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현대가 도윤희 작가의 개인전 ‘BERLIN’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40여점의 작품은 2016~202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도윤희의 과감한 도전과 파격적 변신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도윤희는 40여년 동안 시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한 여성 화가로 평가받는다. 2007년 20세기 최고 화상으로 불리는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설립한 갤러리인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생명의 본질
도윤희는 “나의 작업은 현상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눈에 띄지 않고 숨겨져 있거나 낯선 삶의 파편과 구석, 가려진 뒷면,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떤 현상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섬세한 회화 언어로 포착했다.
1층 전시장은 도윤희가 독일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 7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이 작품은 2015년 ‘Night Blossom’ 전시로 변신을 꾀한 그가 한 단계 전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서정성을 간직한 초기 모델이다.
지하 전시장에는 베를린과 서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다. 화면의 촉각적 질감과 색채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2층 전시장은 팬데믹 이후 대다수 서울에서 작업한 높이 3m 이상의 대형 작품과 최근작으로 채워져 있다.
2011년 갤러리현대와의 첫 개인전 ‘Unknown Signal’에서 도윤희는 세포나 화석의 단면, 뿌리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이미지를 흑연으로 그리고 위에 바니쉬를 반복적으로 칠해 올린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은 고대의 시간성을 연상하게 한다. 또 생명의 본질과 근원을 철학적으로 성찰했다.
2012년 베를린 스튜디오로
창작 활동의 돌파구 찾아
도윤희는 작품에 ‘읽을 수 없는 문장’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으로 연두색 모래알들이 반짝인다’ ‘살아있는 얼음’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등 한 편의 시구와 같은 문학적 제목을 더했다. 쓴다와 그린다는 행위 사이에 놓인 회화를 고민한 셈이다.
도윤희는 회화의 특정 방법론에 고착되길 거부하고 새로움을 갈구하며 2012년 베를린 동쪽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베를린만의 데카당스(퇴폐, 쇠락)한 분위기와 기괴한 무거움에 매료된 그는 그곳에서 창작활동의 돌파구를 찾았다.
베를린으로의 물리적 이동은 도윤희 심연의 무언가를 깨웠다. 작업, 장소, 경험 등 모든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난 그는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기억과 시간을 반추하며 내면의 실체와 본연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됐다.
전시 제목 베를린은 도윤희가 작가로서 전환점을 마련한 전략적 은신처이자 50대를 지난 한 인간의 ‘인생, 생각, 감각 그런 모든 것들, 삶, 정신의 여정을 기호화한 단어’다.
그 결과물은 2015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Night Blossom에서 공개됐다. 작품 제목은 모두 ‘무제’로 정했다. 문학적 요소와 결별을 암시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용을 억제했던 색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적인 시각 언어 구축한 화가
도전과 변신 담긴 40여점 선보여
이미지를 캔버스로 구체화해 옮기는 과정에서 연필과 붓이라는 전통적 미술도구를 벗어나 보다 원시적인 수단인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손의 적극적인 사용은 캔버스와 작가 내면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실재하진 않지만 작가의 내면에는 이미 존재했던 세계가 캔버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나오는 형형색색의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색채’ 나아가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의 이면’을 제시했다.
도윤희는 BERLIN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회화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회화의 기본적 언어이자 재료인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그 물성을 되살렸다. Night Blossom에서 작가의 손길에 따라 만개한 꽃잎이나 뭉게구름처럼 퍼져 가던 얕은 층위의 물감은 BERLIN에서 색 덩어리로 강렬한 물질성을 획득하고 생명체처럼 육감적인 질감을 지닌다.
거침없는 선과 색 덩어리가 쌓이고 뒤섞여 형성한 다층적인 레이어 사이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익숙한 회화의 모습과 다른 매혹적인 미감을 선사한다. 도윤희의 작품은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총체적으로 자극한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커다란 입구, 형형색색의 꽃다발, 해질녘 강변의 쓸쓸한 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혹적 미감
도윤희는 보다 직관적이고 육체적인 행위를 통해 내면을 소환한다. 그는 “추상은 환상이 아니다. 환상, 몽상, 상상 같은 게 아니고 인식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며 “실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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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희는?]
1961년 서울 태생으로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고 판화과 연구과정을 거쳤다.
1992년부터 2년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강의했다.
1985년 두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꾸준히 회화 작업에 매진하며 갤러리바이엘러, 갤러리현대, 금호미술관, 몽인아트센터, 아르테미시아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