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화천대유-BBK 평행이론

적도 아군도 없는 ‘노다지 스캔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우리나라에서는 5년에 한 번 ‘대선’이라는 전국 단위의 큰 장이 선다. 오일장 한구석 투전판에서처럼 공격과 방어가 난무하는 전쟁터다. 각 정당의 대표 선수는 상대 선수에 대한 의혹을 무기 삼아 싸움에 나선다. 단판 승부인 만큼 불거지는 의혹의 파급력은 나라를 뒤흔드는 수준이다.

20대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은 일찌감치 대선정국에 접어들었다. 현재 여야 모두 대선 최종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치르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10일, 국민의힘은 다음달 5일 대선후보를 결정짓는다. 양당의 후보가 확정되면 그때부터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지지율 전쟁
의혹들 난무

대선은 5년 동안 권력을 잡기 위한 후보들 간의 공성전이다. 땅따먹기 게임에서 한 사람이 땅을 많이 차지하면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 듯 지지율 역시 마찬가지다. 한 후보가 오르면 상대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다자구도가 아닌 양자구도일 경우엔 그런 현상이 좀 더 뚜렷하다. 

후보들은 자신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상대의 지지율을 낮추는 데 골몰한다. 대선 기간 동안 후보를 비롯한 측근, 가족, 지인 등에 대한 의혹이 폭발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의혹을 해명하는 후보의 대처 능력이 검증된다.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해 의혹이 확산되면 투표일까지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최근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졌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사업’을 두고 관련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문재인정부 임기 내내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한 부동산 문제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터지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210번지 일원에 5903세대의 공동주택 등을 신축하기 위한 92만㎡(약 28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과 이에 연계해 구 시가지에 위치한 수정구 신흥동의 구 제1공단 5만6000㎡(약 1만7000평) 부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이 결합된 1조5000억원 규모의 민관공동 도시개발사업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이 현재의 형태로 진행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5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영개발로 진행되던 대장동 개발사업은 2010년 6월 민간 개발로 전환됐다. 같은 해 성남시장이 된 이 지사는 사업을 공영 개발로 재전환했다. 

하지만 1조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성남시도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사업은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이른다. 성남시는 위험 부담을 더는 대신 상당한 수준의 개발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한 것.

1조 규모 대장동 개발사업
민간으로 4000억 흘러갔다

실제 성남시는 5503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환수했다. 문제는 민간 사업자들이 챙긴 4040억원의 개발이익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들은 출자금의 수천배에 달하는 배당 이익을 챙겼다. 4000억원이 넘는 개발 수익이 민간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업체들이 ‘성남의뜰’ ‘화천대유’ ‘천화동인’ 등이다. 성남시는 대장동 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시공사)를 설립했다. 성남도시공사는 시중은행들과 함께 납입자본금 50억원 규모의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었는데, 바로 성남의뜰이다.


여기에 자산관리회사로 화천대유가 들어왔다. 천하동인 1~7호는 화천대유의 자회사다.

화천대유는 성남의뜰에 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성남의뜰이 지난 3년 동안 전체 주주에게 배당한 금액은 5903억원. 이 중 68%인 4040억원이 화천대유로 흘러 들어갔다.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1~7호의 개인투자자 7명이 대장동 개발사업에 투자한 돈은 3억5000만원으로, 8개사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7%다.

이들이 전체 배당금의 70%에 가까운 돈을 받은 셈이다. 특혜 의혹이 불거진 대목이다. 여기에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관련자들의 면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 문제는 게이트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전직 언론인이자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 유동규 전 성남도시공사 기획본부장, 천하동인 4호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고문 권순일 전 대법관,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탈당한 무소속 곽상도 의원 등 정치권, 법조계 등에서 다양한 인물이 튀어나오는 중이다.

막대한 이익
특혜 있었나?

그러면서 화천대유 실소유주 논란이 불거졌다. 실제 언론보도를 통해 화천대유 의혹이 나온 직후부터 “화천대유는 누구 겁니까”라는 말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유행했던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말의 패러디다.

일각에서는 화천대유 의혹이 ‘제2의 BBK’ 사건이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17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를 상대로 불거진 의혹이다. 1999년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이 전 대통령이 개입돼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그해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BBK에 거액을 투자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이 불거진 것.

