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PGA' 더 CJ컵@나인브릿지 이모저모

흥행은 성공, 매너는 글쎄

‘더 CJ컵@나인브릿지’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PGA투어 대회로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PGA의 간판스타 저스틴 토머스와 제이슨 데이 등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며 3만5000여명의 갤러리들을 흥분시켰고, 이번 투어를 위해 만전을 기한 주최 측의 준비와 진행으로 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달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더 CJ컵@나인브릿지’가 제주 나인브릿지 골프장에서 진행됐다. 국내서 처음 열린 PGA투어인 이번 대회에는 세계 남자 골프무대에서 가장 핫한 저스틴 토머스, 제이슨 데이 등 내로라하는 골프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저스틴 토마스
챔피언 등극

올 시즌 PGA투어 세 번째 대회인 더 CJ컵@나인브릿지는 총상금만 925만달러(약 105억원)다. 마스터스 등 메이저 대회와 WGC,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정도를 빼고는 상금 규모가 가장 크다. 출전 선수 모두 78명. 올해 PGA챔피언십 우승자 저스틴 토머스(24·미국)와 전 세계 1위 제이슨 데이(30·호주), 2013년 마스터스 챔피언 애덤 스콧(37·호주)이 일찌감치 참가 신청을 했다.

제주의 바람을 뚫고 초대 챔피언에 오른 선수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세계랭킹 3위의 저스틴 토머스였다. PGA 통산 7승을 달성한 토머스는 “첫날 9언더파를 쳤는데 사흘 동안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도 우승했다”며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 바람은 내게 아주 괴상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제주 바람은 대회 마지막 날에도 거셌다. 태풍‘란’의 영향으로 시속 40㎞의 강풍이 불었고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바뀌면서 타수를 까먹은 선수들이 속출했다. ‘데일리 베스트 스코어’가 전날보다 1타 준 4언더파 68타(팻 페레즈)에 그칠 정도였다. 잘 치는 것보다 실수를 덜 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3라운드까지 합계 9언더파 207타를 쳐 스콧 브라운(미국)과 공동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토머스는 3번홀(파5)에서 티샷을 왼쪽 해저드에 빠뜨리며 더블 보기를 범해 선두에서 내려왔으나 9번홀(파5)부터 3연속 버디를 낚고 중간합계 10언더파를 이루면서 1위로 올라섰다.

초대 챔피언은 저스틴 토머스
손에 땀 쥐게 만든 연장 승부

이후 13번홀(파3)과 17번홀(파3)에서 각각 1타씩 잃은 뒤 18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공동선두로 마쳤다. 토머스는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 더블보기 1개로 이븐파 72타를 쳐 합계 9언더파 279타로 마크 리슈먼(호주)과 공동 선두를 이룬 뒤 두 번째 연장전에서 승리해 상금 166만달러(약 18억8000만원)를 차지했다.

나인브릿지의 상징홀인 18번홀(파5·568야드)에서 펼쳐진 연장전은 세계 골프팬들에게 짜릿한 흥분과 스릴을 안겨주었다. 나인브릿지 18번홀은 연못을 두고 왼쪽으로 휘는 도그레그홀로 우승을 노리는 선수라면 반드시 투 온에 성공한 뒤 버디 이상의 스코어를 올려야 하는 승부처다.

첫 번째 연장 18번홀에선 압박감에 모두 티샷 실수를 저질렀다. 토머스는 러프에 빠졌고, 리슈먼은 카트 도로에 들어갔다. 하지만 리슈먼은 돌담과 나무 사이를 꿰뚫은 트러블샷의 진수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승부는 두 번째 연장홀에서 갈렸다. 리슈먼의 두 번째 우드 샷이 워터해저드에 빠진 반면 토머스의 두 번째 우드샷은 그린 가까이 붙었다. 결국 버디를 잡은 토머스가 2017~2018시즌 첫 우승을 신고했다.

지난 시즌 페덱스컵 우승으로 1000만 달러를 거머쥐고 2017 PGA 투어 ‘올해의 선수’에 뽑히는 등 최고로 올라선 토머스는 상금과 보너스로 지난 시즌에만 약 225억원을 벌었다. 토머스는 “독특한 우승컵에 한글로 이름을 새겨주셨는데, 이 기회에 한글로 내 이름 쓰는 법을 배워볼까 한다”며 웃었다.

한국 선수로는 김민휘(35)가 합계 6언더파 282타 4위로 가장 성적을 거뒀다. 최종 라운드에서 역전 우승에 도전했던 김민휘(25)는 이븐파 72타를 쳐 끝내 선두와 3타차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한때 선두에 1타차까지 따라붙었던 안병훈(26)은 버디를 6개나 잡았지만 1·13번 홀 트리플보기와 16번 홀 보기로 타수를 1타 까먹어 4언더파 284타 공동 11위에 그쳤다. 김경태(31)가 2오버파 290타로 공동 28위, 노승열(26)과 최진호(33)가 4오버파 292타로 공동 36위에 자리했다. 최진호는 “제주 바람은 (PGA투어 선수보다) 우리가 익숙한데 그 점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선수들은 1m도 채 안 되는 짧은 퍼트에서도 그린의 고유 굴곡인 한라산 브레이크와 바람을 함께 읽어내느라 보통 15분 정도인 한 홀을 끝내는 데 20분 이상을 써야 했다.

