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여행지 ⑤서귀포 빛의벙커

어둠의 벙커에서 빛과 음악의 궁전으로

대로를 벗어나자 차선도 없는 길이다. 듬성듬성 농가와 밭을 경계 짓는 돌담을 거듭해 지난다. 대수산봉 서쪽에 자리한 빛의벙커는 가는 길부터 그 의미를 짐작게 한다. 전시(戰時)도 아닌데 벙커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공간의 모양 때문이다.

빛의벙커는 KT가 국가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센터에 해당한다. 철근콘크리트 단층 건물로 1990년 완공했다.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벽 두께 3m에 이른다. 지붕은 두께 1.2m 위에 높이 1m 공간을 두고, 다시 1m를 올린 이중 구조다. 이를 가로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기둥 27개가 떠받쳐 요새나 다름없다.

다양한 전시

센터 준공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했지만, 센터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듯했다. 건물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마치 산의 일부처럼 보이게 위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방호벽을 두르고, 이중 철조망과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한 뒤, 현역 군인이 통제했다. 인근에 사는 사람도 짓는 줄은 알았으나 완공된 줄은 모르는 건물이었다.

센터는 2000년대 초부터 용도 없이 방치되다 2012년 민간에 불하했고, 2015년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옛 센터의 사무실과 숙소동에 들어섰다. 종전 센터 벙커는 한동안 공연장과 행사장 등으로 쓰이다가, 2018년 11월에 빛의벙커가 문을 열었다.

빛의벙커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이다. 빔 프로젝터 90대가 벽과 바닥 등에 영상을 투사해 명화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편집한 거장의 작품이 삼면을 장식하는 순간, ‘빛의벙커’라는 이름을 실감한다.


개관 기념 전시로 연 〈구스타프 클림트-색채의 향연〉과 2019년 〈빈센트 반 고흐-별이 빛나는 밤〉이 큰 인기를 끌며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르누아르와 모네, 샤갈, 클레 등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전시한다.

파트Ⅰ ‘Voyages to Mediterranean(지중해로의 여행)’은 이상주의부터 모더니즘까지 6개 시퀀스로 나눠 작품 500여 점으로 빛의벙커를 채운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 모네의 ‘수련’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샤갈의 ‘율리시스의 메시지’ 등 예술가 20인의 작품이 약 35분 동안 펼쳐진다.

파트Ⅱ는 파울 클레의 ‘Painting Music(음악을 그리다)’이다. 클레는 화가이자 음악가, 교사로 활동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주제곡과 클레의 작품이 10분 동안 공간을 채우는데, 스피커 69대를 설치해 귀도 눈 못지않게 즐겁다.

빛의벙커 전시는 평면적인 회화 전시가 아니라, 거장의 작품을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다. 이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면 된다. 가장자리 의자는 벽에 등을 기댈 수 있어 편안하다. ‘불멍’이나 ‘물멍’을 하듯 작품을 감상하기 좋다. 물론 작품 바로 앞 바닥에 앉으면 몰입도가 올라간다.

바닥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따라 걸으며 감상할 수도 있다.

전시장은 하나의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거울로 이뤄진 작은 미러룸, 전시 중인 작품을 한 장씩 보여주는 ‘ㄷ 자형’ 갤러리룸 등과 여러 개 벽이 공간을 구획해 단조롭지 않다. 입구나 열린 창이 프레임 역할을 해, 보는 방향에 따라 흥미로운 시선도 연출한다.


시설의 면과 선을 교차하거나 겹치도록 촬영하면 색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전시와 전시 사이, 미디어 아트 작품이 사라지는 막간에 콘크리트 공간이 날것 그대로 보여, 잠시나마 옛 센터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해저 광케이블 관리하던 센터에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으로

빛의벙커는 남쪽 입구와 북쪽 출구의 모습이 똑같다. 입체적인 사다리꼴로, 입구 위쪽은 수목이 무성해 공간을 위장한 흔적이 엿보인다. 벙커 옆에는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있다. 카페와 박물관이 공존하고, 창이 넓어 숲을 바라보며 커피 마시기 좋다. 인근 바람의 숲이나 대수산봉 둘레길, 대수산봉 정상 등을 연계해 산책 삼아 걸을 만하다.

