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짜 배우를 만나다 김명민

“사랑 받은 캐릭터는 숙제, 그 숙제 풀어야 사랑 받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에게 있어 매우 큰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오히려 새로운 숙제가 된다. 유명 작품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인기를 얻은 캐릭터를 극복하지 못한 배우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세운 장벽을 스스로 넘지 못한 경우다. 배우 김명민도 큰 숙제가 있는 배우다. MBC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로 극복한 김명민은 JTBC <로스쿨>을 통해 양종훈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겼다.

로맨스 장르에 강세를 보이던 국내 드라마 시장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대중성 면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장르물이 많아진 것을 넘어서 범람하고 있다. 채널마다 범죄·스릴러 장르 드라마를 방영한다.

장준혁·강마에
그리고 양종훈

법 체제가 강자와 약자에게 차별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인지한 국민의 울분이 투영된 현상이다. 용서받기 힘든 범죄자를 더 악랄한 방식으로 처단한 tvN <빈센조>나, 초능력으로 악귀와 맞선 OCN <경이로운 소문>, ‘사적 복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SBS <모범택시> 등이 시청자들의 울분을 대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기득권이 저지르는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해갈했다. 해당 드라마의 시청률은 20%에 육박했고, 인기는 대단했다. 이 드라마들 외에도 JTBC <언더커버> tvN <마우스> OCN <타임즈> 등 장르물이 호평을 받았다.

배우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선 <로스쿨>은 장르적 특성이 짙은 작품이기는 하나 위에 거론된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악인에 대한 사적 복수가 아닌 법 체제 안에서 법으로 벌을 주는 방식이 차별화의 포인트다. 


‘법은 많이 알고 있는 사람한텐 편이 되고, 법을 모르는 사람에겐 적이 된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법꾸라지’들이 어떻게 법망을 뚫고 악행을 저지르는지를 보여주며,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법조인이 법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법이 정의의 편에 설 수도, 불의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아무래도 법 자체가 용어도 어렵고 내용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법리적 판단 역시 입장마다 다르기 때문에 법을 깊게 다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화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진입하기엔 장벽이 높다. 

<로스쿨> 또 하나의 걸작 탄생 
“아들 친구가 사인 부탁하더라”

자극적인 소재나 장면, 맛깔 나는 대사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아닌, 법의 본질을 좇는다. 속도감도 비교적 느리다. 최근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드라마 화법과는 성질이 다르다. 게다가 100%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성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깔린 선택이다.

<로스쿨> 제작진은 스스로 선택한 어려운 길을, 시청자들이 어떻게든 복잡·미묘한 법의 세계에 따라올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극복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선 완벽한 연기자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선택된 배우가 김명민이다. 

<로스쿨>에서 법의 선생님이자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극중 한국대학교 로스쿨 형법 교수인 양종훈(김명민 분)이다. 교수로서 강의할 때나, 법원에서 판사 또는 배심원들에게 어려운 법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한다. 사실상 시청자들에게 법의 의미를 전달하는 셈이다. 

단순히 설명만 해도 어려운 임무인데, 자신만의 원칙에 있어서 철두철미할 뿐 아니라 차원이 다른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냉정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의 색을 띠면서 표현해야 했다.


<로스쿨>은 강의실과 법정 등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매우 많을뿐더러,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법률 대사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정의로운 강자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연기적 기술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제작진으로선 김명민 외에 대체자를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사실 이 작품은 김석윤 PD가 연출하기로 한 작품이 아니었어요. 다른 PD가 내정돼있었는데, 저를 찾아온 거죠. 정통 드라마의 성질을 가진 <로스쿨>이 좋기는 했지만, 아무나 연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역으로 제안했죠. 이 작품을 소화할 사람은 김석윤 PD라고요. PD님이 한다면 믿고 따르겠다고 했어요. 원래 김 PD님은 다른 작품을 하기로 했는데, 그걸 미루고 <로스쿨>을 먼저 하게 됐죠.”

“최소 10배는 
힘들었어요”

배우가 오히려 연출자를 선택한 셈이다. 이쪽 업계에선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배우가 제작진에게 갑질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 <조선 명탐정> 시리즈를 함께 작업하면서 얻은 신뢰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다.

김명민은 김석윤 PD에게 무한한 신뢰가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김 PD에게 무한한 신뢰가 있어요. 배우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보여요. 다른 감독님들은 같은 대사와 장면을 동서남북으로 찍고 위·아래를 다 찍어요. 같은 대사를 반복하면 진이 빠지고, 힘을 어디에 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져요. 그런데 김 PD는 카메라 4대를 활용해요. 이게 정말 힘든 거예요. 동선, 조명 다 고려해야 해서 매우 어렵죠. 완벽하지 않으면 한 대를 쓰느니만 못해요. 감독님은 그런 콘티를 사전에 철저하게 해 와요. ‘배우들 힘들지 않게 우리가 절지 말자’는 말을 스태프들에게 해요. 그 말 자체가 굉장한 믿음으로 다가와요.”

서로를 향한 신뢰로 <로스쿨>이 출발했다. 김명민이 연기한 양종훈은 학생들로부터 ‘양크라테스’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이라는 질문을 학생에게 던진 뒤 그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양종훈의 강한 압박에 말문이 막힌 학생을 쥐 잡듯이 다그친다. 교수의 압박을 못 이긴 학생이 구토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학생들과는 밥을 절대 같이 먹지 않는다’는 기이한 원칙을 지키려 하면서 거리를 두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도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인물이다. 뒤에서는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세련된 츤데레’다.

