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여행-대한민국 빛낸 위인의 생가 찾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즈넉한 ‘고택’을 찾아서

자연 한 구석에 고스란히 자리한 고택(古宅)에는 어떤 강요도 없다. 초대장이 없어도 생가는 들어서는 이들 모두를 반긴다. 잠시 머물고 둘러보는 동안 ‘됨됨이’이를 곱씹게 하는 따스함이 하나 둘 가슴으로 들어온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가을에 대한민국을 빛낸 위인들의 생가를 찾아 잔잔한 감동과 교육이 충만한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서늘한 바람 솔솔, 10월에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잔잔한 감동과 아이들 교육에도 좋은 위인들의 생가


영원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생가
영원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1895년 양력 10월8일 새벽 을미사변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가 출생해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숙종 13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집의 구조를 보면 넓은 바깥마당에서 대문을 지나 ㅡ자형 행랑채가 있고,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ㅁ자형을 이루며, 그 옆으로 독립된 ㅡ자형 별당이 있다. 안채는 14칸짜리 민도리집이고 8칸짜리 팔작지붕인 본채 한쪽에 6칸짜리 맞배지붕 날개채가 붙어 ㄱ자형을 이룬다. 본채는 전면에 툇간이 있는 5량구조이며, 날개채는 3량구조로 이루어졌다.



조선말 선비 가옥의 진수 가람 이병기 생가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 1968년)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 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遇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다.



진영 봉하마을과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가
경남 진영 봉하마을은 진영읍내에서 동부쪽으로 4.5km 떨어진 봉화산(해발 140m)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봉화산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마을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봉화산에는 봉화사란 절과 옛날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도둑돌(봉화산 동쪽)과 여우가 엎드려서 꼬리를 돌아본다하여 복고고미형의 야시골(봉화산 서쪽)이란 두개의 유명한 골짜기가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일렬로 늘어선 슬레이트 지붕의 벽돌집이다. 초라한 집이지만 방문객들에게 이곳의 모든 것은 진귀하다. 흙·돌·물 등은 방문객들의 최고 인기품이다. 방문객 중 일부는 마당의 돌멩이와 흙을 비닐봉지에 담아가기도 한다. 또 대통령을 배출한 곳의 물은 특별하다는 생각에 물을 떠가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상 실존 민중영웅 홍길동 생가 
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중영웅이다.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며 허구적 소설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는 반역자 또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설에서는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활빈당을 이끌고, 이상국인 일본 오끼나와의 율도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역사상 홍길동은 조선 초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신분이 첩의 자식이라 관리등용을 제한하는 국법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다. 좌절과 울분 속에서 출가하여 양반으로부터 차별받던 소외된 민중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한 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봉건적 조선왕조의 핍박을 받던 중 관군에 체포되어 남해로 유배되었으나 탈출하여 무리를 이끌고 오끼나와로 진출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에서처럼 민중을 대변하는 민권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동안 홍길동의 역사적 실체가 왜곡되어 왔으나,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홍길동연구팀(장성군, 연세대학교 국학연구회, 전남매일, 유구대학, 오끼나와관광국, 석원도문화원)의 3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그 베일에 쌓인 비밀이 밝혀졌다.
