셨다. 그리고 D씨는 필름이 끊겼고, 눈을 떠 보니 숙박업소였다. 

여사장은 이후에도 D씨를 여러 번 불러냈다. D씨는 여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따라 나섰다. D씨는 “기술을 배워야 해서 경력이 쌓일 때까지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는 처지다. 앞으로 사장이 또 부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0명의 여자가 있는 부서에서 혼자 남자로 근무하는 E씨는 공공연히 이뤄지는 집단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 E씨 부서의 여자 직원들은 김씨에게 ‘엉덩이가 예쁘게 생겼다’ ‘남자는 원래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냐?’ ‘잘하겠다’ 등 큰소리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E씨가 가만히 서 있으면 그의 엉덩이를 툭 치고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한 여자 직원은 그를 뒤에서 껴안으면서 가슴을 쓰다듬기도 했다. E씨는 “싫은 내색을 해봐야 많은 여자 앞에서는 소용도 없다. 소름이 끼칠 정도지만 일에 지장이 있을까 봐 심하게 화도 못낸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F씨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F씨는 여직원이 80%인 부서에 근무 중으로 미혼에다가 나이가 가장 어렸다. 회사 여자 선배는 F씨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면서 “덩치가 있어서 좋다” “영계 같아서 좋다” “내 거야”라는 말을 했다.

이 사실을 회사 측에 호소했다가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F씨는 “여자 선배들이 나를 가지고 놀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 봐도 내게 돌아온 것은 비난과 해고뿐이었다”고 토로했다.

F씨 측 변호사는 “성희롱이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는 수단이므로, 여성이 많은 회사에서 남성이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이
피해자면?

‘남성의 전화’의 이옥 소장은 “남성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례는 과거에 드물었는데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성적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 전화가 꾸준히 걸려온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전화를 걸어 상담할 정도라면 여러 번 반복해서 당하다가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실제로 피해를 본 남성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4명 중 1명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피해자 수가 월등히 많기는 하지만 남성 피해자 수가 전년에 비해 2배 늘었다.

여가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지난 4월4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1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 실적’을 발표했다. 

2018년 4월 진흥원에 설치된 센터는 365일 24시간 상담과 피해 촬영물 삭제, 수사·법률·의료 연계를 지원한다.

지난해 센터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총 6952명에게 18만8000여건의 서비스를 지원했다.

서비스 종류별로 보면,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이 16만9820건(90.3%)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6월부터는 개정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수사기관 요청에 따른 피해 촬영물을 선제적으로 삭제 지원하고 있다.

피해자의 성별을 보면 여성 73.5%(5109명), 남성 26.5%(1843명)였다.

남성 피해자 수는 전년(926명) 대비 2배가량 늘었다. 여가부는 “이는 ‘몸캠 피싱(불법촬영 협박)' 피해 신고 건수 급증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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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