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여행-대한민국 빛낸 위인의 생가 찾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즈넉한 ‘고택’을 찾아서

자연 한 구석에 고스란히 자리한 고택(古宅)에는 어떤 강요도 없다. 초대장이 없어도 생가는 들어서는 이들 모두를 반긴다. 잠시 머물고 둘러보는 동안 ‘됨됨이’이를 곱씹게 하는 따스함이 하나 둘 가슴으로 들어온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가을에 대한민국을 빛낸 위인들의 생가를 찾아 잔잔한 감동과 교육이 충만한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서늘한 바람 솔솔, 10월에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잔잔한 감동과 아이들 교육에도 좋은 위인들의 생가


영원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생가
영원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1895년 양력 10월8일 새벽 을미사변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가 출생해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숙종 13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집의 구조를 보면 넓은 바깥마당에서 대문을 지나 ㅡ자형 행랑채가 있고,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ㅁ자형을 이루며, 그 옆으로 독립된 ㅡ자형 별당이 있다. 안채는 14칸짜리 민도리집이고 8칸짜리 팔작지붕인 본채 한쪽에 6칸짜리 맞배지붕 날개채가 붙어 ㄱ자형을 이룬다. 본채는 전면에 툇간이 있는 5량구조이며, 날개채는 3량구조로 이루어졌다.



조선말 선비 가옥의 진수 가람 이병기 생가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 1968년)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 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遇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다.



진영 봉하마을과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가
경남 진영 봉하마을은 진영읍내에서 동부쪽으로 4.5km 떨어진 봉화산(해발 140m)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봉화산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마을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봉화산에는 봉화사란 절과 옛날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도둑돌(봉화산 동쪽)과 여우가 엎드려서 꼬리를 돌아본다하여 복고고미형의 야시골(봉화산 서쪽)이란 두개의 유명한 골짜기가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일렬로 늘어선 슬레이트 지붕의 벽돌집이다. 초라한 집이지만 방문객들에게 이곳의 모든 것은 진귀하다. 흙·돌·물 등은 방문객들의 최고 인기품이다. 방문객 중 일부는 마당의 돌멩이와 흙을 비닐봉지에 담아가기도 한다. 또 대통령을 배출한 곳의 물은 특별하다는 생각에 물을 떠가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상 실존 민중영웅 홍길동 생가 
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중영웅이다.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며 허구적 소설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는 반역자 또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설에서는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활빈당을 이끌고, 이상국인 일본 오끼나와의 율도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역사상 홍길동은 조선 초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신분이 첩의 자식이라 관리등용을 제한하는 국법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다. 좌절과 울분 속에서 출가하여 양반으로부터 차별받던 소외된 민중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한 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봉건적 조선왕조의 핍박을 받던 중 관군에 체포되어 남해로 유배되었으나 탈출하여 무리를 이끌고 오끼나와로 진출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에서처럼 민중을 대변하는 민권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동안 홍길동의 역사적 실체가 왜곡되어 왔으나,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홍길동연구팀(장성군, 연세대학교 국학연구회, 전남매일, 유구대학, 오끼나와관광국, 석원도문화원)의 3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그 베일에 쌓인 비밀이 밝혀졌다.
조선에서 뱃길로 3000리나 떨어진 일본 최남단의 섬 오끼나와에서 후반부 삶을 살았던 그곳에는 민권운동의 선구자 홍길동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이러한 홍길동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학술연구의 성과가 총체적으로 정리되었으며 500여년 전의 일본과 한국간의 교류사를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장성군은 홍길동 생가터 주변에 1만8843m²(57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생가터 발굴 작업 및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가를 복원하였고 2004년 5월3일 홍길동 전시관을 개관하여 새로운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진주 남강의 충절녀 의암 논개 생가
논개는 선조 7년(1575년 9월3일)에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누란지위 지경에 처하자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진하여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와 부군(夫君)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해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의 정신을 기리고자 6만6116m²(2만여평)의 부지에 50억원을 투자한 논개생가 복원사업이 2000년 9월 완료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생가지가 있는 지역은 덕유산, 오동제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장안산 군립공원과 지지계곡, 동화댐을 연계한 등산코스가 열려 있어 논개 생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으며 연중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불교 현대화 기여한 시인 월하 김달진 생가
이 집은 월하 김달진 시인이 1907년 2월4일에 태어나 자란 곳이다. 시인은 1920년 이곳 계광학교를 마친 뒤, 서울과 향리에서 수학하다 출가하여 1934년 금상산 유점사(愉岾寺)에서 득도하였고, 1939년 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시인은 1929년 <문예공론>에 <잡영수곡(雜泳數曲)>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서정주,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41년부터 광복 조국을 기다리며 북간도에 머물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뒤 청년문학가협회 부회장, ‘죽순’ 동인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활동한 시인은 1948년 향리로 돌아와 진해중학교, 해군사관학교, 남면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2년부터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의 역경사업(譯經事業)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고승들의 문집번역 뿐만 아니라 불교저술에 힘써 불교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1940년 첫 시집 <청시(靑枾)>와 1984년 시선집 <올빼미의 노래>를 포함하여 시인이 남긴 방대한 저술은 1997년부터 <김달진전집> 열 아홉 권에 담겨 나오고 있다.
