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혔던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사퇴를 번복하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약속을 지키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 원내대표를 향해 "본인이 한 약속이나 잘 지키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는 지난 11일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지 불과 1시간여 만이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는 그동안 이 원내대표가 추진해왔던 국회 쇄신안 중 하나였다.
진짜 몰랐나?
이 원내대표는 "이번 사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국민 여러분들께서 갈망하는 쇄신 국회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이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 결정은 '정치쇼'라고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체포동의안을 표결처리한 지 1시간 만에 총사퇴를 결정했다. 상식적으로 원내지도부 총사퇴라는 중대한 안건이 어떻게 1시간 만에 결정될 수 있느냐"며 "이 원내대표의 사퇴도 정두언 감싸기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민주통합당의 일갈은 당시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라는 대형 이슈에 밀려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지난 16일 이 원내대표가 복귀하면서 결국 진실이 됐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사태 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해 "너무 믿었다"며 "당연히 통과돼야 하는 것이므로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을 못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박 전 위원장의 설명과는 달리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상상도 못했다고 하는데 이번 표결을 분석하면 새누리당 의원 중 최소 절반 이상은 반대나 기권표 등을 던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상상조차 못했다는 것은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의 총사퇴가 체포동의안 부결의 후폭풍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지도부의 가결 독려에도 불구하고 제도상의 허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얻었다. 정 의원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체포동의안이 처리된다면, 국회가 실질심사 전에 피의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고 설명했다. 또 이 의원은 "불체포특권은 오남용이 문제일 뿐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련해놓고 있는 제도"라며 "민주주의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임에도 무조건 포기하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원내대표는 사퇴선언 다음날에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사퇴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만약 사퇴를 번복한다면 국민이 진정성 있게 봐주겠냐고 되물었다. 나아가 자신의 사퇴를 정치쇼라고 비판한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향해 체포동의안 부결의 공동 책임이 있는 만큼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복귀 없다더니…" 이틀 못 넘긴 호언장담
약속 안 지켜놓고 "약속 지키자" 대표연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이 이틀 후 이 원내대표의 사퇴 결정에 대해 "이런 것(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을 잘 마무리해서 다 해결하는 것도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정했다.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총사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호언장담하던 원내지도부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계기로 슬그머니 복귀했다. 박 전 위원장이 당초 제시했던 7월 임시국회 마무리를 위한 한시적 복귀도 아닌 완전 복귀였다. 이로 인해 야권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박심(朴心)을 얻고 민심을 버렸다'며 비판했고 '박근혜 사당화' 논란은 더욱 가열됐다.
여당 내에서도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차라리 처음부터 사퇴라는 카드를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 이 원내대표의 사퇴 번복은 체포동의안 부결로 새누리당에 실망한 국민들을 또 한번 배신하는 행위다. 지난 2002년에도 이회창 후보가 대세론에 안주하며 국민들을 기만하다 결국 패배했던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퇴번복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점점 더 거세지자 정치권의 관심은 왜 이 원내대표가 사퇴를 번복했는지에 집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이 앞으로 잃을 것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 정말 일련의 모든 일들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우선 원내지도부의 총사퇴는 박 전 위원장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여겨진다. 체포동의안 부결에 따른 압박감을 느낀 이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우발적인 결정이었다는 분석이 현재 가장 유력한 중론이다. 야권의 주장대로 정치쇼라고 보기엔 얻는 것보단 잃을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이 원내대표가 복귀를 강행한 것은 자칫 원내대표단의 공백으로 대선전략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대표단의 공백은 반값등록금, 전 계층 육아수당 지급 등 4·11 총선 때의 공약 이행을 위해 진행 중인 정부와의 예산협의가 중단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법관 후보자 4명에 대한 임명동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조사계획서 작성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도 산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원내대표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사당화 논란 가열
원내대표 선거 전 후보로 거론돼 왔던 서병수 의원은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최경환 의원은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이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가 복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체포동의안 부결 당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의 사퇴는 국민들에게 사죄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정작 국민들은 돌아오라는 말이 없는데 박 전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다시 복귀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국민보다 박 전 위원장을 더 섬긴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