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배제? '정부 고리' 국세청 코드 인사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7.12 13:24:00
  • 호수 1331호
  • 댓글 0개

여전히…연줄 있는 사람만 영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국세청은 지난 1일 고위공무원 가급 4자리와 나급 14자리에 대한 정기인사를 실시했다. 지역 안배 등 조직 내 현실 여건을 반영한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 관례를 무시한 ‘문재인 정부’ 코드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1급 인사는 단순한 고위직 인사가 아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차기 국세청장 후보자를 뽑는 자리다. 국세청 인사는 특정 시기, 단 한 번의 기회다. 능력은 물론 행정고시 기수·출신 지역까지 고려한다. 각 출신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국세청 안팎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각 출신에
골고루 기회?

대통령 탄핵 이슈 전인 5년 전, 고위직 인사에는 이 같은 고민이 없었다. 집권당인 자유한국당의 핵심 지지 지역은 TK(대구·경북)였고, TK 등 영남 출신 행시 36회 인재가 전면에 부상했다. 반면, 행시 34회, 35회, 36회, 37회 비 TK 인사들이 주목받지 못했다.

호남은 노골적으로 배제됐었다. 지난 정부에서는 단 한 명의 호남 출신 1급 승진자도 나오지 않았고 국세청 최고 요직 중 하나인 본청부 조사국장의 경우 2018년 7월 김명준 국장(전북 부안)이 나오기 전까지 15년간 호남 출신 조사국장이 없었다.

단순히 경합에서 진 것이 아니라 인사 후보군 자체에 넣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렸다. 


현 정부 출범 후 국세청 인사는 ‘균형’ 기조로 돌아왔다. 행정고시 기수 서열 측면에서는 행시 35회 김현준 국세청장, 행시 36회 김대지 현 국세청장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내년 차기 국세청장 후보에 행시 37회, 행시 38회가 올라가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국세청장을 제외하고 최선임 행시 기수인 37회 인사는 네 명이 있다. 예상대로 임광현 서울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으로, 임성빈 부산국세청장이 서울국세청장으로 임명됐다. 

국세청 고위직 인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인사’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 고위직 인사 불문율처럼 여겨져 오던 1급 1년이면 후진을 위한 용퇴라는 관행에 따라 문희철 국세청 차장은 용퇴했으나, 임광현 차장과 임성빈 청장이 다시 1급으로 복귀한 뒤 나온 말이었다. 

1급 1년이면 후배 위한 용퇴
불문율 깬 인사…뒷얘기 무성

임광현 차장은 임성빈 청장보다 기수는 하나 내려간 행시 38회지만, 한발 앞서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에 오른 인물이다. 지난 정부에서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활동한 인재들이 밀려나고, 비 TK 34~37회 인물들이 조명을 받지 못한 틈을 타 부상했다.

임광현 차장은 박근혜 대통령 제 2의 고향인 충청도 사람이기도 했다. 

임광현 차장은 사무관 임관 시기부터 특별한 재능과 능력으로 주목받았고, 지역 색깔을 막론하고 국세청 핵심 간부들의 제안을 받아 늘 조사 분야 핵심인재로 활동해왔다.


국세청 최고 요직이라는 서울청 조사4국장-국세청 조사국장-서울청장을 거쳤는데 현 정부 인사를 통틀어 이 같은 경력을 가진 것은 한승희 전 국세청장 외에 임광현 차장이 유일하다.

지난 정부에서 선배 기수가 대거 밀려났지만, 임광현 차장이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지난해 9월 현 보직인 서울국세청장으로 임명된 데 이어 불과 9개월 만에 국세청 차장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때문일까.

임광현 차장의 탄탄대로 ‘관운’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관운도 업무능력이 탁월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국세청이 배포한 고위공무원단 인사명단 자료에 따르면 임광현 차장은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국세청 내 엘리트로 평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 내 조사국장을 두루 역임한 ‘조사통’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임성빈 청장도 서울국세청 조사 4국장 이력이 있다. 그의 경쟁자는 김창기 중부지방국세청장, 강민수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정철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었다. 현 정부가 처음 뽑은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출신이었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급에 승진했고, 늘 국세청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입맛 따라
누가 뽑나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은 정권을 막론하고 늘 능력 중심 인사가 단행된다. 대규모 탈세 조사를 담당하기에 검찰과 경찰 등 각 주요 사정당국 정보가 오갔다. 본청 조사국 외에 별도로 조사수집부서를 가진 유일한 부서기도 하다. 

사정당국으로서 국세청 권위를 상징하는 부서가 서울국세청 조사4국이며 국세청 요원 중 최고 인재가 이곳에 배치된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은 청와대와 여당까지 능력과 특히 ‘신뢰성’을 인정받아야 임명이 가능하다. 현 정부 초대 국세청장인 한승희 국세청장도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출신이다.