무욕과 탈속의 경지에 다다른 시인이며, 자유자재한 고승이었을 뿐 아니라 향리에 존경받는 교육자였던 시인은 1989년 6월7일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부터 ‘김달진문학상’이 서울에서 시행됐으며, 1991년에는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부터는 ‘김달진문학제’가 진해에서 개최되어 시인의 문학과 삶을 기리고 있다.



향수의 실개천 만날 수  있는 정지용 생가
지난 1996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관리되고 있는 정지용 생가는 충북 옥천군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향으로 청석교 건너에 위치한다.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면으로 길을 잡아 청석교를 건너면 <향수>를 새겨 놓은 시비와 생가 안내판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이곳이 정지용 생가이며,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여전히 <향수>의 서두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그 모습은 변한지 오래이지만 흐르는 물은 예전과 같아 맑기만 하다.
정지용 생가는 방문을 항상 열어두어 찾는 이에게 그의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였음을 가구(家具)로 알리고 있다. 또한, 시선가는 곳 어디마다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향수>의 시어 따라 방안에 배치된 소품 질화로와 등잔은 자연스럽게 <향수>를 다시금 음미하게 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에는 두 개의 사립문이 있다. 하나면 족할 것을 두 개씩이나 문을 낸 뜻은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또는 한 개의 문으로 드나드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또 생가의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하니 물레방아 쪽 사립문은 텃밭 드나드는 용도로 원래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엌 문 옆을 본다면 돌절구, 나무절구와 공이가 놓여있는 자리 언저리, 이곳이 정지용 생가임을 알리는 표시판을 또 하나 만날 수 있다. 이 표시판은 정지용의 모습과 함께 그의 태어난 연도, 날짜, 생가가 언제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지어졌다는 내용을 동판에 돋을새김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 저자 이효석 생가터
이효석 문화마을은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무대이며, 가산 이효석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지난 1990년도에 문화관광부로부터 ‘전국 제1호 문화마을’로 지정되었으며 이곳 효석문화마을을 배경으로 해마다 ‘메밀꽃 필 무렵 효석문화제’가 매년 8월 말이나 9월 초에 열린다. 이효석 문화마을 안에는 이효석 생가터, 물레방앗간, 충주집, 가산공원, 이효석기념관, 메밀 향토자료관 등이 있다.
이효석 생가터는 강원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으로 생가의 원래 모습은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큰 엄나무 두 그루가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기역자 모양으로 지어진 함석집이다.
이효석은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273번지(현재 창동 4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아버지 이시후와 어머니 강홍경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3명의 누이(이정원, 이정순, 이계숙)와 양자로 맞은 동생(이학순)이 있었다.
