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갑론을박 '말 많은' 장애인이동센터 무슨 일이…

“어두운 괴물 뱃속에 갇혀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주변이 너무 어두워 불을 켰다. 조금 밝아지나 싶더니 이내 꺼졌다.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과 같이 불을 밝혔다. 하지만 또 꺼졌다. 거듭된 시도에도 어둠은 가시질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괴물의 뱃속에 있다는 것을….

“내가 군청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내 말을 믿어줄까요?” 모든 직장인이 ‘전태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전태일’은 직장에서 태어난다. 평범했던 월급쟁이 직장인이 노동법을 줄줄 읊는 투사가 되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범했는데
노동투사로

박주연씨는 대학에서 보건복지학을 전공했다. 2015년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장애인이동센터)에 지원할 때도 사무원을 희망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장애인이동센터는 센터 업무를 총괄하는 센터장, 상담업무와 차량예약, 회계 등을 담당하는 사무원, 운전을 맡는 운전원 등으로 구성된다.  

당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직원은 총 4명. 박씨는 사무원 대신 운전원으로 일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2호차’를 맡은 박씨에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거의 모든 배차가 몰렸다. 차에서 내릴 시간도 없이 종일 운전을 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직원이 4명뿐인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박씨는 말 그대로 왕따였다. 8세 어린 동료 사무원은 박씨에게 ‘너’ ‘2호차’ ‘사형감이다’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당시 진도군 지회장을 겸하고 있던 센터장은 직원 회의에서 ‘개 같은 ○’ ‘멍청한 ○’ 이라고 욕했다. ‘스스로 못 견뎌서 사표 쓰게 만든다’ ‘모가지를 딴다’ 등 지속적인 모욕과 욕설, 고성이 박씨를 향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박씨는 투명인간이었다. 법정의무교육이나 행정사무 감사자료,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 모든 구성원이 받아야 할 교육이 박씨의 유급휴가 기간에 이뤄졌다. 박씨를 징계하기 위한 징계위원회도 수시로 열렸다.

징계위원조차 반복적인 징계위원회 소집에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박씨는 2019년 전라남도 인권센터를 찾았다. 그는 동료 사무원과 지회장 겸 센터장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인권침해 관련 진정을 제기했다. 녹음 파일, 문서 등 그동안 모은 자료를 도민 인권보호관에게 건넸다. 도 인권센터는 지난해 5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박씨의 진정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5월27일 도 인권센터는 지회장 겸 센터장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내리고, 신청인(박씨) 구제를 위해 유급휴가와 심리치료 제공 등 필요한 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도 인권센터의 이 같은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터져
센터장 채용·보조금 논란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지난해 12월 2차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면서 도 인권센터를 다시 찾기에 이른다. 도 인권센터는 조사 결과 박씨가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 험담 ▲업무 배제 등을 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전보다 근무환경이 매우 악화됐다고 봤다. 그러면서 지난 3월31일 박씨의 2차 진정 내용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두 번에 걸친 도 인권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시정권고 등에도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박씨가 신청한 유급휴가를 허가하지 않고, 징계위원회 소집을 진행하는 등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도 인권센터의 결정에도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8건이나 제기하는 등 반발했다.

도 인권센터 관계자는 “피신청인들은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제공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직접 찾아가 소명을 받는 과정에서 피신청인이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기다림 끝에 답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무용지물이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실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도 인권센터, 언론, 시민단체 등이 비판과 지적의 창끝을 들이 밀어도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방패로 방어하고 있다.

도 인권센터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진정 사건을 여러 건 담당하고 있는데, 시정권고를 이렇게까지 이행하지 않는 곳은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노무사, 시민단체 관계자들 역시 “한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지난 3월 도 인권센터의 결정이 나온 이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통해 자신의 사정을 알리려 노력했다. 많은 언론에서 박씨의 이야기를 보도했고, 시민단체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그를 지원했다. 박씨는 보건복지부, 진도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진도군 지회 등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두 번이나
괴롭힘 인정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박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여러 기관들의 외면은 박씨의 고립으로 이어졌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지난달 18일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직무명령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했다”며 박씨에 대해 정직 3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기존의 인사위원들을 교체하면서까지 강행한 징계위원회 결과였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운영위원은 인사위원을 겸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사위원들이 갑자기 해촉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의신청을 하려다가 안 했다. 어차피 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더라. 나만 바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직 3개월 기간 동안 월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박씨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다. 

