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지키는 착한 발걸음 ②곡성 침실습지

‘플로깅’과 ‘물멍’을 즐기며 자연에 다가가다

전남 곡성을 휘감아 흐르는 섬진강은 어머니의 젖줄과 같다. 맑은 물길을 따라 멜론과 토란 등 친환경 농산물이 자라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감성을 적시는 풍경이 펼쳐진다. 섬진강이 품은 보물이 어디 이뿐일까. 강물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 생태가 고스란히 보존된 침실습지에 닿는다.

침실습지는 섬진강과 곡성 시내에서 흘러든 곡성천, 고달천, 오곡천 등이 만나는 길목에 형성된 자연형 하천 습지다. 침실습지라는 이름은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옛적에 이 지역을 ‘침실’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침실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장소다. 그래서인지 습지를 걷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섬진강의 무릉도원

침실습지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어 ‘섬진강의 무릉도원’으로 불린다. 약 200만㎡ 규모로 형성된 습지에는 수달과 삵, 남생이, 흰꼬리수리 같은 멸종 위기 야생 생물을 비롯해 650종이 넘는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인근 주민도 수달을 종종 목격하는데, 수달 서식지는 습지의 생태 피라미드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곳이다. 침실습지는 이런 환경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 22호로 지정했다.

습지 전역에는 버드나무 군락이 있다. 버드나무는 청정 지역에서 자라는 수목으로, 맑고 깨끗한 이곳의 환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홍수로 수많은 나무가 쓸려 내려가 숲처럼 무성하던 모습이 사라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형태로 회복하는 중이다. 습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에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최근 친환경 여행의 대명사로 꼽히는 플로깅(plogging, 쓰담달리기)은 오염된 자연이 더 빨리 회복하게 도와준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플로깅은 원래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환경보호 차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침실습지에서도 쓰레기봉투와 집게, 장갑만 있으면 언제든 플로깅이 가능하다. 이곳은 정해진 탐방로가 없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여울지는 강물과 물에 비친 산 그림자, 소박한 들꽃 등 아름다운 풍경은 덤이다. 특히 일출과 이른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놓치기 아쉽다. 하루쯤 일찍 길을 나서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연 생태가 고스란히 보존
감성 적시는 풍경이 펼쳐져

습지 인근만 둘러보려면 침실목교와 퐁퐁다리를 왕복한 뒤 생태 관찰 덱을 거쳐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습지를 가로지르는 침실목교에선 구름다리를 건너듯 가슴이 탁 트인다. 이 길을 따라 플로깅에 나서도 30~40분이면 충분하다. 섬진강자전거길과 연계하면 강 따라 운치 있는 시간을 선물 받는 듯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동안 누구나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침실습지는 ‘물멍’을 즐기는 최고의 장소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싶을 때 이곳에 방문해보자. 물멍의 하이라이트 구간은 퐁퐁다리다. 철제 다리에 작은 구멍이 뚫려 물에 잠겨도 떠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넘칠 때쯤 구멍 사이로 물이 솟아나는 모습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다리 한복판에 있으면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만 들린다. 쉴 새 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말끔히 비워지고, 자연과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곡성의 주민 여행사 ‘그리곡성’을 이용하면 침실습지 탐방을 더 알차게 준비할 수 있다. ‘섬진강 물멍 트레일 워킹’은 1박2일 동안 침실습지와 섬진강을 따라 걷는 자유 여행으로, 로컬 푸드 도시락과 곡성스테이(https://곡성스테이.kr) 숙소를 제공한다. 플로깅 참여를 신청하면 필요한 장비도 챙겨준다.

곡성섬진강기차마을은 침실습지와 가까워 하루 코스로 엮기 좋다. 4만㎡ 부지에 꾸민 장미공원, 바나나와 카카오나무 등이 자라는 유리온실,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로즈카카오체험관 등이 들어섰으며,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 미니기차 등 독특한 체험거리도 있다. 이국적인 분수대와 연못, 정자가 어우러진 장미공원은 산책하기 적당하다. 가을에는 코키아(댑싸리) 단지가 조성돼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뿌우~’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정역까지 짧은 기차 여행도 해보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낸다. 열차에서 쫀드기와 별사탕처럼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주전부리도 판다. 가정역에 내리면 섬진강을 따라 옛 전라선 철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를 체험할 수 있다.

