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재계 리더’ 회장님이 사는 집 -하나투어 박상환

곡성서 태어나 평창동 터줏대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세훈 기자 = 일과의 시작과 끝에는 ‘집’이 있다. 잠자리를 넘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 특히 의식주 가운데 가장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많은 환상이 있다. 재계를 이끄는 리더의 보금자리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들은 어디서 재충전할까. <일요시사>서 확인했다.
 

하나투어는 1993년 설립된 여행사다. 2000년 여행사 가운데 가장 먼저 코스닥에 상장했고 2011년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진입했다. 하나투어는 온·오프라인 대리점과 쇼핑몰을 이용해 다양한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여행 홀세일러다.

승부사

하나투어는 홀세일 여행사다. 홀세일 여행사는 상품을 기획하지만 고객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하나투어의 상품판매 시스템은 반드시 대리점을 통해 예약하도록 돼있다. 이 판매 방식의 최대 장점은 여행자를 모으기 쉽다는 것이다. 

패키지여행 사업의 관건은 기획한 상품의 최초 구성인원을 모으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상품구매자가 나타나야 기획한 상품을 진행할 수 있다. 홀세일 여행사의 경우 전국 각지에 있는 대리점들이 예약을 받기 때문에 최소 출발인원을 쉽게 모을 수 있다.

국내 홀세일 여행사로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있다. 여행상품을 만들고 고객과 직접 거래하는 직판여행사는 롯데관광, 자유투어, 한진관광 같은 회사가 있다.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은 국내 여행업계서 처음으로 홀세일 영업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박 회장은 1957년 9월18일 생으로 전남 곡성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서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경희대학교서 호텔관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당시 국내서 가장 큰 여행사인 고려여행사에 입사했다.

이후 1988년 여행사 선후배들과 국일여행사를 설립해 기획관리이사를 맡았다. 국일여행사는 모두투어의 전신이다. 공동 창업자인 우종웅 현 모두투어 회장과 코스닥 시장 상장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여 1993년 국일여행사에서 독립했다. 

박 회장은 국진여행사를 차려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1996년 국진여행사는 이름을 하나투어로 고치고 2008년 하나투어의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박 회장이 회사명을 하나투어라고 정한 까닭은 임직원들과 하나가 되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하나투어로 이름을 바꾸고 1년 뒤 IMF사태가 터졌다. 당시 국내 여행산업시장은 이전에 비해 95%가량 수입이 줄었다. 

그럼에도 하나투어는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대신 직원들의 임금을 줄이고 함께 버텨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박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여행 산업은 경제가 좋아지면 수요가 금세 살아나지만 인재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업은 사람이 재산이다. 도매 여행업은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대리점과 유대관계가 쌓이지 않으면 못한다. 직원 180명을 그대로 끌고 가는 대신 월급은 30만원씩만 받기로 했다. 보유한 현금 2억원으로 6개월만 버텨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직원과 똘똘 뭉쳐 힘든 시간을 견뎌낸 하나투어는 IMF의 파장이 일단락되자 늘어난 여행수요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현재 하나투어는 여행 업계서 가장 성공한 기업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최고 부촌으로 유명…단독주택 거주
초호화 저택 단지…쟁쟁한 이웃사촌

비즈니스맨으로 시작해 여행업계의 거목이 된 박상환 회장의 집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박 회장은 평창동에 있는 단독주택에 거주한다. 최근 거래된 평창동의 대형 단독주택 매매가는 25억∼30억원 수준이다. 

평창동 일대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0대 초반부터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그 밖에 부유한 연예인들이나 예술가가 평창동으로 모여들어 평창동 일대는 부촌으로 유명세를 탔다.
 

당시 땅값은 3.3m2당 30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했지만 현재는 1600만원 수준이다. 강남의 고급 빌라들과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대신 평창동처럼 부지가 넓은 곳은 수요에 따라 초호화 저택으로 꾸밀 수 있다. 

평창동서 가장 비싼집으로 알려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저택은 100억원 정도라고 전해진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평창동 일대는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이다. 은평구 북부서 성북구와 강북구 쪽으로 가로질러 가기 위해서는 평창동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해당구간을 지나는 지하철 노선이 없고 버스 노선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홍제동서 정릉으로 이어지는 구기터널과 북악터널 인근에는 출퇴근 시간마다 정체가 심하다. 이 지역은 경사가 매우 심해 지하철을 건설하기에 불리한 조건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홍제역이다. 홍제역 까지는 3km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면 홍제역까지 25분가량 소요된다.

평창동은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가나아트센터, 화정박물관, 갤러리세줄, 토탈미술관 같은 여러 미술관을 비롯해 문학 센터가 즐비하다. 과거에 서울 유명 갤러리는 인사동이 대표적이었으나 1980년대 영향력 있는 여러 화랑들이 평창동으로 옮겨왔고 평창동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1988년 평창동으로 옮긴 가나아트갤러리는 올해 이전 30주기를 맞는다.

수십억 호가

평창동에는 다른 부촌에 비해 유명 인사들과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재벌가 인사들 중에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부인 노소영 관장이 대표적이다. 연예인들로는 서태지, 윤종신, 고두심, 이선균, 김혜수, 윤여정, 김동완, 노주현, 이혜숙씨 등이 평창동에 살고 있다. 

이 밖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김종인 전 대표, 신경숙 작가, 박준규 전 국회의장, 손석희 JTBC 사장, 조항리 KBS 아나운서의 자택도 평창동에 있다. 얼마 전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평창동에 살았다.


<kimseh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휴가철 여행 선호도 1위는?


올 여름 여행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해외도시는 방콕으로 조사됐다. 하나투어는 2018년 국내 여행객들이 휴가철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순위를 지난 9일 공개했다. 

방콕은 전체의 약 9%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2위로는 7.8%를 차지한 괌, 3위는 베트남 다낭(7%)이 차지했다. 이 밖에 필리핀 세부(6.6%), 일본 도쿄(5.3%), 홍콩(5%), 일본 후쿠오카(4.8%), 일본 오사카(4.5%), 싱가포르(4.1%), 하와이(3.3%) 등이 순위에 포함됐다. 

아시아 여행의 성지로 불리는 태국 방콕은 매년 1500만명 이상 여행객이 방문한다. 다채로운 볼거리와 저렴한 물가가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도시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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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