▲의혹 제기 시점 = 화천대유 특혜 의혹과 BBK 사건은 모두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나왔다. 화천대유 의혹은 민주당 경선 도중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BBK 사건은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당시 상대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제기했다. BBK 사건은 17대 대선의 가장 큰 이슈로, 선거 이후에도 이 전 대통령을 따라다녔다. 화천대유 의혹은 현재 대선정국을 완전히 잠식하며 확산되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 연루 의혹 = 두 사건 모두 유력한 대선후보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으로, 그 파급력이 상당하다. 화천대유 의혹은 이 지사가, BBK 사건은 이 전 대통령이 중심에 있다. BBK 사건이 언급되던 시점에 이 전 대통령은 당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대선 구도는 한나라당 경선이 곧 대선이라고 할 정도였기 때문에 후보들 간의 다툼이 치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정권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강했기 때문.

“무관하다”
진실은?


화천대유 의혹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일어났다는 점, 관련 인물들이 이 지사와 연관돼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점 등에서 화살이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화천대유 사건을 ‘이재명 게이트’라고 주장하면서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 지사는 논란이 나온 직후부터 줄곧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역공 중이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통령 모두 해당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0년 당시 공개 강연에서 자신이 BBK를 직접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바 있다. 해당 동영상은 2007년에 알려졌다. 이 지사는 지난달 14일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사실 이 설계는 제가 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 역시 화천대유 의혹이 불거지기 전에 나왔다. 

▲개인 vs. 지자체 = BBK 사건과 화천대유 의혹은 ‘누군가’ 이득을 봤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성격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연루된 인물의 수 등을 두고 봤을 때 화천대유 의혹이 BBK 사건보다 훨씬 광범위한 사건으로 보여진다. BBK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의 사업파트너 김경준이라는 인물이 존재했지만 사기업에서 진행한 일이었기에 그 범위가 넓지 않았다. 

하지만 화천대유 의혹은 대장동 개발사업이 민관공동개발로 진행됐기 때문에 기업, 은행, 시행사 등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성남도시공사라는 ‘관’이 함께 엮여있다. 여기에 BBK 사건에서 이 전 대통령은 철저한 수비 위치였고,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공격 포지션을 취했다. 


다시 도는 “누구 겁니까”
특검 수용 두고 엇갈린 선택

반면 화천대유 의혹은 연루된 인물의 면면이 여야를 넘나들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곽상도 의원의 아들 논란이 불거졌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맡았던 박영수 전 특검은 딸 논란에 휩싸였다. 여당과 야당이 해당 의혹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해자 vs. 수혜자 = BBK 사건은 주가조작이 이뤄지면서 상당한 피해자가 나왔다. 실제 피해자만 50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 2018년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으로 밝혀지는 과정에서 앞서 2017년 10월 피해자들의 고발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소송이 없었다면 다스 실소유주 논란은 그대로 묻혔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화천대유 의혹은 현재까지는 이득을 본 사람들 위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수천억원의 배당이익이 일부 사람들에게 몰리면서 그 배경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수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의 흐름이 화천대유 의혹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 vs. 안 돼 = 화천대유 의혹이 터지면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당 내에서도 특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지사 측은 특검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사 측은 특검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도 정부 특별합동수사본부를 만들자는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보였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이 지사가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재명 지사의 특검 거부는 범죄 연루 자인이자 자가당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BBK 사건 당시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특검도 수용한 바 있다. 대선 기간 동안 BBK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여론이 들끓자 이 전 대통령은 대선 투표일 사흘 전 특검 수용 입장을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BBK 특검이 이뤄졌지만 이듬해 2월 역시 무혐의 처분이 났다. 당시 검찰과 특검이 이 전 대통령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옥 vs. ? =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자금 횡령과 삼성 뇌물 등의 혐의에 대해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다스가 이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2007년 처음 의혹이 제기된 이후 검찰, 특검 수사에서 법망을 피해갔던 이 전 대통령이 13년 만에 단죄를 받은 셈이다.

사정기관
결론낼까?

반면 화천대유 의혹은 고구마 줄기 이어지듯 사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 불거진 의혹이라 사정기관의 움직임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각에서는 어떤 식으로라도 의혹이 봉합되지 않을 경우, 대선 투표일까지 화천대유 의혹이 언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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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