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②> 상처 투성 국민의힘 4선 김기현의 처방전

“지금 너무 힘들고 아픕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마음같아선 고함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으로 불리는 김기현 의원의 불만 섞인 토로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했지만 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뷰 내내 김 의원은 걱정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대선 기간 원내대표직을 맡아 국민의힘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그는 판사, 국회의원, 울산광역시장 등을 통해 사법, 입법, 행정을 두루 경험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이 김 의원이 당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일요시사>는 김 의원에게 국민의힘 혼란의 처방책,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 방안, 여야 협치, 이재명 의원의 당 대표 당선 의미 등을 물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지만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내용이 인용돼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가처분을 인용한 재판부의 판결은 터무니없습니다. 판사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겠다는 사법 지상주의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힘은 현재 비상 상황이 맞습니다. 당 지지율이 하락했고,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란 때문에 국민한테 야단을 맞고 있고, 지지자들도 비판 중입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해 우리 당을 새롭게 일으켜야 합니다. 판사가 비상 상태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은 모순입니다. 비상 상태 여부는 당에서 판단합니다. 

-직전 원내대표를 하면서 선거를 지휘하고 하셨습니다. 현재 국민의힘 문제점은?


▲제가 원내대표를 맡았던 1년 기간은 국민의힘 암흑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야당이었고, 지방 권력을 민주당에 70%정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거기다 예산권도 없었고, 정책 개발권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도 같은 당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105석이 전부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대선 분란까지 있어서 대선후보와 당 대표 둘 다 가출했고, 어려운 여건 가운데 대선을 치렀습니다.

상당히 쪼개지고, 찌그러진 상태였습니다. 당시 저는 원내대표로서 쪼개진 곳을 다시 붙이고 봉합했습니다. 통합을 통해 대선을 이겨냈습니다. 사막에 장미꽃을 피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리더십 문제입니다. 리더십을 가지고 당내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수습해야 합니다. 금이 갈 때는 미리 조치가 필요합니다. 

-최근 권성동 원내대표는 사퇴설까지 나옵니다

▲권 원내대표뿐 아닙니다. 저도 문제고 국민의힘 전체가 다 문제입니다. 다만 원내대표는 책임이 더 큰 자리입니다. 권 원내대표가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나와 다른 자세는 잘못됐다고 하면 안 됩니다. 책임을 가진 위치의 사람이 당신 책임이야 이렇게 하기 시작하면 그 집안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처분 인용 사법지상주의
“나 포함 당 전체 다 문제”

-비대위 체제 말고는 혼란을 극복할 방법이 없을 지 궁금합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여러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일각에서는 계속해서 선당후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이 전 대표는 생각을 달리해 윤 대통령과 당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지도체제를 개편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기간 터졌던 갈등을 중재하신 바 있습니다

▲최근에도 중재 시도를 몇 번 하려고 했습니다. 당이 시끄러워질 때쯤입니다. 그러나 잘 안 됐습니다. 중재하는 게 중단됐는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습니다. 

-혼란을 장기화하면 갈등 당사자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비칩니다

▲갈등을 겪는 인물은 모두 같은 당입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이 전 대표와 다수 의원의 생각이 다릅니다. 이 전 대표가 계속 고집을 피워선 곤란합니다. 그게 공인의 책무입니다. 국민의힘은 사당이 아닙니다. 당 대표는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도록 권한을 부여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윤정부는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앞으로 난관을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할지?

▲비서실도, 행정부도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고함을 지르고 싶습니다. 정신차려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윤 대통령이 정비해보자 생각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루빨리 잘 돌아가도록 노력해 국민이 윤정부를 믿을 수 있구나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실에서 윤핵관 라인을 솎아내려는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누굴 솎아내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역할을 하고, 대통령실 직원 중 호흡이 잘 맞는 사람으로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려가 나오는 부분은 인사를 검찰 라인이 꽉 잡고 있다는 점으로 보입니다

▲과거 문재인정부 때는 더 심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은 셀프로 자신을 검증하지 않았습니까. 문정부 시절에 민정수석실 인사팀은 문제입니다. 문정부는 야당이 반대했는데 임명한 경우가 30건이 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현재의 검증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소문 등 논란을 확인하는 게 공무원이 하는 일입니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파악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갈 길이 멉니다. 그래서 국민의힘도 비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비대위를 만든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반드시 당이 시스템을 갖춰서 정책적 어젠다를 제시하고 민생문제를 빨리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현재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행정부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정당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다른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당은 민생현장으로 나가서 국민을 만나고 예산 투입하고 법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현재 내부에서 혼란이 가중되니 당력도 모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대통령 지지율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오릅니다. 살만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과제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대통령이 된 겁니다.

