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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30일 18시01분


<일요시사TV> ‘시작은 미비했으나…’ 반도체 신화 이끈 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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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

지난 25일 새벽 3시59분, 병상에 누워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이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회장직에 오른 이후 삼성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전시켰는데요.

그런데 삼성그룹이 작은 상회에서 시작했다는 걸 아시나요?

이번 시간에는 삼성의 시작과 고인의 지휘 아래 삼성이 어떻게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전했는지 살펴봤습니다.

고인의 부친이었던 고 이병철 회장은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창업합니다.

이후 운수업에도 진출하면서 사업의 규모가 커지자 2년 뒤인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후 번창하는데요.

그러던 중 1942년 1월9일 3남5녀 중 8번째 막내 아기가 태어나는데 바로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태어난 후 3세까지는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댁에서 성장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소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사이 이병철 회장의 삼성상회는 중국과 일본에 청과류와 어물 등을 수출하면서 번창했고, 경성(서울)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우면서 무역업까지 진행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으나 6·25전쟁이 발발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맙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부산으로 피난 온 이병철 회장은 그동안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본과 삼성상회의 남은 종잣돈을 모아 1951년 부산에서 다시 재기를 노리는데요.

이때 설립한 회사가 삼성물산으로 현재의 삼성그룹의 초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물산은 이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그룹의 외형을 갖추기 시작했는데요.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정부의 모직물 수입 금지 등의 수혜를 입으면서 국내 제1의 재벌기업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건희 회장은 서울사대부고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동창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에 따르면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애국이며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것에 대해 주로 말했다”며 “1950년대 고등학생이 생각하기에는 매우 독특한 사고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의 임직원 한 명을 해고했는데 당시 고등학생인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자 두 말하지 않고 그 임원을 복직 시켰다고 하는 일화도 유명한데요.

아마도 당시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사람 보는 안목을 높이 사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가 일본의 와세다대학 경영학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삼성에는 몇 번의 위기가 찾아오는데요.

이병철 회장은 정부와 공동사업으로 국내 최대규모의 비료 공장 설립을 준비했지만 1960년 4·19혁명으로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부정축재와 탈세 혐의로 연행되고 벌금 50억원을 내기도 했는데요.

10여년 곡절 끝에 비료공장이 완성됐지만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년 뒤 복귀하게 됩니다.

유학 후 돌아온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가 설립한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이사로 부임해 높은 성과를 냈고 1978년 삼성물산의 부회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삼성의 전설은 1982년 삼성반도체 통신을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반도체 개발에 있어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갱신하며 오늘날 글로벌 그룹으로 발전하기까지는 1987년 취임한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지는데요.

