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윤캠프 새 수장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

지고 있는 8회 구원투수 등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5일,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해촉을 포함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산을 발표했다. 대선을 63일 앞두고 후보 직할의 실무형 선거대책본부가 중심이 되는 쇄신안을 발표하며 ‘홀로서기’라는 승부수를 택했다. 선거대책본부장은 4선의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맡게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선대위와 당을 잘 이끌어 국민들께 안심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모두 오롯이 후보인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 “메머드 선대위, 민심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캠프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다시 바로잡겠다”고도 했다.

김 ‘아웃’
권 ‘원톱’

윤 후보는 “새로운 선거대책본부를 꾸리겠다. 선거대책본부 본부장은 권영세 의원이 맡는다”고 알렸다. 선대본부장 단일 지도 아래 핵심 팀만 후보 직속으로 두는 초슬림형 조직을 운영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모습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힌 윤 후보는 ‘윤핵관’(윤 후보의 핵심 관계자)을 언급하며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그런 걱정 끼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또 “2030 세대에게 실망을 줬던 행보를 반성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국민이 기대했던 처음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가족 논란에 대해선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부족함에 대해 국민 여러분이 드시는 회초리와 비판 달게 받겠다”며 “제가 일관되게 가졌던 원칙과 잣대를 똑같이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겠다. 시간을 좀 달라. 확실하게 달라진 윤석열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당 사무총장도 겸한다. 윤 후보와의 직접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한편, 당 사무총장으로서 조직관리도 맡게 되면서 ‘원톱’으로 떠올랐다. 

권 의원은 1959년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배재고등학교(92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 1983년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5기)에 합격해 검사로 근무했다. 

법무부, 대검찰청, 서울지검, 독일 법무부 파견 등 검사로서 소위 ‘엘리트 검사’의 길을 걸었지만, 김대중정부 출범 후 검찰청 부부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하버드 케네디 스쿨과 하버드 로스쿨로 유학, 전공 분야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실력을 가다듬은 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당시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측으로부터 정계 입문 제의를 받고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들게 된다.

대선 63일 전 선대위 해산 ‘슬림화’ 선언 
새 선대본부장 4선 의원…이준석도 ‘찬성’

권 의원은 윤 후보와 오래전부터 가까운 사이로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면서, 대학 시절 형사법학회 활동을 함께했다.

검사였던 윤 후보와 꾸준히 친분을 유지했고, 권 의원이 2013년 주중대사로 내정됐을 때 송별회를 함께하는 등 각별했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으로 입당을 고민할 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으며 가교 역할을 했고, 최종 대선후보 선출 후 총괄특보단장을 맡았으며, 이번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역할을 대신할 선대본부장을 맡아 대선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권 의원이 선대본부장으로 내정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윤 후보와 친분이 있지만 이를 내세우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을 보였던 점, 당내 ‘비토’ 세력이 거의 없다는 점 등과 함께 비강남권 유일의 서울 지역구 의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서울·수도권 표심을 잡지 않고는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권 의원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선거에서 당 사무총장과 상황실장을 맡아 대선을 이끌었던 경험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현재 윤 후보의 선거를 돕는 사람 중 전면에 나서 대선을 치러 본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지난해 6월 중순,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로부터 받은 사무총장 제의를 고사하고 그 대신 대외협력위원장직 제안은 받아들였다. 당 외부 대선주자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자리다.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권 의원은 7월 초부터 본격적인 영입 행보를 시작했다. 

권 의원은 빅2인 윤 후보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물론 ‘DJ(김대중 전 대통령) 적자’라 불리는 호남 출신의 장성민 전 의원(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과도 회동했고, 세 사람 모두 입당을 성공시켰다. 

서울법대 출신
입당의 고수

서울대 법대 77학번인 권 의원은 최 전 원장(75학번)의 2년 후배, 윤 후보(79학번)의 2년 선배다. 당내에서는 권 의원이 한 달 동안 두 유력 대선주자를 영입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이 같은 인연을 꼽는다.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권 의원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당 사무총장직을 제안받았는데 왜 거절했냐는 질문에 “이 대표가 아무래도 정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경험 많은 사람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싶어 했다”며 “그래서 사무총장을 해본 내게 요청을 했는데, 반대로 내 입장에서는 이미 두 차례(2008·2011년 한나라당)나 사무총장을 했기 때문에 또 사무총장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당을 돕겠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대외협력위원장을 수락한 것에 대해서는 “이 대표가 나와 굳이 같이 일하길 바랐던 이유는 내가 당내 다른 정치인보다 대선을 치러본 경험을 더 갖고 있으면서 현재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들과 인연 때문”이라며 “내가 이 대표에게 ‘타이틀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으니, 대선주자를 영입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이 대표가 ‘그렇다면 대외협력위원장이 적절하지 않겠나’라고 해서 내부적으로 그렇게 결정이 됐다”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세 차례 대선을 치러본 노하우가 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당시 새누리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2007년과 2017년 대선에도 그는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권 의원은 과거 주중대사 시절 안현태 전 경호실장을 비판해 주목받은 바 있다.

