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팬들과 하나 된 안일권의 세계

“내 능력 놓치지 마라, 방송국 놈들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예능인 안일권을 두고 흔히들 ‘개웃개’라고 한다.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이 본뜻이다. 누구나 좋아할만한 대중적인 유머가 아닌, 개그 영역에서 감이 뛰어난 선수들이 인정하는 선수인 셈이다. 2018년 개인 유튜브 채널 ‘일권아 놀자’를 개설한 이후 ‘안일건달’ 캐릭터로 확 떴다. 이후 유튜브와 방송 예능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 MC의 영역까지 넘보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안일권을 만났다. 
 

▲ 최근 부캐릭터 안일건달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개그맨 안일권 ⓒ박성원 기자

MBC <라디오스타>의 MC였던 윤종신은 가장 기억나는 게스트 중 한 명으로 안일권을 꼽았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이미 연기력만큼은 확실하게 인정받은 안일권. 이야기를 푸는 재주도 뛰어나며, 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애드리브 유머를 구사하는 데도 탁월한 점이 수많은 게스트를 초대해본 윤종신에게도 특별하게 보였던 것 아닐까.

이야기를 
푸는 재주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쉽게 되지 않는 허언성 애드리브를 남발하는데, 연기력이 뛰어나 거짓이 느껴짐에도 속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아울러 소나 고양이, 말처럼 남들은 따라 하지 않는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당일 방송 중에서 화제를 모았던 건 배우 마동석과 싸웠다는 일화다. 가볍게 허리를 두 대 때리고 승부가 마무리됐다는 이 이야기는 누가 봐도 조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유튜브 채널에 모인 댓글러들은 자신이 목격자라며 목격담을 내놓는다.

샌프란시스코, LA, 호주 등 에피소드도 각양각색이다. 안일권이 방송에서 한 이야기는 목격자들을 통해 실화로 번진다. 안일권의 유튜브 채널 ‘일권아 놀자’에만 있는 특색이다.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이라 그런지, 그의 팬들도 개그맨 수준의 센스를 자랑한다. 허를 찌르는 댓글이 ‘일권아 놀자’에 무수히 달린다. 줄리엔 강과의 스파링 영상에서는 안일권이 진짜로 맞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댓글란에는 ‘줄리엔 강 주먹을 배랑 얼굴로 다 막았다’, ‘저러다 줄리엔 강 주먹 크게 다치겠는데?’ 등의 글이 달린다. 

안일권의 정강이를 강하게 찬 유튜버 소녀주먹은 ‘안일권의 정강이를 차고 깁스를 했습니다’라는 글을 달며, 안일권의 위상을 높이 세운다. 그러면 댓글러들은 ‘여자한텐 한없이 약한 생물’ ‘자라나는 새싹의 꿈에 희망을 주는 안일권’ 등의 글로 마음을 모은다. 

‘일권아 놀자’의 세계에서는 안일권이 신이고 교주다. 안일권이 한 말은 모든 게 사실이 된다. 김창열이나 김종국에게 끌려가는 영상에는 ‘일권이 형님 또 약한 척 한다’는 글들이 달리며, 그의 배려심이 부각된다. 팬들의 센스가 이 세계를 채운다. 

유튜브 ‘일권아 놀자’ 제2의 전성기
연기부터 애드리브, MC 능력도 탁월

이른바 ‘복 받은 개그맨’으로,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안일권을 직접 만났다. 전설의 협객이자, 국내 최고의 싸움꾼이지만 절대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가 인터뷰 내내 전달됐다. 팬들로부터 우상화되고 있는 그의 마음 속에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구독자분들에게 정말 죄송한 게, 구독자분들이 저를 키워주셔서 예능 프로그램 고정도 하게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예전만큼 영상을 못 올리고 있어요. MBC <복면가왕>을 하고 있고, 그 외에도 일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영상 올릴 시간이 부족해요. 최근에는 JTBC 유튜브 채널 ‘룰루랄라’에 (김)준호 형이 추천해주셔서 들어가게 됐어요. 준호 형이 만날 때마다 저 웃기다고 해주셨거든요. 부족한 거 아는데도 그렇게 매번 칭찬해주셔서 감사하죠.”

한동안 ‘안일건달’로 인기를 끈 이후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는 게 사실이다. ‘남자의 착각’ ‘조작 몰카 방송’ 등을 소재로 본질을 꿰뚫는 강의를 하는 콘텐츠나, 무도인인 안일권이 직접 창시한 ‘안일권도’, ‘사기꾼과의 대화’ 등 여러 콘텐츠가 올라왔으나, 초반부 화제를 모은 안일건달 시리즈에 비해서는 화제성이 덜했다.
 

