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철없는 로맨스 판타지

역사적 가치는 ‘뇌 밖’에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JTBC 드라마 <설강화>가 예상대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당초 제작 단계부터 안기부 미화 논란이 있었던 <설강화>는 방영 2화 만에 폐지 여론이 형성됐다. 드라마에는 안기부 미화와 민주화운동에 남파 간첩이 엮인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내용이 일부 담겨있었다. 제작진은 “역사 왜곡 의도가 없었다”며 억울하다는 태도다. 여전히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인지가 되지 않은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 방송계는 <설강화>가 폐지로 이어질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2017년 12월27일 개봉한 영화 <1987>의 흥행은 국내 사회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1987>은 민주주의의 열망을 누르려던 당시 권력의 교만함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눈 감은
진실

박종철(여진구 분) 열사의 고문 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이한열(강동원 분) 열사의 죽음까지 보여주면서, 철저히 중립을 지켜오던 연희(김태리 분)가 끝내 도착한 종착지는 시위대 버스 위였다. 이곳에서 엔딩을 맞이하는 <1987>은 진실로서 당시 시대를 바라본다.

영화에는 현 정치계에도 매우 민감하게 영향을 끼치는 1987년 민주항쟁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진실로 당시를 바라보고자 했던 <1987>의 시선은 누군가에겐 최고의 영화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반대 측에는 굉장히 불쾌한 영화로 여겨질 수도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남파 간첩들의 소행이라며 광주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것에 일말의 반성 없이 살아간 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1987>은 매우 거슬리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역사적 사건은 역사가 뜻대로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1987>은 무려 72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이듬해 열린 대다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을 모두 석권했다. <1987>의 작품적 가치를 인정하는 영화계의 시선에 반발하는 여론은 없었다. 이는 <1987>이 역사적 사건을 진실에 근거해 재해석한 영화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영화라는 사회적 함의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1987년도의 민주항쟁은 국민이 서슬 퍼런 권력에 대항해 피와 땀과 눈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일궈낸 사건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치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걸 국민 대다수가 결론지었다는 의미다.

<설강화> 지속되는 폐지 논란
우려했던 역사 왜곡…그대로 공개

최근 논란이 되는 JTBC 드라마 <설강화>의 문제는 1987년도에 발생한 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출발한다. <설강화>의 원제였던 <이대 기숙사>로 시놉시스가 공개됐을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초 안기부 인물을 미화하는 캐릭터 소개글과 남자 주인공이 ‘운동권인 척 하는 간첩’이라고 알려졌다. 드라마로 편성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 게시판에 방영 금지 청원이 올라왔다. 이후 20만명 이상이 동의할 만큼 문제작으로 거론됐다. 

당시 제작진은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작품이 아니다”라며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논란이 비롯됐고,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방송이 공개되면 이해할 것이라고도 밝혔었다.


그런 가운데 4화까지 방영된 <설강화>에는 논란이 될만한 내용이 많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은 있다. 남자 주인공이자 남파 간첩인 임수호(정해인 분)가 민주화운동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안기부 은창수(허준호 분)나 이강무(양승조 분)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여부다.

제작진은 은창수나 이강무 등 안기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고 강조할 뿐 아니라 임수호 역시 민주화운동과 직접적인 연결은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다만 해당 인물들이 중립적이고 멋있는 모습으로 나온다면, 논란은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항쟁
제멋대로

안기부가 역사적으로 벌여온 행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군부권력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고문과 살인을 일삼았다. 정부에 입바른 소리를 하면 ‘빨갱이’로 낙인을 찍고 목숨을 앗아가는 게 신념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남산에 소재한 안기부에 끌려갔다가 성착취를 당한 여대생이 적지 않으며, 죽다 살아나 트라우마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도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를 토대로 만든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무수히 나온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당시의 시대상을 제멋대로 해석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심해지자 제작진은 입장문을 공개했다. 해당 내용을 요약하면, <설강화>는 군부 시절 대선 정국이 배경이며,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 야합한다는 내용이 골자일 뿐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회차가 진행될수록 역사 왜곡의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월요일 방영되는 <해방타운> 대신 <설강화> 5회분을 방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5회분을 보면 시청자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로미오 줄리엣? 
사랑의 불시착?

