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나는 가족여행 ②대전 뿌리공원

가족이라는 이름의 힘

뿌리공원은 효를 테마로 꾸민 국내 유일한 공원이다. 11만9062㎡ 규모 공원에 244개 문중에서 기증한 성씨 조형물, 한국족보박물관, 예쁜 산책로와 아늑한 산림욕장 등을 조성했다. 잘 정돈된 잔디광장은 아이들 차지. 목조 파라솔이 있어 가족 피크닉 장소로 손색이 없다.

유등천을 가로지르는 만성교를 지나면 뿌리공원이 활짝 열린다.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한국족보박물관이다. 족보는 한 가문의 계통을 정리한 책자로, 이름과 자(字)·호(號)는 물론 관직과 봉호(封號) 심지어 묘가 있는 곳까지 상세히 기록한다. 가계의 흐름을 이처럼 방대한 기록으로 남긴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공적 기록이라면, 족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기록’이다.

나의 뿌리

그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족보는 무엇일까. 처음 책으로 만든 족보는 문화 류씨의 <영락보>라는데, 실물이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1476년 간행한 안동 권씨의 <성화보>다. 하지만 광개토대왕릉비에 시조 주몽부터 광개토대왕에 이르는 왕실 계보가 기록돼, 우리네 가계 전승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6개 전시실로 구성된 한국족보박물관에는 족보의 탄생과 제작법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아이들을 위해 만화와 영상으로 족보를 쉽게 소개하는 기획전시실도 인상적이다.

족보에 대해 배웠다면, 이제 ‘나의 뿌리’를 찾아 떠날 시간이다. 뿌리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성씨 조형물을 설치한 산책로는 한국족보박물관 3층 출구와 연결된다. 산책로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조형물 가운데 자신의 성씨 조형물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우리나라 모든 문중의 조형물을 설치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예술 작품처럼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성씨 조형물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다.

산책로가 끝나는 삼남탑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 1997년 개장할 당시 충주 박씨와 양천 허씨 등 72개에 불과하던 성씨 조형물은 25년이 지난 지금 244개로 늘었다. 자신의 성씨 조형물을 만나지 못했다면, 뿌리공원 홈페이지(www.djjunggu.go.kr/prog/fanmOrgn/hyo/sub03_04/list.do)에서 아쉬움을 달래자. 공원에 조형물로 설치한 성씨 외에 1028  개 성씨의 유래를 상세히 정리했다.


성씨 조형물이 있는 숲길만큼 유등천을 따라가는 강변 산책로도 공원의 자랑이다. 잔디광장을 크게 도는 이 길에 ‘효심소원돌’이 있다. 대대로 장원급제자를 배출한 문중에서 기증했다는 효심소원돌은 영천의 돌할매처럼 돌이 들리지 않아야 소원이 이뤄진다니 재미 삼아 도전해도 좋겠다.

곳곳에서 만나는 따뜻한 문장은 이곳이 효를 주제로 꾸민 공원임을 다시 일깨운다. “아픈 데는 없니?” “엄마는 걱정하지 마” “너희가 잘사는 게 효도야” 같은 문장들. 어제도 들었고 오늘도 들었고 내일도 듣겠지만, 언제나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이 문장들이야말로 뿌리공원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뿌리공원 운영 시간은 오전 6시~오후 10시(연중무휴), 한국족보박물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1월1일, 명절 당일 휴관)이며, 두 곳 모두 이용료는 없다.

효를 테마로 꾸민 국내 유일 공원
가족 피크닉 장소로도 손색없어

만성교를 사이에 두고 뿌리공원과 나란히 자리한 한국효문화진흥원은 나의 뿌리 찾기로 시작한 여행을 효라는 최종 목적지로 이끄는 마침표 같은 곳이다. 특히 5개 전시실을 갖춘 효문화체험관은 체험형 전시물로 꾸며 아이들도 효의 의미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링컨·나폴레옹·정조·이순신 등 위인과 관련된 효 이야기, 아버지를 알루미늄 지게에 모시고 금강산에 오른 이군익 선생 이야기, 조선 철종 때 효자 도시복 이야기는 아이들과 찬찬히 읽어볼 만하다. ‘효나눔실’에는 녹내장·백내장 안경과 특수 복장을 착용하고 노화를 체험하는 시설도 있다.

