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짜 배우를 만나다 김명민

“사랑 받은 캐릭터는 숙제, 그 숙제 풀어야 사랑 받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에게 있어 매우 큰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오히려 새로운 숙제가 된다. 유명 작품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인기를 얻은 캐릭터를 극복하지 못한 배우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세운 장벽을 스스로 넘지 못한 경우다. 배우 김명민도 큰 숙제가 있는 배우다. MBC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로 극복한 김명민은 JTBC <로스쿨>을 통해 양종훈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겼다.

로맨스 장르에 강세를 보이던 국내 드라마 시장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대중성 면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장르물이 많아진 것을 넘어서 범람하고 있다. 채널마다 범죄·스릴러 장르 드라마를 방영한다.

장준혁·강마에
그리고 양종훈

법 체제가 강자와 약자에게 차별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인지한 국민의 울분이 투영된 현상이다. 용서받기 힘든 범죄자를 더 악랄한 방식으로 처단한 tvN <빈센조>나, 초능력으로 악귀와 맞선 OCN <경이로운 소문>, ‘사적 복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SBS <모범택시> 등이 시청자들의 울분을 대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기득권이 저지르는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해갈했다. 해당 드라마의 시청률은 20%에 육박했고, 인기는 대단했다. 이 드라마들 외에도 JTBC <언더커버> tvN <마우스> OCN <타임즈> 등 장르물이 호평을 받았다.

배우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선 <로스쿨>은 장르적 특성이 짙은 작품이기는 하나 위에 거론된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악인에 대한 사적 복수가 아닌 법 체제 안에서 법으로 벌을 주는 방식이 차별화의 포인트다. 

‘법은 많이 알고 있는 사람한텐 편이 되고, 법을 모르는 사람에겐 적이 된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법꾸라지’들이 어떻게 법망을 뚫고 악행을 저지르는지를 보여주며,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법조인이 법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법이 정의의 편에 설 수도, 불의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아무래도 법 자체가 용어도 어렵고 내용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법리적 판단 역시 입장마다 다르기 때문에 법을 깊게 다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화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진입하기엔 장벽이 높다. 

<로스쿨> 또 하나의 걸작 탄생 
“아들 친구가 사인 부탁하더라”

자극적인 소재나 장면, 맛깔 나는 대사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아닌, 법의 본질을 좇는다. 속도감도 비교적 느리다. 최근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드라마 화법과는 성질이 다르다. 게다가 100%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성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깔린 선택이다.

<로스쿨> 제작진은 스스로 선택한 어려운 길을, 시청자들이 어떻게든 복잡·미묘한 법의 세계에 따라올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극복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선 완벽한 연기자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선택된 배우가 김명민이다. 

<로스쿨>에서 법의 선생님이자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극중 한국대학교 로스쿨 형법 교수인 양종훈(김명민 분)이다. 교수로서 강의할 때나, 법원에서 판사 또는 배심원들에게 어려운 법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한다. 사실상 시청자들에게 법의 의미를 전달하는 셈이다. 

단순히 설명만 해도 어려운 임무인데, 자신만의 원칙에 있어서 철두철미할 뿐 아니라 차원이 다른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냉정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의 색을 띠면서 표현해야 했다.

<로스쿨>은 강의실과 법정 등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매우 많을뿐더러,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법률 대사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정의로운 강자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연기적 기술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제작진으로선 김명민 외에 대체자를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사실 이 작품은 김석윤 PD가 연출하기로 한 작품이 아니었어요. 다른 PD가 내정돼있었는데, 저를 찾아온 거죠. 정통 드라마의 성질을 가진 <로스쿨>이 좋기는 했지만, 아무나 연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역으로 제안했죠. 이 작품을 소화할 사람은 김석윤 PD라고요. PD님이 한다면 믿고 따르겠다고 했어요. 원래 김 PD님은 다른 작품을 하기로 했는데, 그걸 미루고 <로스쿨>을 먼저 하게 됐죠.”

“최소 10배는 
힘들었어요”

배우가 오히려 연출자를 선택한 셈이다. 이쪽 업계에선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배우가 제작진에게 갑질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 <조선 명탐정> 시리즈를 함께 작업하면서 얻은 신뢰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다.

김명민은 김석윤 PD에게 무한한 신뢰가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김 PD에게 무한한 신뢰가 있어요. 배우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보여요. 다른 감독님들은 같은 대사와 장면을 동서남북으로 찍고 위·아래를 다 찍어요. 같은 대사를 반복하면 진이 빠지고, 힘을 어디에 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져요. 그런데 김 PD는 카메라 4대를 활용해요. 이게 정말 힘든 거예요. 동선, 조명 다 고려해야 해서 매우 어렵죠. 완벽하지 않으면 한 대를 쓰느니만 못해요. 감독님은 그런 콘티를 사전에 철저하게 해 와요. ‘배우들 힘들지 않게 우리가 절지 말자’는 말을 스태프들에게 해요. 그 말 자체가 굉장한 믿음으로 다가와요.”

서로를 향한 신뢰로 <로스쿨>이 출발했다. 김명민이 연기한 양종훈은 학생들로부터 ‘양크라테스’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이라는 질문을 학생에게 던진 뒤 그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양종훈의 강한 압박에 말문이 막힌 학생을 쥐 잡듯이 다그친다. 교수의 압박을 못 이긴 학생이 구토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학생들과는 밥을 절대 같이 먹지 않는다’는 기이한 원칙을 지키려 하면서 거리를 두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도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인물이다. 뒤에서는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세련된 츤데레’다.