조선에서 뱃길로 3000리나 떨어진 일본 최남단의 섬 오끼나와에서 후반부 삶을 살았던 그곳에는 민권운동의 선구자 홍길동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이러한 홍길동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학술연구의 성과가 총체적으로 정리되었으며 500여년 전의 일본과 한국간의 교류사를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장성군은 홍길동 생가터 주변에 1만8843m²(57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생가터 발굴 작업 및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가를 복원하였고 2004년 5월3일 홍길동 전시관을 개관하여 새로운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진주 남강의 충절녀 의암 논개 생가
논개는 선조 7년(1575년 9월3일)에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누란지위 지경에 처하자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진하여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와 부군(夫君)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해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의 정신을 기리고자 6만6116m²(2만여평)의 부지에 50억원을 투자한 논개생가 복원사업이 2000년 9월 완료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생가지가 있는 지역은 덕유산, 오동제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장안산 군립공원과 지지계곡, 동화댐을 연계한 등산코스가 열려 있어 논개 생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으며 연중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불교 현대화 기여한 시인 월하 김달진 생가
이 집은 월하 김달진 시인이 1907년 2월4일에 태어나 자란 곳이다. 시인은 1920년 이곳 계광학교를 마친 뒤, 서울과 향리에서 수학하다 출가하여 1934년 금상산 유점사(愉岾寺)에서 득도하였고, 1939년 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시인은 1929년 <문예공론>에 <잡영수곡(雜泳數曲)>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서정주,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41년부터 광복 조국을 기다리며 북간도에 머물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뒤 청년문학가협회 부회장, ‘죽순’ 동인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활동한 시인은 1948년 향리로 돌아와 진해중학교, 해군사관학교, 남면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2년부터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의 역경사업(譯經事業)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고승들의 문집번역 뿐만 아니라 불교저술에 힘써 불교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1940년 첫 시집 <청시(靑枾)>와 1984년 시선집 <올빼미의 노래>를 포함하여 시인이 남긴 방대한 저술은 1997년부터 <김달진전집> 열 아홉 권에 담겨 나오고 있다.
무욕과 탈속의 경지에 다다른 시인이며, 자유자재한 고승이었을 뿐 아니라 향리에 존경받는 교육자였던 시인은 1989년 6월7일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부터 ‘김달진문학상’이 서울에서 시행됐으며, 1991년에는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부터는 ‘김달진문학제’가 진해에서 개최되어 시인의 문학과 삶을 기리고 있다.



향수의 실개천 만날 수  있는 정지용 생가
지난 1996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관리되고 있는 정지용 생가는 충북 옥천군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향으로 청석교 건너에 위치한다.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면으로 길을 잡아 청석교를 건너면 <향수>를 새겨 놓은 시비와 생가 안내판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이곳이 정지용 생가이며,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여전히 <향수>의 서두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그 모습은 변한지 오래이지만 흐르는 물은 예전과 같아 맑기만 하다.
정지용 생가는 방문을 항상 열어두어 찾는 이에게 그의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였음을 가구(家具)로 알리고 있다. 또한, 시선가는 곳 어디마다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향수>의 시어 따라 방안에 배치된 소품 질화로와 등잔은 자연스럽게 <향수>를 다시금 음미하게 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에는 두 개의 사립문이 있다. 하나면 족할 것을 두 개씩이나 문을 낸 뜻은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또는 한 개의 문으로 드나드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또 생가의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하니 물레방아 쪽 사립문은 텃밭 드나드는 용도로 원래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엌 문 옆을 본다면 돌절구, 나무절구와 공이가 놓여있는 자리 언저리, 이곳이 정지용 생가임을 알리는 표시판을 또 하나 만날 수 있다. 이 표시판은 정지용의 모습과 함께 그의 태어난 연도, 날짜, 생가가 언제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지어졌다는 내용을 동판에 돋을새김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 저자 이효석 생가터
이효석 문화마을은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무대이며, 가산 이효석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지난 1990년도에 문화관광부로부터 ‘전국 제1호 문화마을’로 지정되었으며 이곳 효석문화마을을 배경으로 해마다 ‘메밀꽃 필 무렵 효석문화제’가 매년 8월 말이나 9월 초에 열린다. 이효석 문화마을 안에는 이효석 생가터, 물레방앗간, 충주집, 가산공원, 이효석기념관, 메밀 향토자료관 등이 있다.
이효석 생가터는 강원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으로 생가의 원래 모습은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큰 엄나무 두 그루가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기역자 모양으로 지어진 함석집이다.