권 의원은 당시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안장 대상자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안현태씨는 물론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다른 공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5공 비리로 처벌받은 이상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 자체가 국립묘지의 명예성을 훼손한다”며 “그런 점에서 심의기구에서 제대로 심의를 해줘야 된다고 보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17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권이 윤 후보 아내 김건희씨가 교원 임용을 위해 과거 5개 대학에 허위 경력과 학력이 기재된 이력서를 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윤석열 후보가)김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털고 갈 건 털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털고 간다는 얘기는 본인이 인정하고 사과하고”라고 부연했다.

선대위 개편
산적한 과제

당시 권 의원은 김종인 ‘원톱’ 선대위에 대해 “그건 아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관측했다. 권 의원은 당내 갈등 상황과 관련해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있기 때문에 사적으로 감정이 안 좋았던 분들이라 하더라도 윤 후보와 정권교체라는 두 화두를 중심으로 얼마든지 뭉칠 수 있고 또 뭉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윤 후보가 선거대책본부 개편 구상을 밝힌 지 하루 만에 이 대표와 정면으로 임명안을 두고 맞부딪혔다. 이 대표가 급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오늘 임명안 상정은 전면 거부”라고 했다. 다만 임명안은 최고위 의결사항이 아닌 협의사항인만큼 당무우선권을 가진 윤 후보가 이 대표가 반대해도 임명을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선거조직 재구성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이 대표가 권 의원에 대한 사무총장 임명에는 찬성 입장을 밝혀 정면충돌은 피했다.


이에 따라 권 의원은 선거대책본부장과 사무총장을 겸임하게 됐고, 선대위 정책본부장을 맡은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선대본 정책본부장으로 인선하는 안건도 무리 없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철규 의원을 전략기획부총장에 임명하는 안건에 대해선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앞서 이 의원은 당 내분에 대한 ‘이준석 책임론’을 제기해 이 대표와 불편한 관계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권영세 사무총장 임명에는 어떤 이견도 없지만, 나머지 사안에 대해선 큰 이견이 있었고 내 의견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며 이철규 부총장 임명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 상황은 정치적인 상황”이라며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도 있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앞으로 지켜보겠다”고 했다. 

반면 윤 후보는 “협의 절차는 임명권자가 의견을 구하는 것”이라며 “협의 절차가 끝났으니 임명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강행 의사를 밝혔다. 

윤 대학 선배…세 차례 대선 경험
“단일화가 없이 이기는 것이 목표”

권 의원은 “이철규 부총장 지명에 대해 (이 대표가)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 같다”며 “이 대표도 선거 승리를 위해 같은 뜻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인 감정으로 반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권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적은 대선후보 단일화가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상황으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윤 후보가 선대위 쇄신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토론 제안에 “3회 법정 토론으로 부족하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우리는 언제라도 준비가 돼있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주제는 (대장동 의혹을 넘어)한정 없이 하자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토론은 혼자 할 수 없는 만큼 구체적인 부분은 논의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윤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대 후보의 대장동을 비롯한 여러 개인 신상과 관련한 의혹, 공인으로 정책과 결정, 선거운동 중 발표한 공약들과 관련해 국민들 앞에서 검증하는 데 3번의 토론은 부족하다”며 “효과적인 토론이 될 수 있도록 실무진에게 법정토론 외에 토론에 대한 협의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권 의원은 “오전 윤 후보가 산만한 조직에서 오직 일, 실무 중심의 선대위로 하는 내용을 말했다”며 “위원장도 없고, 병렬적 구조에 더해 밑에는 기능 단위로 상황실 등 일정, 메시지, 전략을 구성하는 실무적으로 꼭 필요한 (조직으로)구성되는 선대위로 개편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실무 단위를 구성하는 과정 중에도 꼭 필요한 기능 단위를 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의원은 “이번 선거는 부침이 굉장히 많은 선거”라며 “주요 후보들이 비교적 정치 쪽에서 새롭게 등장한 분들이라 새로운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지지율)흔들림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후보의 지지율이 연초 여론조사를 보면 조금 낮은 상황이지만, 그게 고착될 것으로(생각하지 않고) 이 자리도 ‘독배’를 받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골짜기에 있지만 조금 노력하고 진정성을 보이면 얼마든지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단일화 없다”
승리 자신감

권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절대, 전혀 없다고 본다”며 “우리 목적은 후보 단일화 없이도 이길 수 있는 상황으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기현 원내대표의 사의 표명에 대해선 “윤 후보가 반려를 하겠다는 것이니 원내지도부는 유지된다. 김 원내대표가 대여 투쟁의 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