-의원님께서는 당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다고 자신하셨습니다

▲보통 당 대표 등이 선거에 나와 자기가 나오면 반드시 당의 지지율을 올리겠다고 공약합니다. 다 그럽니다. 당 대표에 나오는 인물은 그동안 어떤 성과를 냈는지 그걸 봐야 합니다. 제가 원내대표에 취임한 게 지난해 4월 말입니다. 당시 우리 당의 지지율은 20% 후반대였습니다.

저도 원내대표에 나오면서 당 지지율을 연말에 40%까지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조롱도 받았고, 민주당처럼 이재명, 이낙연 같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난관을 헤쳐나갔고, 실제로 지지율을 올려놨습니다. 결국 잠재적 에너지를 가장 좋은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제가 당 대표가 된다면 1년 후 우리 당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총선에서도 국민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전당대회를 빨리하면 좋다고 언급하셨습니다

▲간단합니다. 아픈 사람은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치료가 늦어지면 아픈 게 더 심해집니다. 조기 전당대회는 당연한 겁니다. 우리 당은 많이 아픕니다. 온몸이 몸살이 나서 빨리 치료하고 정상화해야 합니다. 

이준석 결단 시급…선당후사 자세 필요
당대표 도전 “대통령도 지지율 오를 것”

-조기 전당대회를 두고 안철수 의원과 주장하는 시기가 다릅니다

▲안철수 의원이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떨 때는 올해 말인 12월에 해야 한다고 했다가 어떨 때는 내년 1월에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헷갈리게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이재명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저는 우리가 야당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니네 당이나 정신 차려라. 여당 형편이나 돌봐라” 할 텐데 그래도 복이 있는 게 맞습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표현이 있듯이 우리 당을 단단한 정당으로 만들겠습니다. 민주당은 이 의원을 당 대표로 뽑고 최고위원 5명 중 4명을 전부 친명(친 이재명)계로 뽑았습니다.

이러면 당이 2년 동안 안 바뀝니다. 국민의힘은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한테 다가갈 텐데, 민주당은 자멸의 길을 걷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 세력에 민주당이 완전히 포위된 것입니다. 극도로 편향된 목소리만 듣고 당원이 동원된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투표율을 보면 형편이 없습니다.

심지어 민주당 본거지 격인 호남 투표율은 더 낮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호남 지역 투표율은 낮았습니다. 민주당이 이렇게 개딸같은 그룹에 포위돼가는 순간 다른 전통 당원은 지도부를 인정 못 한다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거의 낭떠러지로 가는 꼴과 뭐가 다릅니까.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당이 당 대표가 선출돼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국민의힘에 발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딱히 타격받을 일이 없습니다. 선수로 따지면 제가 이 대표보다 더 높습니다. 저는 4선에 광역단체장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이 대표는 국회에 처음 들어온 초선 의원입니다. 이 대표가 당 대표니 존중하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부도덕한 인물의 몸통 아닙니까.

아직도 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대장동 의혹을 비롯해 백현동, 성남FC, 쌍방울그룹 변호사비 대납,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이 있습니다. 존중은 별개 문제입니다. 저는 대선 기간 이 대표하고 최일선에서 싸운 사람입니다. 원내대표를 했고, 총괄 지휘관이었습니다.

이 대표 입장에서 의혹을 제기한 제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이 대표가 과거 저를 위리안치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아마 제가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야 협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사실 걱정됩니다. 국회가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좌파·우파·진보·보수 어느 쪽이든 건강해야 합니다. 한쪽이 병들어 있고 한쪽이 과도하게 활성화돼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수레가 두 바퀴로 굴러가면 얼마 못 갑니다. 좌파도 우파도 건전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것이고 삶의 질이 증진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함께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양당 모두 자중지란인데 민생에 신경 좀 쓰라는 지적이 잇따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뽑아놨더니 하는 짓거리봐라”는 저희를 제대로 본 시각이 맞습니다. 다만 작금의 사태는 빨리 잘못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몸부림치는 과정으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당 역시 민생을 챙기려면 정상상태가 되도록 다 협조해야 합니다.

-곧 민족 대명절인 추석입니다. <일요시사> 구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국민이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예년보다는 조금 더 풍성한 추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정치인으로서 물가가 올라가고, 경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게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고민스럽지만 빨리 경제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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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