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⑧화법& 말말말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7.26 11: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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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 배우자, 재산까지 살펴본데 이어 여덟 번째로 그들의 '화법'과 '설화'를 살펴봤다.


정치인에게 말이란 최고의 '무기'이자 최고의 '독'이다. 말 한마디로 인기를 얻을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정치인생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한 철학가는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대권주자들의 그간 주요발언과 화법을 살펴보면 그들의 성격은 물론 정치적 성향과 자질, 도덕성까지도 모두 파악 할 수가 있다. 유권자들이 대권주자들의 화법을 눈여겨봐야만 하는 이유다.


'수첩공주' 박근혜
설화는 없지만 불통?

한나라당 대표 시절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수첩공주'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늘 수첩에 적힌 단어와 문장을 토대로 말을 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이러한 습관 때문인지 많은 정치인들이 말실수로 인해 곤혹을 겪었던 것과는 달리 박 전 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설화를 겪지 않았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이 지난해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 동행 언론인들과 나눴던 대화는 그가 평소 얼마나 '말조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잠을 잘 못 잤다는 한 기자의 하소연에 "그러면 정신이 맑지 못하잖아요. 오보 나는 것 아니에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기자들은 "기사거리를 주지 않으니 오보도 못 쓴다"며 불평을 했지만, 박 전 위원장은 "그래도 제가 기사거리는 못 드려요"라며 웃어 넘겼다.

그의 '정제된 화법' 때문에 그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마땅한 이슈거리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 "박 전 위원장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1974년, 불과 22세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게 됐다"며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을 어린시절부터 감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이러한 화법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침묵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만 했다. 정치적 싸움에는 휘말리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국민들은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그가 정치적 현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같은 비판에 직면한 박 전 위원장은 이후 정치적 현안에 비교적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 2010년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정몽준 의원과 벌인 '미생지신' 공방이 대표적이다.

박 전 위원장은 정 의원을 향해 "세종시 문제를 미생지신에 빗대 융통성이 없거나 어리석게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는 식으로 보면 안 된다. 한나라당이 여러 차례 국민에게 한 약속인 만큼 국민과의 신뢰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날선 비판을 가해 이전과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박 전 위원장의 정제된 화법은 종종 '불통'이란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경선룰을 놓고 박 전 위원장과 대립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박 전 위원장이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해석과 독심을 하고 있다"며 "해석과 독심을 위주로 하는 정당은 민주 정당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의 일방적인 새누리당 당명 변경 과정에 대해서는 친박계의 핵심으로 분류되던 유승민 의원조차 박 전 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설 정도였다. 당시 유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할 때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근혜식 화법은 설화는 없지만 불통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슈파이터' 김문수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슈파이터형 화법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여당 내 대선주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여러 가지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게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핵심을 찾아 힘을 줘서 말을 하는 그의 화법은 차기주자로서는 유리한 점으로 꼽히지만 이 같은 화법이 반복되면 불안감을 줄 수 있고 지도자로서 진득함이 덜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밝혀오면서 자연스럽게 쌓아온 '실용적 보수'라는 이미지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 됐다. 정치권에 '보편적 복지'라는 포퓰리즘 광풍이 불어 닥쳤을 때도 그는 할 말은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유지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 지사는 지난 17일 SBS라디오에서 "경제민주화는 선거 때가 되면 들고 나오는 소위 인기품목"이라며 "말 자체가 아주 달콤한, 표를 받기 위한 하나의 구호일 뿐 선거가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는 공약의 성격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김 지사의 다언(多言)정치는 많은 부작용도 낳았다. 김 지사는 지난 해 6월 한 간담회에서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으려는 이야기"라는 망언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또 지난해 9월에는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언급하며 "이명박 대통령도 징조가 좋지 않다"고 말해 논란을 겪기도 했다.

'노무현의 그림자' 문재인 
"내가 샌님이라고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서 그의 그림자 격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사랑했던 남자였다. 이 같은 배경은 문 고문을 민주통합당 내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훌륭한 참모를 넘어 '보스'의 자질이 있느냐"는 질문에 늘 시달려야만 하는 한계도 있다. 또 평소 수줍음 많고 얌전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성격에 대해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샌님'같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 고문의 한 측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문 고문은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왔다"며 "말이 없고 선한 그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샌님이라고 잘못 인식 되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부산지역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해왔을 만큼 진취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정치입문을 선언한 후 문 고문은 확실하게 변화를 시도했다. 점잖고 내성적이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정치적 자질을 뽐내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박근혜 전 위원장과의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모양새다. 그는 박 전 위원장을 향해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살았고, 독재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며 역사인식은 퇴행적"이라고 비판했다.

