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 정성 요리하는 미스터 초밥왕 안효주

"자신에게 주어진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

일식 요리사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유명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등장한 한국인 요리사.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초밥 왕으로 불리는 안효주(50) 대표다. 지난 5일 안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스시 효’를 찾아 훈훈한 그의 요리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스시 효’의 안효주 대표는 지난 2000년 일본 인기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 수삼초밥을 만든 한국인 요리사의 실제 모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78년 일식에 입문하여 20여년 동안 일식 요리사로 일해 왔다.
“1985년 신라호텔에 입사했어요. 정말 맨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일식 주방장을 거쳐 일식당 총책임자 자리까지 올랐죠. 1998년에는 일식조리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고,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와 초당대학교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경영대학원을 수려했어요.”
사람들은 그를 ‘초밥 왕’ ‘초밥의 달인’ 이라고 부른다. 1998년 당시 신라호텔 조리과장 시절에는 ‘초밥 명장’이라는 칭호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스시 효’를 열었을 때 그를 찾았던 신라호텔 손님들 80%가 옮겨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인생 공부도 마찬 가지지만 요리는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아요”라며 겸손해 한다. 오늘도 그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며 연구한다. 요리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예전에는 초밥을 만들 때 신선하고 살아있는 생선이 제일 좋은 재료인 줄만 알았는데, 생선을 숙성시켜서 만든 초밥이 더욱 맛있는 것도 있더군요. 그 당시 저도 숙성의 개념을 몰랐던 거죠. 생선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잡은 뒤 바로 먹어야 맛있는 생선이 있는 반면 5시간, 10시간 또는 하루를 숙성시켜 먹어야 맛있는 게 있어요. 참치는 7~9일 정도 지나야 제 맛이 나죠. 이런 지혜는 이론만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직접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을 구하기 위해 수산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장보기 정도는 아랫사람을 시켜도 될 법하지만, 후배 요리사들에게 부지런함의 모범이 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안 대표는 젊은 시절 전국 아마복싱대회에서 라이트급 준결승까지 올랐던 복싱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운동을 포기하고 ‘한국의 초밥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학생 복싱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 고교 졸업 후 챔피언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했다.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고향선배가 요리사로 있는 명동의 한 일식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운동을 시작했다.
“고향 선배가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군대에 갔어요. 군 제대 후 선배에게 제대 인사를 하러 갔는데 마음이 참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고 틈틈이 요리학원도 다녔어요.”
그는 요리학원을 수료한 뒤 서초동의 일식집에 취직할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요리 인생의 스승인 이보경 주방장을 만났다. 안 대표의 인생 가운데 이 주방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1년 정도 이보경 스승님 밑에서 배웠어요. 그리고 그분께서 저를 신라호텔에 추천해주셨는데, 그 당시 요리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단지 저의 성실함과 됨됨이를 보시고 추천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안 대표는 신라호텔에 입사한 뒤 본격적으로 요리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는 신라호텔에 근무하던 시절 지독하게 일했다. 다른 직원들이 쉴 때 일본어와 영어를 틈틈이 공부하며, 요리 연습에 몰두했다.
“열심히 일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제가 있는 위치와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죠. 3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저에게는 어릴 적 정신적 지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사람은 신용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되며,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돼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저도 현재 1남1녀를 둔 아버지로 살아가는데,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 않아요. 단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요. 그동안 경험을 통해 아버지가 저에게 말씀하신 것이 인생의 진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스시 효’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각계 인사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들은 ‘안효주 초밥’을 고집하는 단골손님들이다. 그중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최태원 SK 회장도 단골이다.
“박태준 회장은 제가 신라호텔에 있을 때부터 모셨던 분으로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어요. 박 회장님은 지금도 반드시 제가 있는지 전화로 확인한 뒤 식당을 찾으세요.”
이렇듯 계속해서 ‘스시 효’에 단골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맛보다 정성’을 먼저 생각하는 안 대표의 요리 철학 때문이다.

