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②여자 대통령의 화려한 취임식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0.04 13:37:37
  • 호수 13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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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방을 얻어 잠만 자고 식사는 외부에서 해결하는 현금파(간혹 한 끼 먹을 땐 즉석에서 현금 지불)는 소수인데,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볼 일이 별로 없다. 식권파는 실속을 추구하는 바 할인 가격으로 사서 먹을 때만 한 장씩 내주므로, 금전적으론 이익이지만 식판에 담긴 음식물 외의 가족적인 인정미를 느끼긴 좀 어려우리라(하지만 이미 삭막해져 버린 세상인지라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구석진 방

완불파는 한 달치 숙식비를 함께 낸 후 거주하는 정규 하숙생을 이른다. 그들 중엔 한 달 한 해 내내 꼬박꼬박 제때 들어와 밥을 챙겨먹는 사람도 있지만 사흘에 두세 끼만 먹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식권파 열차로 옮겨 타지 않는 건 하숙 자체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정… 인간의 집에서 사는 정… 서울이라는 삭막한 도시에서 가짜 정감이나마 느끼고 싶은 부초들의 마음….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으나, 어쨌든 2층엔 대입학원에 다니는 재수생 등 식권파가 많았고 3층엔 직장 사무원 노동자 등등 정식 하숙생이 더 많이 거주했다.

우리(나와 피에로씨)는 일단 3층의 구석진 방에서 합숙하게 됐다. 나는 좁은 골방일지언정 독방을 쓰고 싶었으나, 피에로씨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하숙비는 원래 선불이 원칙이지만, 내가 보증을 서기로 하고 한 달만 후불한다는 양해를 겨우 받았다. 


꽃샘바람을 밀어내며 바야흐로 봄이 시작되었고, 대선에선 여자 대통령이 당선돼 화려한 취임식을 가졌다. [*기대감 속에 등장했던 최초의 여대통령은 우여곡절 끝에 시든 꽃처럼 변해 이젠 야인으로 돌아갔다. 시효 만료한 것 같지만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고 혹시 지금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한국 사람만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과거를 잘 잊고 되풀이하는 건망증 족속도 없을 것이다. 사실상 비극의 여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은 한국 사람들이다. 저녁에 졌다가 아침이면 새로이 피어나는 근화(무궁화)처럼 부디 참 생명을 얻길 바랄 뿐.지금의 대통령 또한…]

극적이라곤 해도 박진감이 있거나 심장이 떨릴 정도로 드라마틱하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녀를 지지해 환호성을 지르는 ‘50%’ 안팎의 국민들의 얼굴도 마냥 밝지만은 않고 어딘지 슬쩍 화장한 듯 그늘진 기색이 어린 듯했다.

한편 그녀의 경쟁자를 찍은 50% 안팎의 국민들은 실망하거나 막막한 나머지 우울증에 걸린 듯싶었다(이건 나의 착각이길 바란다. 나도 투표장에 갔었지만 두 쪽 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서도 좀 모자라는 구석도 느껴져 별 수 없이 두 칸에 다 붉은 도장을 찍고 말았다. 사실 나는 어느 쪽이 대통령이 되든 0.2%는 아쉬운 편이었다. 그런 사람도 실제로 제법 보았다).

‘오방색’ 화려 찬란한 스타트
성공학의 룰? “이기면 장땡”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당선자도 결정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미 취임식도 끝났다. 한국 근현대 정치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무대 앞에 등장한 것이다. 난 일단 축하를 마음속으로나마 해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독신 여성 대통령이 당파 당략을 떠나 부드럽고 진솔한 리더십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십알단인지 십자군 알바단인지 뭔지가 국비 즉, 국민 세금을 받으며 지랄을 치고, 일국의 중앙정보국과 군사령부가 사이버센터를 만들어 여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지랄 발광에 가까운 짓을 저질렀다는 풍설이 파다했으나,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 난 모를 노릇이었다.

