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팔이 타깃' 마약에 빠진 힙합계 막전막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1.10 17:52:36
  • 호수 13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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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라고? 애들이 따라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마약은 예술가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마약을 하면 예술적인 영감이 더 잘 떠오른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부 힙합 래퍼들도 마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어린 래퍼 지망생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에게 마약은 악마의 유혹이다.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할 때마다 기분을 좋게 해주는 마약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한국 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신중현부터 시작해서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 70년대 한국 포크록을 풍미했던 인물들이 대마초에 연루된 적이 있다.

줄줄이
감옥행

그 이후로도 가수 조용필, 신해철, 이승철, 현진영, 전인권, 개그맨 주병진 등이 마약 혐의로 연루된 바 있다. 과거 마약에 연루된 일부 연예인들은 창작의 고통을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신해철, 현진영, 싸이는 마약한 혐의로 체포된 후 “창작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인권은 2001년도 학술 계간지 <사회비평>에서 “마약을 3년만 허용하면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를 자신이 있다”며 “마약을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힙합 음악을 주로 하는 가수들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업타운, 드렁큰 타이거의 일부 멤버가 미국에서 성장해 한국인만큼 마약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마약 거래가 한국보다 성행했기 때문이다.


또 마약을 경험해봤던 모 가수는 “마약을 복용하면 음악적 필링이 고조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연예인들이 유독 마약에 손을 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직업적 특수성을 거론한다. 대중에 노출되는 직업인만큼, 심리적 부담이나 압박이 심하다는 것.

또 어린 나이부터 연예인이 되기 위한 준비로 필요 이상의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오는 부작용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상담사는 “어린 나이에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연습생의 경우 성장 기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지니게 된다. 온전히 성숙할 기회를 잃게 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예인의 심리는 일반적이지 않고 복합적일 수 있다. 비연예인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탓에 정신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취약할 수 있다. 공허감 등 수많은 요소가 작용한다는 의미다.

한 방송국 PD도 “연예인의 마약 복용은 청소년들의 흡연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면서 “창작의 고통을 운운하지만 사실상 ‘겉멋’ 혹은 호기심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극적 문화 속에 사는 연예인들이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음악 작업실서 대마 흡입
동료 래퍼가 구해주기도


2010년대 중반부터 <쇼미더머니3>가 큰 인기를 끌자 래퍼들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이후 엠넷은 <고등래퍼>도 론칭하며 10대 래퍼를 조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 음악시장에서 힙합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인기가 많은 래퍼는 돈, 차, 시계 등을 자랑했다. 이마저도 그들에게는 멋이었다. 돈 자랑에도 모자라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 

그러던 중 꽤 인기가 많은 래퍼들이 마약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8년 대마초 흡연 등으로 입건된 씨잼과 빌스택스(당시 활동명 바스코) 역시 같은 프로그램 출연 경력이 있는 래퍼다.

지난해 3월 래퍼 킬라그램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대마)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로부터 불구속 입건됐다. 앞서 ‘쑥 타는 냄새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킬라그램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킬라그램은 2020년 12월 서울 이태원에서 모르는 외국인으로부터 40만원가량을 주고 대마를 사서 일부는 피웠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10월에도 힙합계 마약 흡연 사건이 발생했다. 메킷레인 레코즈 소속 래퍼인 루피, 나플라, 블루, 오왼, 영웨스트는 과거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로 적발된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

나플라와 루피가 대마초 흡입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계에 적발됐으며, 모발과 소변을 검사한 결과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다. 나플라는 경찰서에서 “소속사 작업실에서 루피 등과 대마를 흡입했다”며 “대마초는 소속사의 다른 래퍼가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멋있게 포장
모방 우려도

특히 같은 소속사의 또 다른 래퍼 3명과 지인 5명 등에게서도 마약 양성반응이 나와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2019년 11월 이들을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영웨스트 1명을 기소했고, 나머지 4명은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또 다른 래퍼 자메즈가 과거 대마와 향정신성 의약품인 LSD를 흡입했다고 인정했다. 자메즈는 지난달 28일 SNS에서 “저는 과거 대마초와 LSD를 해본 적 있다. 이와 관련해 법적으로 처벌 받을 것이 있다면 처벌을 받음으로써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자메즈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의혹은 그의 전 여자친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의 폭로로 불거졌다. 누리꾼은 자메즈가 대마와 LSD를 흡입했으며 자신에게 폭력을 저질러 경찰 신고도 여러 번 했다고 주장했다.

