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비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

작가 쥐어짜는 ‘웹툰 공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는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가 계약서에 명시된 마감 기한을 어길 경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위약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2015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이 제도는 2년4개월 동안 숱한 논란을 낳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레진코믹스는 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내년 2월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레진(Lezhin)’을 필명으로 쓰던 블로거 한희성씨와 개발자 권정혁씨가 설립한 레진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이하 레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 초기부터 도입한 부분 유료화 모델은 ‘웹툰은 공짜’라는 세간의 인식을 뒤엎고 성공을 거뒀다. 레진은 서비스 첫 달 매출 1억원을 돌파한 후 월 20∼30%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양적으로 빠르게 팽창했다.

유료서비스 도입
양적으로 급성장

네이버, 다음과 함께 3대 웹툰 사이트로 자리매김한 레진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5년간 누적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레진에 연재 중인 혹은 연재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레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레진은 입장문 발표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박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등 오히려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는 청원이 제기됐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정산CMS 오류 ▲지체상금(지각비) ▲해외 서비스 정산 미지급 등의 문제가 레진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에는 지난 14일 기준 4만8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원 내용 중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는 2015년 8월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2년4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사안이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레진은 논의 없이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거나 지연될 경우 작가에게 벌칙금을 청구할 수 있다. 벌칙금은 지연이나 무단 휴재가 발생하는 건마다 콘텐츠 제공 대가, 즉 수익의 3%씩 차감하며 최대 9%를 초과할 수 없다고 돼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웹툰이 공개되는 작가는 서비스 2일 전인 금요일 오후 3시까지 작품을 보내야 한다. 만약 이 기한을 초과할 경우 첫 번째는 벌칙금이 없지만 두 번째부터는 월 수익의 3%, 세 번째는 6%, 네 번째는 9%를 지각비로 물린다. 

월 수익이 200만원이라면 최대 18만원까지 지각비로 책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레진은 정산 시 지각비를 차감한 돈을 작가에게 지급한다. 

서비스 지장 없어도 마감 늦으면 지각
최대 9%까지 징수 1000만원 낸 작가도

문제는 지각비가 발생하는 시점과 상한선이다. 작가는 자신의 서비스 요일에 정상적으로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레진서 정한 마감 기한에 늦으면 지각비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매출상의 손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음에도 작가는 정산상의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의 지각비 제도는 출근시간이 9시로 정해진 아르바이트생에게 왜 7시까지 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지각비의 최대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레진은 지각한 주가 아닌 작가가 벌어들인 해당 월 전체 수익에서 최대 9%까지 지각비를 제하고 있다. 월 수익에 따라 지각비가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익이 많으면 차감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제 최근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화가협회)에 접수된 지각비 관련 제보 중에는 레진서 위약금으로 물린 지각비 액수가 1000만원에 이른다는 신고도 있다.

레진의 지각비 제도 관련 만화가협회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는 “작가의 지각으로 연재가 늦춰졌다면 그에 대한 페널티는 사후에 설정할 일”이라며 “작가 스타일이나 작품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특정 시점을 적용해 이중의 제어장치를 둔 것은 작가들 입장에서는 부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부당성이 제기되자 레진은 지난달 9일 입장문을 통해 내년 2월1일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이하 웹툰작가협회)는 레진의 지각비 폐지 결정을 반기면서도 지난달 30일 ▲부당하게 지각비를 징수당한 작가들에 대한 보상 방법 ▲레진코믹스 운영상 과실 또는 서비스의 오류 발생으로 인해 작가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정책 유무와 위 보상정책을 계약서에 명시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 ▲지각비 폐지 시점을 2월1일로 설정한 경위 등 3가지 사항에 대한 추가 답변을 요구했다.

웹툰작가협회의 공개 질의에 레진은 2주 만인 지난 12일 답변을 전해왔다.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지각비 폐지 시점이다. 

레진은 11월에 낸 입장문서 내년 2월1일을 지각비 폐지 예정일로 잡은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지각비 관련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돼있기 때문에 작가들과 별도 서면으로 합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지각비가 운영되지 않는 상황서 오류를 막기 위해 제도를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등이다. 웹툰작가협회에 보낸 답변도 동일하다.

