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여행 ④함평 해수찜

온몸으로 체험하는 뜨끈한 보약 한 사발

겨울이다. 수은주가 자주 영하로 떨어진다. 코끝에 닿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연일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이마가 얼얼하다. 따뜻한 방바닥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옛날에야 뜨끈한 아랫목으로 쑥 들어가면 됐지만, 아파트에 사는 요즘은 그러기 쉽지 않다. 일상에 지친 몸을 데워 땀을 쏙 빼고 쌓인 피로를 풀고 싶을 때 함평 해수찜이 어떨까. 오직 함평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수찜을 즐겨보자.
 

해안고속도로 함평 IC서 함평읍으로 가다 보면 돌머리해변 표지판이 나온다. 광주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이기도 한 돌머리해변은 석성리 석두마을에 있다. 석성리는 주변에 기암괴석이 늘어서 석두(石頭)라 불렸는데, 이를 우리말로 돌머리라고 했다. 

돌머리해변 표지판을 보고 길을 달리면 함평 해수찜 표지판이 눈에 띄고 10분쯤 더 가면 해수찜마을로 유명한 궁산리에 닿는다. 너른 갯벌을 앞마당 삼아 해수찜 간판을 단 집이 여럿 있다.
 

뼛속까지 시원한 해수찜

해수탕은 바닷가 곳곳에 있어 아는 사람이 많지만, 해수찜은 다소 생소하다. 해수찜은 200여년 전부터 함평 지방서 이어온 전통으로, 예전에는 아기 낳을 부인이 하인을 대동하고 전국서 모여들었다고 한다. 

해수찜은 따뜻한 물이 담긴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아니다. 해수에 뜨겁게 달군 유황석을 넣은 물에서 나온 증기로 몸을 데우고, 그 물에 적신 수건을 몸에 덮는 방식이다. 우리가 흔히 경험한 해수탕과는 완전히 다르다.
 


해수찜을 즐기는 방식은 이렇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나무로 만든 방에 들어간다. 한가운데 네모난 탕에는 해수가 담겼고, 쑥이 든 붉은 망이 물에 떠 있다. 잠깐 기다리면 커다란 삽에 담아 온 시뻘건 유황석을 탕에 넣어준다. 

돌을 넣자마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부글부글 끓는다. 물은 순식간에 80~90℃까지 올라가, 식기 전에는 절대로 손을 넣거나 몸을 담그면 안 된다. 해수에는 쑥 한 망, 숯 한 삽을 같이 넣는다. 해수와 유황석, 쑥, 숯이 만나 몸에 좋은 약으로 변하는 것이다. 

해수찜질방 옆에 소나무 장작으로 유황석을 달구는 아궁이가 있는데 이글거리는 불 속에서 돌덩이가 무려 130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유황석이 30분 정도 달궈지면 유황과 게르마늄 성분이 빠져나온다. 함평 해수찜에 넣는 유황석은 아무리 달궈도 돌이 튀지 않고 오히려 엉겨 붙는다고 한다.
 

해수찜을 즐기려면 수건에 물을 부어 온도를 적당히 식힌 다음, 원하는 부위에 덮는다. 목이나 어깨, 허리에 수건을 올리면 뭉친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 든다. 몸이 노곤해지면서 10년 묵은 피로가 달아나는 것 같다. 뼛속까지 시원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유황석 넣은 물에 적신 수건 몸에 덮는 방식
갯벌이 우수하기로 손꼽히는 돌머리해변

물이 어느 정도 식으면 대야에 받아 몸에 끼얹어도 된다. 물을 몇 번 끼얹으면 피부가 뽀송뽀송하고 매끈해지는 느낌이 든다. 두어 시간 지나 물이 더 식으면 이때부터 족욕을 즐긴다. 발끝에서 올라온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순환하며 땀이 줄줄 흐른다.
 

