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월 1000도 우스운’ 예체능 학원비의 민낯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7.12 11:37:57
  • 호수 1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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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뿌리 뽑아야 ‘특별 레슨’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아이 한 명을 예체능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집 한 채를 날려야 하거나 서서히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체능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간다.

우리나라 대학교에는 예술·체육과가 셀 수 없이 많다. 고등학생이 좋은 예체능 전공인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듣는 수업뿐 아니라 고액 레슨을 따로 받아야 한다. 이 레슨비는 인문계 학생이 공부하기 위해 학원에 내는 사교육비에 비해 훨씬 더 큰 금액이다. 특히 대학입시 레슨은 대부분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비싸다고 
느껴지지만…

대학 진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시 레슨 선생들은 대학 교수와 연이 있어야 학생 유치에 유리하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많은 돈을 내고서라도 유명한 학원이나 인맥이 넓은 선생이 있는 곳에 등록한다. 

보편적으로 어린 나이부터 특별 레슨을 받고 그 중에 우수한 학생들이 예체능 중·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다. 물론 해당 학교에 가지 않고도 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대학에 가는 경우도 많다. 두 경우 모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기간 내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유명 예체능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학부를 졸업해도 그때부터 다시 돈을 들여서 예체능을 공부해야 하고 개인의 열정과 부모 지원이 요구되는 상황이 된다. 석사를 마쳤어도 상황은 마찬가지고 다시 똑같은 이유로 박사 과정 진학까지도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석사와 박사를 마쳐도 지도교수에게 인정받고 잘 보여야만 대학에서 강사라도 할 수 있게 된다. 대학 강사 생활을 하다가 그 중에 아주 극소수만 교수가 된다.

예체능 분야에서 교수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만큼 어렵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잡음도 일어난다. 아무리 예술·체육 분야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밥벌이는커녕 계속 돈을 들여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이 되는 예체능 학원비에 대해 정리했다.

▲미술 = 미술학원들은 대학능력수능시험이 끝난 시점부터 대학교 미술 입시가 시행되기 전까지 특강 명목으로 수험생에게 고액의 수강료를 요구한다. 서울 지역의 정시 특강비는 최소 600만원 내외다. 입시 미술로 유명한 곳이 몰려있는 홍대나 강남 지역 특강비는 700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홍대의 입시 학원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약 두 달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수업을 한다. 비용은 보통 600만원 안팎이다. 업계에서 미대 입시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하기 때문에 적정가로 알려져 있다. 

학교뿐 아니라 고액 학원 따로 다녀
인문계 사교육비 비해 훨씬 더 많아

학원들은 수능 직후부터 주요 예술대학의 정시 실기시험이 끝나는 2월 초까지 ‘집중 코스’ 나파이널’이란 이름을 내걸고 한 달에 몇 백만원에 달하는 실기 대비반을 운영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실기 비중이 큰 예체능 계열 특성상 어쩔수 없지 고액 수강료를 지불하고 있다.

수험생의 ‘정시특강 비용이 비싸다’는 내용의 글도 쉽게 볼 수 있다. 입시 전문 사이트에 한 수험생은 “지방 학원인데도 정시특강비가 500만원이다. 이미 수시특강 비용으로 500만원을 냈다. 거의 1000만원이라서 부모님이랑 엄청 싸웠다”고 게시했다.


강남구 한 입시미술학원은 수능 직후인 11월16일부터 1월26일까지 2개월 동안 주 6일 하루 종일 수업하는 조건으로 무려 800만원을 받고 있다. 성북구의 유명 미술학원은 2달도 안 되는 기간 497만원을 받았으나 ‘가장 싼 편’에 속했다. 

▲음악 = 실기 준비를 주로 ‘개인 레슨’으로 하는 예비 음대생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작곡과 전문 입시 학원에서는 수능 직후 두 달간 대략 1000만~1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입시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비용일지라도 ‘입시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학부모도 자녀 입시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거액의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자녀 위한
투자라 생각

피아노 전공의 경우 선생님을 돌아가면서 수업을 듣는다. 레슨, 입시 전문학원에서 수업(6만원)을 듣고 대학 강사급에게 수업(10만원)을 듣는다. 마지막으로 대학 교수에게 또 한 번 수업(최소 20만원)을 듣는다. 학생이 레슨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경우에는 선생님을 또 초대해야 하는데 한 시간에 5만원에서 8만원 정도가 든다.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달로 계산하면 레슨비가 약 200만원가량 비용이 발생한다.