“저의 요리 철학은 첫째가 위생, 둘째가 정성, 셋째가 맛 이에요. 깨끗하지 않고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요리는 손님들도 단번에 알아요. 그리고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재료라도 땅에 한번 떨어진 것은 버리라고 직원들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요리는 청결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하니까요. 음식에 정성이 들어가면 맛은 당연히 나게 되어있지요.”
 안 대표는 초밥을 먹을 때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며 소개한다. 양식처럼 절차가 복잡하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간단한 몇 가지 방법만 알면 훨씬 즐거운 식사가 될 수 있어요. 비즈니스와 관련된 식사를 하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라면 요리사들 바로 앞에 있는 바에 앉는 것이 좋아요.”
흔히 초밥은 3초만에 만들고 3초만에 먹으라고 한다. 짧은 시간에 만든 것을 빨리 먹어야 맛있다는 뜻이다.

“인생 공부도 마찬가지지만 요리 공부도 끝이 없다”
‘신용’ 지키고 ‘군계일학’이 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초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 록 생선의 무게 때문에 밥이 눌려요. 그러면 밥이 딱딱해지죠. 밥알 사이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밥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을 때 먹어야 입 속에서 삭 퍼지는 초밥을 먹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초밥은 손으로 먹는 것이 좋아요. 젓가락으로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요리사는 없지만 다만 손으로 먹으면 요리사는 속으로 ‘아, 이 분은 초밥 먹는 예의를 아시는 분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돼요.”
여기에는 요리사와의 교감이라는 측면도 있다. 초밥은 요리사가 맨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요리사의 체온이 녹아 있으니 손으로 집어야 그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지난 4월 그의 요리 인생을 되돌아보는 책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전나무 숲)를 펴냈다. 이 책엔 한국 최고의 초밥장인 안 대표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오랫동안 신라호텔 일식주방장으로 일하다 현재는 초밥전문점의 대표로 명품 초밥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가, 요리 앞에서의 마음가짐, 초밥의 다양한 맛과 매력, 그리고 요리사로써의 인생에 관한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놀랍기까지 한 그의 초밥 만들기와 인생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흥미롭고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책에는 안 대표가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를 만난 일화도 맛깔스럽게 담겨 있다.
“<미스터 초밥왕>에 나온 메뉴를 재현하는 이벤트를 하며 만화 작가를 초청했는데 그분이 ‘일본에는 없는 초밥을 만들어 달라’고 말 하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만든 게 6년근 수삼으로 만든 ‘수삼초밥’이었죠. 1주일 뒤에 데라사와 다이스케 작가가 와서 맛을 보더니 만족해하더군요. 그래서 <미스터 초밥왕> 17권에 제가 등장하게 된 거에요.”

