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민족대명절’ 추석을 맞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됐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명절 연휴는 가족 간의 의견 교환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때다. 정치권 속설로 ‘명절 밥상머리 민심을 잡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6일, 추석 연휴 특별 방역대책을 포함, 일부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발표했다. 다음달 3일까지 4주간 이어지는 이번 조치의 결과에 따라 ‘위드 코로나’ 가능성을 살피겠다는 입장이다.
접종 포함
최대 8인
수도권 4단계와 비수도권 3단계의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유지하되 사적모임 허용 인원 등을 일부 완화했다. 장기간 이어진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도, 추석 연휴 등을 고려한 조치다.
수도권 등 4단계 지역에서 식당·카페 영업시간이 오후 9시에서 10시로 한 시간 연장됐다. 모임 인원도 백신 접종 완료자가 낮에는 2인, 오후 6시 이후에는 4인 이상 포함될 경우로 한정해 최대 6인까지 모일 수 있다. 3단계 지역은 모든 다중이용시설에서 접종 완료자 4인을 포함, 최대 8명까지 사적모임이 가능하다.
지난 설 명절과 비교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됨에 따라 추석 연휴에는 국민들의 이동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RT 운영사 SR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연휴기간(18~22일) STR 예매율은 72.9%를 기록, 지난 설 연휴기간 53.2%보다 19.7%포인트 급증했다.
지난해 추석 예매율 66.7%보다도 6.2%포인트 오른 수치다.
가족 모임 역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명절 밥상머리 민심’이 화두로 떠올랐다. 명절에는 도시와 지방으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이때 화제에 오르는 주제에 따라 민심의 향방이 크게 요동친다.
정치권에서 명절을 앞두고 밥상머리에 오를 주제와 올라서는 안 될 주제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 민심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굵직한 정치 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것은 물론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부동산 문제 등 민생 관련 이슈도 많은 상황이다. 벌써부터 명절 밥상머리 민심의 승자를 점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설날보다 이동 많을 듯
▲‘6개월 앞으로’ 대선= 내년 3월9일 20대 대선이 치러진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는 대선후보 선출 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각 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면서 경선 레이스에 불이 붙었다.
이번 추석은 각 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 마지막 명절이다. 가족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어떤 후보의 이름이 더 언급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요동칠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국민의힘은 대선 경선에 참여한 예비후보 12명을 1차 컷오프에서 8명, 2차 컷오프에서 4명으로 압축하기로 결정했다. 1차 컷오프를 통한 8명의 예비후보는 추석 연휴 전인 15일에 결정된다. 국민의힘은 명절 연휴 기간 동안 8명의 예비후보를 최대한 띄우겠다는 생각이다. 이후 다음달 8일 2차 컷오프를 거쳐 오는 11월9일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홍준표 의원의 맞대결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두 후보 입장에서는 이번 명절 민심에 따라 ‘굳히기’와 ‘뒤집기’가 결정될 수 있다. 두 달여간의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첫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명절 전후
표심 변화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은 ‘집토끼’ TK(대구·경북) 공략에 나선다. 일단 전국 순회 행보 중인 홍 의원은 최종 목적지를 TK로 두고 있다. 추석 전까지 이 두 곳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추석 연휴 동안 민심을 다잡아 ‘골든크로스’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윤 전 총장 역시 TK 방문을 통해 홍 의원의 기세를 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홍 의원의 지지율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굳히기에 들어가겠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민주당 경선 일정도 추석 연휴와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추석 연휴 직후인 25일 광주·전남, 26일 전북, 다음달 1일 제주, 2일 부산·울산·경남, 3일 인천 지역 전국 대의원·권리당원 순회 경선을 개최한다. 이어 다음달 9일과 10일 각각 경기와 서울에서 마지막 경선을 펼친 뒤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민주당의 경우 최대 분수령으로 손꼽히는 호남 지역의 투표가 당초 8월에서 추석 연휴 이후로 밀리면서 후보들은 ‘호남 민심잡기’에 나섰다.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본 경선서의 승리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들은 연휴 기간 내내 호남지역을 돌면서 표밭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오랜 기간 침묵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8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후보들이 참여하는 ‘공통공약추진시민평의회’를 제안했다. 사실상 제3지대를 연 것이다. 양당 경선 레이스와 함께 제3지대 후보의 등장으로 정치권은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접어들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 가족 모임은 일종의 ‘민심 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들어 남녀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등 ‘갈라치기’ 현상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각각 지지하는 후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추석 연휴 이후 민심 흐름에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벌써 2년’ 코로나19= 지난해 1월20일 국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왔다. 그로부터 1년8개월이 지났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다시는 감염병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던 중앙방역대책본부 관계자의 말처럼 사회는 완전히 바뀌었다.
