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연쇄살인마 완벽 빙의한 배우 전종서

자유로운 해석과 연기, 단 두 편 만에 각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원석 그 자체에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배우였다.” 전 세계적인 거장 이창동 감독은 영화 <버닝>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전종서를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화보나 광고 혹은 웹드라마, 단편 영화 등 연예계에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이창동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기대 이상의 자유로운 연기를 펼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전종서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콜>을 통해서도 그 잠재력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 배우 전종서 ⓒ넷플릭스

배우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 중 하나는 종교 의식과 연관된다. 자연재해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신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하며 기원제를 지냈고, 이때 신을 묘사하고 찬양하는 등 기원제를 이끈 제사장이 배우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 같은 종교의식에서 연기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신내림
메소드

국내에서 ‘메소드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 김명민은 배우를 무당이라 일컬었던 바 있다. 배우란 일종의 접신을 통해 글자 속의 인물이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는 신내림까진 힘들더라도 그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쉼없이 인물을 생각하고 고뇌하며 연기를 펼친다고 했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한 영화 <콜>의 영숙을 연기한 전종서는 김명민의 고견을 몸소 실천한 듯하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영숙에 접신한 듯 독창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감정 소모가 큰 장면뿐만 아니라 잠시 느슨해져 주의를 놓칠만한 장면에서도 전종서는 영숙 그 자체였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특이한 인물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한 전종서와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종서는 인터뷰 중에도 남다른 느낌을 줬다. 대다수 배우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하는 게 일반적인데, 전종서는 모든 질문에 약 10초에서 20초 가량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을 때 나오는 대답은 내용이 충실했다.

인터뷰 중에도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전종서가 <콜>을 만난 건 <버닝>을 마치고 난 후 휴식 기간 중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콜> 시나리오를 받았고 단숨에 빠져 버렸다.

“이충현 감독님의 단편 영화 <몸값>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독창적인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감독님께도 직접 한 말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또 <콜>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어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나리오라 내용이 어려울 만도 한데 속도감 있게 읽혔어요. 단조롭지만 스피디하고 역동적이었어요.”

<콜>은 그녀가 만든 기괴한 빌런
전도연 이을 ‘연기 괴물’ 탄생 주목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미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포인트를 주려고 했던 부분이 이미 시나리오 내에 충분히 두드러져 있었고,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퍼즐 맞추듯이 읽어서 더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책에 반해 작품을 선택했고, 곧바로 영숙이 될 채비를 갖췄다. 

<콜> 대본을 받은 다음 날부터 촬영 전날까지 영숙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숙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신엄마(이엘 분)와 시골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신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폭력을 당하고,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 못한다. 몸은 통제돼 있고 감정은 억제됐다.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신엄마로부터 파생된 듯하다. 

영숙이 살던 시대는 1999년이고, 수상한 전화기로 전화를 걸면 2019년의 서연(박신혜 분)이 전화를 받는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두 사람은 통화 속에서 교감을 나누게 되고, 여러 위기를 거치며 친해지지만 작은 오해로 인해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기 시작한다. 마음만 먹으면 2019년을 바꿀 수 있는 1999년의 영숙은 거침없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 콜 스틸컷 ⓒ넷플릭스

패션부터 표정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영숙이 전종서를 통해 만들어졌다. 2020년 국내 영화 역사상 가장 기괴한 빌런의 탄생이다.

“제가 참고한 캐릭터나 영화는 없었어요. 주로 노래에 많이 기댔던 거 같아요. 빌리 아이리쉬 곡에 특히 많이 의지했어요. 또 출처 모를 사진이나 그림을 많이 봤어요. 피가 낭자한 사진이나 샤워기에서 핏줄기가 나오고, 피로 된 폭포가 흘러내리는 사진이라든지 아주 자극적인 사진을 많이 봤어요. 사람의 형태는 아니지만, 악마 같은 사진들. 독방에 갇혀 있는 여자아이, 노란색 우비에 빨간색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그런 걸 하도 많이 보니까 모든 게 영숙 같기도 했어요. 그 시점에 사진 보는 걸 멈췄던 것 같아요.”