이효석의 부인 이경원은 신여성으로 화가 지망생이었다. 이효석과 이경원은 2남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차남인 영주는 1940년 세상을 떠나고 현재 1남2녀만 생존해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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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북풍 공작’ 국방정보본부 방관 내막

‘드론 북풍 공작’ 국방정보본부 방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드론사는 합참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어떤 훈련이나 작전을 진행할 때는 김명수 합참의장이 허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에서 김 의장은 배제됐다. 군 지휘 체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드론사의 평양 무인기 작전은 사실상 대북 작전이다. 사전에 공작 플랜을 짜야 한다. 군 정보본부가 알면서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팀은 드론작전사령부(이하 드론사)의 북한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에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가 가담한 정황을 확인했다. 사실상 ‘북풍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사가 알았다면 상급 기관인 국방정보본부가 알았어야 한다. 다만 특검팀은 내란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이 계획을 주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초 계획·실행 특검팀은 최근 국방과학연구소(이하 국과연) 관계자로부터 “지난해 여름 정보사에서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드론사에서도 비슷한 문의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국과연 관계자는 “정보사에서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며 “드론사에도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고 진술했다. 정보사와 드론사가 국과연에 문의한 시기는 드론사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과 관련해 대통령실 보고용 ‘V(대통령) 보고서’를 기획 단계부터 작성하던 시기와 겹친다. 특검팀은 드론사가 지난해 6월 드론을 북한으로 날리기 위한 기획팀을 만들고, 7월에는 V 보고서를 작성한 후 8월 이후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고 판단한다. 국과연은 해당 드론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고, 드론사가 내부에 무인기를 개발하는 별도의 부서가 있어 자체적으로 전단통을 부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드론 등 무인기에 대해 정보사가 전단통 부착을 문의한 게 이례적이라고 보고 ‘북풍 유도’를 목적으로 드론을 날리기 위해 드론사와 정보사가 정보를 교환하는 등 소통한 게 아닌지 수사 중이다. 국과연은 국방·안보에 사용되는 드론 개발 등을 담당한다. 무인기에 전단통을 부착한 후 일명 ‘대북 삐라’를 넣으면 북한을 자극해 공격을 유도할 수 있다.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이뤄진 지난해 10월은 남북 긴장 국면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다. 북한은 2022년 12월 무인기 5대를 수도권 일대 영공에 침투시켰다. 그중 1대는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일대 비행금지구역 안에 진입했다. 2024년 5월부터 11월에는 북한이 오물 풍선 여러 개를 남한에 살포하기도 했다. 드론·정보사, 국과연에 무인기 전단통 수차례 문의 안보실 지시로 비밀리 기획 ‘김용현 라인’만 참여 윤 전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오물 풍선 도발을 겨냥해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합참 지휘부는 대응 작전과 관련해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에서도 오물 풍선의 자유 낙하를 기다리는 군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휴전선 상공에서 풍선을 격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당시 “북한이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다. 다양한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기조에 따라 드론사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우선 특검팀은 드론사에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한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수사 중이다. 군 안팎에선 ‘김 전 장관→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쳐 드론사에 지시가 내려갔을 가능성과, 김 전 장관이 김 의장이나 이 본부장을 건너뛰고 드론사에 직접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으로 나눠 수사하고 있다. 합참과 방첩사령부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용대 전 드론사령관은 무인기 북파 시점을 전후해 이 본부장과 김 의장을 잇달아 면담했다. 특검팀은 “2024년 6월 드론사 방첩대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군 현역 장교의 증언도 확보했다. 당시 드론사 방첩대 지휘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맡았다. 드론사는 적 무인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에 출범한 육·해·공군 및 해병대 합동 전투부대로, 국군조직법에 따라 합참의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은밀하게 치밀한 준비 그러나 특검팀에 출석한 군 관계자는 “모든 군 작전은 상급 기관인 합동참모본부의 지시를 받는데 무인기 침투 작전은 대통령실 안보실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며 “북한이 무인기 추락 사실을 공개한 날 작전을 수행한 드론사령부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격려금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도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이 V(대통령)의 지시라며 국가안보실 직통으로 무인기 침투 작전을 하달했다”는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당 외환유치진상조사단은 올해 초부터 드론사가(歌) ▲무인기 기종 재고 현황 ▲평양에 드론이 침투한 지난해 10월 드론사 상황 일지 ▲삐라통을 제작할 수 있는 3D 프린터 보유 여부 등의 자료 제출에 성실히 응하고, 수사기관이 김 사령관과 핵심 참모들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특검팀은 외환 의혹과 관련해서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연결고리’를 수사할 방침이다.