월 20∼30%
성장의 이면

하지만 지난 14일 레진 관계자에게 나온 답변은 입장문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레진 관계자는 지각비 폐지와 관련 “내년 2월1일부터 작가님들과 변경합의서 체결합니다. 관련해 보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 작가님들께 전체 공지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내년 2월1일에 일괄적으로 지각비가 폐지되는 게 아니라 그날부터 작가들과 개별적인 합의가 이뤄진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와의 합의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지각비에 대해 묻자 “세부 사항은 협의 중에 있다”는 말만 돌아왔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레진이 지각비 폐지를 결정한 것은 사측도 어느 정도 문제를 인지했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그 조항을 폐지하는 데 3개월, 그 이상 소요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합의서를 통해 ‘기존 계약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각비 조항에 대해서는 특정 시점부터 효력을 없애기로 한다’ 등의 취지로 충분히 진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계약대로 진행”
양측 얘기 달라

레진이 작가들의 지각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레진은 웹툰작가협회가 질의한 보상정책 유무와 계약서 명시에 대해 “올해 2월부터 서비스 운영상 과실에 대해 작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상호 합의하에 만족할만한 보상을 진행 중에 있다”면서도 “보상 정책은 계약서에 전부 명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웹툰작가협회의 첫 번째 질의에 대한 레진의 답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레진은 “계약 진행 과정서 작가들에게 지각비에 대해 설명했고 그들도 인지한 상태서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작가가 레진과의 계약 조항에 동의해 서명했기 때문에 지각비 징수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레진이 계약을 맺은 웹툰 에이전시와 계약서 변경 없이 작가에게 지각비를 징수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즉 작가와 레진, 에이전시 간의 계약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서 지각비 차감이 진행됐다는 것.

레진은 2015년 8월 이후 에이전시에 지각비 제도 도입과 시행을 알렸다. 그러자 에이전시는 2015년 10월 ‘[작가님 전체 공지 메일] 레진코믹스 원고 마감 시점 관련 페널티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작가들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11월1일부터 ‘이틀 전 오후 3시 마감 규정이 엄수돼 진행’ ‘페널티는 최대 9%’ ‘월 1회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레진과 직접 계약을 맺은 작가들의 지각비 조항과 동일하다.

논란 계속되자 폐지 결정
합의 시작은 3개월 뒤부터

이 문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레진에 작품을 연재한 A작가를 통해 알려졌다. 

실제 A작가는 2016년 지각비 조항에 따라 정산액을 차감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물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 논란이 불거진 걸 보고 그때 지각비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를 받지 못한 게 떠올랐다”고 전했다.

에이전시는 A작가의 문의에 “페널티에 대한 공지 그 자체(2015년 10월에 보낸 메일)가 계약의 효과로 진행됐던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며 “자사도 레진 측으로부터 페널티에 대한 내용을 공지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A작가가 에이전시의 답변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추가 이메일이 이어졌다. 

에이전시는 “지각비 적용과 관련해 레진과 자사, 자사와 작가님 사이에 문서화된 계약서를 주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작가가) 별도의 이견을 피력한 적이 없었기에 최근 문제 제기에 당황스럽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의 변경은 서면 합의로만 이뤄질 수 있다. 

김성주 변호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해봐야 하지만 이메일을 통한 공지는 ‘통보’에 가깝다”며 “통보 자체가 계약 내용의 변경에 대한 합의로 보긴 어렵다. 작가들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레진 관계자는 (에이전시서)우리와 동일하게 지각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해당 조항이 계약서에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에이전시는 계약서에 지각비 조항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일 SNS에는 레진에 작품을 연재 중인 B작가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작가는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논리에 경영진이 행한 이 얼토당토않은 일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당신들과의 약속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 엄마에게 했던 그 모진 말을 용서하기 힘들어요”라고 적었다.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던 B작가의 어머니는 지각비 증빙 자료와 관련해 B작가와 말다툼을 벌이고 아파트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B작가는 “당시 그 달(10월)의 첫 번째 지각이어서 지각비 차감대상도 아니었다. 레진은 엄마가 아프다는 증거를 해당 주도 아닌 그다음 주에야 요구했다”며 “나중에 확인해보니 레진은 작가들에게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명확한 기준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엄마의 죽음과 레진의 지각비 제도가 무슨 상관이냐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그렇지만 나는 이번 일이 지각비 제도의 ‘부작용’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기준 없어
“면제하려 했다”

레진 관계자는 “저희 PD가 (B작가의) 지각비를 면제해 드리려고 증빙서류를 요청한 것 같다”면서도 “매번 지각비에 대한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은 유료 플랫폼 중에서도 선두주자였고 친작가주의라는 좋은 이미지로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개선 의지야 레진에 달렸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입장문이나 대처 등을 보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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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