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⑩롤모델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10 18:33:28
  • 댓글 0개

그들이 만들어 갈 세상 '롤모델' 보면 보인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 번째로 그들의 '롤모델'을 살펴봤다.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며 삶의 기술을 배운다. 아이는 차차 자라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까지 따르려고 노력한다. 성인이 되어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되며 '숭배한다' '존경한다'는 대상을 찾아 그를 흠모하고 거울로 삼는다. 이처럼 '롤모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롤모델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만들어 가고 싶은 세상을 엿볼 수 있다.

박근혜 <메르켈 독일총리>
두 살 어린 롤모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평소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특정 인물을 롤모델로 꼽기보다는 여러 정치지도자의 좋은 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대답해왔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변에서는 박 후보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두 사람은 이공계 출신 여성으로 야당 대표를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메르켈 총리가 남성 정치인들의 견제를 뚫고 총리에 올랐고, 우파 소속이면서 중도좌파 정책을 흡수했다는 점은 반드시 박 후보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박 후보와 메르켈 총리의 인연은 각별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독일 야당인 기독민주당의 당수였던 메르켈 총리와 처음 만났다. 또 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표를 그만둔 직후인 2006년 9월 독일에서 다시 메르켈 총리를 만나 양당의 정책 교류 방안을 협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의 영향 때문인지 박 후보는 종종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며 정책제안을 펼치기도 했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독일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 독일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다. 1954년생인 그는 냉전시절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1990년까지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러다 1989년 동독 민주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0년 통일이 되고 나서 당시 총리였던 헬무트 콜에게 발탁되어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계에 입문한 지 10년이 되던 2000년에는 여성 최초로 기민당 당수에 올랐다. 당권을 잡은 메르켈은 2005년 세 번째 집권을 노리던 사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꺾고, 청렴하고 결단력 있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총리직에 오른다. 이후 2009년 9월27일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이 승리하면서 총리 연임에 성공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를 4년 연속 차지하기도 했다. 박 후보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먼저 국가 최고수반의 자리에 오른 메르켈 총리. 그녀는 어느새 박 후보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김문수 <민주화된 박정희>
"평생 반대했지만 배울 건 배워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롤모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왠지 아이러니하다. 김 지사는 젊은 시절 박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맞서 싸워온 운동권 인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 지사는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민주화된 박정희'가 롤모델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산업화에 성공한 점을 수용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인물이 되겠다는 의미다.

김 지사는 한 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평생 반대했지만 이제 이해가 된다"며 "서울대 상과대학에 다닐 때 교수들이 자동차산업은 기술과 자본, 시장이 없고 후진국이 성공한 사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하면 된다'고 밀어붙여 지금은 화성의 현대기아차 연구소가 세계 최대규모가 됐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 "산업혁명과 근대화혁명을 성공시킨 공,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했다고 해서 그 분의 모든 업적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배울 것은 배우겠다는 설명이다.

박 전 대통령은 5·16군사정변을 주도해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오른 후 경제개발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제5~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김 지사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운동에 나섰다가 무기정학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반독재 투쟁을 펼치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수배와 투옥생활로 보냈다.


문재인 <정약용·프랭클린 루스벨트>
"노무현의 그림자 넘어 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다산 정약용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는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그가 노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다.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한 단계 더 질적인 발전을 이뤄야 하는데 참여정부가 그 인식이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롤모델 제시를 통해 '노무현'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인정하고 동시에 극복 방안도 찾으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약용에 대해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자세로 실용적이고 민본적인 사상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루스벨트를 두고는 "미국에서 복지 시스템과 기준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진보적인 정책을 아주 극렬한 대결을 하지 않고 국가를 통합하면서 자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 후보는 방향은 맞았지만 개혁 추구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통합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보수정치 세력을 설득하고 진보정책을 수행한 루스벨트를 롤모델로 내세웠다는 분석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재임 1933∼1945)으로 강력한 내각을 조직하고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뉴딜정책을 추진한 인물이다. 외교면에서는 호혜통상법, 선린외교정책을 추진했으며 먼로주의를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회의에서 지도적 역할을 다하여 전쟁종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손학규 <세종대왕>
'민생·소통·통합'의 아이콘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의 롤모델은 바로 '세종대왕'이다. 손 후보는 지난 6월14일 대선출마선언식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하면서 "세종대왕이야말로 백성들의 삶을 챙기는 데서 국정을 시작하고, 만백성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서 국정을 마무리한 성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종대왕의 선정은 오직 백성을 기준으로 나라를 다스린 데서 나왔다"며 "세종대왕은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손 후보는  세종대왕이야말로 '민생, 소통, 통합'의 아이콘이라고 설명한다. 손 후보는 "세종대왕은 천민 장영실을 등용했고 자신의 세자 책봉을 반대한 황희를 정승으로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사회통합"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한 민생과 통합의 길이 세종대왕 리더십에 있다"고 말했다.

