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 ‘전라도 맛기행’ - 무안

“세발낙지 한번 맛보러 오시랑께요~”

[일요시사= 박상미 기자]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신선한 먹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가을, 입이 호강하는 것은 비단 말(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천고아(我)비’라는 우스갯소리가 말해주듯 먹거리 여행의 적기는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다. 음식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라도 중에서도 무안은 먹거리 여행지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별미의 보고(寶庫)다.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연일 이어지는 전남 무안으로 맛기행을 떠나보자


전라남도 무안군에는 다섯 가지 별미가 있다. 세발낙지·양파한우·명산 장어구이·사창 돼지짚불구이·도리포 숭어회가 바로 그 유명한 ‘무안5미’다. 전국 최대 양파 산지이기에 무안 어느 식당에서든 차려내는 ‘양파김치’도 5미에 질 수 없으니 ‘무안6미’에 들어도 손색없다. 그 중에서도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예의 주인공은 그 이름도 유명한 무안 ‘세발낙지’다.

함평만(일명 함해만)에 펼쳐진 현경면과 해제면 일원의 무안 갯벌은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국내 연안습지로는 전남 순천만 갯벌에 이어 두 번째다. 240여 종의 무척추동물, 36종의 유용 수산생물, 79종의 식물성 플랑크톤, 38종의 조류, 45종의 염생식물이 무안 갯벌의 주인이다. 현경면 해운리에서 해제면 송석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무안 갯벌을 줄기차게 만날 수 있다.

생명의 보물창고
생생한 무안 갯벌

특히 이 갯벌에서 잡히는 낙지는 최상의 별미 대접을 받는다.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세발낙지는 무안의 갯벌에서 잡히는 것으로 그 맛이 뛰어나다. 여수, 장흥, 고흥 등 남해안 지역에서는 통발어업으로 낙지를 잡는데 비해 무안에서는 주낙(줄낚시)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어민들이 삽자루를 메고 갯벌로 들어가서 잡는 낙지가 최상급이다. 계절적으로 보면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철에 잡히는 낙지가 맛이 가장 좋다. 겨울이면 수확량이 줄어 값이 비싸진다.

무안읍 버스터미널 안쪽 골목에 낙지를 판매하는 노점상과 점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거리를 일러 ‘무안낙지골목’이라고 하는데, 약 2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이곳의 낙지는 식당이나 가정으로 팔려나가 낙지볶음, 낙지비빔밥, 낙지회무침, 낙지연포탕, 낙지호롱, 기절낙지 등 다양한 낙지 요리로 변신한다. 일부 낙지 전문 식당들은 이 골목시장을 거치지 않고 낙지잡이꾼들로부터 직접 낙지를 사들인다.

낙지비빔밥은 낙지를 재료로 한 요리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서민 음식이다. 낙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제 값 주고 많이 먹기 어려운 서민들로서는 낙지비빔밥이라도 감지덕지다. 토막 낸 낙지 한 주먹을 올리고 콩나물이며 시금치 등을 얹어 보기 좋게 색을 낸 다음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낙지비빔밥. 해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낙지비빔밥 앞에선 전주비빔밥이나 진주비빔밥은 명함도 못 내민다며 극찬을 쏟아낸다.

낙지호롱서 기절낙지까지
낙지 요리의 진수

낙지회무침도 요리 과정이 매우 간편하다. 살짝 데친 세발낙지를 기본 재료로 삼아 양파, 오이, 대파, 당근, 풋고추 등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로 버무리면 낙지회무침이 완성된다. 낙지회무침은 한 번 먹어보면 그 맛을 잊지 못 해 ‘매운맛이 집 나간 입맛을 불러들인다’고도 불리는 별미다. 이 맛이 너무 자극적이라서 싫다면 낙지물회도 좋다. 새콤달콤한 육수에 데친 낙지를 넣고 얼음 몇 개 동동 띄우면 시원한 낙지물회가 완성된다. 간밤의 음주로 지친 속을 달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낙지연포탕은 특별한 양념 없이 낙지를 맑은 국물에 끓여낸 탕을 말한다. 연포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국물이 끓으면 낙지가 날것일 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져서 연포탕이라고 부른다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데 이외에도 익은 낙지의 발이 곱게 퍼져나간 모습이 연꽃을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 두어 가지 설이 따라다닌다. 이름이야 어떻든 낙지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낙지연포탕을 맛본 사람들은 환상의 맛을 경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낙지호롱은 조금 독특한 과정을 거치는 요리다. 만들 때 나무젓가락이 꼭 필요하다.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만 다음 불에 구운 뒤 깨소금이나 쪽파를 뿌려 상에 낸다. 머리부터든, 다리부터든 편한 대로 훑어서 잘근잘근 씹어 먹는데 이 또한 넋을 빼앗는 맛이다.