해수찜을 하고 나서는 따로 샤워하지 않아야 약효가 오래간다. 해수찜은 바닷물과 달리 끈적임이 없어 그대로 말리거나 마른 수건으로 닦는 것이 몸에 좋다고 주인이 귀띔한다. 해수찜을 마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보약 한 사발을 쭉 들이켠 것 같다. 뜨거운 증기로 몸을 데우고 쑥과 유황석의 좋은 성분이 몸에 스며든 데다 따뜻한 수건으로 근육을 풀어주었으니 쌓인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건 당연한 일. 나오는 순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에 또 와야지’ 다짐하는 것이 해수찜의 매력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함평 여행을 즐겨보자. 해수찜마을서 돌머리해수욕장이 가깝다. 백사장 폭 70m, 길이 1km에 달하는 해수욕장은 갯벌이 넓어 조개를 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하다. 

돌머리해변 갯벌은 국내서 질이 우수하기로 손꼽히며, 게와 조개, 해초류가 지천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겨울 한낮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해변 위쪽으로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1300리 해안누리길 중 하나인 ‘돌머리해안길’이 펼쳐지고,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데크도 조성됐다. 인공 풀장에는 겨울이면 낚싯대를 든 강태공이 자리 잡는다.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이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 위해 찾아든다.
 

함평에 고즈넉한 겨울을 즐기기 좋은 자산서원과 모평마을이 있다. 자산서원은 조선 중기 호남 사림의 거두인 곤재 정개청이 1589년 기축옥사에 연루돼 유배지서 병사하자 그 제자들이 스승의 신원 운동을 펴며 건립한 서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개청의 굳건한 정신과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모평마을은 고풍스런 한옥이 가득하고, 돌담이 예쁜 곳이다. 고려 시대 함평 모씨가 열었다고 전해지며, 1460년 윤길이 정착하면서 파평 윤씨 집성촌이 됐다. 마을 앞 해보천을 따라 늘어선 숲이 운치가 있다. 

500여년 전에 조성된 보호림으로 느티나무와 팽나무, 왕버들 40여그루가 울창하다. 모평마을 한옥 민박에서 묵으며 이 숲을 거닐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 
 

함평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이 육회비빔밥이다. 전국의 수많은 미식가들이 함평 비빔밥 한 그릇 맛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함평이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까닭은 예부터 큰 우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평 우시장은 ‘함평 큰 소장’이라 부를 정도로 거래가 활발했다고 한다. 

이곳 육회비빔밥은 삶은 돼지비계가 함께 나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릇에 양념장과 채 썬 돼지비계를 한 숟가락 넣고 비비면 고급스러운 맛에 반한다. 기름기가 없는 소 엉덩이와 허벅지 살로 맛을 낸 육회는 씹을수록 입에 감긴다. 돼지비계도 느끼하거나 비리지 않다. 

함평 우시장 ‘육회비빔밥’

육회비빔밥을 내는 집이 모여 있는 곳은 함평5일시장이다. 함평은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자리해 농업이 활발하고 물산이 풍부했다. 끝자리 2·7일에 서는 오일장은 지역 농축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함평 해수찜→돌머리해수욕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함평 해수찜→돌머리해수욕장 
[둘째 날] 모평마을→함평5일시장→자산서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함평문화관광 http://tour.hampyeong.go.kr

문의 전화
- 함평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61)320-1784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함평역, 무궁화호·새마을호 하루 7~8회(05:45~ 23:10) 운행, 약 4시간3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함평,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3회(08:35, 14:30, 16:40) 운행, 약 4시간2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www.kobus.co.kr 함평공용터미널 061)322-0660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당진영덕고속도로→서천공주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함평 IC→영암·함평 방면→함영로→돌머리해변·주포 방면  


숙박 정보
- 모평헌: 해보면 상모길, 061)323-6078, 
http://www.mhanok.com
- 뉴샹젤리제호텔: 함평읍 함평천우길, 061)323-1200, http://www.061-323-1200.mbiz114.com
- 모아모텔: 함평읍 함영로, 061)324-2266 

식당 정보
- 함평천지한우프라자(한우): 함평읍 서부길, 061)323-3366, 
http://hampyeong.nonghyup.com
- 해월축산회관(한우): 해보면 해삼로, 061)323-3708
- 대흥식당(육회비빔밥): 함평읍 시장길, 061)322-3953
- 목포식당(육회비빔밥): 함평읍 시장길, 061)322-2764
- 나비의꿈(육회비빔밥·낙지비빔밥): 함평읍 시장길, 061)323-1570

주변 볼거리
용천사, 함평엑스포공원, 함평 고막천 석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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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