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홍원찬 감독 “<다만악>은 배우의 영화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신세계>서 ‘부라더’로 유명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뭉친 것만으로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는 기대감을 줬다. 일각에선 기시감이 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베일을 벗은 <다만악>은 완전히 새로운 하드보일드 장르물의 형태를 갖췄다. 빠른 속도감에 전에 없던 액션 타격감, 새로운 캐릭터의 창출 등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게 <다만악>에 대한 평가다.
 

▲ ▲ 홍원찬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는 선 굵은 <다만악>을 진두지휘한 홍원찬 감독을 만나,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계관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엄청난 화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무너진 극장가를 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극장가를 구하소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실제로 주말에는 50만, 평일 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코로나 정국 이전의 티켓 파워를 보이고 있다. 굶주려 있던 극장가의 구원자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영화의 작품성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월등한 완성도를 보인다. 하드보일드 장르적 특성을 연출의 묘로 정확히 살린다. 빠른 속도감과 서스펜스, 타격감 좋은 액션,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력, 텁텁하면서도 개운한 마무리까지 영화가 가진 장점이 상당하다. 일부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나 불친절한 대목,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장점이 워낙 출중해 감싸주고 싶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메가폰을 잡은 홍원찬 감독을 최근 만났다. 하드보일드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연출 의도를 들어봤다. 

다음은 홍원찬 감독과의 일문일답. 


- 주위 반응은 어떤가. 호평의 늪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 대부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는 인물의 전사나 백 스토리가 빠진 게 너무 불친절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속도감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게 있다. 불친절해서 좋다는 분들도 있다. 조금 나뉘는 것 같다. 

- 실제로 레이나 인남이나 캐릭터 설명이 거의 없는 편에 해당한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 캐릭터의 경우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명분보다는 기질에 집중했다. 보는 사람으로서 인물을 알고 이해가 되면 덜 공포스럽지 않을까. 한국 영화 자체에 설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설명하려면 신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이야기 템포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됐다. 

- 레이뿐 아니라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도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꼭 납득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력을 어필하는 건 꼭 설명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화했다. 딱 영주와의 관계까지만. 

- 이 영화서 좋았던 점은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혹은 알려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추격이 있었다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건가. 


▲ 말한 대로 메시지를 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마다 각자의 지향점이 있는데 영화라고 해서 꼭 메시지를 줄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예술적 성취나 철학적인 성찰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에 치중한 작품이다. 그게 1차적인 목표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누아르,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악으로 상징되는 세계관 안에서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서 벌어지는 질이다.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작품도 아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세계를 좋게 보신 분들은 하드보일드 세계관에 잘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 작업을 하면서 공부한 것 중 하나가 내러티브의 리듬감이었다. 과정을 세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장면이 있고, 과감한 편집으로 리듬을 빨리 가야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런 안배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했다. 
 

▲ ⓒCJ엔터테인먼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오피스> 이후 5년 만에 나왔다. 이 영화는 어떻게 출발하게 됐는가. 

▲ 10년 전일 듯하다. 처음에 하이브 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님이 외국서 아이를 찾다가 고군분투하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에 방콕을 배경으로 정하고, 방콕 답사도 갔다 왔다. 어느 정도 쓰는 중에 <아저씨>가 개봉했다. 재밌게 봤는데 아이템이 겹쳤다. 아류로 보일 것 같아 일단은 제쳐놨다. 

그러다 <오피스>로 데뷔하고 다른 작품을 쓰던 중 다시 김 대표님이 이 작품을 해보자고 하더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그래서 다시 봤는데, 재밌는 구석이 많더라. 그래서 몇 달 정도 각색하고 준비하게 됐다. 그 사이에 <존 윅>도 나오고 비슷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식으로 차별화를 가져가려고 했다. 

- 캐스팅이 사실 놀랍다. <신세계>라는 인기 영화의 두 배우를 그대로 섭외하긴 쉽지 않았을 부분인데, 그런 선택을 했다. 

▲ 인남과 레이는 서로 겨룰 수 있는 파워가 있는 인물이라, 인지도나 연기력만 보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두 분을 모신 것 같지만, 사실 우연이다. 빅 사이즈 영화의 캐스팅치고는 순조로웠다.

처음에 대표님께서 황정민 배우를 제안했는데, 의외로 금방 답을 줬다. 그리고서 이정재 배우를 말씀하시더라. 나야 ‘하면 좋죠’라는 생각이었는데, 할 줄 몰랐다. 지금이야 레이가 이렇게 화려한 인물이 됐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이정재 배우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라. 미팅하고 싶다는 건 호기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이정재 말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고 하던데. 

▲ 이 영화서 개인적으로 추구한 건 리얼 베이스다. 리얼리즘을 지켜 가려고 했다. 리얼리즘과 레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이 캐릭터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공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전사나 대사가 많지 않아 인물이 모호해 보일 수 있는데 정재 선배가 무자비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외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이 글을 내가 쓰긴 했지만, 구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파격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레이의 외형에 있어 백지나 다름없었다. 캐스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 다를 것으로 생각해서 고민이 깊지는 않았다. 