하지만 역사 왜곡 논란이 불식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tvN <사랑의 불시착>의 형태를 띠는 작품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남북 단절의 환경을 이용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국판 서사로 환경이 낳은 비극적 사랑이 드라마의 골자다. <설강화>는 <사랑의 불시착>의 기틀은 그대로 가져오되, 배경만 1987년도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이 논란이 될 때마다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라고 강조하는 측면에서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극 중 ‘호수여대 기숙사’의 설정에서 드러난다. 이 기숙사는 1987년 당시 경제력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시스템이 도입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자유로운 포지션을 지닌다. 

총 들고 압박하는 안기부 요원에 저항하는 기숙사 사감의 행태는 당시를 살아본 사람들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장면이다. 실제로 기숙사 시퀀스는 뿌연 조명을 사용하며 판타지로서 장르적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이미지를 활용한 이유는 <설강화>는 단절된 시대로 인해 파생된 두 남녀의 슬픈 로맨스를 그리고자 하는 심리로 해석된다. 세계적인 스타인 블랙핑크 지수와 <D.P.> 화제를 모은 정해인의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는 게 드라마를 만든 목적이다. 

“1987년 상징적 가치 무시한 드라마”
“안기부 풍자하지만, 반전은 없다”

사회적으로 함의가 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1987년 시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배경으로만 활용하려 했다는 데서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것. 그러다 보니 안기부 요원에게 당당히 영장을 요구하는 기숙사 사감이 등장하고, 하나회가 연상되는 동심회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서열 다툼이 벌어진다. 

동심회의 모티브가 된 하나회는 군대 내 인사권을 마구 휘두른 사조직이다. 기수 간의 위계질서가 분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리 군부 독재자가 하나회를 설립한 인물이라 권력이 쏠려 있다고 해도 “코드1의 신뢰가 곧 권력이 된다”는 대사가 나올 정도의 콩가루 조직은 아니었던 것. 


하지만 <설강화> 제작진은 이러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듯 후배 남태일(박성웅 분)이 선배 은창수(허준호 분)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다. 

이후 <설강화> 줄거리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 및 안기부가 북한 정권과 야합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회차가 진행되면 오해가 해소될 것”이라는 제작진의 언급은 군부정권이 북한정권과 야합하는 대목에서 안기부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담겨있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을 거라는 게 작품에 참여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설강화> 제작 관계자라고 밝힌 A는 “<설강화>는 안기부 측 사람들도 보통의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만든 작품이다. 그 시절 정권을 풍자하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후반부에 ‘총풍 사건’과 연관된 내용이 나오는데, 안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뒤죽박죽
얼렁뚱땅

이어 “역사 왜곡 논란은 1987년의 시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문제로 보인다. <설강화>는 1987년도의 안기부를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립으로 바라보는데, 이러한 중립적인 시선에 불만이 있는 시청자가 많다면 오해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설강화’ 불붙은 폐지론
“시대극 이제 못 볼 수도”

시놉시스 단계부터 우려를 낳은 <설강화>는 SBS <조선구마사>처럼 폐지의 위기에 놓였다. <조선구마사>는 동북공정 역사관에 해당하는 장면이 공개돼 단 2회 만에 폐지됐다.

<설강화> 역시 시청자들 사이에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제작진은 편성을 바꿔서라도 어떻게든 폐지만큼은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조선구마사> 뒤이을까?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

방송계는 <설강화>의 폐지를 매우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역사를 분명히 폄훼하는 장면이 분명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 폐지까지 이어진다면, 시대극 제작 자체가 위축될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작품의 성공은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폐지까지 이어지는 건 오히려 드라마 시장의 시스템을 망치는 결과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한 제작 관계자는 “시청자가 작품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듯이, 이야기를 만드는 건 시장의 자유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조기 종영을 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설강화>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폐지가 된다면 시대극은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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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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