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 군부대까지 이어지는 지휘 체계 전체가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검팀이 김 전 장관을 추가 구속하고, 군검찰과 협조해 여 전 사령관·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추가 구속한 것도 외환 수사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노 전 사령관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노상원 수첩’의 경우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 공격 유도’ 등 이른바 ‘북풍’ 준비 정황이 담겨있어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비선 조직을 활용해 북한을 자극해 대남 도발을 유도했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는 게 정보기관 간부들의 설명이다. 김봉규 정보사 대령의 “(노씨가)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다. 언론에 특별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는 경찰 진술 등도 특검으로 송부됐다.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에 정보사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에 대한 특검팀의 수사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달 7일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원천희는 침묵 중 특검팀은 이날 합참 정보본부를 압수수색하면서, 무인기 관련 기록을 임의 제출 형식으로 제공받았다. 특검팀은 군검찰로부터 원 본부장의 또 다른 합참 정보본부장(중장) 사건도 이첩받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 본부장은 지난해 12월2일 당시 김 전 장관, 문 전 사령관과 만나 계엄을 사전 모의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날 원 본부장은 윤 전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이자 다른 정보기관 수장인 박종선 777사령관과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특검팀은 지난달 25일 정보사도 방문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정보사 장교들의 주몽골북한대사관 접촉 시도와 문 전 사령관의 대만 출장 등이 계엄 명분을 쌓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계엄 선포에 대한 지지 선언을 부탁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외환죄의 구성 요건인 ‘외국과의 통모’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이 무인기에 직접 개입한 정황도 확인된다.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한 육군본부 관계 A씨는 노 전 사령관에게 12·3 내란 사태 전날인 지난해 12월2일 오후 5시10분께 “XXX에서 하는 것은 전자전 무인기가 아닙니다. 최근 떨어진 헤론 2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20)26년, 27년도에 들어옵니다”라며 “정작부(정보작전참모부)에서 하는 전자전 무인기는 국정원에서 내년도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 정보위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였는데 국정원에서 반영을 안 하고 내년 초에 갈 건지 말 건지 국정원에서 결정한다고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육군이 도입한 이스라엘제 헤론 정찰기는 총 3대다. 한 대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위치정보시스템(GPS) 전파 교란으로 추락했고 다른 한 대는 카메라 고장으로 국외에서 정비 중이었다. 특검 수사 대상 원, 내란 하루 전 김에 직보 의혹 군 안팎서 “사실상 내란 부역·방관” 비판 쇄도 노 전 사령관은 이 직후 누군가와 통화하며 “아우야, 그러면 전자전 무인기가 27년에 2대가 들어온다는 거야? 27년에 1대, 28년이나 29년에 1대, 이 얘기야?”라고 물었다. A씨는 “27년에 1대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2년 후에 또 1대가 (들어온다)”라고 답했다. 노 전 사령관이 “예산 반영을 왜 하나도 안 했지? 그걸 모르겠네. 국정원에서 안 했다는 거잖아”라고 묻자 A씨는 “거기 정보처장 얘기로는 뭐 특활비 이런 것까지 (삭감됐다)”라고 했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은 “국정원에서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이유는 추정컨대 특활비 같은 것이 국회에서 모두 잘리고 국정원 예산이 대폭 삭감이 되다 보니 국정원 내부에서도 예산 문제로 편성을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라며 음성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군수업체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노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건다. B씨는 “(무인기 예산이) 반영이 안 됐다는 거는 지금 확정이 안 됐다는 이야긴가요, 아니면 안 하기로 했다는 건지 모르겠네요”라고 물었다. 노 전 사령관은 “반영이 안 됐답니다. 내년도 예산에”라며 “정작부에서 추정하는 것은 특활비나 뭐 이런 거를 깎아내니까 국회에서. 예산이 지들이 (국정)원에서 부족하니까 그거를 결정을 못하고 만약에 내년 초에 이거를 할지 안 할지 다시 판단해서 한다면 27년에 들어오고 또 하나는 29년에 들어오고 이런 식이에요”라고 했다. B씨는 “내년도 예산은 일단 배정은 되어있단 말이에요, 110억이. 그거면 계약은 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예산을 배정 안 해버리면 (어렵겠다)”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내란진상조사단 회의에서 “2022년 말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됐다”고 밝힌 바 있다. 노상원 주도? 당시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 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며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보통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에서 무기 체계 등 전력사업을 총괄 운영하는데, 이번 사업은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맡는다”며 “(2022년)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 내란으로 기소된 여인형”이라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