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아름다운 건축물 ④완주 아원고택과 오성한옥마을

종남산과 어우러진 고택

여름이나 가을, 겨울도 좋지만 봄이면 생각나고 찾고 싶은 공간이 있다. 완주 소양면에 자리한 아원고택도 그런 곳이다. 대청에 앉아 있으면 종남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어준다. 소맷자락으로 슬그머니 봄바람이 불어오고, 처마 아래로 스며든 봄볕이 무릎을 따뜻하게 데운다.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액자에 담긴 수묵화 같다.

아원고택은 방탄소년단이 ‘2019 서머패키지 인 코리아’ 영상과 화보를 찍으면서 알려졌다. 2016년 11월 문을 연 아원(我園)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 원래 아원고택이 있던 자리는 산비탈과 논밭이었다.

건축가 전해갑 대표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고택과 전북 정읍의 150년 된 고택을 이곳으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기본 뼈대는 그대로 살리고, 서까래와 기와만 교체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정원

아원고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원갤러리&뮤지엄으로 입장해야 한다. 성곽처럼 보이는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로 한옥의 날렵한 처마를 절묘하게 올렸다. 이곳은 한옥과 달리 현대적인 공간이다. 한옥 아래 자리한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내부는 갤러리 공간인데, 1년에 2~3회 현대미술 초대전을 연다. 가운데 놓인 커다란 탁자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천장이 개폐식이라, 고개를 들면 푸른 봄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실내에서 2층 바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단아한 한옥 세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만사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이라는 만휴당, 안채, 사랑채, 별채로 구성된다. 안채와 사랑채는 진주와 정읍의 고택을 이축했다. 아원고택이 지금 모습으로 완성되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아원고택은 건축의 중심에 종남산을 놓았다. 어디서나 종남산의 그윽한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한옥은 주로 남향이지만, 아원고택은 종남산을 바라본다. 만휴당과 종남산 사이 갤러리&뮤지엄 지붕에는 빗물로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은 종남산을 불러들인다.

아침과 해가 뉘엿할 무렵에 종남산 그림자가 고스란히 비친다. 한옥과 풍경은 이처럼 별개이면서 하나로 어울린다. 풍경은 고택의 창으로도 들어왔다. 모든 창이 주변 풍경을 담는 액자다. 풍경을 차용한다는 한옥의 건축 철학을 철저히 구현하고 있다.

별채(천목다실)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한옥처럼 아늑하고 포근하다. 천장을 2.5m로 낮춰 현대식 건물을 한옥 처마 밑으로 감췄다. 한옥과 현대식 건물의 조화를 시도한 것이다. 다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장독대와 감나무 등이 눈에 들어와 한옥에 있는 듯하다.

한옥 앞에 대숲이 있다. 아원고택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숲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숲이 청명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대숲 사이로 소담한 산책로가 있다. 걸어서 5분이 채 되지 않는 길이지만, 봄 분위기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길 끝에 서면 시야가 환히 열리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고택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부드러운 능선의 자연과 함께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

아원고택 입장료는 1만원이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갤러리와 고택을 관람할 수 있다. 나머지 시간에는 숙박객이 머무르기 때문에 출입이 제한된다. 초등학생 미만은 입장할 수 없다는 점도 알아두자. 아원고택 주위에 한옥 22채가 모여 오성한옥마을을 이룬다.


기와지붕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분위기 좋은 카페와 자그마한 책방도 만난다. 마을이 들어선 터는 1200여년 절터를 찾아 떠돌던 도의선사가 멈춰 선 곳이라고 한다. 종남산(終南山)이라는 이름은 ‘남쪽으로 더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성한옥마을이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종남산과 서방산, 위봉산, 원등산이 에워싸기 때문일 것이다.

오성한옥마을에 들어서기 전, 오른쪽으로 붉은 굴뚝 하나가 보인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굴뚝이 있는 곳은 산속등대라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2004년부터 방치된 제지 공장을 재단장해 2019년에 문을 열었다. 요즘 완주에서 한창 주목받는 산속등대는 면적 2만5000㎡(7600평)에 달한다.

