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윤석열 한가위 대반전 플랜

팍팍 치솟는 물가 푹푹 꺼지는 인기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추석에는 풍요로움이라는 단어가 늘 함께한다. 윤석열정부가 추석을 맞아 국민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를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부족해 보인다. 이전 정부에서 써먹던 카드를 다시 꺼내든 탓이다. 이와 함께 인적 개편까지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찝찝한 뒷맛이 남는다. 여의도 라인이 몰락하고 검찰 라인 힘만 더 키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최근 연속적인 금리 인상이 있었고 물가 상승도 가파른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2.50%까지 올랐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5월 최저 수준인 0.50%로 낮춘 기준금리가 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오른 결과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지난 7월에는 처음으로 빅스텝 인상이 결정된 바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지속적인 상승 추세다. 올해 3월부터 4%대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 5월 5.4%대를 기록했고, 지난 6월과 7월에는 6%대를 기록한 바 있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향하는 추세지만 최근 농산물 가격이 폭등해 8월 물가상승률 역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조사에서 신선 채소는 6월 대비 17.3%, 1년 전보다는 26% 정도 상승했고, 상추는 지난해 대비 2배 넘게 올랐다. 원인은 올해 상반기 급등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반기 최종상품 가격에 반영된 탓이다.

또 최근 폭우 등으로 국내시장의 수급이 불안정해진 여파도 있다. 경제권에서는 고물가 부담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정부도 이 같은 위기를 느낀 모양새다. 지지율 회복이 시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당선 이후 점차 하락했다. 출범 초기 50%에 달하던 지지율은 지난달 중순 25%까지 떨어지면서 반 토막이 났다. 

지지율 회복이 절실한 가운데 정부는 여러 민생대책과 인사와 관련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추석을 맞아 지지율 회복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다. 고물가 상황에서 추석이 다가오자 ‘민생안정대책’도 꺼냈다. 우선 윤정부는 민생과 관련해 여러 대책을 발표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마트 등을 찾아 민생 행보를 늘렸다.

농축산물 수급·물가 동향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11일에는 양재동 하나로마트 회의장에서 5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어 민생을 안정시킬 방법을 논의했다. 시민에게 물가상승에 따른 고충도 직접 들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장바구니 물가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소상공인이 즐비한 대구서문시장도 방문했다. 대구는 보수의 본거지로 분류되는 지역이다.

부쩍 시민을 향한 스킨십을 늘리는 모양새다. 전국의 많은 시장들 중에서 윤 대통령이 대구서문시장을 방문한 이유도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정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풀이된다.

민생 스킨십 늘려 지지율 올리기
지난해와 다를 것 없는 명절 대책?

이렇듯 정부가 이번 추석 대책의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물가다. 이외에도 서민생활과 밀접한 교통, 코로나 대책 등으로 악화된 민심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긴박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와 국민의힘은 최근 고위 당정협의회를 개최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당정협의에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이 참석해 2시간30분가량의 회의를 통해 추석 대비에 열을 올렸다. 

당정은 추석을 앞두고 추석 민생대책의 차질없는 이행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우선 최대 규모 수준의 성수품을 23만톤가량 공급하기로 했다. 또 650억원 규모의 할인쿠폰을 지원하는 등 전방위 조치에 나섰다. 

배추, 사과, 달걀 등 20대 성수품 가격을 1년 전 수준에 근접하도록 관리하기로 했으며 대형마트, 전통시장 등에서 사용 가능한 농·축·수산물 할인쿠폰은 20%~30% 할인율로 1인당 최대 4만원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해 추석 공급량 대비 1.8배로 역대 최대 규모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기존 대비 25% 증가한 2000명의 방역 지원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며 경기 안성휴게소 등 휴게소에서는 고령층 등에게만 시행하던 무료 PCR 검사를 전 국민으로 확대 시행한다. 

고속버스 운행은 23% 증편하고 임시 갓길차로 운영, 서울·수도권 대중교통을 2시간 연장 운행해 연휴 기간 수송 능력을 최대치로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연휴 기간 동안 면제된다. 현대·기아 등 5개 자동차 회사 2000여개 서비스 센터에선 무상점검 서비스도 제공된다. 

코로나 방역에 있어 국민 일상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계획이다. 의료 대응체계를 가동해 코로나 확산을 막고, 다중이용시설, 사적 모임 등에도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의료 대응체계 역시 동네의 병·의원, 대면진료와 지정 병상·일반 의료체계 입원을 병행한다. 연휴 기간 신속한 검사와 진료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3000개소 이상의 원스톱 진료기관을 연다. 의료상담센터도 평시 대비 80% 이상인 145개를 운영할 예정이다.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이밖에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 지원책, 최근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 복구책 등 다양한 대책을 공개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명절 자금을 위해 42조원 이상의 자금이 공급된다. 지난해보다 1조900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온누리상품권의 구매한도를 100만원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추석 특별대책들이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정부가 이미 발표했던 물가 대책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새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물가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할인쿠폰 등은 매년 시행했던 제도다. 또 사실상 시민이 물가안정을 체감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측면도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회원을 대상으로 계산대에서 자동할인이 적용되지만 전통시장은 그렇지 않다.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전국 상인연합회가 지정한 시장 상점뿐이다. 