이 기간 지방에 거주하는 예체능 계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배로 커진다. ‘방값’까지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남의 한 음악학원 인근 고시원에서 한 달 넘게 살며 실기 준비를 했던 한 음대생은 월세에 부담을 느꼈다. 학원 레슨비는 물론 악기 물품 구입비, 연습장소 대여비까지 합하면 매달 3000만원 이상을 쓰게 된다. 

입시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월 학원비는 30만~40만원 정도. 학원 강사로부터 직접 레슨을 받거나 학원으로부터 소개받은 사람에게서 레슨받을 때 레슨비는 한 번에 30만원이다. 이쯤 되다 보면 수시모집을 앞둔 입시철엔 월 200만~300만원은 나간다. 

올해 실용음악과 보컬을 지원한 한 수험생은 “돈도 돈이지만 어느 정도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 좀처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서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아나운서 = 방송국의 얼굴 아나운서를 배출한 학원들도 고액 강습료를 받는다. 서울 신촌, 강남 등 유명 아나운서를 배출했다는 학원이 즐비하다. 이곳의 비용은 최소 4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든다. 해당 커리큘럼은 6개월 정규반, 아나운서 정규반, 고급반 등이 있다.

정규반은 400만원에서 500만원 사이다. 정규반은 40회 차고 수업 시간은 일주일에 2회, 3시간씩 수업이 진행된다. 직장인은 주말에 한 번 여섯 시간을 몰아서 들을 수 있다.


실기 앞두고 
목돈 준비

학원 상담사가 내세운 것은 추천채용과 단독 채용이다. 이들은 공개채용보다 추천채용의 합격률이 더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추천채용이 이뤄지는 과정은 인력이 필요한 기업이 일부 대형 아나운서 학원에게 추천채용을 의뢰한다.

의뢰받은 학원에서는 본원 수강생을 중심으로 서류면접을 진행한다. 최종면접 전까지는 모두 학원 내부에서 이뤄진다. 기업 입장에서 번거로운 채용 과정을 줄일 수 있고 학원 입장에서는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해 더 많은 원생을 모집할 수 있다.

이런 탓에 학원에서는 이른바 추천 전쟁이 벌어진다. 얼마나 많은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학원의 능력을 가르는 중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몇 곱절이다. 신촌과 강남 등에 위치한 아나운서 학원비는 대개 400만원선.

이는 40회 수업 비용이다. 여기에 일대일 개인 지도를 더하면 시간당 15만원 이상을 더 내야 한다. 기본반을 수료하면 고급반, 단과반 등의 과정을 수강해야 합격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되면 학원비로만 거의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 업계에서 알려진 대형 학원 3곳의 학원비도 대체로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세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 암묵적으로 책정
시간당 10만원 천정부지

▲체육 = 체대 입시도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실기고사가 복잡한 데다 대학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체대 입시학원비는 월 40만원가량이지만, 정시 전형을 앞둔 3개월간은 월 200~300만원까지 치솟는다.

서울 강남구의 한 체대 입시학원은 1월에 있는 학교별 실기시험 전까지 300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했다. 지난해 고3 자녀의 체대 입시 준비를 지켜본 한 학부모는 “대학마다 시험 과목이 다르고 선택 과목도 있어 학원 도움이 필수적”이라며 “체대 자녀를 둔 엄마들은 다들 마지막에 목돈이 든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입장에서도 체대 입시학원은 체인이기 때문에 정보공유 면에서 유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비싸게 느껴져도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등록할 수 밖에 없다. 체대 입시 관련 설명회가 거의 열리지 않기 때문에 학원이 학부모 사이에서는 정보를 공유해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아카데미가 체대 입시 전문학원 역할까지 병행하고 있다. 이를 두고 사교육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과 경기도 등의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학원 교습 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서울, 경기는 물론 충북, 세종 등도 사교육 열풍을 방지하기 위해 학생 대상 심야 개인 과외와 학원 교습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아카데미는 학원이나 교습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적용받지 않는다.

체대학원서 
정보 공유도

학원법의 규제를 받지 않다 보니 시도 교육청이 정한 교습비 기준을 넘는 고액 수강료를 받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서울 각 구 교육지원청이 정한 입시·보습 학원 교습비는 1분당 200원을 넘지 않는다. 시간당 12000원 정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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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