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6인 현미경 검증 ⑮고향(지역지지 기반)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14 09: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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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고향 민심 잡아야 대권 잡는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 4인(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고 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롤모델·취미·별명·저서·친구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다섯 번째로 그들의 '고향'을 살펴봤다.

지역주의는 반드시 척결해야할 구태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15대 대선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도 지역에서 무려 98%의 지지율을 얻어낸 것은 신화로 불리면서도 여전히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지역주의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실감하게 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선출마의 뜻을 밝힌 후보들이라면 그들의 고향(지역지지 기반) 역시 중요한 검증 대상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구·경북>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고향"

지난 8월9일 경북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선경선 대구·경북 합동토론회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의 팬미팅 현장을 방불케 했다. 청중들은 다른 후보가 연설을 할 땐 야유를 보내다 박 후보가 등장했을 땐 체육관이 떠나갈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평소 박 후보를 강하게 비판해온 김문수 후보는 이날 한 남성으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박 후보의 입지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 후보는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인 박정희는 겨우 여순사건의 회오리를 벗어나 대구에 집을 마련한 상태였다. 박 후보는 한국전쟁이 끝나자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박 후보가 대구사람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박 후보에게 대구는 매우 특별한 도시다. 박 후보가 정치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곳이 바로 대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무려 18년여를 두문불출하던 박 후보는 1998년 4월 치러진 대구시 달성군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15대 대선 당시 TK(대구·경북)의 표심을 흔들 적임자로 박 후보가 지목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박 후보를 직접 설득해 정치에 입문시킨 것이다. 이후 박 후보는 대구 달성에서 내리 네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박 후보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의 후광이 그가 가진 정치적 자산의 전부였다. 하지만 박 후보는 여러차례 위기에서 당을 구해내며 곧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고향 역시 경북이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 1937년까지 살았던 집을 복원한 것이다. 구미시는 최근 이 일대를 대규모 공원으로 꾸몄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박 후보의 공식 정치행보가 시작된 곳도 바로 이 생가였다. 박 후보는 정치입문을 결심한 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생가에 초청해 입당을 선언했다. 생가는 그 이후로 '정치권의 성지'가 됐다. 경북에서는 선거에 나서려는 많은 정치인들이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출마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재인 <경남·부산>
"태어난 곳은 거제, 정치적 고향은 부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3년 1월24일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함흥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 때 미군 군용함정(LST)을 타고 남한으로 피난 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하지만 문 후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했다. 이후 문 후보는 부산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에서 같이 활동했다.

문 후보는 부산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굵직한 시국사건들을 변론했다. 비록 거제도에서 태어났지만 문 후보의 정치적 지역 지지기반은 누가 뭐래도 부산·경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문 후보는 지난 4·11 총선 당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산 총선 패배론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문 후보가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는 '낙동강벨트' 전략으로 이 지역 선거전을 주도했음에도 부산·울산·경남 의석수가 단 3석에 그쳤고, 결국 이는 문 후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단 의석수만을 놓고 본다면 2004년 총선에서 3석, 2008년 총선에서 2석, 이번에 다시 3석이 됐다. 지역출신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전면에 나서 치른 선거치고는 아쉬운 결과다.

그러나 문 후보의 낙동강벨트 전략을 실패라고 잘라 말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후보들의 득표력이 전체적으로 크고 넓어졌다. 부산에서 45% 이상을 득표한 후보만 4명이나 됐고, 40% 이상은 7명에 이르렀다.


경남에서도 낙동강벨트를 중심으로 새누리당 후보와 초박빙의 승부를 펼친 곳이 적지 않았다. 비록 승리하진 못했지만 문 후보의 힘을 보여준 것만큼은 사실이라는 평가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문 후보의 정치적 고향 부산의 표심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학규 <경기도 시흥>
"누가 뭐래도 난 경기도민"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손 후보는 10남매 중 막내였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965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 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1∼1988년에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수료하는 등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하대와 서강대 정치학과에서 4년간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1993년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손 후보는 제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 손 후보는 특이하게도 경기도 광명을에 출마했다. 당시 보궐선거 지역이 경기도 광명, 부산 사하, 부산 동래갑 세 곳 뿐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손 후보는 당당히 당선증을 거머쥐었고 이후 경기도 광명시는 손 후보의 정치적 고향이 되었다.

손 후보는 경기도 광명시에서만 3선을 했다. 손 후보는 광명시와의 인연에 대해 "광명시민들이 나를 국회의원으로, 경기도지사로, 장관으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손 후보가 소유하고 있는 약 4억원대의 경기 광명시 철산동의 아파트는 그의 가장 큰 재산이기도 하다.

한편 손 후보의 고향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인데 현재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으로 바뀌어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 후보가 지역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도민인 척 하려고 옛날 주소를 출생지로 그대로 쓰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그만큼 경기도는 손 후보의 가장 큰 지지기반이다. 그러나 경기도는 영호남 등과 비교할 때 지역출신 정치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아 이번 대선정국에서 경기도의 표심이 손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미지수다.