이효석은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273번지(현재 창동 4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아버지 이시후와 어머니 강홍경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3명의 누이(이정원, 이정순, 이계숙)와 양자로 맞은 동생(이학순)이 있었다.
이효석의 부인 이경원은 신여성으로 화가 지망생이었다. 이효석과 이경원은 2남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차남인 영주는 1940년 세상을 떠나고 현재 1남2녀만 생존해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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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건축·재개발사업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힌 집단이 수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일종의 ‘팀플레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사업에 투입되다 보니 이권 다툼을 넘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일요시사>가 세운5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마전’을 포착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겉으로만 순항 중? 2023년 기준 세운5구역 PFV의 주주는 이지스자산운용(16.46%), 교보자산신탁(10%), 이지스제454호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31.05%), 이지스네오밸류블라인드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1호(13.95%), 이지스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462호(12.34%) 등으로 구성됐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16.2%)을 가지고 있었으나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에 힘이 붙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대신자산운용은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비 조달에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예정대로 2030년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가 들어서게 된다. 이주 상황도 순조롭다. 세운5구역 PFV는 중구청 주도로 산림동 상공인회와 체결한 3자간 상생 협약을 통해 강제적인 명도와 퇴거 없는 이주를 진행 중이다. 이주와 건축물 철거로 일어날 수 있는 인권 침해, 사회적 갈등을 사전에 최소화하려는 취지로 맺은 협약이다. 지난 3월에는 지역 상인 174명 가운데 172명이 상생 협약에 합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표면상으론 순항하는 듯한 사업의 이면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최소 3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세운5구역 PFV가 설립될 당시 대표이사와 이사로 참여했던 이들을 비롯해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던 관계자들, 이지스자산운용에서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 등이 송사에 휘말려 있다. 구체적으로 ▲손해배상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 등이다. 세운5구역 토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매입가를 둘러싼 갈등은 경찰과 검찰 고발로 시작해 수년간 조사가 이뤄졌다. 일부 고소·고발 건은 결론이 났지만 몇몇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한때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했던 이들이 법정까지 가게 된 시발점은 ‘돈’이다. 이지스자산운용에서 시행사 지분을 매입하고 사업권을 확보하는 데 들인 비용, 세운5구역 PFV가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쓴 비용 등을 합하면 약 480억원에 가까운 돈을 둘러싼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사건의 실체를 알고 싶으면 자금의 흐름을 쫓으라’는 수사의 금언처럼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2018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2018년 8월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은 세운5구역(5-1구역, 5-3구역) 토지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이지스자산운용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금 조달 역할로 이지스자산운용 참여 480억원으로 시행 관련 지분 모두 인수 2019년 1월 염씨가 대표로 있던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 등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연합 등은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이미 체결된 계약을 추후 설립될 특수목적법인(SPC)으로 승계하는 역할 등을 맡았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 등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시행을 위한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주주협약서를 작성했다. 그 결과 ㈜세운5구역 PFV가 설립됐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 17.2%, 이지스펀드 29.9%,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 측이 소유한 지분 비율은 47.1%로 같다. 