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⑥배우자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7.13 11: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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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아내는 직함 없는 정치인"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정몽준)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을 살펴본데 이어 여섯 번째로 배우자를 살펴봤다.

어느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인 힐러리 여사가 자가용을 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던 도중 마침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들렀다. 그런데 그 주유소의 사장이 하필 대학시절 힐러리를 따라다니던 남자였다. 주유소를 빠져나오며 클린턴은 "당신이 그때 나를 선택하지 않고 저 사람을 선택했다면 당신은 지금쯤 이 주유소에 앉아서 기름이나 넣고 있었겠지?"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자 힐러리는 "아니 저 사람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됐을거야"라고 답했다. 정치인에게 있어 배우자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재미있고도 의미심장한 일화다.

올해 환갑 맞이한 박근혜
"미혼이지만 괜찮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952년생으로 올해 환갑을 맞이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은 아직까지 미혼이다. 박 전 위원장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권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느라 결혼시기를 놓쳤다는 설, 독신주의자라는 설, 박정희를 두려워 한 남자들이 아무도 박 전 위원장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설 등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세간에는 박 전 위원장이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미모와 재력, 권력까지 갖춘 여성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박 전 위원장은 단지 미혼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수많은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결혼도 안한 여자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결혼도 안한 여자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을 보살필 수 있겠느냐?" 등의 원초적인 공격이었다. 아직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미혼의 여성 대통령 후보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 "박 전 위원장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북한의 테러로 어머님을 잃고, 어머님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던 도중 아버님마저 잃은 분이다. 비극으로 점철된 가족사를 안고 장녀로서 동생들까지 보살펴야 했던 박 전 위원장이 마음 편히 결혼을 할 수 있었겠느냐"며 "오히려 박 전 위원장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이 조국과의 결혼을 선택한 분이다"고 말했다.

정몽준의 아내 김영명
박식·미모 겸비한 '엄친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배우자 김영명(56)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막내딸이자 대재벌 현대가의 며느리다. 직업외교관의 딸로 화려한 해외생활을 했고 한국의 대표부자이자 유력 정치인의 아내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2남2녀를 낳은 다복한 가정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훤칠한 키에 호감 가는 미인형 얼굴, 그녀를 보면서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영명이 없다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 의원의 아내 김영명씨는 그동안 최고경영자의 아내, 정치인의 아내, 월드컵조직위원장의 아내로서 '특별한 내조'를 해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주일대사로 부임하면서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김씨는 그후 김  전 장관이 주미대사로 발령받으며 대부분의 학창생활을 미국에서 보냈다. 이런 경험으로 일어와 영어에 능숙한 김씨는 미 웨슬리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해 식견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88올림픽 유치활동을 벌일 때 수행을 하기도 했는데, 능숙한 외국어 실력과 상대를 사로잡는 화술로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당시 취재기자들의 후일담이다.

그의 진가는 월드컵 유치 활동을 벌일 때도 빛을 발했다. FIFA 집행위원 아내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그들로 하여금 남편들의 마음을 돌리게 하고, 행사장에서는 잔잔한 미소와 화술로 사람들을 사로잡아 '미스 스마일 월드컵'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 1978년 정 의원의 넷째 형수와 친분관계가 있었던 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둘은 2년 사귄 뒤 결혼했다. 정 의원과 5살 차이가 나서 처음엔 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정 의원은 말수가 적고 특히 여성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고 착한 마음씨가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정 의원은 지난 1988년 울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 후 내리 7선에 성공했다.

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절감한다. 공인으로서 희생해야 할 것도 너무 많지만 남편이 하는 일이기에 무조건 지지한다"라고 말한다.

김문수 아내 설난영
남편 못잖은 열혈 운동권 출신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부인 설난영(59)씨는 김 지사의 '제1야당'이라고 불린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이 바로 설씨였다. 하지만 김 지사의 꾸준한 설득 끝에 설씨는 결국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설씨는 남편 김 지사 못지않았던 열혈 운동권 출신이다. 70년대 구로공단의 전자제품 부품공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했다. 설씨는 1978년 노조위원장이 됐고 이후 다채로운 노동·인권운동으로 16년을 한결같이 '운동권'으로 지냈다. 그러다 김 지사가 신한국당 부천 소사지구당을 맡은 1994년부터 17년 넘는 세월을 '전향 보수 김문수'의 내조자로 살아왔다.