곡성섬진강기차마을과 가까운 곳에 숨은 명소가 있다. 국도17호선이 지나는 신기교차로에서 곡성 읍내로 들어서는 2차선 도로를 따라 메타세쿼이아가 하늘로 쭉쭉 뻗었다. 800m 남짓 늘어선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논 풍경도 볼거리다. 영화 〈곡성〉을 본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종구(곽도원)가 딸 효진(김환희)과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환하게 웃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도로변에 주차 공간이나 갓길이 없지만, 차량 통행이 적은 편이라 느긋하게 드라이브하기 좋다.


도림사

숲속에 스며든 가을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도림사로 발걸음을 옮기자. 동악산 자락에 들어앉은 사찰로, 신라 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옛이야기에 따르면 도인이 숲처럼 모여들어 도림사(道林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규모는 작지만,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과 아미타여래설법도 등 문화재를 품고 있다. 고요하고 한적한 경내에 맞은편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잔잔한 음악처럼 퍼지고, 가을빛으로 물든 나무가 하나둘 잎을 떨어뜨린다. 계곡 암반에 앉아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어느새 자연과 하나 된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침실습지→곡성섬진강기차마을→메타세쿼이아길→도림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침실습지→섬진강둘레길(마천목장군길 1코스)→도림사
둘째 날: 메타세쿼이아길→곡성섬진강기차마을→곡성아트빌리지시그나기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곡성문화관광 www.gokseong.go.kr/tour
- 그리곡성 https://blog.naver.com/and_gs
- 코레일관광개발 곡성지사(곡성섬진강기차마을) www.railtrip.co.kr/homepage/gokseong

문의 전화
- 곡성군청 관광과 061)360-8413
- 그리곡성 061)363-5650
- 곡성섬진강기차마을 061)362-7461(정문)/061)362-8635(북문)/061)363-6174(증기기관차)
- 도림사 061)362-2727

대중교통
[버스] 서울-곡성,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회(15:0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곡성터미널 정류장에서 곡성-봉조 농어촌버스 이용, 오곡보건지소 정류장 하차, 침실습지까지 도보 약 12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기차] 서울역-곡성역, KTX 하루 2회(09:48, 16:38)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곡성역에서 기차마을 정류장까지 도보 약 5분, 곡성-압록 농어촌버스 이용, 오곡보건소지소 정류장 하차, 침실습지까지 도보 12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순천완주고속도로 서남원 IC→곡성·서남원 방면 오른쪽 출구→서남원톨게이트 1.4㎞→송동교차로 곡성 방면 좌회전, 9.6㎞→신기교차로 곡성 방면 오른쪽 출구, 1.7㎞→경찰서사거리에서 회전교차로 11시 방면, 315m→기차마을사거리에서 회전교차로 직진, 1.5㎞ 이동 후 좌회전→침실습지 주차장

숙박 정보
- 채원당한옥펜션(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오곡면 기차마을로, 010-6800-6600, www.chaewondang.com
- 화이트빌리지(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죽곡면 대황강로, 061)363-7531, www.white-village.co.kr
- 품안의밤: 곡성읍 묘천2길, 010-9437-0569, www.instagram.com/hug_night_/?hl=ko
- 겨리네민박: 곡성읍 읍내10길, 010-3185-1099, https://곡성스테이.kr/GS6

식당 정보
- 별천지가든(참게탕): 오곡면 섬진강로, 061)362-8746
- 청솔가든(은어구이): 오곡면 대황강로, 061)362-6931
- 황금코다리 곡성점(코다리조림): 오곡면 기차마을로, 061)363-0023, www.goldkodari.com
- 제일식당(점심백반·생삼겹살): 오곡면 기차마을로, 061)363-2955

주변 볼거리
국립곡성치유의숲, 섬진강도깨비마을, 대황강출렁다리, 태안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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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