“제가 양종훈을 연기해서 그런지 정말 사랑스러워요.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누가 보기에 따라서 재수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겨우 그 정도인 거죠. 사실 그래도 될 것처럼 잘났잖아요. 어쩔 수 없는 부분 같기도 해요. 만약 이런 스승이 저에게도 있었다면, 김명민은 다른 인물이 됐을 것 같아요. 혹자는 양종훈이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인 거예요.”

학생들의 존경심을 받는 스승이자, 국내 최고의 법 전문가에 정의로운 강자였다. 이 모든 것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야 했다. 연기적인 면에서 국내 최고의 내공을 가진 그에게도 버거운 미션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가장 괴로웠다
결과는 ‘A+’


“다른 연기를 할 때보다 10배 이상은 노력한 것 같아요. 한 페이지 대사 분량을 똑같이 외워도 10배 이상 시간이 들어요. 잠깐 딴짓하고 나면 까먹고 그래요. 잠꼬대하듯이 외웠어요. 옆구리 찌르면 딱 나올 정도로요. 아무리 대사를 외워도 내용을 모르면 정확히 표현이 안 돼서 법률 사전이나 판례를 찾아보고 했어요. 그래야 진정성 있는 연기가 나오니까. 그래서 힘들었고 괴로웠어요.”

이제껏 출현 작품들 중에 가장 괴로웠다고 토로했지만, 그 결과물은 최상급이다. 정통 드라마에 목말라했던 시청자들은 <로스쿨>을 보면서 갈증을 해소했다. 특히 유튜브에 올라온 <로스쿨> 제작과정 영상 속 4분30초가량 진행된 강솔A(류혜영 분)와의 대사 장면을 보면 김명민의 재능이 얼마나 위대한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매우 어려운 대사와 다양한 제스처, 표정, 동선 등을 단 한 번에 진행한다. 연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장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처리한다. 김 PD의 ‘컷 오케이’가 끝남과 동시에 후배 배우들은 존경심을 가득 담은 채 손뼉을 친다.

완벽함을 도모한 그의 노력이 유의미하게 작동한 장면이다. 비단 이 장면뿐이 아닐 테다.

“될 때까지 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장면을 보면 저 역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사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시청자들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었어요. 양종훈이 출연진에게 얘기하기 전에 시청자들을 납득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 또한 양종훈을 통해 법정물이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노력했죠. 그래야 했던 것이 제 몫이었어요. 집사람 앞에서 연기했어요. 그리고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라고 되묻기도 했죠. 반복적으로 연습했습니다.”

<로스쿨>은 비록 <하얀거탑>이나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신드롬을 낳지는 못했지만, 체감 시청률이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청률은 약 7%, 넷플릭스에서는 국내 인기 콘텐츠 상위 10위 안에 속한 작품이다. 난도 높은 미션을 가진 장르물로서는 호성적이다.


“강마에와 비슷, 기시감 극복하려 했지만…”
“평생 양종훈의 가치 떠올리며 살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친구가 “너희 아빠 멋있다”며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은 첫 작품이기도 하다. 서민적인 연기보다 연극적인 연기에서 더욱 탁월한 힘을 발휘해온 김명민의 능력이 다시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김명민에게는 이것조차도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제가 클리셰를 안 좋아하는데, 대본부터 너무 비슷한 거예요. 특히 강마에랑 많이 비슷했죠. 일부로 그렇게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과거의 김명민을 보고 싶어 한다고요. 김명민을 접하지 못한 요즘 세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다고 똑같이 할 수는 없잖아요. 기시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말투나 어미를 쓰인 대본대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슷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각에서는 양종훈을 ‘김명민 연기’의 한 예로 치부한다. 상대적으로 힘을 뺀 캐릭터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에서 오는 냉혹한 평가이거나, 워낙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김명민에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길 바라는 기대심일 수도 있다.

“캐릭터 고민은 항상 있는 거죠. 장준혁, 강마에, 양종훈. 기시감을 극복해야 하는 건 배우에 있어서 항상 숙제예요. 그런데 <로스쿨> 같은 작품처럼, 시청자들이 원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 5년에 한 번씩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어요. 그렇다고 자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잘하는 것만 하면 지겨울 테니까요.”

원칙과 소신으로 매사 정의에 대해 질문하며, 부조리를 일삼는 강한 세력과 다퉈온 양종훈은 그를 연기한 김명민에게도 새로운 에너지가 됐다. 선배 배우로서,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성숙함을 양종훈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양종훈을 계속 떠올릴 것 같아요. 제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지향점이 양종훈의 삶과 일맥상통해요. 양종훈을 통해 해갈한 부분도 있어요. 소신 있게 작품에 임하며, 배우로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 이번에 연기를 하면서 정립이 된 것 같아요.”

<로스쿨>이 끝나고 시청자들에게서 나온 반응은 시즌2 제작이었다. 이런 반응은 무겁고 난해한 주제와 대화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통했다는 의미다. 김명민 역시 시즌2 제작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원칙과 소신
새로운 에너지

“진정성과 정통성이 있는 드라마에 많은 분이 공감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시즌2에 대한 반응이 나오는 듯 합니다. <로스쿨>은 쉽게 나올 수 없는 장르물이라고 봐요.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없는 작품이니, 기획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피되는 드라마겠죠. 그래서 더 반가웠던 것 아닌가 싶어요. 제작진을 만나면 시즌2를 꼭 추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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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