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US 오픈서만 작아진 전설

눈앞에서 놓친 메이저 타이틀

미국의 전설적인 골프 영웅이면서도 정작 US 오픈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 1895년 이래 1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US 오픈은 미국인들에게 자랑스런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영웅에게도 뼈아픈 상처는 있는 법이다.
 

미국이 낳은 전설적인 골퍼 중 한 명인 샘 스니드는 US 오픈이 외면한 불운의 선수다. 미국프로골프(PGA) 통산 82승으로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려 37번의 US 오픈에 출전해 우승 기회도 4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유독 여기서만

1939년 필라델피아의 스프링 밀 골프장. 마지막 날의 파5 18번 홀. 넬슨 등 2위로 따라 오고있는 선수들이 3명, 스니드는 한 타 차로 이기고 있어 파 세이브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에 마지막 홀에서 그는 계산 착오를 일으켰다.

17번 홀까지 동점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해야만 이기는 줄 알고 있었던 것. 결국 18번 홀의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려고 무리한 스윙을 하다가 벙커에 볼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이미 평정을 잃고 있었다. 벙커에서 무려 5타 만에 그린에 올라온 것도 모자라 3퍼팅까지 하고 말았다. 파5에서 무려 8타, 트리플 보기를 범해 5위에 그치고 만 샘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훗날 그는 “10kg은 줄었고, 머리는 다 빠졌다. 잊으려 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통곡했다.

8년이 지난 1947년 우승 기회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골프장에서 스니드는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6m나 되는 롱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루이스 워샴과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마지막 홀까지 워샴에게 한 타를 뒤지면서 8년 전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확한 계산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끝에 회심의 버디를 했고, 동타를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한 것.

다음 날 연장전에서도 스니드는 마지막 3개 홀을 남겨놓고 2타를 리드, 그토록 바라던 US 오픈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불행은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16, 17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해 내리 2타를 까먹으면서 다시 동타가 돼버렸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1미터도 안 되는 퍼팅만 남겨놓게 됐다.

스니드 4번에 걸친 준우승
통산 82승 무색케 한 불운 

스니드가 먼저 퍼팅 자세를 잡았다. 두 선수 모두 스니드의 볼이 몇 센티미터 뒤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니드가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켜보는 갤러리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옆으로 서서 하는 퍼팅이 아닌 스니드 특유의 퍼팅 자세대로, 그는 퍼터를 뒤로 뺐다. 

순간 워샴이 “잠깐!”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는 두 사람의 볼이 홀컵에서 거리가 비슷하니 자로 재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워샴은 왜 소리를 질렀을까. 스니드가 퍼팅을 하려는 순간, 그가 버디를 성공시킬 것 같은 예감이 루이스의 머리를 스쳤을까. 그래서 그는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그렇게 잠시 경기를 멈춘 채 볼의 거리를 재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결과 스니드의 볼이 몇 센티미터 더 길게 나왔다. 당연히 처음대로 스니드가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니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스니드의 퍼팅이 들어갈 리 없었다. 그의 볼은 홀컵을 스치면서 비켜나버렸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크게 땅을 치고 통곡을 해야 할 회한의 70㎝ 퍼팅이었다. 반면 기묘하면서도 저질적일 수도 있는 꾀를 짜낸 워샴은 그대로 버디퍼트를 성공시켰고, 스니드는 다시 한 번 분투를 삼켜야 했다.

3번째 기회는 2년 뒤인 1949년의 시카고 메다이나에서 열린 대회였다. 스니드는 이 경기에서도 한 타 차로 캐리 미들코프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마지막 4번째는 1953년 피츠버그의 오크몬드 골프장이었다. 이번 대회는 스니드의 라이벌이었던 벤 호건을 위한 시합이었다. 호건은 거의 죽을 수도 있었던 자동차 사고에서 회복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눈부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로페즈, 48승 거뒀지만…
끝내 추가하지 못한 여정
 

이 대회에서 스니드는 첫 날부터 단 하루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던 호건을 3일째 경기부터 한 타 차로 따라붙으며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건을 상대하기에 그는 너무도 벅찼다. 마지막 날 스니드는 호건과 무려 6타나 차이가 나는 2위를 기록 했고, US 오픈을 향한 스니드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여성 골퍼로서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도 US여자 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던 프로도 있었다. 낸시 로페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였다. 20세의 나이인 1977년 프로 데뷔 후 78년 9차례 우승으로 올해의 신인왕, 올해의 선수상, 베어 트로피, AP사 올해의 여자선수 등 LPGA를 뒤흔든다.

불행히도 20여년간 메이저대회 3승과 LPGA 48승으로 전설의 반열에 오른 로페즈는 US 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다. 무려 4차례나 US 오픈 정상에 오를 기회가 있었음에도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997년 7월12일 펌킨 릿지 골프장. 불혹의 나이를 맞은 로페즈는 그의 생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US 오픈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3일 내내 60대의 스코어로 신기록마저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4일째 경기에서 앨리슨 니컬라스라는 선수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4타 차로 따돌리고 도망가는 니컬라스를 쫓기 위해 로페즈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로페즈가 13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반면, 니컬라스는 14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4타 차가 졸지에 1타 차로 줄어들어 로페즈에게 역전의 기회가 왔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트로피의 잔상이 지나갔다. US 오픈이 혹시 그의 품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 18번 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두 선수는 기싸움을 하며 모두 안전하게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렸다. 니컬라스의 볼은 낸시의 볼보다 조금 더 뒤에 떨어졌다.

먼저 퍼팅을 한 니컬라스의 볼이 홀컵에 못 미치며, 60㎝ 앞에 멈춰섰다. 로페즈의 차례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는 볼 앞에 섰다. 버디를 해야 동점으로 연장전에 갈 수 있다.

운명의 볼이 그린을 타고 홀컵을 향해 굴렀다. US 오픈 무관의 한을 풀게 될 것인가. 볼이 라이를 따라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로페즈는 환호의 제스처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매정한 볼은 홀컵의 가장자리를 돌며 비껴가고 말았다. 로페즈는 눈을 감았다.

4일 내내 60대 타수의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울분을 삼킨 로페즈는 “너무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이 대회에서 나는 이길 줄 알았다. US 오픈의 여신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못 이룬 꿈

로페즈는 잠시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낸시가 8살이 되던 해, 아버지 도밍고는 딸에게 골프채를 잡도록 한 정신적 지주였다. 아버지는 어느 날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낸시, 너는 아마도 US 오픈에서 이기지 못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응답했다. “아빠. 나는 언젠가는 US 오픈을 차지할 수 있을걸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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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