또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며 "가르치려 하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회통합의 기본원리를 강조했다.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제4대 왕(재위 1418~1450)으로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의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문화를 일으켰다. 이외에도 4군 6진을 개척해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국방면에서 치적을 쌓았다.

김두관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기득권층까지 포용한 통합리더십

참여정부 내각의 일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자신의 롤모델로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을 내세웠다. 그는 에세이집 <아래에서부터>에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패러다임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라며 "성공한 개혁가 룰라에게서 그 희망의 단서를 찾았다"고 저술했다. 김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승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어게인 노무현'이 아니라 '비욘드 노무현'을 외치는 김 후보에게 성공한 서민정부 모델인 룰라는 이상형에 가깝다.


그는 또 "내가 룰라에게서 배우고자 했던 것은 구체적인 그의 정책보다는 그가 보여준 서민에 대한 애정과 문제해결의 리더십"이라며 "지지세력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적도 만들지 않았던 리더십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주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구두닦이, 세탁소 점원, 전화 교환원 등 수많은 일을 했다. 1960년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가산업기술연수원 선반공 자격증 과정에 등록해 3년간 교육을 받은 뒤 금속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1980년 금속노조위원장으로 선출돼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단숨에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정치적 기반을 다지며 2002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던 경제를 회생시키면서 브라질을 견고한 성장의 길로 이끌었다. 기아퇴치 프로그램인 포미 제로(Fome Zero)와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인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등 분배정책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룰라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지지율 87%를 기록했다.

정세균 <김대중 전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
포스트 김대중 "호남의 적통 잇는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정 후보는 "루스벨트는 개혁조치와 뉴딜정책을 통해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것이 자신의 '빚 없는 사회'와 닮았고, 김 전 대통령은 나의 정치 입문을 도운 스승이기에 두 사람을 닮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제안을 받고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정 후보는 정치 입문 후 불과 1년 만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했고, 가까이서 모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김 전 대통령의 애국애민정신을 잘 알고 있다"며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존경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은 것은 자신이 호남의 적통을 잇는 대선후보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정 후보는 "김 전 대통령께서 생전에 강조하신 통합의 완성으로 정권교체를 꼭 이룩하겠다"며 "김 전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이 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적통성을 재차 부각하기도 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을 겪었으며, 1980년에는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겨우 석방되기도 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안철수 <프랭클린 루스벨트>
"경제발전도 좋지만 양극화 해소가 우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라고 밝혔지만 그의 정치적 롤모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다.

루스벨트는 안 원장 외에도 문재인, 정세균 후보 등이 롤모델로 꼽았다. 루스벨트가 무려 세 명의 대권주자들로부터 롤모델로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사회화합과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정신과 딱 맞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미국 대공황기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4번을 연임하며 경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과 복지제도 확충 등을 적극 추진했다. 또 루스벨트는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대공황 시기에 '뉴딜' 정책을 실행해 미국을 침체의 늪에서 구해낸 경제 대통령이다. 안 원장은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이나 시대적 과제를 생각할 때 미국 대공황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네 번 대통령을 연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의 위기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위기 상황 속에서 '뉴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경제를 재건했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닦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안 원장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은 것은 그가 단순히 경제를 살린 세계적 지도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7년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표방하는 진보는 많이 가진 자들이 풍요를 더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게 가진 자들이 충분히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제도 확충, 금융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 등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으며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부 집중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소득 재분배 정책에 따라 상위 1%에 돌아가던 국민소득의 몫은 꾸준히 내려가 1930년대에는 16~17%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