마스크는 생필품이 됐고, 비대면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사적 모임과 영업시간에 제한이 생겼다. 이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 정부는 지원금을 주고 있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재난지원금’이 화제가 될 전망이다. 여야는 지난 7월23일 재난지원금 대상을 ‘소득 하위 80%’에서 고소득자를 제외한 약 88% 수준으로 확대,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추석 연휴 전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속도전을 펼쳤다.
재난지원금 지급은 지난 6일부터 시작돼, 시행 첫 주에는 출생년도 끝자리에 따라 신청하는 5부 요일제를 적용했다. 신청 다음날 카드 등을 통해 지급되며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사용처 등이 화제가 됨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서 이미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백신·지원금
여전한 주제
특히 재난지원금 지원과 관련해 소득이 높지 않음에도 상위 12%로 잡혀 지급받지 못한 국민들의 불만이 추석 연휴를 전후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문제도 논란거리다. 코로나19 상황이 전 세계 팬데믹으로 번지면서 백신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백신 수급, 접종 과정에서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들을 들끓게 한 바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수십일 째 네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추석 연휴 전까지 백신 1차 접종 인원을 국민의 7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모더나, 화이자 등 백신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10월 말까지는 국민의 70%가 2차 접종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자영업자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달했고, 국민들도 1년 넘게 지속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추석 민심의 향방에 따라 ‘위드 코로나’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이번 추석 연휴를 맞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완화한 것이 위드 코로나 시험 단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향후 정부의 대응책을 결정할 전망이다.
경선 일정 겹친 정치권
연휴 기간 동안 총력전
▲‘문제는 경제’ 부동산= 경제 이슈는 명절의 단골 이야깃거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더더욱 그렇다. 20~30대는 취업, 40~50대는 노후 대비, 60대 이상은 노후 빈곤이 골칫거리다.
특히 이번에 화두가 될만한 주제는 바로 ‘부동산’이다. 문재인정부는 임기 동안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부동산 대란이 일어났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 벼락거지(부동산, 주식 수익의 증가로 상대적인 빈곤을 느끼게 된 처지를 자조하는 단어) 등의 신조어들이 쏟아졌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 세력을 잡겠다고 여러 규제를 내놨지만 그럴수록 20~30대 젊은 층을 비롯한 국민들은 ‘내 집 마련’에 뛰어들었다.
문재인정부로선 추석 밥상에 부동산이 주제로 떠오르는 것 자체가 악재다. 정부는 임기 초부터 집값 안정을 목표로 강력한 대책을 내놨다.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값이 요동을 치는 등 정책 실패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8·2 대책은 역대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2019년 11월에도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월 신년사와 8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실제 시장 현실과는 괴리된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후로 올해 신년사에 이르러서야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여기에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이른바 LH 사태가 불거졌다.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부동산 민심이 험악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임기 내내 견고했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경찰을 중심으로 합동특별수사단을 꾸리는 등 LH 사태의 불길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 번 타오른 민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LH 사태의 여파는 4·7 재보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두 핵심지역에서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에 압승을 거두는 파란이 일어났다. 전임 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시작된 재보선이라는 점에서 여당이 불리함을 안고 진행한 선거이긴 했지만 격차가 예상 이상으로 크게 벌어지면서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 4·7 재보선의 완패로 검찰개혁 등 문재인정부의 몇몇 정책들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부동산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이번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더 타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신세한탄’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주제라는 뜻이다.
여기에 장작을 넣듯 ‘LH발’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의 재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미리 확보해 투기한 LH 직원이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 일대 주택 43채를 사들여 150여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이들은 성남시 수진 1동과 신흥 1동 일대가 LH와 성남시의 재개발 사업에 포함된다는 내부정보를 미리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LH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직위해제된 직원 40명에게 지난 수개월간 수백만원에서 최대 3000만원대의 급여를 지급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직위해제가 되더라도 기본급의 80~90%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한 보수 규정 때문이다.
정부는 LH의 이런 규정을 손보지 않았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는 국민과 정부 모두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며 “정치권에 대한 청년 여러분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집값 폭등으로 악화된 민심에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몸을 낮췄다.
무용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일각에서는 ‘명절 밥상머리 민심’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명절에 가족 모두가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SNS 등을 통한 여론몰이가 더 영향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가 변화한 것도 무용론에 힘을 더한다. 과거와 달리 명절에 가족 모두가 모이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 그럼에도 정치권을 비롯한 정부가 ‘명절 민심 잡기 총력전’에 나서는 걸 보면 속설은 아직 틀리지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