아이들과 나선 봄나들이에 놀이동산이 빠지면 섭섭하다. 오!월드는 중부권 이남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 테마 공원이다. 후룸라이드와 슈퍼바이킹 같은 놀이 기구, 호랑이와 재규어 등 맹수가 있는 주랜드, 버스를 타고 아프리카 밀림을 체험하는 아프리카사파리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주랜드에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동물 먹이 주기를 진행한다. 먹이 앞에서 본능을 드러내는 맹수의 모습이 제법 볼만하다.

놀이 기구를 타고 육상동물을 만난 뒤에는 물속에 사는 친구들을 만날 차례다. 대전아쿠아리움은 방공호로 활용하던 대전 도심의 천연 동굴을 수족관으로 만들었다. 한국관, 아시아관, 아마존관 등 다양한 테마로 꾸민 수족관에 물범과 MBU복어, 김나르쿠스 같은 희귀한 물고기가 있다. 최대 5m까지 자라는 웰스메기와 온몸이 눈처럼 하얀 알비노 샴악어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전 세계에서 공수한 다양한 물고기 외에 아프리카가시거북, 루시스틱볼파이톤 같은 파충류도 있다.

다양한 볼거리


여행의 마무리는 역사적인 인물과 관련된 곳이면 더할 나위 없을 듯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 고향이 대전 중구 어남동이다. 마침 한국족보박물관 기획전시실의 〈독립운동가 성씨별 인물 21人〉에서 선생에 대해 접했으니, 아이들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단재 선생은 열아홉 살에 성균관에 입학해 스물여섯에 성균관 박사가 됐으며, 을사늑약 후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계몽운동과 언론 활동에 헌신했다.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대전기념물)에 선생이 여덟 살 때까지 살던 집을 복원했다. 안채와 곳간채, 선생의 동상이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뿌리공원→한국족보박물관→한국효문화진흥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뿌리공원→한국족보박물관→한국효문화진흥원
둘째 날: 오!월드→대전아쿠아리움→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중구문화관광 www.djjunggu.go.kr/tour/index.do
- 뿌리공원 www.djjunggu.go.kr/hyo/sub03_01_01.do
- 한국족보박물관 www.djjunggu.go.kr/hyo/sub04_01_01.do
- 한국효문화진흥원 www.k-hyo.kr
- 오!월드 www.oworld.kr
- 대전아쿠아리움 www.djaquarium.com  

문의 전화
- 중구청 문화체육과 042)606-6293
- 뿌리공원 042)288-8300
- 한국족보박물관 042)288-8312
- 한국효문화진흥원 042)580-9000
- 오!월드 042)580-4820
- 대전아쿠아리움 042)226-2100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대전역, KTX 10~20분 간격(05:05~23:30) 운행, 약 1시간 소요. 대전역(경부선)에서 목척교 정류장까지 도보 5분, 313번 일반버스 이용, 효문화마을·뿌리공원 정류장 하차, 뿌리공원까지 도보 약 7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대전교통정보센터 http://traffic.daejeon. go.kr
[버스] 서울-대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5~20분 간격(06:00~24:00) 운행, 약 2시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9회(06:00~22:10) 운행, 약 2시간 소요. 복합터미널 정류장에서 201번 일반버스 이용, 중구청역 정류장에서 30번 외곽버스 환승, 보문산교통광장 정류장 하차, 뿌리공원까지 도보 약 8분.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대전복합터미널 1668-3300, www.djbusterminal.co.kr 대전교통정보센터 http://traffic.daejeon.go.kr

자가운전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안영 IC→대둔산로 대전 방면 우회전, 910m 직진→뿌리공원로 뿌리공원 방면 우회전, 457m 직진→하상주차장→뿌리공원

숙박 정보
- 크리스탈레지던스호텔: 중구 대종로452번길, 042)255-2933, www.crystalht.co.kr
- 대전하늘정원게스트하우스: 중구 보문로230번길, 0507-1408-7974, http://djskygarden.modoo.at
- 호텔7: 중구 문창로90번길, 042)242-4101

식당 정보
- 대전갈비집(돼지갈비): 중구 대흥로175번길, 042)226-9428
- 소나무집(오징어칼국수): 중구 대종로460번길, 042)256-1464
- 진로집(두부두루치기): 중구 중교로, 042)226-0914
- 사리원면옥 본점(냉면): 중구 중교로, 042)256-6506, https://sariwonfood.modoo.at

주변 볼거리
보문산, 창계숭절사, 유회당, 여경암, 무수천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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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