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LG 인력 빼가기 두 얼굴

우린 되고 너흰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건설자재 업체인 LG하우시스가, 경쟁사가 애써 키워놓은 인테리어 전문 인력을 대거 빼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관계사인 LG화학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이기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LG하우시스 측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직원 빼가기 의혹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 LG화학 폴란드 배터리 공장 ⓒLG화학

LG하우시스가 경쟁사의 핵심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것과 관련해 빈축을 사고 있다. 관계사인 LG화학이 인력 유출 등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고소한 이후라, 업계의 이목이 크게 집중되고 있다.

LG하우시스와 한샘은 4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 선점을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불꽃 경쟁을 펼치고 있다. 거주 트렌드 변화에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기존 주택의 인테리어 수요가 늘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고, 여기에 가구·건자재 기업들의 시장 확장 정책이 맞물리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수십조원 전쟁
핵심인력 영입

LG하우시스는 올해 가전과 인테리어 제품을 원스톱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채널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LG전자 베스트샵에 LG지인(Z:IN) 인테리어 매장을 열었고, 지난달에는 이마트-일렉트로마트,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등 유통 업체의 대형 가전 전문마트에도 입점했다.

홈 리모델링 공사 때 인테리어와 가전제품을 동시에 구매하는 수요층을 공략하고, 판매·상담 매장의 이종결합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LG하우시스는 수도권과 광역시 베스트샵 20여곳에서 LG지인 인테리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연말까지 전국 80여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LG하우시스는 홈쇼핑 방송을 통한 창호 판매 등 인테리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1분기 매출액은 723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0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90% 늘었다.

매출의 70% 가량이 건축자재 부문서 발생했고, 실적을 깎아먹는 자동차소재 부문 매각이 실현되면 2분기 실적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한샘은 ‘리하우스’ 브랜드로 업계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리하우스는 공간 패키지 상품 기획부터, 상담, 설계, 실측, 견적, 시공, AS까지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한샘만의 특장점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LG하우시스 경쟁사 직원 영입 빈축
2012년에도 논란 “상도의 아니다”

고객은 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디자이너(RD)’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상현실(VR) 서비스를 통해 PC나 모바일 기기서 3D로 구현된 현관, 거실, 침실, 주방 등의 리모델링 공사 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샘은 RD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6월 현재 전국 510개 리하우스 대리점서 2000여명이 활약하고 있고, 2500명까지 늘리기 위해 상시 채용·교육을 진행한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한샘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판매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86%, 201% 각각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한샘은 리하우스 부문을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3년 내에 월 1만 세트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LG화학 본사

한샘 관계자는 “지금의 경기침체 상황은 중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리모델링·인테리어 시장서 독보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확장하고, 시장 주도적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LG하우시스는 최근 한샘의 시공관리 직원 10여명을 한꺼번에 대거 영입했다. 사실상 경쟁업체 인력을 빼간 것이다. 이 과정서 헤드헌터가 역할을 했지만, 한샘 내부에선 “상도의가 아니다”라며 발끈하고 있다.

1위 되려고?
손쉬운 방법

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은 토털 홈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 디자이너(RD)를 집중 양성해왔다. 현업 종사자는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입 RD 등도 확충해왔다. RD는 한샘 리하우스 대리점에 소속돼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필요한 고객 상담과 디자인 설계, 시공감리 등 인테리어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홈 인테리어 전문가다.

여기에 자극받은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 경쟁력을 한번에 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대거 영입해갔다는 분석이다.

창호, 바닥재, 인조대리석 등 건축자재와 산업용 필름이 주력인 LG하우시스는 ‘LG지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LG전자와 협업하는 등 인테리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샘과의 인테리어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샘이 RD를 직접 육성하는 등 2등과의 ‘초격차’ 전략을 내세우자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의 대거 영입으로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사업서 1위인 한샘의 기존 사업을 손쉽게 따라가려고 한 것 같다”며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하면 시공협력 업체들도 한꺼번에 데려오는 효과가 있어, 땅 짚고 영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고성준 기자

이에 대해 LG하우시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샘 내부의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겨 LG하우시스로 대거 이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샘은 정통적으로 영업력을 중시해 높은 인센티브를 줘왔고 영업능력이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해왔는데 올해는 신입 공채를 늘리면서 공채와 경력직간 연봉과 업무분장 등에 대한 불만이 생겨 이직 인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샘의 성과지표에 따른 보상 체계 개편으로 상위 등급 연봉 상한폭이 하향 조정되면서, 연차가 높은 인력들이 대거 LG하우시스로 이직하는 촉매가 됐다는 게 LG하우시스 측 설명이다.

아전인수
아이러니

하지만 한샘의 연봉이나 처우 등은 경쟁사와 비교우위에 있어 자발적인 인력 이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실제 1000여명에 달하는 한샘 RD는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감안하면,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LG하우시스가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한 것에 그치지 않고 구매 담당이나 개발자 등에 대한 영입에도 나설 전망인 만큼 한샘과의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도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너무 많이 빼가는 바람에 한샘이 LG하우시스에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로 갈등이 표출됐다.

관계사인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서, LG그룹 자체의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말 영업비밀 침해 및 인력 빼가기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지난해 5월 LG가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1년여 만에 검찰에도 사실 규명을 요구한 셈이다.

관련 업계에선 “미국 소송서 양사 합의 가능성이 낮아져 국내로도 전선을 넓히는 것 아니냐”라고 봤다.

LG화학, SK이노 소송 상황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먹칠

LG화학은 2017년 자사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국내서 “영업비밀이 유출됐다”며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미국 ITC에도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오는 10월 최종 결과를 앞두고 있다.


LG화학은 “정확한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경찰에 이어 검찰에 고소장을 낸 것”이라며 “검찰에 의견서를 접수하는 절차가 현실적으로 없어 고소 형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을 압박하기 위한 고소라는 분석이다.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영업 비밀이 유출됐다”며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LG화학은 지난해 1월 대법원서 최종 승소했다. 이어 지난해 4월 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 강계웅 LG하우시즈 대표이사 ⓒLG하우시즈

이와 관련해 미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변론 등 절차 없이 최종 결정을 낸다는 ‘조기 패소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린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정황 등을 이유로 예비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양측의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해왔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측은 공개채용을 통해 인재들을 영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국내 법원에 “LG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와 달리 LG하우시스는 한샘 내부서 보상 체계 개편 등으로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겼고, 이에 따라 해당 인력들이 LG하우시스로 이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샘의 연봉 등을 감안하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번 LG하우시스의 인재영입이 기업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엇갈린 주장
갈등 대폭발

이와 관련해 LG하우시스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 공고를 내고 인테리어 관련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했고, 당시 공개 채용 과정에는 한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의 경력자들이 지원했으며 서류전형-면접-인적성검사 등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합격자 중에는 한샘을 포함해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서 근무 경험이 있는 지원자들이 포함돼있었고, 공개적인 채용 절차를 거쳐 지원자의 업무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해 채용했을 뿐 의도적으로 특정 회사의 직원을 빼내오기는 결단코 아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관계사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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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