만약 김 지사가 지금의 온갖 고비를 넘기고 꿈을 이룬다면, 대한민국은 최초로 노조위원장 출신 퍼스트레이디를 갖게 된다.

1953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한 설씨는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네살 때 순천으로 이사해 거기서 여고를 졸업했다. 졸업하던 해 대학에 낙방, 서울로 올라와 재수생활을 하다 1977년 여름, 구로공단의 세진전자에 입사해 우연히 노조위원장이 됐다.

그때 남편(당시 김문수는 민청학련사건으로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제적당하고 한일도루코에서 노조활동을 했다)을 만났다. 나이는 설씨보다 두 살 많았지만 어려 보여서 한 번도 남자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알게 된 지 7개월 후쯤, 김 지사는 다방에서 "갈 데 없으면 나한테 오라"며 청혼을 했다. 하지만 설씨는 "난 결혼 생각 없다. 김문수씨는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니 다른 사람 더 생각해보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김 지사는 청혼을 거절당한 후 40일 만에 나타났다. 설씨는 수척해진 김 지사를 보며 모성본능이 생겼다. 두 사람은 그 다음 해 결혼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아내 김정숙
'귀요미' 내조로 남편의 인기 '견인'

경상도 남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무뚝뚝하고 유머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러한 문 고문의 단점을 커버해 주는 사람이 바로 부인 김정숙(57)씨다. 별명이 '귀요미'인 그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며, 애교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문 고문은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씨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지금의 아내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당시 김씨는 성악을 전공하는 같은 학교 2년 후배였다.


당시 그들의 연애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면회가 곧 데이트였다. 김씨는 문 고문을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지난 1981년 결혼했다. 

 고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에는 본인이 동창회에 안나가는 것은 물론, 아내에게도 동창회는 물론 모든 모임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조선시대 양반가 규수들의 삶처럼 무척 지루하고 답답했을 법도 하지만 김씨는 문 고문의 뜻을 묵묵히 따랐다.

김씨는 문 고문을 칭찬만 하지는 않는다. 모든 부부가 겪는 돈 문제도 솔직히 털어놨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은 김씨는 "아파트 청약적금을 넣은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이미 아파트가 있는데 왜 주택청약을 들었냐며 눈을 부릅뜨면서 야단을 쳤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가 폭로하는 내용들은 문 고문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에게 '서민 문재인'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김두관 아내 채정자
'희생과 절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부인 채정자(51)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김 지사와 연애를 했다. 채씨는 고교 1학년 때 사촌의 소개로 당시 고교 3학년생이던 김 지사를 만났다. 김 지사는 채씨를 중학교 때부터 눈여겨봤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혼을 전제로 한 사귐이었다기보다는 여동생이 없었던 김 지사와 오빠가 없었던 채씨가 자연스럽게 오빠 동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도 김 지사는 만날 친구들을 다 만나고 난 후 입대 바로 전날에야 군대에 간다며 채씨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연애 10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음력 1월3일인 결혼 날짜도 김 지사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설 연휴 고향 분들이 다 모여 있을 때 결혼식을 올려 번거롭지 않게 하자는 이유에서였다.

채씨는 결혼 직후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다. 게다가 부산으로 이사 가게 된 둘째 형님의 아이들까지 맡아 키우게 됐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와 다섯 살 정도 된 아이였다. 유치원에 진학하게 될 때쯤에야 부산으로 보내게 되어 지금까지도 작은 엄마인 채씨를 친엄마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다.