자메즈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데는 제 잘못과 책임도 분명 상당할 것”이라며 자신이 대표직을 맡은 힙합레이블 GRDL을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불리다바스타드는 “교도소에서 뉴스를 보는데 10대들 펜타닐 관련 뉴스가 나왔다. 제가 사용하던 기구들 그대로 나왔다”며 “솔직히 저는 래퍼들 영향이 크다고 본다. 마약이 10대에게 퍼지게 된 이유가 있다. 래퍼들이 마약한 것에 대해 당당하고 멋지게 포장을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친한 형이 (펜타닐을)하는 걸 보고 한 번 해봤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때 당시는 필로폰이나 이런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처방전이 나오는 합법 마약이니까 저는 당연히 전문의약품이 그렇게 강한 마약일지 생각도 못했다. 일주일까지는 특별한 금단증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창작의 고통?
웃기고 있네∼

불리다바스타드는 마약에 손을 대는 순간, 몸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 악마의 것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마약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이들에게도 경각심을 알렸고 끊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자신에게 연락해달라고 말을 남겼다. 

또 “약을 하는 래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10대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거 인지를 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당시 그는 “2020년 4월부터 지금까지 마약을 다 끊은 상태에서 죗값을 받기 위해서 글라인더에 남아있던 대마초를 피운 후 2020년 11월11일 자수하게 됐고 소변과 모발을 제출하고, 소변에서 THC만 양성이 나왔고 혹시나 오래돼 나오지 않을 마약들도 처벌받기 위해 형사님께 증거사진들을 직접 제 손으로 보내드렸다”고 전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는 10대 래퍼 지망생이 마약에 빠지는 과정에 대해 소개됐다. 마약을 하는 래퍼가 10대 래퍼 지망생에게 접근하는 수법은 은밀하면서도 교묘하다.


A 래퍼는 사운드클라우드 내에서 반응이 좋은 B 지망생에게 접근해 B의 음악이 좋다고 칭찬한다. A 래퍼는 B 지망생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만남을 갖는다. 지하실 같은 곳에 도착한 B 지망생은 A 래퍼뿐 아니라 다른 래퍼들도 함께 만나게 된다. 

SNS 10대 지망생 은밀히 유인
랩 레슨 대신 마약 거래 유도

TV에서만 보던 래퍼들이 B 지망생의 음악을 듣고 칭찬해주자 그는 같이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고 만다. 이때 대마초를 권유하는 식이다. 

B 지망생 입장에서는 이들과 같이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성의 끈을 놓고 시작한다. 특히 흡연 경력이 있다면 대마초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 작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만나 대마초를 같이 하고 다른 마약도 권한다. 

처음에는 무료로 제공하다가 B 지망생이 약물에 중독됐다고 판단되면 돈을 받기 시작한다. 마약의 일종인 펜타닐도 권한다. 펜타닐은 지속기간이 짧아 더 짜릿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B 지망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구해 온다. B 지망생은 이미 마약에 중독됐으며 A 래퍼 무리에게 종속이 된다. 

래퍼의 꿈을 꿨던 10대가 힙합 우상의 유혹에 넘어가 랩은커녕 마약만 하다가 일상이 파괴되는 사례다. 

업계 관계자들은 10~20대 초반의 어린 계층이 힙합씬에 들어가면서 이들에게 약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주입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짚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마약이 절대 ‘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인지도가 있는 래퍼가 새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약 혐의로 유죄까지 받은 래퍼들이 마치 한국은 ‘쿨’하지 못해서 아티스트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어린 지망생들을 현혹하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마약의 강력한 중독성은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지속적인 마약 투약으로 흐려진 판단력은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이는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범죄는 피해자를 낳고, 사회는 혼탁해진다. 마약은 한 사회를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들고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

홍대·이태원
뒷거래 성행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도 홍대, 이태원, 강남을 중심으로 마약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SNS상에서 마약 거래가 많이 이뤄진다. 마약 중간 판매책, 배달책 등 거래 및 전달 방식이 전보다 더 치밀해지고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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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