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⑩롤모델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10 18: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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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들어 갈 세상 '롤모델' 보면 보인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 번째로 그들의 '롤모델'을 살펴봤다.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며 삶의 기술을 배운다. 아이는 차차 자라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까지 따르려고 노력한다. 성인이 되어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되며 '숭배한다' '존경한다'는 대상을 찾아 그를 흠모하고 거울로 삼는다. 이처럼 '롤모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롤모델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만들어 가고 싶은 세상을 엿볼 수 있다.

박근혜 <메르켈 독일총리>
두 살 어린 롤모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평소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특정 인물을 롤모델로 꼽기보다는 여러 정치지도자의 좋은 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대답해왔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변에서는 박 후보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두 사람은 이공계 출신 여성으로 야당 대표를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메르켈 총리가 남성 정치인들의 견제를 뚫고 총리에 올랐고, 우파 소속이면서 중도좌파 정책을 흡수했다는 점은 반드시 박 후보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박 후보와 메르켈 총리의 인연은 각별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독일 야당인 기독민주당의 당수였던 메르켈 총리와 처음 만났다. 또 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표를 그만둔 직후인 2006년 9월 독일에서 다시 메르켈 총리를 만나 양당의 정책 교류 방안을 협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의 영향 때문인지 박 후보는 종종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며 정책제안을 펼치기도 했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독일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 독일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다. 1954년생인 그는 냉전시절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1990년까지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러다 1989년 동독 민주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0년 통일이 되고 나서 당시 총리였던 헬무트 콜에게 발탁되어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계에 입문한 지 10년이 되던 2000년에는 여성 최초로 기민당 당수에 올랐다. 당권을 잡은 메르켈은 2005년 세 번째 집권을 노리던 사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꺾고, 청렴하고 결단력 있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총리직에 오른다. 이후 2009년 9월27일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이 승리하면서 총리 연임에 성공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를 4년 연속 차지하기도 했다. 박 후보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먼저 국가 최고수반의 자리에 오른 메르켈 총리. 그녀는 어느새 박 후보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김문수 <민주화된 박정희>
"평생 반대했지만 배울 건 배워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롤모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왠지 아이러니하다. 김 지사는 젊은 시절 박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맞서 싸워온 운동권 인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 지사는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민주화된 박정희'가 롤모델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산업화에 성공한 점을 수용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인물이 되겠다는 의미다.

김 지사는 한 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평생 반대했지만 이제 이해가 된다"며 "서울대 상과대학에 다닐 때 교수들이 자동차산업은 기술과 자본, 시장이 없고 후진국이 성공한 사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하면 된다'고 밀어붙여 지금은 화성의 현대기아차 연구소가 세계 최대규모가 됐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 "산업혁명과 근대화혁명을 성공시킨 공,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했다고 해서 그 분의 모든 업적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배울 것은 배우겠다는 설명이다.

박 전 대통령은 5·16군사정변을 주도해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오른 후 경제개발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제5~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김 지사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운동에 나섰다가 무기정학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반독재 투쟁을 펼치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수배와 투옥생활로 보냈다.


문재인 <정약용·프랭클린 루스벨트>
"노무현의 그림자 넘어 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다산 정약용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는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그가 노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다.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한 단계 더 질적인 발전을 이뤄야 하는데 참여정부가 그 인식이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롤모델 제시를 통해 '노무현'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인정하고 동시에 극복 방안도 찾으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약용에 대해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자세로 실용적이고 민본적인 사상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루스벨트를 두고는 "미국에서 복지 시스템과 기준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진보적인 정책을 아주 극렬한 대결을 하지 않고 국가를 통합하면서 자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 후보는 방향은 맞았지만 개혁 추구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통합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보수정치 세력을 설득하고 진보정책을 수행한 루스벨트를 롤모델로 내세웠다는 분석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재임 1933∼1945)으로 강력한 내각을 조직하고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뉴딜정책을 추진한 인물이다. 외교면에서는 호혜통상법, 선린외교정책을 추진했으며 먼로주의를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회의에서 지도적 역할을 다하여 전쟁종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손학규 <세종대왕>
'민생·소통·통합'의 아이콘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의 롤모델은 바로 '세종대왕'이다. 손 후보는 지난 6월14일 대선출마선언식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하면서 "세종대왕이야말로 백성들의 삶을 챙기는 데서 국정을 시작하고, 만백성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서 국정을 마무리한 성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종대왕의 선정은 오직 백성을 기준으로 나라를 다스린 데서 나왔다"며 "세종대왕은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손 후보는  세종대왕이야말로 '민생, 소통, 통합'의 아이콘이라고 설명한다. 손 후보는 "세종대왕은 천민 장영실을 등용했고 자신의 세자 책봉을 반대한 황희를 정승으로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사회통합"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한 민생과 통합의 길이 세종대왕 리더십에 있다"고 말했다.

