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서대문구의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던 한 아이.
아무 문제없이 크던 아이가 어느 순간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랬다”며 마스크를 반복적으로 잡아당겼다가 놓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몇몇 학부모들이 대화를 나눈 후 어린이집 원장 A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얼마 후 학대 의혹이 제기된 교사가 급히 퇴직했습니다.
학부모 B씨는 자신의 아이가 입은 피해를 살피기 위해 어린이집 CCTV 열람을 신청했습니다.
해당 영상을 직접 보니, 그 안에는 다수의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광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B씨 진술에 의하면, CCTV에는 교사가 ▲아이가 앉아있는 책상을 발로 밀어 넘어뜨리는 장면 ▲붕붕카를 타는 아이를 낚아채서 눕힌 뒤 삿대질하는 장면 ▲잠들지 않는 아이 위에 올라가서 2분가량 노려보며 이야기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B씨는 간담회를 열어 이 사실을 다른 학부모들에게 전하려 했지만, 원장 A씨는 ‘간담회에서 다른 아이들에 대한 내용을 발설하면 불법’ ‘다른 부모들에게 민폐’라면서 동의서에 서명하게 하는 등 B씨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학부모들 사이에서 해당 내용이 공유되었고, 각 가정에서 확인해본 결과 아이들은 구체적이고 일관적으로 학대 정황을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이들의 진술에 해고된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의 학대 내용도 포함돼있던 것입니다.
학부모 C씨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아야하게 한 적이 있냐’고 물으니, 아이가 아랫입술을 잡고 뜯는 시늉을 하며 ‘똑 따먹었다’고 표현했다. 또 아이가 ‘선생님이 머리를 손으로 묶어줬다’며 ‘당시 아팠고, 울었다’고 말하더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해당 선생님은 원장선생님께서 ‘굉장히 착하고, 내가 키워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분이라서 더 깜짝 놀랐다”며 경악했는데요.
결국 학부모들은 두 교사에 대해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CCTV 증거 확보가 어렵고 원장 A씨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수사는 난항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해당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교사 D씨가 내부고발을 감행했습니다.
D씨가 제공한 녹취록에는 원장 A씨가 “내가 여성가족과 팀장과 만난 게 오늘만이 아니다. CCTV 영상을 열어봤는데 학대 정황이 재수없게 3개가 걸렸다. 여성가족과 팀장에게 영상을 보여 주며 학대 여부를 물었더니, 팀장이 ‘학대’라고 단언했다”며 “나는 우리 선생님을 보호하고 싶어서, 팀장에게 선생님이 퇴직하는 걸로 마무리하면 안 되는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팀장이 선생님께 먼저 동의를 얻으라고 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즉 원장 A씨는 CCTV 영상을 여성가족과에 보여준 후 ‘학대 여부’와 ‘처리 방법’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해당 사건을 ‘단순 퇴직 처리’로 끝내버린 것이죠.
그러고 보니 B씨는 CCTV 열람을 신청하기 위해 서대문구청에 갔을 때도 여성가족과의 태도가 매우 비협조적이었다고 기억합니다.
B씨는 “처음에 여성가족과에서 ‘CCTV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해서 경찰 신고를 미루고 기다렸는데, 그다음 날 전화가 와서 ‘볼 수 없다’고 했다. 화가 나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니 그때서야 보여주겠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아이들이 심하게 학대받는 장면은 CCTV 초반으로, 여성가족과에서 보여줄 때까지 기다렸으면 그 장면은 삭제됐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요시사>는 사실 확인을 위해 서대문구청 여성가족과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서대문구청 여성가족과 팀장은 어린이집의 행정처분에 대해 “아동학대 건은 아동청소년과로 연락하는 것이 좋다”며 “수사 결과가 나와야만 어린이집에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답변했고 “CCTV 영상을 보고 학대라고 단언하거나 원장에게 솔루션을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일요시사>는 이어 아동청소년과 관계자에게 문의했으나 “담당자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 ‘여성가족과에 문의하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한편, C씨의 아이는 병원 검사 결과 ‘심각한 불안장애 상태’ 판정을 받았고 ‘향후 1년간 등원조차 어려울 수 있으며 약물치료를 동반해야 한다’는 의사 진단을 받았습니다.
해당 의사는 ‘다른 아이가 학대당하는 것을 본 것만으로도 학대에 해당하므로, 같은 장소에 있던 다른 아이들 역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B씨는 “CCTV를 보니 우리 아이는 선생님의 동선을 다 피해 뛰어서 도망다니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학대를 받지는 않았지만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피해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서울시와 국민신문고 등 백방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국가기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학대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은 이미 삭제돼버린 상황.
게다가 양심고백한 교사 D씨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처분’뿐이었습니다.
D씨는 “같은 교사로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저도 현장에 있었기에 죄송한 마음 뿐”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해도 어린이집이 내부적으로 처리해버린다면, 부모들은 손을 쓰기 힘듭니다.
내 아이에게 피해를 준 선생님이 문제없이 퇴직하는 것을 두 손 놓고 봐야 하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총괄: 배승환
취재&기획: 강운지
촬영&구성&편집: 배승환/김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