대본을 받은 후, 최소 수개월 동안 이러한 기괴한 사진과 음악에 자신을 집어넣었다. 기괴한 것과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면서 영숙에게 빙의해나간 셈이다. 

그로테스크
빌런 탄생

“<버닝>도 마치고 칸에도 다녀오니 집에는 <콜> 대본밖에 없었어요. 거의 매일같이 이런 사진만 봤어요. 이런 식으로 영숙에게 몰두한 시간이 수개월은 되는 것 같아요.”

이 같은 노력 끝에 최고의 연기가 나왔다.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웃음소리, 반찬을 우걱우걱 씹는 근육과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 다소 불안한 걸음걸이, 평범하지 않은 대사의 리듬, 심지어 특정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하다. <버닝>에서 보여준 자유로운 해미와는 또 다른 톤의 새로운 캐릭터다. 

“저는 비교적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충분히 시뮬레이션하고 캐릭터의 이미지를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고 구체화시킨 상황에서 그 느낌만 들고 현장에 입수하는 형식으로 연기했어요. 영숙이는 이 방식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확 빠져들었다가 나오고, 훅 돌아버리는 극단적인 모습이 잘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저를 충분히 이해해주시고 저에게 딱 맞는 디렉팅을 해주셨어요. 그런 합의 안에서 능숙하게 진행이 된 것 같아요. 스태프들이 아니었으면, 영숙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영숙은 사람을 죽이는 데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 인간성이 거세된 인물이다. 정이 들었을 법한 사람도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 싶으면 거침없이 돌진하며, 영숙에게 악의가 없는 사람도 불편한 존재가 되면 흉기를 든다. 전종서는 그런 영숙의 면모를 약함에서 찾았다고 했다. 
 

▲ 배우 전종서

“얼핏 보면 영숙이 강하고 독하기만 한 1차원적인 캐릭터로 보이는데, 저는 강함보다는 약함에 더 중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인간적인 부분, 모성애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부분을 많이 파고들었어요.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영숙도 있지만, 사실은 살짝만 쳐도 깨져 부숴지는 얇은 유리 같은 이미지를 더 생각한 것 같아요.”

전종서는 현장에서도 치밀했다. <버닝> 작업 중에 이창동 감독으로부터 배운 것은 테이크가 끝나면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장면을 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모든 테이크를 모니터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시간이 많이 소모될 뿐 아니라, 배우에게도 귀찮은 작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종서는 모든 테이크를 직접 확인했다. 


육탄전
살인마

“연기하고 모니터링하는 습관이 <버닝> 때 생겼어요. 모든 테이크에서 모니터링을 했죠. 덕분에 자기 객관화가 잘 된 것 같아요. 과하거나 거슬리거나 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고쳐서 다음 테이크에 연기했어요.”

이뿐만 아니다. 눈물을 보이는 신이 많은 서연 역의 박신혜는 감정 소모가 많았던 반면, 영숙의 감정은 주로 분노였다. 작은 것에도 쉽게 치밀어 오르고, 때론 육체를 강하게 사용한다. 가녀린 몸으로 육탄전을 벌인다.

JTBC <아는 형님>에서 전종서는 <콜> 촬영 중 몸이 안 좋아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 마사지사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에게라도 말하라”라고 권유받기도 했고, 영숙 분장을 한 채로 식사하러 간 음식점의 사장님이 전종서에게 몰래 다가가 “경찰에 신고 해줄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숙의 분장은 처절했고, 실제 온몸에는 멍이 가득했다.
 