세운5구역 PFV의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세운5구역 PFV가 설립되기 전인 2019년 1월 연합 등이 오씨, 권씨, 최모씨, 박모씨 등과 공동사업 약정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공동사업 약정서에 따르면 연합 등(공동사업자1)은 사업의 총괄 대표 지위를 갖고 대외 활동 업무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4명(공동사업자2)은 토지 및 건축물 매입 등 사업부지를 확보하는 제반 업무 등을 담당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씨 3% 등으로 나눴다. 4명 가운데 박씨는 세운5구역 PFV 이사로도 참여했다. 다시 말해 공동사업 약정을 맺은 사업자 가운데 연합 대표인 염씨와 공동사업자2의 박씨만 세운5구역 PFV에 이사로 합류했고 오씨와 권씨, 최씨 등 3명은 연합 등과 약정을 체결한 것이다. 2020년 12월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 등은 주주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연합 45%, 이지스자산운용 16.46%, 이지스펀드 28.54%, 생보부동산신탁 10% 등으로 지분 비율이 조정됐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여전히 50대 50 비율을 유지했다. 실제 세운5구역 PFV는 염씨와 박씨 등 연합 측 인사 2명과 이지스자산운용에서 파견 나온 2명으로 이사진을 구성했다. 당시 주주협약서에 기재된 합의 사항에도 ‘세운5-1구역, 5-3구역 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한 사업 이익은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지스펀드가 50 대 50 비율로 수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있다. 법정 공방 검경 수사 주주협약과 공동사업 약정 등으로 틀을 유지하고 있던 구도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은 2021년 1월 경이다. 연합 등은 공동사업 약정으로 묶여 있던 오씨·권씨·최씨·박씨에게 해지를 통보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공동사업 약정에 기재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공동사업자에 손해를 끼쳤고 이 과정에서 신뢰관계가 완전히 깨졌다는 주장이다. 박씨를 제외한 오씨와 권씨, 최씨는 연합 등의 해지 통보에 반발해 “귀사의 이 사건 해지 통보가 여러모로 부당하고 그 의미조차 불명하므로 ‘조합의 해산을 청구한다’는 것인지 ‘귀사들이 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인지’ 여부를 밝혀주시고 기간 내에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탈퇴 의사로 간주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섰다, 연합은 더 나아가 공동사업 약정 해지 통보 9개월 뒤인 2021년 10월 이지스자산운용과 주식매매 예약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연합이 소유한 세운5구역 PFV 지분 전량을 이지스자산운용에 200억원에 매도한다는 내용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증거금 명목으로 30억원, 이후 2022년 1월 138억원, 32억원 등을 연합에 지급해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시행권을 완벽하게 확보했다. 문제는 연합으로부터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200억원 외에 사업권 확보를 명목으로 들어간 자금에 몇 가지 의문부호가 붙는다는 점이다. 실제 주식 매매대금 외에도 연합 측은 주식 유상감자 대금 명목으로 18억5000만원, 정산금 28억2000여만원, 세운5구역 재개발 사업 PM계약 해지 합의금으로 132억6600만원 등 약 179억원을 받았다. 이지스자산운용과 세운5구역 PFV에서 연합으로 들어간 돈이 379억원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 연합 등과 공동사업 약정을 맺고 토지 매매 업무 등을 담당해 온 3명에게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돈이 지급된 배경과 이유 등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1년 12월 이지스자산운용은 오씨와 권씨, 최씨에게 각각 60억원, 30억원, 14억원 등 총 94억원을 송금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관한 공동사업권을 양수·양도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고서다. 연합의 세운5구역 PFV 지분을 모두 사들인다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지 2개월 만이다. 공교롭게도 3명이 받은 돈은 지분 비율(30%:10%: 7%)에 비례했다. 이전까지 오씨 등 3명은 이지스자산운용, 세운5구역 PFV 등과 어떠한 계약도 맺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씨 등 3명이 염씨와 박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세운5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대다수의 약정이 연합 명의로 체결됐다. 유일한 예외가 이지스자산운용과 오씨 등 3명이 맺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공동사업권 양수도 계약이다. 땅값 뻥튀기 쌍방 무혐의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미팅에서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관계자는 “공동사업 약정서를 보면 연합이 모든 것을 대표해 사업을 진행하는 걸로 돼있다. 저희(이지스자산운용)는 이 법인(연합)이랑 한 거지, 이 개인들(오씨 등 3명)과 한 게 아니다. 그들 문제는 내부 사정”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1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나간 것이다. 