빛의벙커 홈페이지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소설가 김영하와 뮤지컬 배우 카이가 들려주는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시를 좀 더 알차고 재밌게 경험하는 방법이다. 현재 전시는 내달 28일까지 열린다. 빛의벙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1만8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빛의벙커에서 가까운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잇는 해안으로, 썰물 때는 이끼 낀 빌레(너럭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암이 바다를 만나 굳으며 생겨난 지형이다. 그 위를 걸어볼 수 있는데 성산일출봉까지 뻗어 나간 풍경이 장관이다.

광치기는 ‘광야처럼 넓다’라는 뜻이 있고, ‘관치기’라는 슬픈 이름도 있었다.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죽으면 파도에 시체가 밀려와 관을 짜서 묻었다고 한다. 광치기해변의 일출이 장엄하게 느껴진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본태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지은 건물이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잇는 동선이 미로처럼 이어져 연신 호기심을 자아낸다. 2관 2층 통로에서 보는 제주 남쪽 바다와 산방산, 단산, 모슬봉의 파노라마 풍경 역시 자연을 담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특징을 잘 드러낸다.

본태(本態)는 ‘본래 형태’를 뜻한다. 특히 한국 전통 공예품 전시가 돋보인다. 1관은 소반과 보자기 등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4관은 전통 상례와 관련된 꽃상여, 용수판, 용마루 꼭두 인형 등이 눈길을 끈다. 3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와 5관 제임스 터렐의 초기작 ‘단일 벽 투사’ 전시실은 공간을 체험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제주의 활기를 느끼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서귀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근래에는 관광객에게 더 인기다. 아케이드 형태로 365일 열리는 시장인데, 제주의 특산물과 간식거리가 많다.

다진 마늘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마늘통닭, 김밥과 어묵, 떡볶이 등을 다 함께(모닥) 넣은 제주식 모둠 떡볶이인 모닥치기, 꽁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꽁치김밥 등이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흑돼지김치말이, 땅콩만두, 대게고로케, 감귤찹쌀떡 등은 근래 각광받는 메뉴. 삼시 세끼로 부족한 ‘먹부림’의 진수를 펼쳐 보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빛의벙커→제주커피박물관 바움→광치기해변→서귀포매일올레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빛의벙커→제주커피박물관 바움→광치기해변→성산일출봉
둘째 날: 본태박물관→군산오름→서귀포매일올레시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서귀포시 관광 www.seogwipo.go.kr/field/tourist.htm
- 비짓제주 www.visitjeju.net
- 빛의벙커 www.bunkerdelumieres.com
- 제주커피박물관 바움 www.jejubaum.com
- 본태박물관 www.bontemuseum.com  

문의 전화
- 서귀포시청 관광진흥과 064)760-2654
- 빛의벙커 1522-2653
- 제주커피박물관 바움 064)784-2255
- 본태박물관 064)792-8108
- 서귀포매일올레시장 064)762-1949

대중교통
[버스] 제주국제공항에서 111번·112번 급행버스 이용, 고성환승정류장(고성리회전교차로) 하차, 빛의벙커까지 택시 이용, 약 2.3㎞. *문의: 제주버스정보시스템 064)710-2447, http://bus.jeju.go.kr

자가운전
제주국제공항→공항입구교차로→용문로 시청 방면 우측 도로 729m→월성로 종합경기장 시청 방면 우회전, 1.3㎞→오라로 연삼로 방면 우회전, 740m→오남로 우회전, 230m→연삼로 시청·법원 방면 좌회전, 3.9㎞→번영로 봉개·표선 방면 19.2㎞→비자림로 평대 방면 좌회전, 5.9㎞→중산간동로 성읍·성산 방면 우회전, 11.65㎞→서성일로 성산 방면 좌회전, 1.2㎞→서성일로 우회전, 346m→서성일로1168번길 우회전, 378m→빛의벙커

숙박 정보
- 플레이스캠프 제주: 성산읍 동류암로, 064)766-3000, www. playcegroup.com
- 취다선리조트: 성산읍 해맞이해안로, 064) 784-2221, www.chuidasun.com
- 제주에코스위츠휴양펜션: 서귀포시 중문상로, 064)738-9975, www.jejueco.com


식당 정보
- 경미네집(경미휴게소)(전복덮밥): 성산읍 일출로, 064)782-2671, www.instagram.com/gyeongminejib
- 나목도식당(삼겹살): 표선면 가시로613번길, 064)787-1202
- 와랑와랑(핸드드립커피): 남원읍 위미중앙로300번길, 070-4656-1761

주변 볼거리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용머리해안, 김녕금속공예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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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