인삼이 쓴맛이라고만 생각했던 작가는 아삭아삭 씹히면서 간장 맛이 스며든 수삼초밥에 감탄했고, 만화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지금 초밥을 쥔 그의 손은 예전에 권투장갑을 끼던 손이었다. 권투장갑과 초밥이란 그 엉뚱한 조합에 대해서도 안 대표는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초밥을 만드는 일은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 필요한 일이라고.
권투선수도 초밥요리사도 눈 깜짝할 새에 맛있는 초밥을 쥐어내기 위해서는 운동선수 이상의 반사신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삶에 대해서 또 요리 인생에 대해 책으로 내보자고 해서 낸 것이었어요.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주간베스트로도 올랐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주위 분들은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말하곤 해요.”
이외에도 그의 저서로 <이것이 일본요리다> 등 3권이 있다.
‘스시 효’는 올 가을 네 번째 지점을 오픈했다.
“청담점, 서초점, 구로점에 이어 10월에 광화문점을 오픈 했어요. 지점을 늘려나가는 것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늘리는 것이 아니에요. 저와 함께 있는 후배 요리사들을 위해 지점을 늘리는 것인데, 후배들을 잘 양성해서 훗날 지점의 지배인으로 주방장으로 보내려고 해요. 그래야 그들도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물론 검증 안 된 사람은 절대 지점에 안 내보냅니다.”
안 대표의 직원 모집방법은 좀 남다르다. 그는 ‘스시 효’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이력서보다 지원자들의 됨됨이를 먼저 본다고 한다.
“저는 이력서는 잘 안 봐요. 솔직히 이력서는 포장된 것이잖아요. 우선 그 사람이 부모님께 효도는 잘하는지, 인격은 어떤지를 먼저 봐요.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는 사람은 대인관계도 좋고 사회생활도 잘하지요.”
자신의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었던 그의 꿈은 이뤄졌다. 하지만 안 대표는 지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스시 학교를 만들어서 품격 있는 요리사들을 양성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요리 실력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인성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교육시키는 학교를 세워서 좋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안 대표는 지금까지 오로지 ‘요리’ 하나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런 그가 요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 소홀했던 친구들을 생각하며 먼 훗날, 깊은 산 속에 황토로 지은 일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안 대표.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시절, 미안한 마음으로 산속에 식당을 지어서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서울 도심에서 일본음식 맛보기

동부이촌동 초밥과 우동을 한번에
홍대 댕구우동 면발이 끝내줘요

서울에서 일본 음식을 느껴볼 수 있는 맛집이 있다. 특히 초밥은, 국내의 맛 전문가들은 신라호텔 아리아케[有名]를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그곳 못지않은 곳들이 있다. 동부이촌동 하나[花]도 추천할 만하다. 기본에 충실한 집이다. 가격도 비교적 착하다. 3만원 정도. 낮에는 싸고 저녁에는 조금 더 비싸다. 주인이자 주방장을 맡고 있는 전병화씨는 같은 곳에서 20여년 초밥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딱 한번 확장했다. ‘하나’처럼 저녁 시간에도 초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은 서울에서도 드물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데다 주방장이 초밥을 고집해서 가능한 듯. 동부 충현교회 뒤편에 있다. (02)793-7733
동부이촌동의 아지겐[味原]도 권할 만하다. 메뉴는 일본라면, 볶음면, 짬뽕 등과 일본식 이자카야에서 만날 수 있는 가지구이, 시사모, 군만두, 고등어구이, 고등어 초절임 등 각종 사시미류와 생선구이류가 가득하다. 식사는 1만원 선, 안주는 5천원부터 1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일본 맥주 청주 종류도 다양하다. 화요일은 쉰다. (02)790-8177
달싹하고 따뜻한 국물과 간단한 김밥, 유부초밥을 먹고 싶다면 동부이촌동의 보천을 가볼 만하다. 달콤한 국물이 좋고, 더불어 주문한 초밥도 그럭저럭 괜찮다. 가격은 냄비우동이 8천원 선. 초밥도 더불어 먹자면 1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02)795-8730
우동집은 우선 사누키우동을 취급하는 두 집을 추천한다. 하나는 홍대(동교동 청기와예식장) 부근의 댕구우동이다. 간판에는 일본 카가와[香川] 사누키우동 대사라고 적혀 있다. 사누키우동의 면발로는 으뜸이다. 물론 면은 직접 만든다. 가격은 자루우동(모밀 먹듯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을 말한다)이 5천원 선. 추가로 돈까스 등을 덧붙여도 좋다. 추가 비용은 1천원 선. (02)333-9242
또 하나는 분당 오리역 인근 구미동의 야마다야[山田屋]다. 사누키(카가와 현의 옛 이름이다)에서 제면 법을 배워 왔다고 한다. 면의 상태도 좋고 국물도 퍽 좋다. 사누키우동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꼭 한번 가볼 만하다. 가케우동이 6천원 선. 한두 가지를 첨가하면 1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031)713-5242
(투어커플닷컴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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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