설령 전통시장에서 사용한다고 해도 전통시장에 방문하는 연령층이 대부분 고령층이다 보니 가입을 꺼리고 할인받을 수 있는 품목도 사실상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윤정부는 대형마트 규제를 누리집 1호 국정과제 안건으로 선정한 바 있다.

즉각 소상공인들이 반발에 나섰다. 정부는 민심 악화를 우려해 일단 재검토를 결정했다. 이런 탓에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거의 백지화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대형마트는 2012년 이후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으로 월 2회(매월 둘째·넷째주 일요일) 의무휴업을 한다. 또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영업이 불가하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의 경우 문재인정부에서 2017년 추석부터 2020년 설까지 명절마다 반복해왔다. 이를 없앤 이유는 코로나 확산에 따른 이동 제한 때문이었다.

겉으로만 풍성
까보니 텅텅∼

이렇듯 윤정부는 추석 최대 플랜으로 민생을 가장 큰 목표로 설정했지만 실제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지지율 회복을 위해 건드린 부분은 민생뿐만 아니다. 인사와 관련해서도 추석 전에 손을 볼 예정이다. 인사 논란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홍보·인사·총무 등은 대통령실의 최대 약점으로 꼽혀왔다. 

인사 개편과 쇄신은 취임 윤 대통령 취임 100일 이후 띄우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추석 전까지 비서관급 참모진을 대거 교체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주요 개편 대상은 시민사회수석실과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하는 이들이다. 내부감찰까지 단행하면서 비서관급 참모진 교체가 점쳐지고, 칼날이 수석비서관까지 이어진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이 사법부에서 인용된 점, 국민의힘의 내홍이 끊임없는 점 등에서 정무라인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기준 정무수석실에 근무하는 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선임행정관, 행정관, 행정요원 등 총 23명 중 6명이 짐을 쌌다. 선임행정관과 행정관 등 3명은 권고사직 형태, 홍지만 정무1비서관과 경윤호 정무2비서관 등은 스스로 물러났고, 실무진 중에서는 1명이 물러났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인수위 기간 자신 있게 내세웠던 시민사회수석실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시민사회수석실에 근무하는 5개 부처(국민통합·시민소통·종교다문화·디지털 소통·국민제안) 비서관 중 3곳이 공석이다. 시민사회수석실은 보안사고를 비롯해 인사개입, 국민제안제 어뷰징 사태 등 논란이 이어져왔다.

각종 의혹으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셈이다. 조만간 시민사회수석실은 통폐합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통령실은 수시 개편이라는 기조를 내세워 최대 80명까지 교체된다는 말도 들린다.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인원 중 20%에 달한다.

대통령실 대거 인적 쇄신 칼바람
여의도 라인 밀어내는 검찰 라인

이번 교체는 사실상 경질에 가깝다. 다만 일선에서 물러난 이들의 공통분모는 여의도 출신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검찰과 여의도 세력간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인적 쇄신의 칼을 쥔 세력이 검찰 라인이라 여의도 세력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탓에 내부에서조차 인사기용 폭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민정수석실이 폐지된 이후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담당 소관부처는 법무부다. 이때 함께 신설된 게 법무부 산하의 인사정보관리단이다.

윤정부의 인사검증은 3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인사기획관실에서 여러 인물을 올린다. 1차 검증은 지난 6월 선보인 법무부 산하 인사정부관리단에서 진행한다. 이후 분야를 나눠 후보자의 정보를 수집한 뒤 문제점을 파악한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인원을 추려 공직기강비서관실로 전달돼 2차 검증을 진행하는 절차를 밟는다. 

해당 단계까지 통과하면 부속실장이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구조다. 인사검증 등에 있어 상호견제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를 두고 검찰 라인이 인사를 담당하는 특성상 개편에도 검찰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인적 쇄신을 단행해도 검찰을 향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당장 야당에서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인사 대참사에 대한 직접 책임이 있는 법무비서관, 인사비서관, 감찰에 책임이 있는 기강비서관 등 검찰 출신 육상시에 대한 문책이나 경질은 언급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어 “최근 대통령실 감찰과 인적 쇄신을 검찰 출신 참모가 주도하는데 적반하장”이라고 날을 세웠다. 

박 원내대표가 육상시로 표현한 인물은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등이다. 이들은 검찰 출신 참모진이다. 대통령실의 대대적 쇄신으로 여의도 라인이 휩쓸려나간 뒤 앞으로 인사가 고민일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제외한 다른 여의도 라인이 대통령실에 합류한다고 해도 검찰 라인의 텃세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다. 인적 쇄신 등을 수시로 하겠다는 기조가 뚜렷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인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지율 추락
잡아야 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석 때 인적 개편과 쇄신을 단행한다고 한 게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빈자리를 누가 채울지가 의문”이라며 “이 같은 우려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개편뿐 아니라 인사시스템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추석 선물은? 

 

전남 순천 매실액이 다가올 대명절인 대통령실 추석 명절 선물 세트 구성품으로 선정됐다.

순천시에 따르면 농업회사법인 순천엔매실은 순천 매실액 2만병을 대통령실로 납입했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는 매실액, 매실 장아찌 등 가공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순천엔매실은 농촌융복합산업 인증,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 등을 획득한 가공 사업장이다.

대통령실에 납품된 순천 매실액은 대통령 추석 명절 선물로 각계각층에 보내질 예정이다.

작년 추석 문재인정부에서는 충주의 청명주와 팔도쌀 등 지역 특산물을 추석 선물로 선정한 바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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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