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⑨학력& 학창시절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03 17: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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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미래 위한 가장 큰 준비 "준비 된 후보 없나요?"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까지 살펴본데 이어 아홉번 번째로 그들의 '학력'과 '학창시절'을 살펴봤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움은 미래를 위한 가장 큰 준비"라고 했고,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유능한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는 인물이라면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철저하고, 유능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대선주자 7인의 학력과 학창시절을 살펴본다면 유권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대권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대통령의 딸 "공부만 열심히!"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1964년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아들 정몽준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박 후보가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1963년 부친 박정희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음 해 박 후보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성심여중에 들어갔다. 한 학년에 두 반뿐이고, 한 반에 30명 정도의 학생이 공부를 했던 일종의 '귀족학교'였다는 후문이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2학년 때부터는 청와대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그는 불어를 잘 했고 성적이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성심여중을 수석 졸업하고 성심여고를 수석 입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심여고에서도 박 후보는 줄곧 1등이었다.

1970년 3월 박 후보는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박 후보는 대학시절 어머니를 대신해 해외 무대에 나서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외국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물론 다른 성적도 우수했다. 전 학년 C학점은 1개뿐이었고 대부분 A학점을 받았다. 평점은 4.0을 기준으로 할 때 3.82, 대학 역시 수석졸업을 했다.


박 후보는 1974년 서강대 졸업 후 곧바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평소 불어를 잘했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피격으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급거 귀국했다. 어머니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고 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다.

한편 박 후보가 여자임에도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추천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원래 박 후보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학을 전공하려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박 후보에게 전자공학과를 추천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박 후보가 사회·정치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실제로 박 후보는 동기생들이 유신반대 시위를 할 때 말없이 책만 봤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시위에 딸로서 차마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대학시절은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실험실과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다 대학시절 그 흔한 미팅 한 번 못해봤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경호원들의 경호 속에 날려버린 셈이다.

김문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학생운동 투신, 25년만의 졸업

김문수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매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7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70학번)에 진학했지만 순탄한 인생은 결코 아니었다.

김 후보는 경북 영천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대구로 유학하여 경북중학교를 거쳐 1967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으로는 삼성전자 CEO를 역임하고 제4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맞붙었던 진대제가 있다.

그는 고3 때 3선 개헌 반대운동에 나섰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학업의 뜻을 포기하진 않았다. 김 후보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고학으로 1970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에게 대학시절의 낭만은 없었다.


대학 입학 후 그는 대학 내 모임인 후진국 사회연구원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때부터 그의 대학시절은 학생운동으로 점철됐다. 김 후보는 1974년에는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돼 대학에서 제적됐다.

김 후보의 부모는 그에게 "대학은 졸업하고 데모할 수 없겠느냐"고 읍소했지만 그는 "다시 대학생이 되더라도 반독재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 제적 후 그는 노동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울 청계천 재단보조공부터 시작해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다. 1986년 인천 5·3사태와 서노련 사건 등으로 두 차례나 투옥돼 2년6개월간이나 수감 생활을 했다. 이처럼 노동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생활을 반복하던 그는 1994년 2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문재인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치열한 반독재투쟁에도 사법연수원 차석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3년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문 후보의 가족은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내려왔다. 문 후보는 부산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문 후보는 경상남도에서 학력고사 전체 수석으로 경남고에 수석입학 했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방황을 하다 고교 말기에는 성적이 떨어져 끝내 서울대 입시에 실패했다.

당시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경희대 창립자)은 그런 문 후보를 알아보고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적극적으로 입학을 권유했다. 문 후보는 경희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그러나 문 후보는 경희대 입학 후 운동권 학생으로 변신,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치열한 반독재투쟁을 벌인다. 1975년에는 결국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그 해 8월 문 후보는 강제 징집돼 특전사령부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했다.

문 후보는 군복무를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해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경찰에 붙잡혀 있었다. 때문에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시험에 응시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조영식 경희대 총장은 문 후보를 위해 직접 신원보증을 서는 등 학교차원에서 당국에 간곡하게 사정을 했다.

