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이상득 구속 '숨겨진 꼼수' 전격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7.16 09: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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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남발하던 검찰 '상왕 구속' 청와대와 눈 맞췄나?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상왕'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0일 결국 검찰에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불과 지난달 내곡동 사저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불법사찰과 디도스 공격에는 '배후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던 검찰이었다. 비난여론을 의식한 검찰이 드디어 정의의 칼을 빼든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의심스러운 점들이 많다.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0일 전격 구속됐다. 이날 이 전 의원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자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내 돈 내놓으라"면서 이 전 의원의 넥타이를 멱살 잡듯 당겼고, 또 다른 피해자는 날계란을 던졌다.

달라진 검찰?
짜고 치는 고스톱

이 전 의원은 계란을 바로 맞지는 않았지만 일부가 튀어 옷과 손 등에 묻었다. 피해자들은 "이상득 도둑놈" "구속시켜라" 등을 외치며 이 전 의원과 몸싸움을 벌였고 바닥에 드러누워 울부짖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검찰청에서 자신의 넥타이를 잡고 계란을 던진 이들에 대해 "(검찰이) 저런 사람들을 통제도 못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이 지칭한 '저런 사람들'은 이 전 의원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저축은행에 어렵게 모은 돈을 맡겼다가 전 재산을 날린 서민들이었다. 이날 이 전 의원의 만면에는 '침통함'보다 어딘가 모를 '당당함'이 묻어났다.

사실 이 전 의원의 비리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이 전 의원의 보좌관 박배수씨가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으며, 여비서의 계좌에서는 정체불명의 뭉칫돈 7억여원이 발견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지금껏 이 전 의원은 뭉칫돈의 출처에 대해 "축의금 등으로 받은 돈을 장롱 속에서 보관해오다 사무실 운영비로 쓴 것"이라며 "저축은행 관련해서 어떤 부탁을 받은 적이 없고 전혀 관여한 적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의혹을 받아온 이 전 의원이지만 검찰은 늘 수사의지 박약을 지적당하면서도 이 전 의원을 어쩌지 못했다.


"마치 치밀하게 짠 각본대로 움직이는 듯"
검찰 장악한 MB, 검찰과 사전교감 있었나?

그러나 최근 검찰이 달라졌다. 그냥 달라진 것이 아니라 확 달라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서면조사' 하며 굴욕을 자초했던 검찰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 전 의원을 전격 구속한 것이다. 또 여권의 정두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체포동의안 표결까지 진행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일단 검찰 수사의 칼날은 현정권의 권력핵심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권에서도 유독 임기 말이 되면 측근비리에 매서웠던 검찰이었기에 특별할 것도 없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검찰수사에 대한 반발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역대 정권에서의 측근비리 수사와는 뭔가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당장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1일 "검찰이 권력핵심들을 계속 수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며 "이 전 의원의 경우에도 (뇌물수수 금액이) 3~5억 그러는데 억지로 사건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여 원을 받은 혐의와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2억여원, 코오롱그룹으로부터 공식 회계처리하지 않은 1억5000만원을 각각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 전 의원은 대기업 사장을 지낸 6선의원 출신으로 지난 3월 공직자 재산등록 때 신고한 재산만도 77억원에 이르는 거물 정치인이다. 게다가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진 시기에 이 전 의원은 압도적으로 당선이 유력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선대본부에 있었다. 그러한 그가 고작 2~3억원을 받기 위해 소위 '듣보잡'이었던 저축은행 관계자를 만났다는 사실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물타기 수사 비판
무엇을 노렸나?

또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저축은행비리 수사선상에 함께 올려놓은 것도 일종의 물타기 수사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방탄국회'라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여당의 모 의원은 "의원들이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해 부결시킨 것이 아니다. 우선 현재 검찰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관련자 진술이 전부다. 당사자인 임석 회장조차 정 의원에게 준 것이 아니라고 진술했는데도 검찰이 정 의원을 공범으로 몰고 있다. 심지어 검찰은 임 회장이 놓고 간 물건에 돈이 들어 있어 정 의원이 이를 즉각 돌려보낸 사실을 확인까지 했다. 이 같은 무리한 수사가 의원들의 반감을 산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 의원은 이명박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으로서 한때 '왕의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이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서명 파동'으로 이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인물이다. 이후 다른 개국공신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정 의원은 장관은 커녕 모든 요직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어왔다.

정 의원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고 나온 자리에서 "나는 이 정부 내내 불행했다"며 감정에 복받친 듯 눈시울이 붉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눈엣가시 같은 정 의원을 이번 사건을 통해 제거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정 의원과 함께 수사선상에 오른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또한 야권의 대표적인 '저격수'로서 이명박 정권을 견제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원내대표는 "내가 돈을 받았다면 (지역구인) 목포역전에서 할복이라도 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치명적인 이미지 훼손을 감수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물타기 수사'를 통해 대통령 자신과 여당에 쏟아질 비판을 분산시키는 한편 평소 골칫덩이였던 정적들을 견제하는 1석2조의 효과를 얻어 냈다는 평가다.

이상득이 박근혜 대선출정식 초친 이유 뭔가?
"사태 커지면 좋을 것 없다" 정치적 메시지 전달

마지막으로 이 전 의원이 법원에 출석한 날짜와 시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법원에 출두한 시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대선출정식이 한창이었다. 덕분에 박 전 위원장이 지난 4년여 동안 손꼽아 기다린 대선출정식은 '이상득 법원 출두'라는 빨간 자막으로 온통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얄궂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심문기일은 이 전 의원 측이 원할 경우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전 의원 측이 워낙 경황이 없어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주위의 수많은 보좌진들과 새누리당 관계자들까지 이 같은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이 전 의원이 박 전 위원장에게 무언의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한 정치평론가는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치9단' 이 전 의원이 박 전 위원장의 출정식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특히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 전 의원이 법원에 출두한 10시30분은 박 전 위원장이 출마선언문을 낭독하던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의원이 전하고자 했던 '정치적 메시지'에 대해서는 "평소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견제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박 전 위원장이지만 현정권의 비리의혹은 분명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이번 사태가 확대되면 대선정국 내내 (이번처럼) 현정권 관련 비리가 톱뉴스를 차지할 것이다. 너한테 좋을 것이 없다. 유력 대권주자로서 이번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데 반드시 힘을 보태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일련의 사건을 종합해보면 도저히 갑작스럽게 수사를 당한 사람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마치 치밀하게 짠 각본대로 움직이는 듯하다. 구속을 피하진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최대한 혐의를 작게 만들고, 정치적 파장을 가급적 줄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검찰과도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듯 야권에서는 대통령 측근의 연이은 구속으로 이 전 의원의 문제를 더 이상 덮을 수 없게 되자 차라리 임기 중에 털고 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9단 이상득 
정치적 의도는?

현재 사정라인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장관, 한상대 검찰총장, 그리고 BBK 주임검사로 이명박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최재경 중수부장 등이 건재해 있다. 지금이라면 사실상 제대로 된 수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수사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오히려 차기정권 하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들에 미리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권은 측근비리로 곤혹을 치른 역대정권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측근비리를 예방하는 데 힘쓰기 보다는 검찰을 꽉 움켜쥐고 비리가 발각되지 않도록, 만약 발각 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도록 하는 데 더 노력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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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