옛 건물의 골조와 벽을 곳곳에 그대로 두고 현대적인 건물을 더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버려진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영국의 테이트모던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미술관으로 운영되는 ‘아트플랫폼’이 있다. 전시가 끊이지 않고 열린다. 아트플랫폼을 지나면 넓은 마당에 높이 33m 굴뚝이 당당하다. 공장 굴뚝이 등대로 재탄생해, 밤바다 불빛을 비춘다. 이곳이 왜 산속등대인지 이해가 된다.

등대 옆에 자리한 몸길이 7m 흰수염고래 조형물도 볼거리다.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슨슨카페’, 아이들 체험 공간 ‘어뮤즈월드’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가족 봄나들이 장소로 좋다.

산속등대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라면,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은 아빠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술에 관한 자료와 유물 5만여 점이 빼곡하다. 누룩 분쇄기를 비롯해 옛날에 술을 빚던 각종 도구, 세계의 유명 술 등이 전시된다. 1970년대 대폿집과 옛날 호프집을 재현한 공간도 재미있다.

완주에는 건축학적으로 의미 있는 성당 두 곳이 있다. 1895년에 세운 되재성당은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한 성당이자, 첫 한옥 성당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지만, 완주군이 2009년 원형대로 복원하고 축성식을 열었다. 정면 9칸에 측면 5칸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는 중앙 기둥을 연결하는 낮은 벽으로 남녀 좌석을 구분하고 바닥은 마루로 꾸몄다.

산속등대

천호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전후로 신도들이 천호산 자락에 모여 살던 교우촌이다. 천호성지 부활성당은 노출 콘크리트로 지었으며, 2008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성당 외부와 내부는 다각형 구조다. 안으로 들어서면 좌우 벽면에 난 비대칭 창문에서 햇살이 쏟아진다. 천호성지에는 1866년과 1868년 순교한 이들의 무덤이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아원고택→오성한옥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아원고택→오성한옥마을 
둘째 날: 산속등대→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되재성당→천호성지 부활성당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완주군 문화관광 www.wanju.go.kr/tour
- 아원 www.awon.kr
- 산속등대 www.sansoklighthouse.co.kr
-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sulmuseum.kr 

문의 전화
- 완주군청 문화관광과 063)290-2621
- 아원 063)241-8195
- 산속등대 063)245-2456
-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063)290-3847 

대중교통
[버스] 서울-삼례,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15회(06:15~20:05) 운행, 2시간10분~3시간10분 소요. 삼례공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381번 일반버스 이용, 모래내 정류장에서 806번 일반버스 환승, 오성풍류학교 정류장 하차, 아원고택까지 도보 약 12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삼례공용버스터미널 063)291-1450
[기차] 용산역-삼례역, 무궁화호 하루 8회(05:46~22:45)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삼례역에서 삼례우성아파트 정류장까지 도보 이동, 337번 일반버스 이용, 모래내 정류장에서 806번 일반버스 환승, 오성풍류학교 정류장 하차, 아원고택까지 도보 약 12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새만금포항고속도로→소양·전주 방면→국도26호선 진안 방면→전진로 소양 방면→소양로 송광사 방면→원암로 전라북도교통문화연수원 방면→송광수만로→아원고택

숙박 정보
- 대승한지마을(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소양면 복은길, 063) 242-1001 
- 행복드림한옥(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용진읍 봉서안길, 010-3677-5339 
- 모악산모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구이면 모악산길, 063-222-2024 
- 녹운재(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소양면 송광수만로, 010-3150-0151 
- 호연재: 소양면 송광수만로, 010-2343-9825 
- 이둔호텔: 이서면 오공로, 063)237-4563


식당 정보
- 행복정거장 모악산점(한식 뷔페): 구이면 모악산길, 1600-0125 
- 대승가든(닭볶음탕): 소양면 대승길, 063)243-8798 
- 원조화심두부(순두부): 소양면 전진로, 063)243-8952

주변 볼거리
삼례문화예술촌, 완주 위봉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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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