정재 선배가 비주얼적으로 과감하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실제로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사실 걱정도 좀 있었다. 그 비주얼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모호한 이미지와 선배가 제시한 의상이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 부두서 박명훈 배우와 만나는 신을 찍고 편집한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정재 선배가 한국에 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화한 기억이 난다. 

- <다만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말 메시지가 없다. <오피스>는 왕따라는 사회문제를 절묘하게 담은 작품이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오피스>는 의도적으로 시대성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 작품은 각본을 받은 걸 각색한 것이다. 검토해 달라고 해서 대본을 읽었다가 내가 연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CJ의 인턴이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턴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누구는 한시적 인턴이고, 누구는 정직원이 보장된 인턴이다. 절박함의 차이가 있다. 월급을 많이 받지도 못한다. 당시의 그 절박함을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까지는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반대로 이번 작품은 장르적 재미에만 충실히 하려고 했다. 저 스스로는 <오피스>나 이 작품이나 본질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푸는 과정, 그 안에서의 서스펜스, 영화적 표현 등 작품 특성에 맞게 고민한 건 비슷하다. 
 

▲ ⓒCJ엔터테인먼트

- 이 작품의 매력은 액션의 타격감이다. 기발하다. 

▲ 무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기발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기시감이 들어도 안 된다. 당시 낸 아이디어가 어떤 레퍼런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톱 모션이라고 우리는 지칭했는데, 고속으로 찍어놓고 편집 때 정속으로 돌리면 이런 효과가 난다고 하더라. 배우들에게 고마운데, 현장서 구현하는 건 다른 문제인데, ‘이게 맞아?’라고 하면서 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것이다. 

- 자세하게 언급하긴 그렇지만, 비밀병기는 박정민이다. 박정민 배우는 내면의 남성성이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 역할을 시키게 된 건지 궁금하다. 

▲ 영화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그 흐름을 따라오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환기가 되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유이라는 역할이다. 여러 고민이 있었다. 소위 꽃미남도 생각했다. 여자는 안됐다. 수술을 위해 방콕에 간 사람이니까. 

<오피스>서 정민이랑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남성성을 잘 안다. 외향적인 남자는 아니어도, 남성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남성성과 캐릭터의 여성성이 충돌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민이는 잘 해낼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도 있었다. 

- 일부 사람들이 이 역할을 두고 희화화했다고 할까봐 걱정도 된다. 

▲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희화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오버스럽지 않게 하려고 했다. 나름대로 의도는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의도한 건 유이가 마지막에 남는데, 그게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존재이길 원했다. 남자가 혹은 여자가 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실 구원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지 않나. 

- 워낙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의 영화가 아닌 배우의 영화라는 말도 나온다. 

▲그 말에 정말 동감한다. 지금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호평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 제목이 정말 좋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어떻게 이 문장이 나왔나.

▲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악이라는 건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인남을 둘러싼 세계다. 거기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다. 이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구원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일차적으로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고, 두 번째로 제목과 유추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대성을 읽기를 바랐다. 사실 이 제목을 떠올리고 나서, 마케팅 과정서 바뀔 거라고 짐작했다. 문장형 제목이 익숙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쭉 가더라. 

- 레이가 칼을 쓰다가 총으로 넘어간다. 그 넘어가는 과정이 인남이 가진 힘을 부각한다. 

▲ 이런 일을 하는 업자의 경우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대상이랑 밀접하게 다가간다. 인남이 고수라는 건 첫 시퀀스서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총격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적절한 설정이 필요했다. 총을 어디서 습득하는지 고민이 많았고, 인남은 레이가 턱밑까지 왔다는 걸 알고 얻게 된다. 레이는 인남과 맞붙고 나서 총을 구입한다. 

- 마지막 장면서 레이가 인남에게 모호한 말을 남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냐는 식. 그게 인남에게 말하는 것인지 본인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호한데. 

▲실제로 그 복합적인 의미를 갖길 바랐다. 표면적으로 너도 내가 쫓아온 이상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가 있고,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느낌도 있길 바랐다. 정재 선배가 그 모호함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표정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200% 만족한다. 
 

▲ ⓒCJ엔터테인먼트

- 하나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레이 같은 사람은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흘러서 저런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질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는 단 한 장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 아직도 생각한다. 레이에게 한 신을 더 넣고 싶은 욕구가 있다. 레이가 혼자 있을 때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혼자 있을 때 레이를 계속 상상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혼자 있을 때 레이는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넣지는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학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영화를 보고 후반부에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 유이가 아이를 들쳐메고 가는 장면을 보는 인남의 눈빛이 그렇다. 

▲ 거기서 아이가 울거나 그랬으면, 신파가 되는 건데 비교적 건조하게 잘 매듭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연기를 정말 잘해준 것 같다. 이번에 홍보하면서 다시 만났는데, 영락없는 아이다. 내가 이 애를 데리고 어떻게 영화를 찍었는가 싶다. 몇몇 분들이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분들은 내 기대보다도 더 많이 반응했다. 훌쩍거리면서 우는 사람도 있더라. 내 노림수가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드보일드치고 혈흔이 없다. 묘사도 적극적이지 않다. 

▲피가 터지는 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 기획부터 15세 관람가로 잡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했다. 

- 차기작은 어떤 방향이 되나.

▲배경은 사극인데,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 이번 작품보다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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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