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배우 이정현이 행복감을 얻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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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 유튜브 채널의 진행자는 이정현을 ‘와 언냐’라고 불렀다. 20년전 부채를 들고 한 손가락을 마이크로 사용하며 무대를 지배한 테크노 여전사였던 가수 이정현. 숱한 세월을 돌고 돌아 배우 이정현은 영화 <반도>서 좀비와 싸우는 여전사로 변신했다. <반도>에 입성하기까지 고점과 저점을 롤러코스터 타듯 반복한 이정현의 배우로서의 태도를 엿보았다.

장선우 감독의 연출작 영화 <꽃잎>으로 데뷔한 이정현은 무대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여전히 유쾌하고 강렬한 음악들이 이정현을 통해 불렸다. 1020 사이서 ‘탑골 테크노 여전사’라 불릴 정도로 그의 퍼포먼스는 세대를 뛰어넘는다. 

그런 그녀에게도 침체기가 있었다. 한동안 활동이 미비했다. 그러다 우연히 박찬욱 감독을 알게 됐고, 박 감독의 형인 박찬경 감독의 연출작 <파란만장>에 출연하면서 다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범죄소녀>와 <명량>에 이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연기자로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배우의 궤도에 오른 이정현의 선택은 <반도>였다. 

<부산행> 이후 4년, 폐허가 된 한국서 두 딸과 김 노인(권해효 분)을 데리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민정을 연기했다. 맑고 귀여운 이정현과는 다른 여전사 이미지. 평소 얼굴과 전혀 다른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이정현의 선택은 성공적인 결과로 보인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연예계 생활을 했다는 그의 배우관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가 흥행 중이다.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 코로나 때문에 관객들이 올까라는 생각을 했고, 또 이렇게 개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놀랐어요. 극장이 활기를 찾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제작이 중단된 영화도 많아서 앞으로 영화를 못 찍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됐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면?

▲ 즐거운 오락영화. 여름에 가족단위 혹은 친구들이랑 오셔서 재밌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일반관도 좋지만, 특수관 관람을 추천해요. ‘작년에 영화 <반도> 봤는데’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추억으로 남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 <반도> 내에 인물들이 전반적으로 전사가 없다. 민정에 대한 전사를 어떻게 썼나?

▲ 그렇게 많은 전사를 쓰지는 않았어요. 짐승 같은 의지력을 발휘하면서 변했다고 생각해요. 좀비들이 그렇게 들끓고, 미쳐버린 군부대서 살아남은 사람이잖아요. 한정된 공간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충분히 매섭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초반부에 등장하는 남편이 너무 못생겼던데.


▲저는 그런 스타일 좋아해요. 남성스럽고요. 엄청난 학벌을 가진 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감독님은 제 남편 캐스팅하고 딱이지 않냐며 좋아했어요. 저도 좋았고요. 

- 원래 좀비 영화를 좋아하나?

▲ <월드워 Z>나 <새벽의 저주>와 같은 좀비물을 좋아했어요. 

- <반도>는 좀빔물이라기 보다는 체험형 액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 장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 기존 좀비 영화와는 다른 질감이에요. <부산행> 4년 뒤 이야기잖아요. 인간의 변화된 모습을 그리는 것이 신기했어요. 실제로 궁지에 몰리면 사람이 그렇게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4년 동안 지저분해지고 더 무서워지고요. 촬영 현장서 너무 신기해서, 한 시간 일찍 가서 분장하는 것도 지켜보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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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스팅 전에 연상호 감독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

▲ 감독님의 애니메이션 팬이었어요. <부산행>도 정말 좋아했고요. 먼저 연락와서 정말 기뻤어요. 한 번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님이었어요. 사실 카체이싱 같은 경우는 ‘어떻게 촬영하지?’ 싶었는데, 이미 CG 작업을 다 해놓으셨더라고요. 굉장히 안전하고 빠르게 큰 에너지 소모 없이 한 번에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으셨어요. 액션도 하나도 안 다치고요. 한국 영화 시스템에 정말 많이 놀랐어요. 

- 모성애가 강조된 부분이 있다. 그것이 후반부 신파로 간다. 스토리 구조가 단순하다는 의견도 많은데. 

▲ 정확한 의도는 감독님이 아실 것 같아요. 모성애로 인해 전투력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아이 설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강인해지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에 아이가 없었다면, 631부대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시나리오에 있는 모든게 이해가 됐어요. 

- 강동원 배우는 액션 중에 좀비들의 침이 얼굴에 떨어져서 힘들었다고 하던데, 좀비 액션 중에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 

▲ 저는 좀비를 계속 쳐내는 액션이었어요. 침이 튀지도 않았고요. 좀비분들이 워낙 잘해주셔서 편했어요. 

- 아역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10대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그 때와 지금 아역배우의 현장은 어떻게 차이가 있나?