정책적 이슈에 대해서도 날을 세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도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핵심이라고 할 재벌개혁이 빠져 있다"며 "이는 간판만 달고 진정성이 없는 '사이비' 경제민주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이처럼 문 고문의 달라진 화법은 대권 경쟁에 대한 자신감을 당 안팎에 전하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리틀 노무현' 김두관

"이제는 저격수라 불러주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라고 하면 '리틀 노무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장 출신 지사'라고도 하며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대권주자로서는 '인지도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러한 평가를 의식했는지 대권도전이 가시화된 이후 그의 화법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김 전 지사는 평소 점잖은 화법으로 유명했다. 김 지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을 포함한 대선후보나 출마 유력자들을 겨냥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말투가 낯설다고 말한다.

김 지사는 대선출마 선언을 앞두고 '박근혜 4불가론'을 제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 주장하는 반 헌법적 인물 △이명박 정권 실정에 공동책임이 있는 국정파탄의 주역 △독선과 불통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올 사람 △미래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라는 4가지 이유로 그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공격했다.

김 지사의 화법에 대해 측근들은 "민감한 질문을 두루뭉술하게 넘기거나 자신이 준비한 얘기로 '동문서답'을 하는 등 제법 정치적 입담이 늘었다" 전했다.


'거칠어진 남자' 손학규

"제가 교수님 같다고요?"

"애국가 부정할 때 화가 치밀었다."
점잖고 고상해서 '교수님 같다'는 평을 받았던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화법이 확 바뀌었다. 대선 출마 선언 이후 그의 말투가 좀 더 솔직하고 쉬워졌다. 애국가 논란 등 민감한 사안에도 입을 열었다.

손 고문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애국가 논란이 뜨거웠을 때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 말했다. 정치인 손학규로서 해당사안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놓기보단 한국인 손학규로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 같은 화법의 변화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손 고문이 '감성 마케팅'을 통해 대중들에게 적극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 평소 완곡한 어법을 구사하며 말에 날을 세우지 않던 손 고문의 어법도 달라졌다. 지난 달 한 인터뷰에서는 "민생은 똥이라고 생각한다. 민생은 흔히 먹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먹으면 싸야 한다. (중략) 한 사람 개인으로도 잘 먹고 잘 싸야 건강하듯이 나라경제도 잘 벌면 잘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생이다"라고 말했다. 예전엔 좀처럼 쓰지 않던 표현이다.

손학규 캠프 쪽은 "캠프 차원에서 후보 스타일 변화에 대해 논의해본 적은 없다. 후보가 자기 생각을 바로 전달하는 쪽으로 노력하면서 직접 화법으로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드러난 투명인간' 정세균
"무난한데 그 무난함이 문제"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화법은 대체로 무난하다. 하지만 그 무난함이 문제다.
그의 말에서는 확고한 신념과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무리 없는 주장에 나름의 전문지식까지 갖추고 있다.
정 고문의 화법은 그가 왜 제1야당의 당대표를 세 번이나 맡을 수 있었는지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그럼에도 정 고문은 늘 언론의 홀대를 받아왔다. 민감한 뉴스거리마저 말랑하게 녹여버리는 그 화법이 문제였다.

하지만 대선출마 선언 후 정 고문 역시 확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한다. '존재감이 없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슬로건인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 대해서는 "박근혜의 꿈은 1%만을 위한 꿈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장진 감독이 진행하는 케이블방송 정치풍자쇼 <SNL>에 출연해 스스로 정치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넘어 '투명인간' 이라는 평가까지 들려오는 이유다.

'오락가락 교수님' 안철수
"거 참 애매합니다~잉"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주로 강연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안 원장은 지난 2011년 중순부터 최측근으로 알려진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진행했다. 다만 강연 외의 장소에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언론과의 접촉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만 갖는다.

최근에는 애매한 안철수식 화법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안 원장은 대권 도전에 대해 "가당치도 않다"고 일축했다가 "사실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고 여운을 남기는가 하면 다시 "대통령이라면 크게 바꿀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지난 19일 에세이 <안철수의 생각>을 발간하면서 사실상 대선출마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다. 안 원장의 '오락가락' 화법에 일부 유권자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다.

반면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한 목소리를 내왔다. 안 원장은 지난 3월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 현장을 찾아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말했다. 또 MBC 파업과 관련 안 원장은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언론은 본질적으로 진실을 얘기해야 하는 숭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진실을 억압하려는 외부의 시도는 있어서도 안 되고 차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일부 정치인들을 직접 겨냥한 발언은 자제해왔다. 대권도전을 선언한 타 후보들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독한 발언'을 쏟아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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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