“1달 동안 몸 쓰는 신을 많이 찍었어요. 촬영장에서 연기하고 집에 돌아가면 온몸이 과열됐어요. 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열이 높았어요. 각성된 상태라 잠이 좀 안 오기도 했어요. 몸이 굉장히 불같이 뜨거워지고 그랬는데, 2주 정도 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전종서가 영숙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역할을 맡은 데 반해, 서연 역의 박신혜는 이 분노에 리액션을 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거의 모든 무기가 과거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서연은 손발을 묶인 채 당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서연의 역습이 몇 번 있긴 하나, 대체로 수비적이다. 전종서는 박신혜가 수비적인 역할을 정말 잘 맡아줬기 때문에 자신의 연기가 영화 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신혜 배우님은 제가 갖지 못한 걸 갖고 계신 분이에요.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내공이랄까요. 제가 포효하면 신혜 배우님은 좌절하는 포지션이었어요. 이게 핑퐁처럼 잘 이뤄져야 하는데 신혜 배우님이 정말 잘해주신 것 같아요. 서연은 사실 우는 신이 많아요. 많이 울어요. 저한테 그런 역할이 주어졌다면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을 것 같아요.”


“2주 동안 온몸이 과열…잠자기 힘들었다”
“언제나 창의적인 연기…도전 의식 강하다”

영화 <콜>은 2019년 1월에 촬영이 진행됐고, 지난 2월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이 연기됐다. 차일피일 연기되다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콜>이 타임슬립 판타지 작품인 데다가 사운드가 중요한 공포라는 점에서 넷플릭스 공개는 일정 부분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전종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실 진작 개봉이 돼야 했는데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딜레이가 많이 됐죠. 저 역시도 많이 기다린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김장김치를 가장 맛있을 때 꺼내놓는 것과 같다고도 생각해요. 관객분들이 주말에 집에서 맥주 한 캔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봤다거나 노트북으로 보셨다고 해요. 빔으로 쏘아서 보신 분들도 있다고 하고요. 영화관에서 개봉했다면 누릴 수 없었던 편안함이 있었다고 봐요. 시간이나 공간적인 제약없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다는 것만
에 기쁨을 느껴요.”
 

▲ ⓒ넷플릭스

<버닝>의 자유로운 해미에 이어 <콜>의 기괴스러운 살인마까지, 전종서는 영화 두 편 만에 자신의 재능을 완벽히 각인시켰다. 나오는 작품마다 창의적인 해석을 보일 뿐 아니라, 전종서라는 배우의 색감이 스크린을 통해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를 선택한 이유에 걸맞은 책임감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연기에서 느껴진다.

“계속 창의적이고 싶어요. 뭔가를 만들고 싶고 그게 연기여야 해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나보고 싶어요. 주어지는 캐릭터에 저를 넣어서 신선하고 파격적이면서, 잔잔하고 은은한 느낌도 주고 싶어요. 그런 다채로운 모습을 영화의 톤에 맞춰서 보여주고 싶어요. 조바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누구든 쉽게 하지 못했던 것을 거침없이 해보고 싶은 도전 의식이 있어요.”

현재 전종서는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아직 공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결정을 하기엔 아직 고민이 부족하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분명했다. 창의성과 신선함이다.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어요.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무엇을 선택하든 보시는 분들이 재밌을 뿐 아니라 신선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는 연기를 보여드릴 겁니다. ‘이런 게 있었나?’라고 느끼시게요. 처음 보는 것으로 다가가고 싶고요. 그런 선택을 하고 싶고 그 선택의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거장 이창동 
신예 이충현

이제 겨우 필모그래피 2편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전종서는 당찼다. 때론 당돌함도 엿보였다. 집중력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이창동 감독과 단편 영화계를 휩쓴 파격적인 아이디어의 이충현 감독이 그를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전종서가 가진 당당함의 배경은 매 순간 책임을 다해 노력하는 열정 덕분이 아닐까. 그 열정이 많은 작품을 거쳐 누적된다면, 한국 영화계는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연기 괴물’을 얻을지 모른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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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