▲ 정말 많이 달라졌죠. 제가 연기할 때만 해도 필름 시대여서 NG가 나면 난리도 아니었어요. 감독님도 정말 무서웠고요. 요즘에는 12시간 안에 다 촬영을 해야 되잖아요. 그 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무한대로 기다린 적도 많았어요. 

가수하다가 15년 만에 영화 현장에 돌아왔는데, 현장 편집이라는 것도 생겼어요. 예전에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게 현장서 편집이 안 되니,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사라졌죠. 

-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면서 활약했다. 최근에 싹쓰리와 같은 복고 스타들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탑골 레이디가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무대에 다시 설 계획은 없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무대에 설 계획은 있어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단체로 들어와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새 앨범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좋은 기회 있으면 할 수도 있죠. 

- 탑골 레이디가가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나?

▲ 어쩜 그렇게 센스가 있죠?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댓글 보면 정말 재밌고, 신기하고, 이렇게 뒤늦게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돼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어린 팬들도 많이 생겼어요. 


- KBS2 <편스토랑>서 보면 요리를 정말 잘 하더라. 4구를 동시에 돌리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요리를 잘하나. 

▲ 저희가 대가족이에요. 가족이 모이면 스무명씩 모여요. 엄마는 예전부터 음식 만들고 주는 걸 좋아했어요. 김장 때도 3~400 포기씩 해서 남들 주고 그랬어요. 왜 저렇게 고생해서 살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맛있는 음식해서 친구들과 수다떨고 하는 게 큰 행복이었어요. 제가 우여곡절이 좀 있었잖아요. 탑을 찍었다가 내려갔다가, 한류시장서 정점 찍었다가 다시 내려가고 그랬는데요. 정서적으로 힘들었었어요. 그러다 취미를 찾은 거죠. 목요일이면 <한국인의 밥상> 보는 게 낙이었어요. 

- 박찬욱 감독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하 <앨리스>)도 박 감독의 추천 때문이라고. 

▲ <앨리스>는 제가 노개런티만 찍으니까, 소속사서 미리 거절했던 작품이에요. 한두 달 정도 있다가 박찬욱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건네주셨어요. 캐릭터가 잘 맞는다고요. 그 영화는 제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잖아요. 배우로서 많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였죠. 

- <반도>는 대자본 멀티캐스팅이고, <앨리스>는 저예산 단독 캐스팅이다. 두 가지 작업에 차이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둘 다 재밌어요. 뭐 하나는 못 뽑겠어요. <반도> 촬영장 가서 다른 배우들 연기하는 것 보는 것도 정말 즐거웠어요. 제가 나오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CG 작업을 통해 나온다는게 신기한 경험이었죠. <앨리스>는 제작비가 7000만원이었어요. 그 작품에는 제 의사도 많이 들어갔고요. 감독도 신인이었고, 스태프들은 재능기부였어요. 그때 열기가 좋았어요. 별다른 생각없이 시나리오 하나로 모여서 하는 에너지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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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자로서 궤를 타기까지 박 감독의 영향이 꽤 크다고 여겨지는데, 이정현에게 박찬욱은 어떤 사람인가. 

▲ 제가 배우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자신감을 많이 주신 분이에요. 제가 연기를 안 하는지 아셨대요. 작품이 안 들어와서 못한 거였는데. 연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파란만장>을 주셨어요. 그 이후로 많은 작품을 추천해주셨고, 제가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면 상의를 하는 정신적인 멘토예요. 저 결혼할 때 감독님이 축사도 해주셨어요. 저로서는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이죠. 

- 그렇다면 연상호 감독은?

▲ 정말 따뜻한 사람이에요. 디렉팅도 명확하고요. 스태프들을 조용히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으시죠. 커트 계산도 정말 빠르고요.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박찬욱 감독님이 어른스러운 멘토면, 연 감독님은 친구 같은 멘토예요. 

- 연예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렸는데, 이정현의 40대는 어떻게 그리고 있나?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나이가 있어서 애기도 낳아야 하는데, 내년에는 아이도 낳고 싶어요. 40대는 안정적인 배우로 꾸준히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야망을 가지면 너무 힘들어요. 된 적도 없고요. 뭔가 기대를 해서 된 적이 없어요. 내려놓으니까 많이 행복해졌어요. 잘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정서에 좋더라고요. 또 <파란만장>을 찍으면서 많이 내려놨어요. 어렸을 때는 에너지도 넘치고 작은 일에 감동하고 쉽게 들뜨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기복이 없어졌어요. 지금 너무 행복한 거 같아요. 

- 마지막으로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 윤가은 감독님이에요. 정말 좋아해요. <우리들>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꼭 이렇게 얘기하면 제안이 안 들어오던데. 계획대로 항상 안 되니까요. <우리들>도 좋았는데 사실 <콩나물>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한 번은 그 따뜻한 영화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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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