당시 세운5구역 PFV 내부 사정에 밝았던 한 관계자는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씨 등이 시행사, 이지스자산운용, 총괄 책임자 등에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법원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압류까지 진행됐다. 94억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돈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연합에 추가로 지급된 179억원, 오씨 등에 준 94억원 등은 “사업을 온전히 가져오기 위한 자금이었다”며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한 역할에 대한 대가로 지급한 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되면 여기(오씨 등 3명)는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니까 내게도 배임 등 혐의로 소송을 걸었다. 그만큼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우리는 그쪽과 완전히 연을 끊고 싶었고 지분이 (그쪽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걸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걸 위한 대가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지스자산운용의 해명대로라면 박씨의 지분 3%는 그대로 남은 상태다. 공동사업자 가운데 연합을 제외하고 오씨 등 3명의 지분 47%에 대한 값은 치렀으면서 박씨는 제외한 것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박씨는 사업 초반에 세운5구역 PFV 이사로 있다가 얼마 안 지나서 사임해서 나갔다”며 “협의 대상자도 아니었고, 협의 과정에서 한번도 나타난 적 없다. 역할도 없었다”고 답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오씨 등 3명은 세운5구역 PFV는 물론 이지스자산운용에 양도할 사업권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업무에 대한 보상이나 수익 배분 등은 연합과 맺은 공동사업 약정에 따라야 한다. 실제 오씨 등이 염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이 공동사업 약정에 기반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에서 오씨 등에게 돈을 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공동사업자2는 연합에서 챙겨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맞다. 하지만 연합에서 줄 리가 만무하지 않나. 그러면 언제까지나 우리가 소송 당사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럴 바엔 ‘너희도 역할을 했고 우리가 돈을 줄 테니까 끝내자’로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과 관계없던 이들에게 94억, 왜?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돈 줬다” 박씨의 역할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반박이 제기됐다. 세운5구역 PFV와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이사회 결의라는 ‘적법한 절차’가 있었기에 문젯거리가 될 게 없다는 태도다. 토지 매입 과정에서 불거진 ‘땅값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경찰, 검찰 조사에서 불송치, 무혐의 처분이 나온 것에도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영향을 미쳤다. 세운5구역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쌍방 고소·고발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당시 염씨가 오씨를 고소한 사건이 증거불충분으로 최종 무혐의 처분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오씨와 염씨 등은 친인척, 지인 등을 동원해 원주민의 땅을 사들인 다음 연합이 다시 매입하는 방식을 사용해 토지를 확보했다. 이때 원주민에게 매입한 토지가는 시세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연합이 토지를 재매입할 때는 최초 매입가의 2배가량 높게 사들였다. 원래 연합이 원주민의 토지를 매입해야 했는데 그사이에 이른바 ‘특수관계인’이 개입해 이득을 본 것이다. 염씨가 오씨 등을 상대로 공동사업 약정을 해지 통보할 때도 이 ‘땅값 부풀리기’ 의혹을 신뢰 파탄의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검찰은 토지 확보가 어려워 부득이하게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 감정가와 크게 차이 없는 가격에 토지를 매입한 점, 이사회 결의로 ‘정당성’을 확보한 점 등을 들어 기소하지 않았다.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세운5구역 PFV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연합이 매입한 토지의 매수인 지위 등은 세운5구역 PFV로 승계됐다. 문제는 이때 의사회 결의가 있었는지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 등이 2019년 1월에 맺은 공동사업 약정에 따르면 ‘토지매입용역계약 체결 및 매매 계약의 매수인 지위 승계’는 이사회 특별 결의 사항이다. 이사 전체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씨는 16번에 이르는 이사회가 열리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참석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무효 소송도 그 배경에서 진행 중이다. 실제 이사회가 열렸다고 서류에 기재된 일시에 전혀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카드 사용 명세를 통해 확인한 내용이다. 해명마다 모순 나와 이지스자산운용의 주장과 완벽하게 배치되는 지점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한 관계자는 “이지스자산운용이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박씨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총괄 책임자의 말을 뒤집어야 한다”며 “국내 최고의 자산운용사가 이렇게 허술하게 해명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