뭐 사실 기득권을 가진 입장에서는 가능한 모든 수법을 다 동원하여 자기네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이든 사이비 정치 모리배든 일개 무지렁이 국민이든 한국에서는 그게 제일이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부정한 선거였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일각에서는 대통령 하야라는 구호도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였던 것이다.

다만 딱 한 가지만 서글픈 심정으로 지적하고 싶다. 대수롭진 않지만 그나마 직접 보았고 국민들도 두 눈 뻔히 뜬 채 본 것이니까.

공영 TV의 화면이 카메라맨의 의도인지 실수인지 모르지만, 여당 후보의 대중 연설 장면은 밑에서 우러러보이도록 찍고, 야당 후보의 땀이 밴 얼굴은 위쪽 또는 옆에서 일그러지도록 찍어 어딘지 하찮아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치졸한 우스꽝스러운 짓이 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는 물론 믿지 않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일단 된 후엔 한국인들 또한 성공에 목마른 사람들이라 일단 당선한 자에게 축하를 할 뿐 뒷구린 것을 애써 굳이 캐려 하진 않는다. 

취임식은 화려 찬란했다. 동서고금의 진리 체계와 음양 합일을 상징한다는 삼태극 무늬와 전통적인 오방색을 활용한 퍼포먼스는 좀 지나쳐 보일 정도였다. 황금색 나무에 매달린 무지갯빛 열매들 속엔 국민들의 소망이 들어 있는 성싶었다.

그걸 누가 만들었든, 얼마나 많은 돈을 썼든, 취임 후에 정치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그녀는 청와대 구중궁궐 속에 들어앉아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개인적인 여러 가지 취향에 빠져 본의 아니게(즉, 그녀 자신의 의견에 따르면 아무런 죄도 없이) 국정 농단 죄의 주범이 된 셈이었다. 대황제 박통의 영애였다는 점에 현혹된 국민들의 향수를 실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취임식은 끝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좀 지친 까칠한 얼굴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부정(不正)은 어떤 경우든 부정(否定)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촛불 시위가 벌어졌으나 애초엔 서서히 꺼져 갔다. 물론 다 꺼진 건 아니고 매복 또는 암복했다고 해야겠지만, 그뿐만 아니라 수하들은 사태를 가볍게 판단했다. 마치 40여년 전의 자기 아빠처럼….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빨리 이 소설의 본 줄기로 넘어가야겠다. 다름 아니라, 그 난잡했던 선거판에서도 이른바 성공학(자기계발)이 관련돼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당선 후 국정연설 같은 자리에서도 “우주의 파동을 잘 타고 있으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라고 운운한 걸 보면 아마 그랬을 성싶다.

습관화·고질화된 사실 왜곡 때문에 마치 여왕인 양 촛불 든 시민들과 평민들의 외침을 무시해 버리지 않았을까?

어린 소녀 때부터 공주처럼 살다가 엄마 타계 후 갑작스레 퍼스트 레이디로 변모해 살았으니까. 진실은 밝히되 너무 미워하진 말자. 그의 죄악만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권력을 독과점하는 대통령이라는 일국의 리더를 뽑는 약육강식의 선거에서 누구든 무조건 이기면 장땡이라는 정글 법칙을 따르지 않으랴.

유치한 포스터를 한 장 대한민국의 낯짝 또는 네거리에 써 붙이고 싶다. 


“너희 스스로 싸질러 놓은 똥 너희 스스로 치워라!”

하지만 센 바람에 찢겨 날려가 버리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하나의 의문점은 남는다. 만약 그가 정녕 여왕의 소질을 지녔다면, 아버지의 과오와 자신의 맹점을 고백한 후 선덕과 진덕처럼 국민의 꿈을 지향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는 대신 그녀는 역사상 가장 우둔한 여왕의 길을 택해 걸어갔다. 수시로 싸질러 놓은 검은 똥무더기엔 지금도 구더기가 끓는다.

난잡한 선거판

물론 현실 착오와 과대 망상은 뿌리부터 뽑아내거나 교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 속엔 과연 그런 점이 없는가? 그건 그녀의 죄만 아닐지 모른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제공한다는 이른바 성공학의 룰을 따랐을 뿐이니까.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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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