또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며 "가르치려 하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회통합의 기본원리를 강조했다.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제4대 왕(재위 1418~1450)으로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의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문화를 일으켰다. 이외에도 4군 6진을 개척해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국방면에서 치적을 쌓았다.

김두관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기득권층까지 포용한 통합리더십

참여정부 내각의 일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자신의 롤모델로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을 내세웠다. 그는 에세이집 <아래에서부터>에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패러다임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라며 "성공한 개혁가 룰라에게서 그 희망의 단서를 찾았다"고 저술했다. 김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승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어게인 노무현'이 아니라 '비욘드 노무현'을 외치는 김 후보에게 성공한 서민정부 모델인 룰라는 이상형에 가깝다.


그는 또 "내가 룰라에게서 배우고자 했던 것은 구체적인 그의 정책보다는 그가 보여준 서민에 대한 애정과 문제해결의 리더십"이라며 "지지세력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적도 만들지 않았던 리더십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주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구두닦이, 세탁소 점원, 전화 교환원 등 수많은 일을 했다. 1960년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가산업기술연수원 선반공 자격증 과정에 등록해 3년간 교육을 받은 뒤 금속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1980년 금속노조위원장으로 선출돼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단숨에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정치적 기반을 다지며 2002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던 경제를 회생시키면서 브라질을 견고한 성장의 길로 이끌었다. 기아퇴치 프로그램인 포미 제로(Fome Zero)와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인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등 분배정책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룰라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지지율 87%를 기록했다.

정세균 <김대중 전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
포스트 김대중 "호남의 적통 잇는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정 후보는 "루스벨트는 개혁조치와 뉴딜정책을 통해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것이 자신의 '빚 없는 사회'와 닮았고, 김 전 대통령은 나의 정치 입문을 도운 스승이기에 두 사람을 닮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제안을 받고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정 후보는 정치 입문 후 불과 1년 만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했고, 가까이서 모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김 전 대통령의 애국애민정신을 잘 알고 있다"며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존경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은 것은 자신이 호남의 적통을 잇는 대선후보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정 후보는 "김 전 대통령께서 생전에 강조하신 통합의 완성으로 정권교체를 꼭 이룩하겠다"며 "김 전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이 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적통성을 재차 부각하기도 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을 겪었으며, 1980년에는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겨우 석방되기도 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안철수 <프랭클린 루스벨트>
"경제발전도 좋지만 양극화 해소가 우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라고 밝혔지만 그의 정치적 롤모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다.

루스벨트는 안 원장 외에도 문재인, 정세균 후보 등이 롤모델로 꼽았다. 루스벨트가 무려 세 명의 대권주자들로부터 롤모델로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사회화합과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정신과 딱 맞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미국 대공황기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4번을 연임하며 경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과 복지제도 확충 등을 적극 추진했다. 또 루스벨트는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대공황 시기에 '뉴딜' 정책을 실행해 미국을 침체의 늪에서 구해낸 경제 대통령이다. 안 원장은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이나 시대적 과제를 생각할 때 미국 대공황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네 번 대통령을 연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의 위기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위기 상황 속에서 '뉴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경제를 재건했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닦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안 원장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은 것은 그가 단순히 경제를 살린 세계적 지도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7년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표방하는 진보는 많이 가진 자들이 풍요를 더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게 가진 자들이 충분히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제도 확충, 금융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 등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으며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부 집중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소득 재분배 정책에 따라 상위 1%에 돌아가던 국민소득의 몫은 꾸준히 내려가 1930년대에는 16~17%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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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