임성빈 청장은 사무관 임관 시절부터 주목받았지만, 이명박정부 출범 후 사실상 강등의 삶을 살았다. 모두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당시 노무현정부 청와대 출신들은 기관과 출신을 막론하고 줄줄이 인사에서 배제됐다. 1급 자리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다 기획재정부 2급 국장 지위를 전전한 구윤철 현 국무조정실장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임광현 차장과 임성빈 청장 인사에 대해 불만이 제기됐다. 이들이 ‘귀한 1급’ 직위를 두 번이나 거쳤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고위직일수록 후보들은 많은데 자리는 몇 없는 송곳형 인사 구조기에 한 번 좋은 자리를 간 사람은 특별한 사정없이는 후배를 위해 명예퇴직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현 1급 중 국세청장 후보를 남기더라도 한 명만 남기는 것이 지난 인사 관행이기도 했다.  

타 기관과의 행정고시 기수 균형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행시 35회),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행시 33회), 임재현 관세청장(행시 34회)은 직렬상 국세청장과 동급이다. 


또 김창기 중부국세청장(행시 37회, 경북 봉화)은 현 보직에 내정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부산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고, 김 청장 후임으로는 김재철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세대 4기, 전남 장흥)이 내정됐다.

잇단 파격
희비 갈려

이밖에도 이판식 부산국세청 징세송무국장(세대 4기·전남 장흥)은 송기봉 광주국세청장(행시 38회, 전북 고창)의 뒤를 잇는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들 고위공무원단의 인사 기준은 행시와 비고시(세무대) 그리고 현 정부와 인연 여부에 따라 희비가 갈린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김대지 국세청장을 필두로 이번 인사에 명단을 올린 (행시 출신) 임광현 차장과 임성빈 청장 등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성빈 청장은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 동문이다.

또 (세대 출신) 이판식 국장의 경우에는 참여정부 시절(2006년 6월) 사무관 직책으로 청와대에 파견, 불과 2년도 안돼 서기관으로 승진한 후 국세청에 복귀했다. 이후로 2019년 2월 또 다시 청와대에 파견돼 2020년 초,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후 채 1년 남짓한 사이에 고위직 나급(2급) 광주국세청장에 내정된 것은 ‘파격’ 그 자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국세청 1급 승진 하마평에서 빠지지 않았던 강민수 본청 법인납세국장(37회·창원)과 정철우 본청 징세법무국장(행시 37회, 경북 경주), 이현규 국세공무원교육원장 등은 각각 대전국세청장과 국세공무원교육원장 그리고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공교롭게 이들은 모두 참여정부 뿐만 아니라 현 정부 인사와도 인연이 깊지 않아 고배 아닌 고배를 마셨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행시기수 양보와 배려 사라져
인연 없는 인물 퇴출당했다?

이번에 발표된 인사들 중 한경선 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박근재 본청 조사기획과장, 이태훈 본청 세원정보과장, 강영진 서울청 조사1국1과장, 이상걸 서울청 국제조사관리과장 등 5명을 콕 집어 분야별 전문가여서 발탁했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본청 조사기획과장으로 임명된 박근재 과장의 경우 2014년 통영서장, 2015년 중부청 법인신고분석과장, 2016년 용인서장, 2017년 외교부 파견, 2020년 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최근 7년간 조사 파트에 근무한 경력이 없다. 청장을 보좌하다가 본청 조사기획과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감찰담당관의 경우 강영진 감찰담당관이 서울청 조사1-1과장으로 가고 윤창복 국세청 조사1과장이 감찰과장 자리로 이동했다.

이번 인사에서 본청 조사국에 세무대학 출신들의 명맥이 끊기면서 그 아쉬움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최근 5년간 본청 조사국 과장급 프로필을 살펴보면, 그동안 국세청 조사국에는 세무대학 출신의 과장이 반드시 유지돼왔으나 이번 인사를 통해 세무대학 출신이 사라지게 됐다.

2017년 상반기 이호석 국제조사과장(세대3), 구상호 세원정보과장(세대3), 김진우 조사1과장(세대6), 김운섭 조사2과장(세대1) 등 4명의 세대출신이 있었으나, 2017년 하반기 채정석 조사1과장(세대2), 김진호 조사2과장(세대3) 등 2명으로 줄고, 2018년 상반기 채정석 조사1과장(세대2), 김진호 조사2과장(세대3), 2018년 하반기 김진호 조사1과장(세대3), 백승훈 조사2과장(세대4), 2019년 상반기 김진호 조사1과장(세대3), 백승훈 조사2과장(세대4)까지 계속해서 2명을 유지했다.

그러다 2019년 하반기 백승훈 조사1과장(세대4)으로 1명으로 줄었다가 2020년 상반기 백승훈 조사1과장(세대4), 한경선 조사분석과장(세대6) 2명으로 늘었으나,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세대 6기 출신의 한경선 조사2과장만이 홀로 명맥을 이어오다 이번 과장급 인사에서 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세대출신이 자취를 감췄다.

본청 짐입
더 힘들어?

이와 함께 이번 인사에서 세대 출신이 본청으로 전입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면서 갈수록 ‘행정고시 천하’가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본청으로 들어온 7명의 과장 중 행시는 5명인데 비해 비고시는 2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무대학 출신이 1명, 7급 공채가 1명이었다. 비고시 출신의 비율이 많은 국세청 조직이지만 결국 고위직으로 향하는 관문은 비고시들에겐 높기만하다는 푸념이 많다. 

김대지 국세청장이 취임 당시 ‘비고시 직원이 빠르게 갈 수 있는 트랙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으나 결국 많은 비고시 출신 국세공무원들에게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인사라는 평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