 

정세균 <전북 진안>
"나는 전국구 정치인"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0년 9월26일 전북 진안에서 4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검정고시를 치르고서야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전주 신흥고에 진학하게 된 이후 뛰어난 성적으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지역에서는 촉망받는 인재가 됐다.

정 후보는 지난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정치입문 제안을 받고 1995년 총재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 후보는 민주당 진안·무주·장수 지구당위원장과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전북도지부 회장을 거쳐 다음해 고향인 진안·무주·장수 지역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그는 이후 18대 총선까지 고향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다.

정 후보는 이러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정치 입문 후 승승장구의 행보를 이어갔다. 정 후보가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하고 당대표를 세 번이나 역임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에서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 후보는 지난 1일 열린 민주당 전북지역 경선에서도 이러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정 후보는 그동안의 경선과정에서 줄곧 꼴찌를 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너무 탄탄한 정 후보의 지역기반은 그가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하는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정 후보의 호남 이미지가 너무 강해 타지역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다. 때문에 정 후보는 지난 4·11 총선에서 정치입문 17년 만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정치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사덕 후보와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정 후보는 아무런 지역기반이 없는 종로구에서 맨주먹으로 승부해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종로구에서의 승리는 정 후보가 이번 대선출마 결심을 굳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김두관 <경남 남해>
"지역주의 극복이 목표"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9년 4월10일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김 후보는 남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남해에서 보냈으며 정치 입문도 남해에서 시작했다.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김 후보는 젊은 시절 고향에서 남해농민회를 조직하고 농민운동을 펼쳤으며 고향 이어리에서 이장을 맡기도 했다.

또 <남해신문>을 창간해 직접 신문을 배달하며 마을주민들과 소통해 나갔다. 이 같은 행보는 이후 김 후보가 37세의 최연소 남해군수에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1995년 초대 지방선거와 1998년 2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연이어 남해군수로 당선됐다.

그러나 김 후보는 지역주의의 폐단을 극복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고 스스로 회고 한다. 남해에서 나고 자라 남해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한 김 후보이기에 무척 아이러니 하다.


김 후보는 평소 기득권층과 결탁한 지역 패권주의세력이 이러한 지역정서를 이용해 국민 생활과 직결된 각종 정치 사회적 쟁점을 왜곡하고 국민 화합은 물론, 지역균형 발전과 미래지향적 가치들의 발현을 가로막아 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김 후보는 집권 보수 여당의 텃밭인 PK(부산·경남)지역에서 패배를 무릅쓰고 야당이나 무소속으로 수차례 국회의원 선거와 경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했다. 남해군수를 2번이나 연임한 김 후보였지만 이 과정에서 김 후보는 무려 5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집권여당의 후보가 되면 쉽게 당선될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지역주의의 벽을 깨트리고 당당히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수차례 실패에도 결코 영남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 후보의 행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그를 '리틀 노무현'으로 불렀다. 마침내 지역주의의 벽을 깨트린 그는 대선에서도 지역주의의 벽을 깨트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안철수 <부산>
"부산토박이, 롯데자이언츠 왕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진구 범천2동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해 10대 시절을 모두 부산에서 보냈다.

안 원장의 할아버지 또한 일제강점기 때 부산상고를 나와 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안 원장의 아버지 안영모 씨도 부산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지난 1963년 범천의원을 개원한 뒤 부산진구 범천동에 터를 잡고 49년간 병원을 운영했다. 비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줄곧 서울에서 생활한 안 원장이지만 그의 정치기반은 부산과 경남에 있음이 확실하다.

실제로 그는 야구의 도시 부산사람답게 야구도 무척 좋아한다. 자신의 고향인 부산 연고팀 롯데자이언츠에 대해 특히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안 원장은 롯데가 성적이 나쁜 시즌에는 가슴이 아파 아예 경기를 보지 않기도 한다고 한다.

안 원장은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서도 "스포츠 중에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부산고를 다닐 때는 부산고가 3년 동안 전국 우승을 다섯 번이나 했을 정도로 야구 명문이라 응원하러 많이 다녔고, 이후 롯데 팬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안 원장이 부산·경남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의 대선에서 부산·경남은 새누리당 후보들에겐 말 그대로 텃밭이었다. 지난 대선 때는 야권 후보를 모두 통틀어 15% 안팎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산·경남권에서 30% 득표에 실패했다. 게다가 올해 대선은 박근혜, 문재인, 김두관 후보와 안철수 원장까지 유력대선후보 중 무려 4명이 경상권이다.

그럼에도 안 원장이 부산·경남권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 7월19일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 되었을 때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판매 된 곳은 안 원장의 고향인 부산(7.7%)이었으며 경남 5.3%, 인천 4.7%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종의 정치적 실험을 하고 있는 안 원장이 선거과정에서 과연 구태정치로 치부되는 '지연'을 활용할 지는 의문이다.

안 원장 모교인 부산고 총동문회나 동기회 등에서도 언론 접촉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다. 부산고 재경동문회측도 일찌감치 "본인이 깃발을 들면 도울 의사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안 원장의 고향이 부산이긴 하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어 투표함을 열어보면 경남권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안 원장이 부산·경남에서 어떤 돌풍을 일으킬 지는 예측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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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