변수로 작용한 
변화무쌍 바람

지난 시즌 PGA는 저스틴 토머스를 빼고 논할 수 없는 한해였다. 26살 저스틴 토머스는 지난 8월 막을 내린 PGA투어 2016-2017시즌에 상금왕, 다승왕, 올해의 선수를 휩쓸었다. 2017-2018시즌 두 번째 대회 ‘더 CJ컵@나인브릿지’에서 우승을 신고하며 이번 시즌 힘찬 시동을 걸었다.

올 시즌 일취월장한 기량으로 최강자에 오른 토머스의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신의 실력으로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2015년 마스터스와 US 오픈 등 메이저 챔피언, 페덱스컵 챔피언으로 이미 명성을 날리던 조던 스피스(미국)의 절친이라는 수식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머스는 대학시절에는 스피스 못지않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9년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역대 세 번째 어린 나이(16세3개월24일)로 컷 통과에 성공했다. 2012년 앨라배마 대학교에 진학한 토머스는 1학년 때 그 해 가장 뛰어난 대학생 골퍼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흥행 성공
기대 증폭

2013년 프로 전향 후 2부 투어인 웹닷컴을 전전하다 2015년에야 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는 친구인 조던 스피스가 메이저 2승 등 통산 8승을 올리며 세계 랭킹 5위에 오르는 동안 별다른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015년 10월 CIMB클래식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5년에는 톱10에 7번 들었고 페덱스컵 랭킹 3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신인 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2015-2016 시즌에는 더 강해졌다. 시즌 두 번째 대회인 CIMB 클래식에 출전해 PGA 투어 첫 승을 신고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는 계속됐다. 2016-2017 시즌에는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CIMB 클래식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SBS 토너먼트 오픈과 소니 오픈을 석권하며 PGA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특히 소니 오픈에서는 1라운드에서 ‘꿈의 59타’를 시작으로 36홀 최저타 신기록(123타), 54홀 최저타 타이(188타), 72홀 최저타 신기록(253타)을 연거푸 작성했다. 6월 US 오픈에서는 3라운드에서 9언더파를 몰아치며 117년 US 오픈 역사상 단일라운드 최다언더파 신기록을 세웠다. PGA 챔피언십까지 거머쥐며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더 CJ컵@나인브릿지 첫날 대회가 열린 제주 서귀포의 클럽나인브릿지(파72)에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멋진 샷을 보기 위한 관중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10만원인 입장권은 1만장 이상 팔렸고 대회 첫날부터 4000명 넘는 갤러리들이 입장해 흥행을 예고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PGA 정규투어 대회이자 스타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인 만큼 많은 골프팬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저스틴 토마스(미국)가 12번홀(파5)에서 호쾌한 까치발 스윙으로 투 온에 성공하자 지켜보던 갤러리들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전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가 정교한 샷으로 4연속 버디에 성공할 때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졌다. 

연습라운드와 프로암 때도 수많은 관중들이 대회장을 찾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첫날 가장 관심을 끈 토머스와 배상문(31), 팻 페레즈(미국) 조에는 수백명의 갤러리가 따라붙었다. 선수들의 샷 하나하나에 반응했고, 스윙 동작을 담기 위해 멀리서 동영상 촬영을 했다. 선수들이 페어웨이를 지날 때면 배경 삼아 셀카를 찍기 바빴다.


비싼 티켓값에도 연일 인산인해
미성숙한 갤러리 문화 ‘옥에 티’

대회를 주최한 CJ그룹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특급 대회인 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만전을 기했다. 곳곳에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선수들은 물론 관람객들의 안전과 질서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협소한 주차공간 대신 경기장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임시 주차장을 설치해 대회장 주변 교통난을 해소했고 주차장과 대회장을 오가는 셔틀 버스가 관중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이동 편의를 제공했다.

대회 조직위에 따르면 1라운드가 시작한 지난달 19일부터 나흘 동안 대회장을 방문한 갤러리들은 총 3만5000여명으로 집계됐다. 평일 오전 시간대에 치러졌음에도 1라운드에 5500여명의 갤러리들이 운집했고 최종 라운드가 열린 22일에는 1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티켓 가격에도 1만3500여명이 대회장을 가득 메웠을 정도로 흥행했다.

최초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더 CJ컵@나인브릿지에 대해 PGA투어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하며 전체적인 운영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달 22일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PGA투어 국제사업부 타이 보타우 부사장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첫 PGA투어 공식 대회인데, 선수들이 제주도에서 플레이를 하며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이번이 세 번째 대회인데, 아시아 시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타이 보타우 부사장 역시 “앞으로 이 대회에 대해 KPGA의 역할을 좀 더 확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지속적인 논의를 할 예정”이라며 “이 대회는 10년 계약이 이미 체결된 것처럼 굉장히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수준 높은 경기와 갤러리들의 많은 관심 속에 대회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도 있었다. 인기 있는 선수들에게 관중이 집중되다보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선수들의 조에는 따라 붙는 갤러리 한 명 없이 그들만의 경기를 하는 모습도 아쉬웠다.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도중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자원봉사자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토머스가 1라운드 도중 갤러리들에게 직접 자제를 당부했을 정도였다. 그 때부터 “노 카메라”는 새로운 홀에 들어서는 캐디들의 인사말이 됐다. 뿐만 아니라 티 샷을 앞둔 선수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갤러리가 있는가 하면 마지막 날 11번홀에서 토마스가 티샷 한 볼이 러프에 떨어지자 갤러리가 주워서 던져주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갤러리 문화
여전한 숙제

방송 중계권 확대 등은 숙제로 남았다. 지상파 방송사 SBS의 중계 시간은 주말 라운드 오후 1~3시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고 케이블 채널 SBS스포츠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생중계했지만 포털사이트와의 중계권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모바일로는 시청이 불가능해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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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