문 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 3차 면접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사법고시 3차 면접시험 직전 안기부 직원이 문 후보에게 "과거 학생운동을 반성하느냐"고 물었지만 문 후보는 "나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끝내 사법고시에 최종합격한 문 후보는 감옥에서 풀려나 사법연수원에 들어간다. 문 후보는 사법연수원을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도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법무부에서 아무런 임용도 되지 못한 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명처럼 문 후보는 고향으로 돌아와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함으로써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김두관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가난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도 못 가고…"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8년 11월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주민등록상 생일은 59년 4월10일로 돼 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아 출생 후 5∼6개월이 지나 출생 신고를 하던 관습 때문이다.

5남 1녀의 다섯째인 김 후보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 때 농민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때 학생회비를 낼 형편이 되지 못해 늘 선생님 앞에 불려나가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 어문계열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23만8000원이 없어 입학을 포기했다. 이후 2년간 고향 마을에서 마늘 농사를 짓다가 1979년 경북 영주에 있는 경상전문대학(현 경북전문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경북 영주와 경남 남해가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981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이듬해 군에 입대해 경기 의정부 2군수지원사령부 16보급대대에서 30개월을 복무했다. 군 제대 후에는 민주화운동에 뛰어든다. 1986년 4월 재야 운동세력의 연합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간사로 활동했다. 개헌추진본부 충북지부 결성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일로 김 후보는 민주화운동 유공자 인정을 받는다. 출소 후 김 후보는 1987년 대학을 졸업한다. 

손학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약간 놀았지만(?) 불의는 못 참아!"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태어났다. 손 후보의 부모는 교사였다. 손 후보는 10남매 중 막내다. 손 후보는 1953년 시흥초등학교에 입학해 4년을 공부한 뒤 서울 매동초등학교로 전학해 졸업했다. 1959년 경기중학교에 입학, 밴드부에 가입해 트럼펫을 맡았다. 그래서 트럼펫 실력이 상당한 수준급이다. 그러나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해서는 연극부에 가입했다. 그가 요즘도 자주 연극을 보러 다니는 것은 연극반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손 후보는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약간 불량기가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올라와서 서울 아이들에게 주눅이 많이 들었으나 고등학교 때 밴드반을 하고 연극반에 합숙하면서 선배들과 술도 한 잔 하고 어울리면서 생각을 외향적으로 바꾸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3 때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1965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삼성그룹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무기정학 중 데모를 해서 또 무기정학을 받아 강원도 함백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춘천에서 칩거한 것도 이 때 강원도와 깊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학교로 돌아온 손학규는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와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또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1969년 군대에 입대한 손 후보는 1972년 만기제대 한 후 1973년 대학을 졸업했다.

정세균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우리 학교 '빵돌이'가 고려대를?"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전북 진안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검정고시를 치르고서야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중학교 졸업장을 얻고 전주공고 입학한 그는 대학진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주 신흥고로 전학한다. 신흥고 시절 그는 워낙 생활이 어려워 학교 매점에서 빵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이 '빵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법학과였던 정 후보는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입주과외를 하면서 고시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선포돼 헌법을 가르치던 한동섭 교수가 유신헌법을 작성하라는 박정희 정권의 요구에 불응해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사실에 충격을 받아 법관의 길을 포기했다.

정 후보는 대신 교내 신문인 '고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게 구속된 전력은 없다. 1974년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 입사를 지원하지만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에 실망하고 쌍용그룹에 지원했다.

1978년 쌍용에 입사해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그룹의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재원 시절 뉴욕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LA 주재원 시절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안철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학창시절 성적은 그럭저럭 중간"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은 1962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에 그는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운동 등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독서는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을 치는 걸로 오해해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연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과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던 안 원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안 원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을에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이후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됐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안 원장은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ㆍ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의대 교수가 됐다. 하지만 의사생활을 뒤로하고,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시작, 안티바이러스(백신)를 개발했다. 이후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백신프로그램 연구소인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해 10여 년간 경영했다. CEO를 그만두고나서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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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