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목’ 가로막는 암초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5.08 11:13:16
  • 호수 1165호
  • 댓글 0개

남북통일,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남북 정상은 과연 한반도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2018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이 높아지고 있다. 정관계는 물론 민간단체들도 통일에 관한 행사를 주최하며 기대감을 높이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국민적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엇박자를 내는 곳이 있다. <일요시사>는 남북통일이라는 항로에 숨은 암초를 추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서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며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는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다.

불가침 합의
평화의 시대

합의문의 명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018년 내 종전 선언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문 대통령의 올가을 평양 방문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최고의 화두는 합의문에 비핵화가 담기느냐의 여부였다. 김 위원장은 직접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의지를 밝혔다. 두 정상은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시기나 방법 등 핵심 사안은 향후 북미정상회담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의 성격이 짙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남북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의 입구가 된다면 북미정상회담은 출구가 된다”며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 의미서 판문점 선언은 북미정상회담에게 던져주는 아주 좋은 길잡이 메시지를 생산해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정상은 궁극적인 비핵화를 위해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가기로 했다. 군사적 대치를 해소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남북은 지난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단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계획도 추진될 예정이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한다는 합의는 남북 평화에 대한 상징성이 크다. 그간 천안함 폭침, 서해대전 등 무수한 군사적 충돌을 낳았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서 벌어졌다. 이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하는 합의는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함은 물론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는 실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후 대화를 이어간다는 데 의의가 크다. 남북은 국방부장관 회담 등 군사당국자 회담을 자주 개최하기로 했다. 5월 중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5월 중순에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5월 말 내지는 6월 초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가을에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이어간다.

남북정상회담이 불러온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감은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지난 3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성인 100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78.3%로 지난주 주간집계보다 8.3%포인트 급등했다. 
 

반면 ‘잘 못 하고 있다’는 답변은 15.5%로 9.3%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새 정부에 대한 기대효과가 반영된 지난해 5월4주차(84.1%)와 6월1주차(78.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대화 지속
통일 밑거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 비준 동의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가서명한 합의문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비준 동의를 받고, 이어 대통령 비준 및 국내 공포 등 절차를 밟아야 법적효력을 갖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선언 등이 있었다. 합의문도 이번이 세 번째. 앞서 두 번의 정상회담 합의 내용은 모두 비준 절차를 거치지 못했고,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사실상 폐기됐다.

이를 잘 아는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2차 전체회의서 합의문의 국회 비준을 강조하고 나선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서 합의한 내용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려면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서도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정한 남북합의서 체결 비준 공포 절차를 조속히 밟아주시기 바란다. 정치적 절차가 아니라 법률적 절차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국회의 동의 여부가 또다시 새로운 정쟁거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감안하면서 국회의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잘 협의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합의문 이행을 위한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합의문 국회 비준에 대해 여야는 큰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범진보 성향인 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긍정적 입장을 내놨지만, 범보수 성향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북미정상회담 전 국회 비준 동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당은 표면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준 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평가절하하며 사실상 비준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국회서 난항이 예상된다.

파격적인 판문점 선언, 평화의 신호탄
남북회담이 입구라면 북미회담은 출구

국회서의 비준 동의 절차는 한국당의 힘을 빌려야 가능하다. 합의문이 국회 의안과에 접수되면 관련 상임위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로 회부된다. 이후 외통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마지막으로 본회의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얻어내야 비준 동의안이 법적 효력을 지닌다.

문제는 현재 국회의 정당별 의석 구조가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의견 정족수인 과반 찬성을 만들어내기 힘든 ‘여소야대’ 상황이라는 점이다. 

민주당 121석을 비롯해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범여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 3석, 바미당 비례대표이면서 평화당 활동에 참여 중인 의원 3명을 합쳐도 147석에 불과하다. 


한국당 116석에 평화당 활동 중인 비례대표를 제외한 바미당 27석, 대한애국당과 무소속 등 2석을 합한 범보수의 145석에 단 2석 차로 앞선다. 즉 범진보 진영서 단 두 표만 반대 또는 기권이 나와도 비준안은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
 

당장 외통위를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다. 심재권 민주당 의원이 외통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간사 수에서 범진보 진영은 1명(민주당 김경협 간사)인데 비해 범보수 진영은 2명(한국당 윤영석 간사, 바미당 이태규 간사)이다.

현 국회 시스템 상 상임위 간사는 상임위원장 만큼이나 큰 권력을 가졌다. 상임위 내 의사 일정을 결정하고 의제를 선정한다. 전체회의에 앞서 주요 의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상임위 간사의 역할이다. 간사 수에서 범진보 진영이 범보수 진영에 밀리고 있는 상황서 비준안에 대한 간사 간 협의가 범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은 낮다.

앞서는 범보수
밀리는 범진보

외통위 전체 의석수도 범진보 진영이 밀린다. 외통위 위원의 수는 22명. 그중 범진보에 속하는 위원은 민주당 소속 10명에 불과한 반면, 범보수 쪽 위원은 한국당 10명에 바미당 2명을 합쳐 총 12명으로 우위를 차지한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드루킹 특검 도입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바미당은 지난 3일 의원총회를 통해 “특검 수용과 국회정상화가 타결되지 않으면 ‘특단의 대책’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지난달 17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소속 의원들이 릴레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같은 장소서 여러 차례 규탄대회를 열어 공세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의원총회서 특검 관철을 위해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선다고 밝혔다. 바미당도 특단의 대책으로 단식농성을 언급한 만큼 범보수 진영이 ‘드루킹 특검’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길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단식투쟁까지 불사하는 드루킹 특검에 대한 범보수 진영의 이 같은 공조가 ‘드루킹 특검-합의문 비준’ 빅딜이 무산된 이후 나왔다는 점이다.

앞서 민주당은 한국당에 드루킹 특검 수용을 전제로 합의문 비준 동의를 제안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김성태 원내대표와의 비공개 조찬회동 자리서 국회 정상화 방안으로 드루킹 특검 수용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드루킹 특검은 경찰과 검찰 수사를 먼저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서 한 발 물러선 결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은 “특검 수용에 조건이 붙으면 안 된다”며 빅딜 제안을 거절했다. 우 원내대표의 제안이 있은 날 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연 후 합의문 비준과 연계된 특검 수용은 받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합의문 비준 문제는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놨지만, 남북정상회담 후 한국당이 내놓은 반응들을 보면 비준안 자체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비준안 국회통과? 외통위도 장담 못해
미 외교·안보 투톱, 대북 제재 입장차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중 핵심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투톱으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간 북핵 협상에 대한 온도차다.

두 사람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나란히 방송에 출연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의 전략을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 전까지는 어떤 제재 완화도 없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은 이전 정부의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있다”고 답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완전한 비핵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제재 완화는 없다는 그간의 미 행정부 태도와 차이가 있다. 행간에는 북한이 어떤 ‘구체적 조처’를 취하면 완전한 비핵화 전이라도 미국이 지금보다 제재 수위를 낮출 가능성도 엿보인다.

막말 퍼레이드
배 아픈 사촌?

반면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모든 핵무기와 핵연료, 탄도미사일 등을 포기·반출할 때까지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 완화는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다.

투탑의 이견에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아직 비핵화 로드맵을 조율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이번 달 말 치러질 북미정상회담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보상으로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도 안갯속이다.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 평화 체제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