▲ 개그맨 안일권 ⓒ박성원 기자

그런 가운데 최근 후배 개그맨들을 섭외해 근황을 들어보는 ‘안일쇼’와 추억이 많은 동료 개그맨과의 애드리브로만으로 몰래카메라를 찍은 ‘아이콘택트’를 만들었다.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안일건달’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은 포맷으로 보인다.  

조윤호와의 연기 맞대결 뿐 아니라 미키광수와의 폭로전,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을 하며 성대모사를 하는 포맷의 채널을 유지 중인 KBS 공채 출신 조충현 등이 그의 방송에 나왔다. 대화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순간적인 애드리브가 큰 웃음을 터뜨린다. 게스트를 존중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아직 본 적 없는 MC의 자질이 드러난다. 

“조윤호 형하고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윤호 형도 유튜브를 시작했거든요. 그 형이 하는 채널에서 영상통화를 한 번 하자고 하길래, 도와줬어요. 그래서 저도 형에게 나와달라고 했어요. 전화를 그냥 끊었는데, 채널A <아이콘택트>가 딱 생각나더라고요. 시청자를 속여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MC
성공적

조윤호와의 영상은 몰래카메라 같기도 하면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다툼을 벌이는데, 자세히 봐야지만 가짜인 게 드러나는 영상이다. 워낙 사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연기력이 탁월해, 일반적인 유튜브 몰래카메라와는 결이 다르다. 

조충현과 후배 윤한민과 함께 한 ‘안일쇼’도 현실과 가상을 오간다. 마치 미국 토크쇼 같은 ‘안일쇼’에서 그는 후배들의 마음을 알아봐 줄 뿐 아니라 이들의 매력도 뽑아내는 재능을 드러낸다. 

“자유로운 토크쇼를 하고 싶었어요. 이 시기에 이런 걸 한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이 <개그콘서트> 욕은 하는데, 그리워하고 있더라고요. <개그콘서트>가 일요일의 마무리였던 그 시기가 그립나 봐요. 그래서 동료들이 나오는 방송에 반응이 뜨거워요.”

연기에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안일권은 제작 아이디어뿐 아니라 MC 분야까지도 섭렵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센스가 넘치는 애드리브로 분위기를 이끌 뿐 아니라, 이야기가 물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 매끄럽다.

“제가 한마디 좀 하겠습니다. ‘나의 진행 능력을 빨리 보지 않으면 인재를 놓치는 거다, 이 방송국 놈들아.’ 제가 연기 말고도 무기가 많아요. 저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저는 다 잘해요. 자신이 있어요. 특히 MC는 웃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면 안 돼요. 게스트를 띄워주면서 적절하게 자신의 개그를 넣는 사람들이 해야 해요. 대표적으로 신동엽 선배님이죠. 정말 매끄럽게 하잖아요. 게스트도 잘 챙기면서요. 반대인 경우도 있죠. 한 번은 제가 다른 방송에 나갔는데, MC가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걸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토크쇼를 만들어봤죠.”

최근의 토크쇼를 비롯해 한동안 재미를 본 ‘안일건달’도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김종국, 김창열, 강호동, 마이크 타이슨, 안젤리나 졸리 등이 등장하는 그의 과거 이야기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실재와 허구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안일권의 개인기와 노우진의 진행만으로 실감 나는 유머가 탄생한다. 

“애초 방송을 할 때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하자’고 콘셉트를 잡은 건 아니었어요. 찍다 보니까 그런 형태가 된 거예요. 노우진이 큰 몫을 했죠. 그 방송들은 사실 주제만 제가 던졌어요. ‘오늘은 창열이형이랑 싸운 얘기할게’라는 정도로 얘기를 해요. 나머지는 다 애드리브예요. 서로 얘기를 하면서 막 웃는단 말이에요.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하는데, 이게 다 예상 밖이니까 서로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3학년을 때렸다는 얘기도 그냥 만나서 놀다가 ‘하나만 찍고 갈까’하다가 만든 거예요.”

희안하게
보게 되네∼


애드리브로 시작한 이야기는 목격자들을 통해 완성된다. 안젤리나 졸리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안일권을 24시간 기다렸다는 썰이나, 고등학생 10여명과 싸워 이긴 전설적인 지역이 배차구 레피동 출신이라는 썰, 북한에 다녀온 HID 출신 썰 등에는 늘 목격자가 생겨난다. 배차구 레피동은 행정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음에도, 그 지역 출신들이 나온다. 