“제가 양종훈을 연기해서 그런지 정말 사랑스러워요.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누가 보기에 따라서 재수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겨우 그 정도인 거죠. 사실 그래도 될 것처럼 잘났잖아요. 어쩔 수 없는 부분 같기도 해요. 만약 이런 스승이 저에게도 있었다면, 김명민은 다른 인물이 됐을 것 같아요. 혹자는 양종훈이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인 거예요.”

학생들의 존경심을 받는 스승이자, 국내 최고의 법 전문가에 정의로운 강자였다. 이 모든 것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야 했다. 연기적인 면에서 국내 최고의 내공을 가진 그에게도 버거운 미션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가장 괴로웠다
결과는 ‘A+’

“다른 연기를 할 때보다 10배 이상은 노력한 것 같아요. 한 페이지 대사 분량을 똑같이 외워도 10배 이상 시간이 들어요. 잠깐 딴짓하고 나면 까먹고 그래요. 잠꼬대하듯이 외웠어요. 옆구리 찌르면 딱 나올 정도로요. 아무리 대사를 외워도 내용을 모르면 정확히 표현이 안 돼서 법률 사전이나 판례를 찾아보고 했어요. 그래야 진정성 있는 연기가 나오니까. 그래서 힘들었고 괴로웠어요.”

이제껏 출현 작품들 중에 가장 괴로웠다고 토로했지만, 그 결과물은 최상급이다. 정통 드라마에 목말라했던 시청자들은 <로스쿨>을 보면서 갈증을 해소했다. 특히 유튜브에 올라온 <로스쿨> 제작과정 영상 속 4분30초가량 진행된 강솔A(류혜영 분)와의 대사 장면을 보면 김명민의 재능이 얼마나 위대한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매우 어려운 대사와 다양한 제스처, 표정, 동선 등을 단 한 번에 진행한다. 연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장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처리한다. 김 PD의 ‘컷 오케이’가 끝남과 동시에 후배 배우들은 존경심을 가득 담은 채 손뼉을 친다.

완벽함을 도모한 그의 노력이 유의미하게 작동한 장면이다. 비단 이 장면뿐이 아닐 테다.

“될 때까지 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장면을 보면 저 역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사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시청자들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었어요. 양종훈이 출연진에게 얘기하기 전에 시청자들을 납득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 또한 양종훈을 통해 법정물이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노력했죠. 그래야 했던 것이 제 몫이었어요. 집사람 앞에서 연기했어요. 그리고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라고 되묻기도 했죠. 반복적으로 연습했습니다.”

<로스쿨>은 비록 <하얀거탑>이나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신드롬을 낳지는 못했지만, 체감 시청률이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청률은 약 7%, 넷플릭스에서는 국내 인기 콘텐츠 상위 10위 안에 속한 작품이다. 난도 높은 미션을 가진 장르물로서는 호성적이다.

“강마에와 비슷, 기시감 극복하려 했지만…”
“평생 양종훈의 가치 떠올리며 살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친구가 “너희 아빠 멋있다”며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은 첫 작품이기도 하다. 서민적인 연기보다 연극적인 연기에서 더욱 탁월한 힘을 발휘해온 김명민의 능력이 다시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김명민에게는 이것조차도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제가 클리셰를 안 좋아하는데, 대본부터 너무 비슷한 거예요. 특히 강마에랑 많이 비슷했죠. 일부로 그렇게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과거의 김명민을 보고 싶어 한다고요. 김명민을 접하지 못한 요즘 세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다고 똑같이 할 수는 없잖아요. 기시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말투나 어미를 쓰인 대본대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슷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각에서는 양종훈을 ‘김명민 연기’의 한 예로 치부한다. 상대적으로 힘을 뺀 캐릭터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에서 오는 냉혹한 평가이거나, 워낙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김명민에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길 바라는 기대심일 수도 있다.

“캐릭터 고민은 항상 있는 거죠. 장준혁, 강마에, 양종훈. 기시감을 극복해야 하는 건 배우에 있어서 항상 숙제예요. 그런데 <로스쿨> 같은 작품처럼, 시청자들이 원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 5년에 한 번씩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어요. 그렇다고 자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잘하는 것만 하면 지겨울 테니까요.”

원칙과 소신으로 매사 정의에 대해 질문하며, 부조리를 일삼는 강한 세력과 다퉈온 양종훈은 그를 연기한 김명민에게도 새로운 에너지가 됐다. 선배 배우로서,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성숙함을 양종훈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양종훈을 계속 떠올릴 것 같아요. 제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지향점이 양종훈의 삶과 일맥상통해요. 양종훈을 통해 해갈한 부분도 있어요. 소신 있게 작품에 임하며, 배우로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 이번에 연기를 하면서 정립이 된 것 같아요.”

<로스쿨>이 끝나고 시청자들에게서 나온 반응은 시즌2 제작이었다. 이런 반응은 무겁고 난해한 주제와 대화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통했다는 의미다. 김명민 역시 시즌2 제작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원칙과 소신
새로운 에너지

“진정성과 정통성이 있는 드라마에 많은 분이 공감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시즌2에 대한 반응이 나오는 듯 합니다. <로스쿨>은 쉽게 나올 수 없는 장르물이라고 봐요.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없는 작품이니, 기획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피되는 드라마겠죠. 그래서 더 반가웠던 것 아닌가 싶어요. 제작진을 만나면 시즌2를 꼭 추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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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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