돌돌 말아 잘근잘근
제사음식 낙지호롱

옛날 이 지방에서는 낙지호롱을 제사상에도 올렸다. 뼈 없는 것이 어째 제사상에 오르느냐고? 그래서 호롱을 이용한다. 호롱은 볏짚의 전라도 사투리. 몇 가닥 뭉친 볏짚은 낙지의 뼈가 되었다. 볏짚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나무젓가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절낙지 또한 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미의 반열에 든다. 말 그대로 기절한 낙지를 먹는 것이다. 낙지를 어떻게 기절시킬까? 보통 산낙지를 씻을 때 바닷물을 사용하지만 기절낙지를 만들려면 민물을 사용한다. 머리(실은 몸통)를 떼어낸 낙지 다리 부위를 민물에 씻으면 낙지는 기절한 듯 꿈틀거리지 못한다. 먹물이 들어 있는 머리는 잘 구워서 기절 상태의 다리와 함께 손님상에 낸다. 자, 이제 낙지를 살릴 차례. 젓가락으로 낙지 다리를 집어 배, 양파,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비법 양념에 찍는 순간, 낙지 다리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산낙지보다는 움직임이 덜 활발하고 빨판의 힘도 약하지만, 접시 위에서 꼼짝 않고 있던 낙지 다리가 용을 쓰니 그게 바로 기절낙지다.

이밖에 지방에 따라 갈비와 낙지를 함께 넣어 만든 갈낙탕, 불고기와 낙지를 넣은 불낙전골, 낙지와 각종 채소를 한데 넣어 끓이는 낙지전골, 수제비에 낙지를 넣은 낙지수제비 등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먹거리 외에도 낙지를 포함한 갯벌생물들의 세계를 한자리에서 공부하기 좋은 학습장이 바로 무안생태갯벌센터다. 전시관 안의 초대형 낙지 조형물은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절대 스쳐지나가서는 안 될 포토존으로 인기만점이다. 칠면초 등이 자라는 생태체험장과 실내전시관을 모두 관람한 다음 학예연구사로부터 낙지의 습성에 대해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갯벌생물을 보여주마
생태갯벌센터

“낙지는 칠게, 조개, 고둥, 작은 물고기, 갯지렁이 등을 먹으며 지능이 높아 갯벌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습니다. 낙지는 돌 틈이나 뻘 속에서 굴을 파고 숨어 있다가 다리를 이용해서 먹이를 잡아먹어요. 사람이 다리를 잡아당기면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듯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1년 중 낙지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계절은 언제일까? 바로 음력 9월15일(중구사리) 전후다. 그렇다면 한 달 중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시기는? 그믐에는 어획량이 거의 없고 보름을 전후하여 어획량이 많다. 낙지는 야행성 생물이기 때문에 보름달빛을 받으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무안의 여러 어촌체험마을에서는 낙지잡이를 포함한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이들 마을은 갯벌 체험, 어패류 잡기 체험, 어장 체험, 갯바위낚시 체험 등을 바탕으로 계절에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체험과 관련된 도구는 모두 마을에서 지급하지만 개인용 세면도구와 함께 두꺼운 양말은 참가자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갯벌 체험은 하루 두 차례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하다. 매일 시간이 바뀌므로 사전에 체험 가능 여부와 가능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생생한 어촌 체험
송계마을·감풀마을

송계마을은 서해안에서도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도리포와 가깝다. 썰물 때라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섬으로 이동해서 갯벌 체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감풀마을은 갯벌을 달리는 트랙터를 타고 마을 앞바다로 나가는 갯벌 체험과 마을회관 주변에서 진행되는 농촌 체험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감풀마을에서는 야간에 마을 앞 갯벌에서 횃불을 이용해 게를 잡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송계마을과 감풀마을 주민들은 ‘맨손어업’의 달인들이다. 낙지며 굴을 담는 통 하나에 삽자루 하나면 그만이니 맨손어업의 달인이라는 말이 딱 맞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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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