“저는 제 팬들이 동료이자 팀원이라고 생각해요. 제 개그를 알아주는 진짜 팬들인 거죠. 안일권도 카페도 있어요. 거기서도 소통을 많이 하죠. 그런데 가끔 보면 부정적인 분들도 있어요. 제 개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욕하는 분들이요. 그런 분들의 댓글은 지우기도 해요. 부정적인 댓글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안일권의 세계를 즐기는 분들로부터 댓글을 단 분이 욕을 먹기도 하거든요. 실생활에도 많이 있잖아요. 말귀 못 알아듣고 화만 내는 사람이요. 그런 경우면 차라리 댓글을 지우는 게 서로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 개그맨 안일권 ⓒ박성원 기자

가끔 이상한 팬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다른 방송인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대부분 안일권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웬만한 개그맨 이상의 감각으로 안일권을 찬양한다. 팬들로 인해 새로운 웃음이 창조된다. 이러한 시너지는 안일권의 전유물로 보인다. 

“제가 <개그콘서트> 시절에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어요. 그때는 <개그콘서트> 게시판을 봤는데 ‘안일권은 아스트랄한 연기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글을 보고 정말 기뻤어요. 과대평가일 수도 있는데, 제 의도를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더라고요. 저를 알아주는 게 얼마나 좋아요. 개그는 설명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거거든요. 연기도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절제된 모습에서 포인트를 딱 짚어주는 거죠.”

“배우분들 오열한다고 다 감동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제 개그의 대부분이 풍자인데, 제 팬들은 제 개그를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조회 수가 안 나와도 저만의 개그 방식을 유지하려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사실 제 개그가 인기가 있었던 건 제 이야기를 정말 잘 받아준 우진이가 있어서예요. 우진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는 영상은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꾸준한 성장세에 있던 ‘일권아 놀자’가 다소간 흔들린 배경은 동료였던 노우진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방송에서 하차한 데 있다. 최고의 파트너를 잃은 안일권은 혼자서 여러 가지 방송을 해봤지만, 노우진과의 ‘티키타카 대화’만큼 재미를 주진 못한다. 


“센스만점 팬들은 동료이자 최고의 파트너”
“아스트랄한 개그 방식, 변치 않고 가겠다”

그런 중에 지난 6일 안일권은 노우진을 불러 사과방송을 진행했다. 음주운전 방송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 것. 사실 안일권에게도 위험성이 큰 방송이었다. 

“다행히도 제 진심을 알아봐 준 팬들이 많이 있었어요. 제가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그 영상을 올렸다는 점에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멋있어 보이려고 그 영상을 올린 건 아닙니다. 우진이를 용서해달라고 올린 것도 아니에요. 복귀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얘가 자기가 잘못한 점에 있어서 사과를 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어서예요. 이미 없어진 본인 채널에서 하기도 뭐하고요. 그래서 우진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던 제 채널에서 올린 거죠. 사실 걱정이 많아서 바로 올리진 못했어요.”

음주운전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냉혹하다. ‘잠재적 살인’으로 바라보면서, 다시는 방송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강한 비난을 남긴다. 방송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후 방송에 나오더라도 음주운전에 대한 꼬리표가 붙는다. 
 

▲ 안일권 유튜브 ⓒ유튜브

안일권의 호감 있는 이미지 덕분일까. 노우진을 향한 댓글의 수위는 비교적 완만하다. ‘다시는 그런 행동하지 말라’는 쓴소리가 대부분이다. 모욕적인 댓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긴 해요. 근데 우진이를 보니까 또 웃기고 싶어져서 혼났어요. 그래서 ‘범죄자 같이 생겼다’고 한 거예요. 아직 우진이랑 방송할 생각은 없어요. 그저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서 한 거예요. 시간이 더 지난 뒤에 대중의 분이 풀리시면 다시 할 수도 있겠죠. 그때가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개그맨이 돼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다. 감이 떨어질 법한 40대임에도,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색감의 개그를 구사한다. 연기력을 인정받아 드라마와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꽤 안정적인 구독자 수를 만들었다. 미래의 안일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순리대로
즐기면서

“예전에는 야망이 컸어요. 질투도 많았고요. 주변 사람 중에 누가 잘되면 ‘나는 왜 최고가 되지 못할까’라고 생각했어요. 부족한 무언가가 있어서겠죠. 예전에는 좌절도 했는데, 이제는 그저 감사하게 생각해요. 욕심부리지 않고, 제가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복싱에서도 힘을 빼야 오랫동안 싸우거든요. 잘되든 안 되든 여유가 있게 순리대로 가려고 합니다. 연기하고 싶으면, 희극배우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다른 걸 할 수도 있겠죠. 최선을 다하면서 즐겨볼 생각입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