박씨는 징계 의결 전날인 지난달 1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일어난 사건이 단순히 한 지회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씨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관계자들은 장애인이동센터의 구조적인 문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문제가 빙산의 일각이고, 어딘가에 또 다른 ‘박씨’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이동센터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도에 지부를 두고, 다시 지부가 시·군에 둔 지회에서 운영된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경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의 진도군 지회에서 운영하는 식이다. 각 지회의 지회장이 장애인이동센터 센터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시·군 지회장은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이 맡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이동센터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센터장이 눈이 보이지 않아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봤다. 그러다보니 주변 관계자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경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적에도
요지부동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경우도 진도군 지회장이 센터장을 겸임했는데, 당시 지회장이 전맹 상태의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한다. 도 인권센터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는 시각장애인보다 상황 파악에 용이한 사람을 센터장에 채용하는 방식을 권고했다.

기존에 무급 명예직이었던 센터장 직급을 유급으로 바꿔 월급을 지급, 장애인이동센터 운영에 좀 더 적합한 인재를 뽑자는 취지다.

진도군에서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장애인이동센터는 센터장 공모 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도 잡음이 발생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직원 김모씨가 센터장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자신이 입후보하는 일이 일어난 것.


이른바 ‘셀프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총 3명이 센터장에 지원했지만 관계자 사이에서 2명은 들러리라는 말이 심심찮게 새 나왔다.

김씨가 박씨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가운데 1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씨는 “센터장에 지원한 김씨도 나를 괴롭힌 게 맞다. 전임 센터장, 직원 2명 등 총 3명이 나를 괴롭혔다”며 “채용 과정에서 김씨가 센터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항변했는데 결국 (김씨가)뽑혔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씨는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박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3명 가운데 2명이 지회장과 센터장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센터장을 겸임했던 진도군 지회장이 김씨를 센터장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센터장의 권한이 막강한 만큼 가까운 사람을 센터장에 앉혀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는 소문이다. 

진도군과 도 인권센터에 센터장 채용 문제로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인은 ▲전임 센터장이 면접관으로 면접을 본 점 ▲김씨가 사표를 내지 않고 센터장 후보에 지원한 점 ▲면접 과정이 공정했는지 여부 등을 진도군에 질의했지만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도군은 김씨의 센터장 취임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지회장 센터장 겸임
소극적 태도 사실관계 부정

진도군이 장애인이동센터에 지원한 보조금을 두고도 여러 지적사항들이 나왔다. 진도군은 장애인이동센터에 연 1억400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이 돈을 인건비, 차량 수리비, 유류비 등으로 사용한다.

진도군의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관련 운영 및 보조금 조사결과 보고’에서 장애인이동센터는 여러 가지 운영상 문제점을 드러냈다.

2018년과 2019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에서 규정한 서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편성 예산에 대한 공고 의무도 어겼다. 분기별 1회 이상 개최해야 할 운영위원회 정기회의도 개최하지 않았다. 

‘전라남도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운영규정에 따르면 운영위원회는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개최하도록 돼있다. 운영위원들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운영 계획의 수립·평가 ▲종사자의 근무환경 개선 ▲종사자와 이용자의 인권보호 및 권익 증진 등을 논의한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올해도 운영위원회를 전혀 개최하지 않았다.

직원이 4명에 불과한 작은 단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센터장 채용 논란 ▲보조금 문제 등 총체적인 문제가 발생했지만 진도군은 물론 상위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진도군 지회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등 박씨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진도군의 소극적인 행정이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관계자들은 진도군이 매년 장애인이동센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만큼 회계뿐만 아니라 인사, 직원 채용 등에 있어 확실한 관리·감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이동센터가 진도군의 시정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시설 폐쇄’ 등 강경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진도군청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박씨에 대한)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센터장 채용 건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보조금 문제도 최근 진행한 회계감사 결과를 장애인이동센터에 통보했고, 시정 조치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등은 진도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각각 “잘 모른다”거나 “규정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인사권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 전남지부에 문의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남지부는 “사건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만, 운영규정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진도군 지회에 물어보라”고 전했다. 

진도군 지회 관계자는 “박씨의 주장은 전부 허위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박씨를 포함한 직원 2명이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피신청인이)박씨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다는 점만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 인권센터 결정에 대해서는 “(도 인권센터에서)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상위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 홍관희 노무사는 “이 사건이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인사업주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대한 근로감독을 청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루고
또 미루고

이제 박씨에게 이 사건은 더 이상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박씨는 자신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사명감으로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차라리 센터를 그만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내가 지금 그만두면 모든 것을 잘못한 사람이 된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보겠다”며 “내가 선례를 만들면 어딘가에 있을 나 같은 사람이 언젠가는 도움을 받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