김 지사가 1995년 남해군수가 되기 전까진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김 지사는 결혼 직후인 1988년 남해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했는데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김 지사는 당시 민정당 일색인 그 지역에서 "지역 견제세력이 없으면 안 된다"며 지역의 견제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야당 후보로 출마했다고 한다. 이때 채 여사는 출산한 직후였는데, 몸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하루에 한 개의 면을 돌 정도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채씨는 양품점, 식당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갔다. 김 지사가 낙선을 거듭했을 때도 채씨는 "실패한 게 아니다. 작은 인생 공부를 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더 준비를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감사해 하자"며 김 지사를 위로했다.

채씨는 희생과 절제로 지금까지 김 지사를 묵묵히 지원해왔다. 2010년 경남도지사선거 때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선거운동에 전념한 뒤 취임식이 끝나고 나서야 입원 수속을 밟았다.

손학규 아내 이윤영
앞에 나서지 않는 '우렁각시형 내조'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부인인 이윤영(66)씨는 '우렁각시형 내조'로 유명하다. 꼭 나서야 할 때가 아니면 좀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아 붙여진 별명이다.

손 고문과 아내 이씨의 인연은 서대문구치소에서 시작했다. 1968년 손 고문이 대학 4학년 때 불온서적을 소지한 혐의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 이씨도 이화여대 독서회 회원으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한명숙 전 총리 등과 독서모임을 하다 체포돼 있었다. 한 달 뒤 서울대 문리대 교정에서 우연히 만난 게 연애로 발전했다.

그들은 7년간의 연애 끝에 1974년 결혼식을 올리며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연애기간에도 손 고문의 민주화운동은 계속됐기 때문에 그들이 보낸 7년간의 연애과정은 평범한 연인들과 사뭇 달랐다. 손 고문이 군대·피신·감옥생활을 하느라 부인 이씨와는 '면회'가 아니면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이씨는 약국을 운영하며 가정을 책임졌다. 이씨의 약국 앞에는 늘 잠복 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때문에 도둑 걱정이 없었다며 지금은 농담처럼 말하지만 이씨는 손 고문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경찰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아기를 안고 취조실로 끌려갔는데 아기가 설사를 앓고 있어 이를 보다 못한 여직원들이 아기를 씻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젊은 수사관은 '이념이 뭔지…'라는 말을 하며, 아기 용품을 잔뜩 사다 줬다고 한다. 이씨는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손 고문의 뒷바라지를 했다.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제1야당 대표를 지낸 손 고문은 아직도 전셋집에서 산다. 그래도 이씨는 손 고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씨는 남편 손 고문에 대해 "경기중·고에서 밴드부와 연극부 활동을 할 만큼 낭만적이고,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유쾌한 사람"이라며 "풍족하진 않아도 남편이 소신대로 열심히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 족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아내 김미경
"남편 뭐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부인인 김미경(49)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서 의사 안하겠다는 남편을 참아준 여자는 얼마나 '대인'일까? 알고 보니 부인 김씨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은 서울대 의대 동창이다. 김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와 삼성서울병원에서 15년간 병리학 교수이자 전문의로 일했다. 그런데 마흔 살이 되던 해 의사가운을 벗어 던지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2002년 워싱턴주립대 법대에 입학해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땄다. 2008년 귀국 후 지금은 서울대 의대에서 연구윤리 등을 강의하고 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남편 못지않은 대단한 스펙이다. 이렇듯 화려한 스펙에도 지금은 안철수의 아내로 더 유명하다.

두 사람은 서울대 재학시절 진료봉사서클에서 만났다. 김씨는 1년 선배인 안 원장이 자신의 공부를 많이 도와줬다고 회상했다. 전에는 기숙사에서 공부하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도서관 김씨 옆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결혼 후 김씨 역시 안 원장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했다. 1995년 안 원장이 회사를 차린 뒤 직원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아지자 자신의 의사 봉급을 건네기도 했다. 1997년 안 원장이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을 때도, 2005년 잘나가던 회사 CEO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을 때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김씨는 남편 안 원장에 대해 "요즘에는 나도 신문 보고 안 원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경우가 많다. 워낙 바빠서 만나기도 힘들다. 남편이 어디 가 있는지 모르면 인터넷을 검색한다"고 말할 정도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두 사람은 무척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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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