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탐탐' 프랜차이즈 노리는 사모펀드의 발톱

재무 주치의? 현금 사냥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난 10년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랜차이즈 16곳이 사모펀드에 넘어갔다. 외식 수요가 줄면서 매출 감소가 장기화되자 인수합병(M&A) 시장에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재무 주치의’ ‘현금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공존하는 사모펀드. 이런 사모펀드가 프랜차이즈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 따르면 최근 토종 외식 프랜차이즈의 주인이 외국계 사모펀드로 줄줄이 바뀌고 있다. 국내 최초의 개인 창업 외식 브랜드인 ‘놀부’가 모건스탠리PE에 1000억원대로 매각된 2011년부터 최근 10년간 프랜차이즈 브랜드 16개가 사모펀드에 팔려나갔다.

10년간 16개
계속 팔렸다

2019년 12월 버거&치킨 프랜차이즈 ‘맘스터치’를 운영하는 해마로푸드서비스는 사모펀드 케이앤엘파트너스가 매입했다. 창업주 정현식 회장이 보유한 주식 5378만여주(지분율 56.8%)와 전환사채권을 포함한 매각 대금은 1973억원이다.

최근 기업공개(IPO)에 나섰던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도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2018년 매각됐다. 당시 매각 가격은 4500억원에 달했다.

현재 투썸플레이스의 최대주주는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 싱가포르 투자청이 합작으로 설립한 특수목적회사 텀블러 아시아로 지분 73.89%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 VIG파트너스는 2012년 두산으로부터 ‘한국버거킹’을 1100억원에 인수하고 다국적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2016년 2100억원에 되팔았다. VIG파트너스가 4년 만에 두 배가 넘는 차익을 챙긴 셈이다.

BBQ는 자회사 ‘bhc’를 미국계 사모펀드 로하틴그룹에 2013년 1200억원에 팔았다. CJ그룹은 다국적 사모펀드 칼라일과 3월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뚜레쥬르’ 매각과 관련한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매각 금액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철회했다.

지난해 7월에는 티알인베스트먼트가 페리카나와 함께 미스터피자를 인수했고, 9월 큐캐피탈파트너스-코스톤아시아가 노랑통닭을 인수했다. 특히 미스터피자의 경우 150억원에 ‘헐값’에 인수됐다. 지난 2월에는 연안식당을 운영하는 디딤을 정담유통이 인수했다.

여기에도 모 사모펀드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줄줄이 넘어가는 외식업 브랜드들
싸게 사서 몸집 불려 되파는 형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밖에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프랜차이즈에 사모펀드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식, 피자, 커피, 주점 등 M&A를 위해 사모펀드와 대표가 미팅까지 한 프랜차이즈가 적지 않다”면서 “이들 상당수는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하거나 성장이 정체돼 경영진이 매각을 희망한 경우다. 다만 매각 금액에 대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협상이 결렬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사모펀드가 프랜차이즈 인수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뭘까.

우선 프랜차이즈는 가맹점 확장에 따라 비교적 쉽게 매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케이엘앤파트너스가 맘스터치를 인수했을 때도 수도권에 매장이 적어 확장 잠재력이 크다는 점이 매력 요소로 꼽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맹점 50~200개 정도를 거느리고 흑자를 내며 브랜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치킨, 커피 프랜차이즈가 사모펀드가 선호하는 매물 1순위”라고 귀띔했다.

여기에 최근 버거킹, bhc치킨, 공차, 할리스커피 등 기존 사모펀드가 인수한 프랜차이즈가 재매각되거나 매출 성장을 이어가는 성공 사례가 이어진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유니슨캐피탈이 투자 원금 대비 여섯 배가량의 수익을 거둔 공차는 경영 스토리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의 케이스 스터디 교재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교촌치킨이 코스피에 직상장한 것도 호재로 거론된다. 그간 프랜차이즈는 사모펀드가 인수한 후 재매각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상장을 통한 자금 회수 가능성도 확인돼서다.

눈독 들이면…
잇따른 잡음

프랜차이즈 기업의 운영 방식도 사모펀드가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대부분 프랜차이즈는 오너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1개의 매장이 단기간에 대규모 브랜드로 빠르게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오너 중심 체제여서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전문경영인 등 체계적 경영 시스템이 갖춰지기 어렵다. 사모펀드가 진입해 이 같은 구조를 개선한다면 비용 통제 등 내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매출이 크게 성장하지 않더라도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대형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프랜차이즈 기업은 오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오너의 직관에 따라 의사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관리 측면에서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체계적 관리 시스템만 적용해도 수익성이 높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고, 시장도 성장세라 사업 성공 가능성도 비교적 높다.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에게 프랜차이즈는 가장 잘 어울리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들이 사모펀드 손을 거쳐 주인이 바뀌면서 업계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업계 일각에선 오너 개인이 좌지우지하던 경영방식을 체계적으로 바꿔 보다 합리적인 결정 시스템이 구축됐고, 발빠른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였다고 평가한다.


‘양날의 검’
장단점 뚜렷

실제 저평가된 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되파는 것이 사모펀드의 목적이다 보니, 사모펀드의 인수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매년 M&A 과정마다 잡음이 쏟아진다. 매각 과정에서 그간 동고동락하며 회사 성장에 기여한 대다수 직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소수의 경영진이 단독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한 시점에서 직원들의 고용안정 역시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맘스터치의 사모펀드 매각이 알려진 이후 해를 바꿔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노총서비스일반노동조합 해마로푸드서비스지회는 사측과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이 이뤄지지 않자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맘스터치 관계자는 “최근까지 적극적인 협상으로 노조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맹점주들의 반발도 크다. 사모펀드가 단기수익에 치중해 쥐어짜기식 경영을 펼칠 경우 전 재산을 가맹점에 쏟아붓는 ‘생계형 가맹점주’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CJ그룹이 뚜레쥬르 매각 계획을 밝혔을 때 뚜레쥬르 가맹점주들은 법원에 뚜레쥬르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경영진이 단독 결정 M&A 과정마다 뒷말
경영난 돌파구 모색? 국부 유출 부작용도

사모펀드는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양날의 검으로 평가된다. 비상장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는 소위 ‘모험자본’이란 순기능으로 기업 성장을 이끌기도 하지만 기업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고용불안과 국부유출 등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모펀드는 시장에서 평가하는 회사 가치를 극대화해 되파는 게 목적이다. 한마디로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판다’는 목표 의식이 뚜렷하다. 처음부터 매각을 염두에 두고 M&A에 뛰어들기 때문에 단기 수익에 치중하고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도 단행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M&A시장에서 PEF는 중요한 플레이어”라면서 “기업과 종업원 각각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급하게 매각을 추진하는 기업 입장에선 사모펀드가 새로운 돌파구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직원이 해고되는 고용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2년 차를 맞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외식업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들이 지난해와 같은 ‘저점 인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백신 효과와 보복적 소비가 본격화되면 외식업 경기가 살아나 지난해 적자전환한 외식 프랜차이즈의 흑자전환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사모펀드는 내부 투자자 설득을 위해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는 매물을 찾는 만큼, 하반기께 다시 한 번 프랜차이즈 M&A의 큰 장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상생원리?
상반 양상

한국프랜차이즈학회 관계자는 “가맹점은 가난해져도 가맹본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원리는 프랜차이즈 모델의 기본인 상생 원리와 상반된다”며 “공정거래위원회는 프랜차이즈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모펀드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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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