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명량, 한산에 이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 ‘노량대첩’ 이야기

[기사 전문]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 '명량'에 이어 후속작 '한산'이 지난 7월 29일 개봉했습니다.

2014년 개봉한 ‘명량’의 경우 1,700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하면서 역대 국내 상업영화 1위를 달성했는데요.

'한산' 역시 8월 15일 기준 600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명량대첩-한산대첩' 순서로 개봉한 것과 달리, 역사적으로는 한산대첩이 먼저 일어났으며 5년 뒤 명량대첩이 일어났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싸우다 전사한 전투가 노량대첩이란 사실 또한 알고 계셨나요?

 


대첩의 의미

우선 '대첩'이란 전쟁 중 전투에서 아군이 적을 크게 이겼을 때 쓰는 말입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는 동안 이순신 장군은 크게 총 12번의 해전을 치렀는데, 이 중 한산도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뒀기에 대첩이라 표현합니다.

이번 시간에 다룰 노량해전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쟁으로, 임진왜란에 마침표를 찍는 전투였는데요.

마지막 전투인 만큼 조선을 탈출하려는 일본군의 필사적인 노력과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불타는 복수심이 충돌한 순간이었습니다.

 

일본의 침공과 명량대첩

1597년 일본은 행주산성에서의 대패, 명나라의 참전, 그리고 조선 수군과 벌인 교전에서의 잇따른 패배 때문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명나라에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휴전 조건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명나라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본은 다시 한번 15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한양을 향해 지상군과 수군의 동시 공격을 계획한 일본군.

하지만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면서 일본군의 해상 보급로가 끊어졌습니다.

게다가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지상을 지키고 있어 더 이상 진격하지도 후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일본군은 남해안 지역에 왜성을 쌓고 수비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순천 왜교성에는 조선에 최초로 상륙한 일본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수비하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 그리고 명나라 군대가 연합해 6차례 공격했지만 함락에 실패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하는 수 없이 해상 퇴로를 차단하고 고니시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일본군의 철수 시도

1598년 음력 8월 18일 일본군의 총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퍼지자,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일본 수뇌부는 전쟁을 끝내고 조선에 남겨진 병력을 구출하기 위한 지원군을 계획했습니다.

보급이 끊긴 채 조선에 남겨진 일본군 또한 전의가 꺾일 대로 꺾여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철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절대로 일본군을 곱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살아서 돌아간 일본군은 훗날 재침략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이순신 장군은 '7년에 걸쳐 조선을 유린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주겠다'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598년 음력 11월 18일, 조선에 남겨진 일본군을 구출하고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출발한 500여 척의 함선과 6만여 명의 수군이 사천과 고성에 도착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내륙에 남아있던 일본군 역시 철수를 서두르고 있었는데요.

조선 수군의 함선은 고작 판옥선 60여 척.

명나라의 함선은 500여 척에 달했지만 그들은 전투를 꺼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조선 수군 뿐이었으며, 이대로 싸운다면 승산이 없었는데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은 한 가지 전략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조선 수군이 순천왜성을 공격하는 것처럼 위장해 일본 수군을 유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순천왜성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의 위장 전술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고, 사천과 고성에 있는 일본 수군에게 구원요청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500여 척의 일본 함선들은 일제히 노량을 향해 노를 저었습니다.

 

노량대첩

1598년 음력 11월 19일 새벽 4시, 창선도에서 출발한 500척의 일본함대가 노량해협에 진입한 순간 매복하고 있던 조선 수군의 대포가 일제히 왜선들을 향해 불을 뿜었습니다.

공격을 받은 일본의 함선들은 크게 당황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단 사실을 간파하고 조선 수군을 포위하려고 했는데요.

하지만 그때 죽도 부근에 매복해있던 명나라 함대가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함대는 포위당할 것을 염려해 퇴로를 찾으며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관음포로 적을 유인하기 위함이었고, 이에 걸려든 일본군은 관음포에 매복 중인 조선 수군을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이로써 앞에는 명나라 함대, 좌우에는 조선의 함대에 둘러싸인 일본군.

하지만 순천왜성 포구에 고니시의 함대가 도착하면서 전투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관음포에 갇힌 일본군들의 거센 저항 탓인지 지원군의 가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투는 4시간 이상 지속됐는데요.

전투 결과 일본 함대는 200여 척 이상 분파되었고, 150여 척이 파손되었습니다.

이에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은 남은 150여 척을 이끌고 퇴각하기 시작했고,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이후에도 도망치는 일본군을 4시간가량 추격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임진왜란의 끝

그러나 궁지에 몰린 쥐는 무는 법입니다.

관음포에 포위당해 퇴로를 찾지 못한 일본의 시마즈군 함대가 다시 뱃머리를 돌려 조선 수군을 향해 돌진했고, 이때 일본군이 쏜 총탄 한발이 이순신 장군의 몸에 박혔습니다.

쓰러진 이순신 장군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말을 끝으로 전사했습니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전사했지만, 남은 조선 수군이 도주하던 150여 척의 일본 함선 중 100여 척을 나포하면서 임진왜란은 막을 내립니다.

안타깝게도 일본군의 수뇌부들은 50여 척을 타고 무사히 조선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를 두고 조선과 일본 모두 '절반의 승리로 끝났다'고 평가했지만, 사람들은 이 전투를 두고 “죽은 자가 산자를 물리쳤다”고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기간 참가한 크고 작은 모든 전투에서 승전해 62전승을 기록했습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특히 13척의 배로 200여 척과 맞서 싸워 승리한 명량해전은 현대에도 '불가사의한 해전'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조정으로부터 군비나 보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마솥에 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팔아 군비를 확충하고 군량미를 확보한 이순신 장군의 기질은 알아볼수록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데요.

이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건 나라를 사랑하는 ‘충의’ 때문이 아닐까요?

총괄: 배승환
기획&구성&편집: 김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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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