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벤 호건 스윙의 비밀

골프 역사상 가장 완벽한 교본

벤 호건은 현대 골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전설적인 골퍼다. 60~7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스윙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스윙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많은 21세기 선수들이 그의 스윙을 따라한다.
 

호건은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였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인내심의 극치를 몸으로 보여준 동경의 대상이었다. 호건의 교습서인 ‘5가지 레슨’은 골프 서적의 바이블이지만, 그의 스윙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벤 호건의 비밀을 분석하고 파헤치려 노력했지만, 그는 비법이 공개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연습벌레

호건의 라이벌인 샘 스니드는 그의 스윙을 유심히 보면서 임팩트(클럽 면이 공에 맞는 순간) 후 오른손을 덮는 플립 동작이 아주 늦다는 것을 밝혔다. 일반적으로는 임팩트 직후 오른손이 왼손을 빨리 덮으면서 폴로 스윙이 되는 반면, 호건의 오른손은 임팩트 지점을 통과했는데도 오른손 바닥이 타깃 방향으로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이트로 임팩트를 통과한 뒤에는 이른바 릴리즈가 되면서 볼을 뿌릴 수 있게 된다. 임팩트 시 오른 손등이 닫히지 않은 채 타깃 방향으로 오래 유지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호건이 다운스윙을 시작할 때, 오른쪽 끝에 존재하는 그립, 양손과 양 팔꿈치 등이 수직으로 지면을 향해 떨어지게 된다. 다운스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양손과 그립을 오른발보다 더 오른쪽 바닥을 향해 떨어뜨리는 것이다.


목표의 반대쪽으로 클럽이 떨어지게 되면 몸은 본능적으로 임팩트에서도 같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반응하기 때문에 임팩트에서 수직으로 정확하게 클럽 페이스가 들어오면서 볼은 스퀘어로 맞게 된다.

왼손잡이였던 호건이 오른손 골퍼로 활동하면서 오른손잡이가 느끼지 못하는 양손의 균형에 대해 잘 인지했을 것이다. 그는 손으로 골프채를 휘두르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손이 없는 것처럼 몸으로 움직이면서 상체의 힘을 뺀 채, 손이 아닌 몸으로 먼저 스윙을 하라고 했다.

재능을 뛰어넘은 ‘잡초근성’ 
근성으로 완성한 골프 매커니즘

그러면서 올바른 그립으로 손과 클럽이 하나가 된 듯한 스윙을 역설했다. 최근에는 유고 출신의 한 테니스 코치가 ‘슬로모션 연습법’으로 불린 호건의 비밀을 풀었다고 밝혔다.

골프를 빨리 배우고 싶으면 오히려 천천히 연습하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스윙 패턴을 보면서 익히라는 것이다. 실제로 호건은 거울판 이론도 기술했는데, 이는 흡사 조선시대 죄수들이 목에 찬 칼의 바닥 부분을 볼 위치에 대고 일어서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가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비스듬히 서 있는 칼의 기울기가 자신이 지나가게 될 임팩트존이라는 것이다.

군 복무 시절, 스윙을 잃어버릴까 봐 보초를 서는 밤이면 달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스윙을 한 호건이었다. 제대 후 그의 스윙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양발을 밖으로 열어 스탠스를 어깨 넓이 이상으로 벌린 채 무게 중심을 발뒤꿈치에 주었지만, 스탠스를 좁게 서고 왼쪽 발은 스퀘어로 놓고 무게중심이 발바닥에 놓이게 교정했다.

또 백스윙의 시작에서 손목이 클럽보다 먼저 테이크어웨이 하던 것을 어드레스부터 손목이 클럽 헤드보다 타깃 쪽으로 놓이게 교정했다. 예전 어드레스에서는 뒷부분 척추선이 타깃 반대쪽으로 치우쳤으나, 이를 수평으로 만들면서 백스윙 시 상체와 어깨 회전을 종전보다 적은 각도로 유지하게 했다. 이는 어깨와 엉덩이 회전이 같은 비율로 꼬이게 하는 것을 지양하고 상대적으로 엉덩이의 회전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백스윙의 탑에서 클럽과 손의 위치가 머리 위에 머물렀던 스윙을 어깨 뒤로 보내는 야구스윙처럼 평평한 스윙으로 바꿨다. 다운스윙 시 무릎 이동을 과도하게 하는 것을 줄이고, 오른 무릎을 사용하되, 구부린 무릎의 각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교정했다.
 

좌절 이긴 인간승리의 표본
9년 만에 첫 승 ‘대기만성’ 

이렇게 하면 오른 무릎을 왼쪽으로 밀어주면서 왼쪽 엉덩이가 뒤로 이동함과 동시에 자연스레 왼쪽 앞에 공간이 생겨 스피드가 증가한다. 오른 무릎이 이동 속도를 조절해서 정교하면서 파워 있는 스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완벽한 스윙의 골퍼라는 칭호를 얻은 벤 호건도 데뷔 이후 9년간 우승한 적이 없던 불운한 선수였다. 데뷔 9년 차가 돼서야 겨우 첫 승을 올렸으나 공교롭게도 2차 세계대전의 징집 명령마저 받았다. 제대 후 빛을 보며 4년여 동안 정상의 길을 달리던 그는 이번에는 최악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1949년 대회를 마치고 자동차로 부인과 텍사스 집으로 향하던 중 새벽의 안개 낀 도로에서 마주오던 트럭과 정면 충돌을 한 것이었다. 재기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한쪽 다리를 잃을 수도 있는 중상으로 그의 골프 인생은 끝나는가 싶었다. 이를 악물고 재활을 시작한 지 6개월째. 그는 기적처럼 일어났고, 이번에는 발목에서 엉덩이까지 압박 붕대를 칭칭 감고 시합에 참가하는 근성까지 발휘했다.

1950년 메리언에서 열린 US 오픈. 호건은 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부상 투혼을 발휘해 선두와 동점을 만들어내면서 연장 3파전을 벌였다. 결국 그는 승리를 했고, 이날의 우승은 20세기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기적의 연장전으로 회자됐다.

노력의 화신

그의 저력은 계속됐다. 1953년 마스터스에 이어 US 오픈, 영국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도 우승하며, 한 해에 3개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는 미국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뉴욕시민들은 1930년의 바비 존스 이래 23년 만에 카퍼레이드를 벌여 호건의 귀국을 환영했다. 그의 목표는 골프 매커니즘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이었다.

스윙을 익히기 위해 연습벌레처럼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하며 해가 질 때까지 연습했다. 그런 열정으로 고질병이던 악성 훅을 아름다운 페이드로 바꿀 수 있었다.

보비 존스처럼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놀드 파머처럼 골프장 매니저인 아버지를 둔 것도 아니었다. 잭 니컬라우스처럼 대학에서 엘리트 골프를 배울 수도 없었으며, 타이거 우즈처럼 자질을 타고나거나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골프장에 핀 잡초 같았던 그는 순전히 노력으로 악성 훅을 고친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