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61)누명 쓴 교수님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26 11:35:45
  • 호수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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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논문 조작 진실은…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예순한 번째 주인공은 서울대학교병원 임홍국 전 교수입니다. 
 

임 교수(제1저자)는 지난 2010년 이정렬(연구책임자) 교수와 함께 ‘선천성 교정형 대혈관전위증에 대한 완전한 양심실 교정술의 장기 결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년이 흐른 2012년 당시 공동저자로 참여한 서울대학교 흉부외과교실 김웅한 교수는 해당 논문이 ‘사망자 수를 실제보다 줄여 보고했다’ ‘대상 환자 수에 의혹이 있다’ 등의 이유로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이하 서울대 진실위)에 제보했다. 

법원서 승소

서울대 진실위는 제보자인 김 교수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면서 해당 논문은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서울대 진실위 결과가 2013년 12월3일 한 언론 1면에 '국내 유력병원 의사들 심장수술 생존율 조작' '간접살인' 등으로 대서특필되면서 임 교수의 명예는 곤두박질쳤다. 

명예회복을 위해 임 교수는 법정행을 택했다. 학계의 예상을 깨고 1심 법정은 임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연구데이터 조작 등 연구부정행위의 존재’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논문상 사망자 수가 조작됐다는 결론도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해당 논문에 부정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아울러 서울지법은 “진실위 관계자가 내부 규정이 정한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해 조사 결과를 언론에 유포에 원고(임 교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불법행위가 된다”고 판시해 서울대가 임 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1심 판결은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론을 내렸고 2심, 3심까지 이어진 지리한 법정 공방서 원심은 확정됐다.

그렇다면 서울대 진실위는 왜 법정 판결서 뒤집힐 결론을 내렸을까. 당시 논문 조작 쟁점은 사망자 수였다. 

앞서 임 교수는 논문을 통해 심장기형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추적한 결과 사망자를 19명(원자료)으로 집계해 생존율 83%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진실위는 제보자가 제출한 2012년 9월 자료를 토대로 사망자가 26명(사후자료)에 이른다고 결론 내렸다.

임 교수가 자료를 취합할 당시 사망 사실을 알 수 없거나 사망했다고 보기 힘든 사람들이 제보자의 논문에는 포함된 것이다. 

임 교수는 “사후자료는 제보자 혼자 원자료에 있는 사망 자료를 모두 복사한 뒤 사망자료를 대거 추가해 만든 것"이라며 "추가된 사망 환자는 이중집계, 허위집계, 추정집계뿐만 아니라, 논문 게제 확정 후 사망이 확인되는 집계, 제보자만 알 수 있는 사망 환자 집계까지 시행해 원자료에는 사망으로 표시됐지만 진실위는 확인하지 못한 환자까지도 모두 집계돼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보자 이외에는 아무도 조사에 관여하지 않고 조사 위원들은 아무도 제보자가 집계한 내용을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서울대 진실위에 공정한 제보가 이뤄지지 않고 제보자가 제보에 컨트롤타워가 돼 이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 증거 자료를 모두 법원을 통해 확보했다”며 “처음부터 조작으로 꾸며 놓고, 원자료를 고의적으로 묵살한 사실이 법정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가 서울대 진실위 조사를 받을 당시 석연치 않은 정황도 있다. 

제보자가 집계한 사후자료를 서울대 진실위가 은폐한 것이다. 당연히 반론권 및 해명권 차원에서 사후자료를 임 교수에게 제공해야 하지만 사후자료를 요구하는 임 교수에게 서울대 진실위는 오히려 임 교수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원자료만 보여주며 해명을 요구했다.

법원 판결문에도 "심사기관으로서 취해야 할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의무에 위반한 검증방법내지 검증절차상 하자로 인해 그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명시됐다. 

기피신청을 거부한 일도 있다. 당시 논문 연구책임자로 피조사자였던 이정렬 교수와 김용진 교수는 진실위 장윤희 조사위원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 

‘평소에 제보자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해당 사안과 관련된 논문 연구 초기부터 연구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서울대 진실위는 기피신청을 기각하고 장 교수를 조사위원에 포함시켰다. 

임 교수는 “장 교수가 조사위원에 포함된 것을 보고 함정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며 “장 교수는 제보자와 상당한 유착관계에 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를 포함한 모든 서울대 진실위원원들은 원자료와 사후자료를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며 “제보자와 공모해 본조사 위원회 보고서 일체를 제보자에 넘겨 언론에 제보토록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임 교수는 "이 사건에 깊숙이 연관된 서울의대 A학장은 제보자와 동기로 서울대 법인화 직전 총장 당선에 기여했다"며 "내년에 서울대 총장 출마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진실위의 행태를 반발하는 내용증명을 묵살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언론 기자로 있는 처남을 통해 해당 내용이 한 언론에 제보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진실위는 조작 결론…결국 법정행 
재판서 뒤집혀…끝나지 않은 싸움

임 교수는 제보자 김 교수의 수상한 행적도 언급했다.

해당 논문의 내용만을 가지고 김 교수가 일본에서 개최된 국제학회서 구연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김 교수가 ‘일본서 해당 논문을 발표할 예정인데 슬라이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며 “국제적으로 해당 논문을 가지고 본인의 업적으로 활동 해놓고 논문 조작을 지적하는 이상한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에 김웅한 교수는 “슬라이드를 받아 사건 논문 내용을 일본서 발표한 것은 맞다”며 “전체 내용 중 조금 포함된 내용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임 교수는 진실위의 무리한 논문 조작 결론 배경에 서울대병원 의사들 간 권력다툼이 있다고 봤다.

당시 서울대병원 기조실장을 맡고 해당 논문의 연구책임자인 이정렬 교수가 학교 측에 바른말을 하자 서울대 의과대학 집행부서 이 교수를 몰아내기 위해 논문 조작을 조직적으로 주도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민사소송 판결을 토대로 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교수를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에 임 교수는 “항고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김 교수가 제보조작 전반에 있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모두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민사소송서 임 교수는 손해배상액 1억을 청구했다. 이에 법원은 2000만원을 선고했는데 임 교수는 “당시 1만원만 배상액이 떨어져도 승리라고 봤다”며 “2000만원이 선고된 것은 법원도 심각한 문제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교수의 언행을 지적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경찰 조사서 김 교수가 법원이 2000만원 배상 판결한 것을 두고 김 교수가 ‘8000만원은 이겼다’고 말했다”며 “어떻게 법원 판결을 자기 맘대로 해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대 진실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부정해왔다. 임 교수는 "재발 방지를 위해 서울대 진실위 조사과정 및 내용이 모두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조사에 관여한 모든 위원들이 공개되고 결과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진실위의 논문 조작 결론이 나온 이후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지난해 8월엔 임상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 현재는 중앙보훈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문제 없다?

일련의 제보조작 파문과 관련해 김 교수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일단 형사 건 관련한 검찰 조사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논문 조작과 관련해 “언론에 제보한 사실도 없다”며 “법원 판결과 별개로 의사의 양심상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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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