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지난달 1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에 위치한 대상베스트코의 매장건물에는 수백 개의 계란이 날아들었다. 건물 외벽은 순식간에 깨진 계란으로 엉망진창이 됐으며, 상황을 지켜보던 일부 대상 관계자들도 계란에 맞는 봉변을 당했다. 대상베스트코는 ‘미원’이라는 조미료로 유명한 대상그룹이 지난 2010년 설립한 종합 식자재 전문 유통회사다. 이날 계란을 던진 이들은 ‘대상 식자재 도매업 진출 저지 수원대책위’ 회원들로 대기업인 대상이 식자재 유통업에까지 진출하면서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5일부터 수원 대상베스트코 매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식자재 유통업 진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독 대상이 중소상인들에게 계란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대상베스트코에 대해 "진출하는 곳마다 아주 난리가 난다. 전북과 강원에서도 지역 상인들이 이미 한바탕 난리를 쳤다. 인천에서는 대상베스트코를 향한 규탄대회가 연일 이어지면서 결국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대상 직원들도 시위라면 이제 이골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상인 '초토화'
대상베스트코가 식자재 유통업에 진출하는 것을 두고 전국이 시끄럽다. 식자재 유통사업에는 이미 CJ프레시웨이, LG아워홈 등 5~6개 대기업이 진출해 있지만 유독 대상을 향해 맹렬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상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난에는 이유가 있다. 기존의 대기업들은 주로 대규모 급식, 프랜차이즈 음식점 같은 기업형 시장에 진출해왔는데 대상은 식자재 마트를 열어 소비자에게 직접 접근하는 방식으로 지역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뛰어난 가격경쟁력은 사실상 영세 중소상인들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대상이 진출하고 나면 인근 식자재 도매납품업이 초토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갈수록 대상을 향한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자 대상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대상 관계자는 "대상베스트코 수원지점은 개인 식자재유통업체가 납품하기 어려운 기업형 프랜차이즈 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 상인들과 마찰은 전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경쟁력 있게 구매한 식자재를 중소식자재 유통업체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해 외식업체의 사업성공을 지원 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측은 얼마 전까지도 대상이 '협력할 소사장님, 식자재 유통업체 사장님을 모시고자 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대상은 이처럼 자사 이름을 숨긴 채 지역 업체를 인수하면서 전국 식자재 마트를 장악해 나간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주변의 시선을 피해 일단 지역 업체 명의로 개점한 후 몇 개월 뒤 '대상베스트코'로 명의를 변경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대전지역의 경우 대상베스트코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고 겨우 1년 만에 중소 도매상인들 매출이 70%가량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다.
연합회 측은 "대상이 저렴한 가격으로 외식업체의 사업성공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지역 도매납품업이 초토화 되고나면 대상은 소매점 납품가격을 당연히 인상할 것"이라며 "음식점 등은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음식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소비자에게 전해질 것이다. 우리 대책위는 이러한 지역경제의 파탄을 막고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베스트코 수원 진출, 중소상인 '분노의 계란투척'
위장폐업, 사명 숨기기, 덤핑 등 수단방법 안 가려
전국유통상인들은 대상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선언했다. 상인들은 "우리가 미원, 고추장 등을 팔아준 탓에 대상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배은망덕하게 중소상인들을 고사시키려고 한다"며 "최소한의 기업윤리를 저버린 대상으로 인해 지역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대상은 식자재 유통업 진출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고도 대상그룹이 대상베스트코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식자재 유통업은 식당을 대상으로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주방기구까지 모든 식자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식자재 유통업의 국내 시장 규모는 20조 원에 달한다. 식자재 시장은 연평균 10%씩 성장하는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외식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식자재 유통사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채 3%도 안 되는 상황이다. 나머지 97%는 대부분 중소 식자재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대상그룹 입장에선 그야말로 손쉬운 먹잇감인 것이다.
반면 대기업의 식자재 유통시장 진출에 대해 찬성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전국 외식업체는 약 58만개로 이들 대부분은 식당경영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식재료 위생 불안의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매출액의 30% 가량을 식자재로 구매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부담과 경영 악화로 빈번한 휴·폐업이 이뤄져 외식시장의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하고 있다"며 "영세한 국내 외식시장의 환경을 개선하고 앞으로 국내에 진출할 외국 식자재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대기업들의 진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따라서 최근에는 대기업의 진출을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복잡한 '상생의 방정식'을 풀어내야만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20일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개점한 대상베스트코 단구점은 복잡한 상생의 방정식을 풀어낸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복잡한 '상생 방정식'
이곳 역시 개점을 앞두고 지역상인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에 따라 대상베스트코 강원지사는 강원원주도소매유통사업협동조합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상생방안에 합의했다. 합의된 사항에 따르면 단구점은 지역내 중소상인들이 자생력을 확보할 때까지 매주 일요일 문을 닫기로 했으며, 영업시간도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제한했다. 당초 태장동에 오픈하기로 했던 추가 출점 계획도 취소했다.
이밖에도 배송 판매를 금지하고 원주권 영업규모를 제한하기로 했으며, 전단행사는 월 1회로 제한하고 행사상품에 대해서는 중소상인들에게 염가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대상은 앞으로도 원주유통조합과 매 분기별 상생협의회를 개최해 지속적으로 상생협력 방안을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식자재 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적용되지 않아 마땅한 규제방법도 없는 실정이다. 차라리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면 상생을 통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양 측 모두가 대화를 통해 상생의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