초기 삼성 휴대폰의 불량률이 10%에 달하자 이건희 회장은 전량회수해 직원들 앞에서 모두 불태우는 ‘충격요법’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생산물에서도 불량품이 나오자 그 유명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어록을 남기며 불량이 나오면 원인을 찾을 때까지 라인 스톱제를 도입하는 등 변화와 혁신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세계 정상을 목표로 삼았던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어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장은 다시 뛰었지만, 상태는 좋지 못했고 6년5개월 동안의 투병 끝에 지난 10월25일 사망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에는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거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 조세포탈 등의 논란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지금의 삼성이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하며 국가의 위상을 높인 데 있어서 이건희 회장의 공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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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 든' 문정부 부동산 정책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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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의도는 선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정책을 시행할 때 이런 경우를 많이 겪는다. 문재인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정부는 서민들의 집값 걱정을 해소하겠다는 의도로 부동산 정책을 다양하게 시행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오히려 집값이 역대 최고로 뛰었다. <일요시사>는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됐는지 짚어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을 반년 남겨놓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아픔을 달래주겠다며 등장한 문재인정부는 집권 후 국민의 바람을 하나둘 이루며 임기 내내 높은 국정 지지를 받았다. 높은 지지율은 반짝 사라지지 않았다. 끝까지… 아킬레스건 문정부는 5년 차 2분기 여론조사에서 39%의 국정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레임덕 없는 최초 정부’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과거 정부들이 같은 분기에 평균 10% 안팎의 지지율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그러나, 이렇게 인기 높은 문정부도 한 가지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는데 바로 ‘부동산 정책’이다. 문정부를 평가하는 정계 전문가들은 외교와 안보, 경제 분야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로 치열하게 다투지만,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만큼은 이구동성으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 대통령조차도 그간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지난 21일 문 대통령은 KBS <문재인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일상으로’>에 출연해 국민들로부터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질문 하나하나를 차분히 대답하던 문 대통령은 15번째 패널에게 청년 실업과 부동산 대책에 대한 질문을 받자 멋쩍게 웃으며 “드디어 어려운 문제로 들어갔다”고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송구스럽다는 사과를 했다”며 “조금 더 부동산 주택 공급에 더 많은 노력을 했어야 했다”고 국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앞서 2019년 <‘국민이 묻는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 해결에 자신 있다. 꼭 주택 가격을 잡겠다”고 호기롭게 말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직접 시인했다. 실제로 문재인정권 출범 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다만, 상승률 변동 폭은 조사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조사됐다.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의하면, 문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6월 이후, 올해 11월까지 서울의 아파트값은 약 16%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은 17년 6월 87.9%(21년 6월 100%기준)였던 아파트 가격이 21년 11월, 103.7%까지 올랐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서 완패 어디서부터 어디가 잘못인가 김진광 한국부동산원 통계부 팀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해당 자료는 표본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 수치고, 실거래가와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비교해 작성한다. 구체적인 가격은 밝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이하 경실련) 측의 자료를 보면, 변동 폭은 많이 달라진다. 경실련에 따르면, 2017년 30평형 아파트 평균값은 약 6억2000만원에서 올해 1월에 11억4000만원까지 올랐다. 약 78% 오른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기준(올해 11월)과는 달리 올해 초까지만 반영한 수치인데도 약 62%의 차이가 난다. 정택수 경실련 부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가격은 서울 주요 지역 표본 아파트들의 시세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가격은 평균치라고 보면 된다”며 “한국부동산원의 조사와 차이 나는 점은 우리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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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전 24패’ 모두 자책골 공급확대 방향 틀어 호평 그러던 집값이 소폭 하락한 시점은 2018년 9월21일과 12월19일 대책이 발표된 직후였다. 큰 폭은 아니지만 서울의 집값은 이때 처음 하락했다. 정부가 그전과 달리 구체적인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9·21 대책에서 정부는 5년간 수도권 지역에 “주택 3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12·19 대책에서는 15.5만호 추가 공급 계획과 광역 교통망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실수요자들이 반응했다. 장래에 공급될 주택에 안심하고 수요를 멈춘 것이다. 비록 발표 얼마 후 입맛에 정확히 맞는 지역과 시기, 규모가 아니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집값은 다시 상승곡선을 탔지만 문정부 ‘최초’의 공급 대책이라는 점은 의미가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해 8월4일, 더욱 정교한 주택 공급 방안이 나온다. 정부는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협업으로 26.2만호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했고, 공급 대상을 실수요자에 집중시켰다. 방법도 구체적이었다. 정부 부지(군부지, 이전 기관 부지)를 최대한 발굴하고, 도심 내 낙후된 지역에 재건축을 시행하겠다는 주장이다. 상암과 마곡, 천왕2가 개발될 정부부지 후보로 떠올랐다. 그후 6개월이 지난 올해 2월4일, 25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일명 ‘2·4 대책’이라 불리는 이 대책은 압도적인 물량 공급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정부는 ‘25년까지 서울에만 32만호, 전국에는 83만 호의 주택 부지를 추가공급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의 공급 대책의 배가 넘는 규모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요즘의 집값 안정세가 2·4 대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분석한다. 2·4 대책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정책이 어느정도 진행된 내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정리하자면, 문정부는 처음 내놓은 6·19 대책과 8·2 대책의 방향대로 지난 4년간 수요 억제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 애썼다. 25전째 1승 기대 하지만 갭투자나 풍선 효과 같은 부작용을 낳으며 집값이 치솟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에 공급 확대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다. 이제 6개월가량 남은 임기에서 나온 늦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다음 정부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만큼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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